[국가] 의로운 해가 뜨는 나라
본문
지난 며칠 동안 지구촌 전체에서 2000년 새로운 해를 맞이하려는 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세계의 매스컴들이 해가 제일 먼저 少募곳에서 서로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태양'을 '해'라고 부르므로 '새해'라는 말은 '새로운 태양'이遮말이다. 해가 인간의 삶에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1999년이니 2000년이니 하는 표현은 해 년(年)자를 써서 1999번째의 해, 2000번째의 해라는 말이다.
이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365일 5시간 48분 46초라는 시간을 말한다. 날(日)이란 말도 '해'를 바라보고 있는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공전(公轉)과 자전(自轉)이라는 것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태양이 떠오른다(해돋이)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스스로 자전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결과이다. 성경도 이렇게 표현했지만 천체나 항공, 항해를 위한 과학적인 연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이해하고 있다.
만일 이렇게 절대적인 태양이 오늘부터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태양열로 인해 따뜻하게 난방이 되었던 지구는 싸늘하게 식기 시작하여 모든 것은 점차 영하 수 백도의 혹한에 동결되어 버림으로써 땅위의 생물이나 바다 속의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태양이 뜨지 않는다면 사람도 살아갈 수 없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은 마지막날 곧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환경 속에 창조되어 지금까지 그 속에서 존재해 왔으므로 다른 생물들까지 모두 얼어죽은 환경에서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태양 빛으로 인해 환한 환경에서 활동하던 모든 생물들은 달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역시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태양 빛이 비추이지 않으면 모든 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의 탄소동화작용도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태양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2000년 새해'라는 말이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단지 지난해를 보내고 새로운 천년기의 해를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자는 것인가
2. 해 자체에나 해 아래에는 새해란 없다(전 1:9,10)
(1) 2000년에 떠오르는 해도 많이 늙었다
해 아래 모든 것들은 쇠하고 낡아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태양도 매초마다 약 400만 톤씩의 질량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가 태엽이 풀리는 시계와도 같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것을 가리켜 열역학 제2의 법칙 또는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태양도 존재한 그 때로부터 계속 늙어왔다. 이 세상에 진정한 '새해'는 없다는 말이다.
성경도 증거하기를 그것들은 장차 멸망할 것으로 옷과 같이 낡아지고 변하고 쇠하고 갈아입을 것이라고 했다(히 1:10-12).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지만 과학을 능가하는 책이다. 과학자들은 지구나 달의 연령을 40억-45억 년으로 보아왔다. 그래서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 올렸을 때 달 표면에는 40억년이나 쌓인 먼지층이 6m 두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마치 거미 다리와도 같은 우주선을 다리를 만들었으나 달표면에는 겨우 2-5㎝의 먼지가 쌓였을 뿐이었다. 우주로부터 매년 1400만 톤의 우주진이 혹성에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45억 년 동안 쌓이면 지구나 달에는 계산 상 약 55m 두께의 먼지층이 쌓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긴 기간이 흘러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수많은 저명한 과학자들도 성경의 증언에 동감한다. 1961년 영국 런던의 가이 병원의 생화학 강사인 데이빗 가우어 박사도 '방사선에 의한 연대 측정법'에서 지구의 연령의 상한선은 10000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렇다. 성경은 해나 그 아래에 있는 것들 중에 새 것은 하나도 없다고 증거한다.
서기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정하여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고 있다. 지금 맞은 주후 2000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200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이미 성경이 증거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따라 정한 것이므로 새 천년이라는 말은 성경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탄생은 주전 4년이라고 역사 학자들은 말한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당시의 로마와 유대 통치자들의 통치연대와 비교할 때 증명되는 것이다. 현재 연대는 주후 550년경의 카톨릭교 수도승 디오니시우스에 의해 잘못 계산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탄생 후 이미 2004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 새로운 천년기(뉴 밀레니엄)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4년 전부터 새로운 천년기를 살아왔다는 말이다. 새로운 천년이란 의미도 없으나 다만 사람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붙인 것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새로운 해는 해 아래에는 없다는 사실을 성도들은 깨달아야 한다.
(2) 늙은 해, 늙어 가는 해로 치유할 수 없는 병이 있다
2000년대에 세계의 두뇌들이 내놓는 청사진들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2000년대 한 세기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인간들은 유전자를 수리하고 조합하여 사람들이 늙지 않고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라고 한다. 우주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정착지를 만들어 이주시키고 빛과 같은 속도의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를 여행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과연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과학자들은 불과 몇 십 년 전에 공상과학에나 나오는 일들이 현실로 나타난 이상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 기간은 더욱 단축될 수도 있다고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유토피아는 인류의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KBS에서 '2000년 새해에 첫째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전화로 하는 것을 언뜻 본 적이 있다. 그 중에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은 것은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남북통일이나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 등등이었다. 소박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바래던 꿈이다. 그러나 새해에는 그런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새롭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의 주체인 사람의 근본이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이 점점 쇠하여 가듯이 사람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게 근본문제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으나 인간을 근본적으로 치유함으로써 인간사회에 가져다 줄 진정한 평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기에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2000년을 맞이하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자는 운동은 최대의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인류 전체가 멸망을 당할 것인지 공존할 것인지가 초미의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남극의 하늘의 난 구멍을 메울 수가 없다. 지구촌 동물들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 허파와 같은 녹지대는 계속 훼손되어가고 있고 하늘과 바다와 땅은 예전보다 더 심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롬 8:20). 그 가운데 주체가 되는 인간은 아무리 육체적인 기능을 되돌릴지라도 그의 마음과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을 회복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병들은 아무리 2000년의 태양이 힘있게 비추어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3. 그러므로 새로운 영원한 해가 떠올라야 한다(말 4:2)
(1) 진정한 태양은 인간의 심령까지 비춘다
태양은 떠올라서 지구 구석구석을 비춘다. 식물들에게 생명을 주고 동물들에게 힘찬 활력을 준다. 그러나 그 햇빛으로는 사람의 마음까지 비출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사람의 심령의 땅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태양이 떠올라야 한다. 만물보다 더 부패한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어야 한다. 그 태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태양은 다시는 지지 않아 밤이 없이 낮만 계속 될 것이다.
(2) 그러면 영원히 지지 않을 해는 무엇인가
엘리야가 그 해가 떠오르는 길을 예비할 것이라 했다(말 4:4-6). 이는 누가복음 1장 15-17절에서 성취되었음을 증거한 말씀이다.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님 앞서 왔다(마 11:14). 그는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는 일을 했다.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主) 여호와 하나님께로 이끌었고 그가 닦아 놓은 길로 오신 분은 바로 그 백성들을 지으신 창조주요 만유의 아버지이셨다(사 1:2-4; 말 1:6). 정녕 야훼 여호와 하나님 앞서 보내신 야훼의 사자는 요한이었고 요한 뒤에 자기 백성을 찾아오신 이는 그들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야훼이셨다(말 3:1-3). 그 의로운 해는 믿음의 금을 연단하는 불과 같이 죄를 표백하는 잿물과 같이 떠올랐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진정한 구원자가 되기 위해 아들 안에서 새언약의 사자가 되어 오셨다.
4. 해돋이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해돋이를 보려면 말씀과 일치시키는 야훼의 산에 올라야 한다(사 2:2,3)
오늘날 새 천년의 해를 어디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지 알쏭달쏭한 일이다. 영원한 태양이 어떻게 떠오르는지 정말 반드시 성경말씀과 일치시켜야 한다. 일찍이 그가 오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오실 '임마누엘'이라고 증거했다(사 7:14). 그리고 그 때에 전하는 이들의 말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증거했다(사 8:20).
그리고 그는 종이 아닌 아들의 명분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다(갈 4:4). 그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증거했다(사 9:6).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는 한 여호와 하나님 곧 한 아버지만 계신다(고전 8:6). 그는 전능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며(요 20:28), 홀로 하나이신 천지의 주재 아버지이시다(사 63:17; 말 2:10; 마 11:25-30; 유 1:4).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의 모든 충만을 육체로 가지고 오신 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이다(골 2:2,9).
바울은 이를 가리켜 경건의 비밀이라 했다(딤전 3:15,16). 그는 모사라 우리 곁에서 죄를 위해 자기 육체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의를 위해 우리 안에 자기 영을 주신 보혜사요 돕는 자요 위로자시다. 누구든지 배운 가르침이 기록된 말씀과 맞지 않으면 정녕코 아침빛을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름이나 안개를 걷히게 하고 눈에 쓴 안경을 벗기듯이 가려진 모든 것을 벗겨야 한다(요 12:39-43; 고후 3:16; 4:3).
(2)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한 해가 떠오른다
그 태양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 예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떠오르므로 영원한 해돋이를 맞이하려면 그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 모든 만물은 그에 의해 피조되었으며 단 하나도 그분이 짓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요 1:1-3). 그분은 태초의 알파이시며 오메가이시고 생명이며 빛이며 사랑이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요 1:12; 20:31).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요 3:18).
'예수'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인데 그 뜻은 '야훼는 구원이 되셨다'이다. 모세라는 종을 통하여 약하고 낮고 천한 옛언약을 맺을 때 계시하신 이름은 예수라는 아들을 통해 영원한 새언약을 맺으실 때 온전하게 계시되었다. 마치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신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 외에 천하 인간에게 구원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며(행 4:12) 그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는다(욜 2:32; 행 2:21,38). 그 이름은 하늘에 계신 이의 최고의 이름이다(빌 2:10,1). 그러므로 말에나 일에는 다 그 이름으로 할 때 그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다(골 3:17). 성도의 이마에는 그 이름이 새롭게 기록된다(계 22:4).
(3) 그 이름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당시의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다고 책망했다(말 1:6).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의로운 제물을 드릴 때 그 이름이 오히려 이방인들 가운데서 크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말 1:11-14). 야훼()라는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알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랬으며 지금도 이름을 정확히 부를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름은 '예수'라는 완전한 이름으로 계시되었다(요 5:43; 17:26). 그가 자기 땅 자기 백성들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요 1:11-13, 엡 4:4-6).
그 이름을 위할 종을 불렀고 그 종은 그 이름을 이방인에게로 알렸다(행 9:15,16; 롬 9:17,29; 10:12,13). 유대인들은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다. 이방인들에게 전파된 이름도 부를 줄 모르는 그 이름이 아니다. 그들이 불러서 구원을 얻을 이름은 오직 '예수'이며 그 이름은 이방인들 중에서 크게 되신 주 여호와 하나님 전능하시며 영존하신 아버지의 이름이다.
(4) 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하고 치료하는 광선을 비취게 하려면 그 이름을 불러라
그 해는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땅을 비춘다(고후 4:3-6). 그 빛이 오기 전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었다. 그 이름을 믿고 부르는 자는 죄사함과 새생명의 축복의 해를 맞이한다. 그 찬란한 영광의 복음은 무엇인가 영광스런 교회가 탄생한 오순절날에 천국열쇠를 받은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에서부터 선포된 사도행전 2:38절이다(미 4:1,2). 그 약속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주신 것이다(행 2:39). 그 복음을 순종할 때 영생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벧전 1:22-25).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는다(행 10:42; 요일 2:12).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사도들은 다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행 8:16; 10:48; 19:5, 22:16).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 아래에서 그 이름을 대적했으나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행 3:616; 4:17,18; 5:28,40-42). 그들은 축도하는 말이나 침례주는 일이나 다 그 이름으로 했다(골 3:17). 과연 당신의 마음에도 영원한 태양빛이 떠올랐는가(고후 4:3-6) 말씀이 기록된 성경과 맞지 않으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365일 5시간 48분 46초라는 시간을 말한다. 날(日)이란 말도 '해'를 바라보고 있는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공전(公轉)과 자전(自轉)이라는 것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태양이 떠오른다(해돋이)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스스로 자전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결과이다. 성경도 이렇게 표현했지만 천체나 항공, 항해를 위한 과학적인 연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이해하고 있다.
만일 이렇게 절대적인 태양이 오늘부터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태양열로 인해 따뜻하게 난방이 되었던 지구는 싸늘하게 식기 시작하여 모든 것은 점차 영하 수 백도의 혹한에 동결되어 버림으로써 땅위의 생물이나 바다 속의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태양이 뜨지 않는다면 사람도 살아갈 수 없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은 마지막날 곧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환경 속에 창조되어 지금까지 그 속에서 존재해 왔으므로 다른 생물들까지 모두 얼어죽은 환경에서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태양 빛으로 인해 환한 환경에서 활동하던 모든 생물들은 달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역시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태양 빛이 비추이지 않으면 모든 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의 탄소동화작용도 멈추게 된다. 그러므로 태양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2000년 새해'라는 말이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단지 지난해를 보내고 새로운 천년기의 해를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자는 것인가
2. 해 자체에나 해 아래에는 새해란 없다(전 1:9,10)
(1) 2000년에 떠오르는 해도 많이 늙었다
해 아래 모든 것들은 쇠하고 낡아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태양도 매초마다 약 400만 톤씩의 질량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가 태엽이 풀리는 시계와도 같다는 증거는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것을 가리켜 열역학 제2의 법칙 또는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태양도 존재한 그 때로부터 계속 늙어왔다. 이 세상에 진정한 '새해'는 없다는 말이다.
성경도 증거하기를 그것들은 장차 멸망할 것으로 옷과 같이 낡아지고 변하고 쇠하고 갈아입을 것이라고 했다(히 1:10-12).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지만 과학을 능가하는 책이다. 과학자들은 지구나 달의 연령을 40억-45억 년으로 보아왔다. 그래서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 올렸을 때 달 표면에는 40억년이나 쌓인 먼지층이 6m 두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마치 거미 다리와도 같은 우주선을 다리를 만들었으나 달표면에는 겨우 2-5㎝의 먼지가 쌓였을 뿐이었다. 우주로부터 매년 1400만 톤의 우주진이 혹성에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45억 년 동안 쌓이면 지구나 달에는 계산 상 약 55m 두께의 먼지층이 쌓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긴 기간이 흘러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수많은 저명한 과학자들도 성경의 증언에 동감한다. 1961년 영국 런던의 가이 병원의 생화학 강사인 데이빗 가우어 박사도 '방사선에 의한 연대 측정법'에서 지구의 연령의 상한선은 10000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렇다. 성경은 해나 그 아래에 있는 것들 중에 새 것은 하나도 없다고 증거한다.
서기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정하여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고 있다. 지금 맞은 주후 2000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200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이미 성경이 증거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따라 정한 것이므로 새 천년이라는 말은 성경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탄생은 주전 4년이라고 역사 학자들은 말한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당시의 로마와 유대 통치자들의 통치연대와 비교할 때 증명되는 것이다. 현재 연대는 주후 550년경의 카톨릭교 수도승 디오니시우스에 의해 잘못 계산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탄생 후 이미 2004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 새로운 천년기(뉴 밀레니엄)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4년 전부터 새로운 천년기를 살아왔다는 말이다. 새로운 천년이란 의미도 없으나 다만 사람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붙인 것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새로운 해는 해 아래에는 없다는 사실을 성도들은 깨달아야 한다.
(2) 늙은 해, 늙어 가는 해로 치유할 수 없는 병이 있다
2000년대에 세계의 두뇌들이 내놓는 청사진들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2000년대 한 세기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인간들은 유전자를 수리하고 조합하여 사람들이 늙지 않고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라고 한다. 우주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정착지를 만들어 이주시키고 빛과 같은 속도의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를 여행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과연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과학자들은 불과 몇 십 년 전에 공상과학에나 나오는 일들이 현실로 나타난 이상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 기간은 더욱 단축될 수도 있다고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유토피아는 인류의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KBS에서 '2000년 새해에 첫째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전화로 하는 것을 언뜻 본 적이 있다. 그 중에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은 것은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남북통일이나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 등등이었다. 소박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바래던 꿈이다. 그러나 새해에는 그런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새롭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의 주체인 사람의 근본이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이 점점 쇠하여 가듯이 사람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게 근본문제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으나 인간을 근본적으로 치유함으로써 인간사회에 가져다 줄 진정한 평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기에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2000년을 맞이하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자는 운동은 최대의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인류 전체가 멸망을 당할 것인지 공존할 것인지가 초미의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남극의 하늘의 난 구멍을 메울 수가 없다. 지구촌 동물들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 허파와 같은 녹지대는 계속 훼손되어가고 있고 하늘과 바다와 땅은 예전보다 더 심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롬 8:20). 그 가운데 주체가 되는 인간은 아무리 육체적인 기능을 되돌릴지라도 그의 마음과 인간의 본질적인 정신을 회복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병들은 아무리 2000년의 태양이 힘있게 비추어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3. 그러므로 새로운 영원한 해가 떠올라야 한다(말 4:2)
(1) 진정한 태양은 인간의 심령까지 비춘다
태양은 떠올라서 지구 구석구석을 비춘다. 식물들에게 생명을 주고 동물들에게 힘찬 활력을 준다. 그러나 그 햇빛으로는 사람의 마음까지 비출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사람의 심령의 땅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태양이 떠올라야 한다. 만물보다 더 부패한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어야 한다. 그 태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태양은 다시는 지지 않아 밤이 없이 낮만 계속 될 것이다.
(2) 그러면 영원히 지지 않을 해는 무엇인가
엘리야가 그 해가 떠오르는 길을 예비할 것이라 했다(말 4:4-6). 이는 누가복음 1장 15-17절에서 성취되었음을 증거한 말씀이다.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님 앞서 왔다(마 11:14). 그는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는 일을 했다.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主) 여호와 하나님께로 이끌었고 그가 닦아 놓은 길로 오신 분은 바로 그 백성들을 지으신 창조주요 만유의 아버지이셨다(사 1:2-4; 말 1:6). 정녕 야훼 여호와 하나님 앞서 보내신 야훼의 사자는 요한이었고 요한 뒤에 자기 백성을 찾아오신 이는 그들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야훼이셨다(말 3:1-3). 그 의로운 해는 믿음의 금을 연단하는 불과 같이 죄를 표백하는 잿물과 같이 떠올랐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진정한 구원자가 되기 위해 아들 안에서 새언약의 사자가 되어 오셨다.
4. 해돋이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해돋이를 보려면 말씀과 일치시키는 야훼의 산에 올라야 한다(사 2:2,3)
오늘날 새 천년의 해를 어디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지 알쏭달쏭한 일이다. 영원한 태양이 어떻게 떠오르는지 정말 반드시 성경말씀과 일치시켜야 한다. 일찍이 그가 오실 것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오실 '임마누엘'이라고 증거했다(사 7:14). 그리고 그 때에 전하는 이들의 말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증거했다(사 8:20).
그리고 그는 종이 아닌 아들의 명분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다(갈 4:4). 그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증거했다(사 9:6).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는 한 여호와 하나님 곧 한 아버지만 계신다(고전 8:6). 그는 전능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며(요 20:28), 홀로 하나이신 천지의 주재 아버지이시다(사 63:17; 말 2:10; 마 11:25-30; 유 1:4).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의 모든 충만을 육체로 가지고 오신 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이다(골 2:2,9).
바울은 이를 가리켜 경건의 비밀이라 했다(딤전 3:15,16). 그는 모사라 우리 곁에서 죄를 위해 자기 육체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의를 위해 우리 안에 자기 영을 주신 보혜사요 돕는 자요 위로자시다. 누구든지 배운 가르침이 기록된 말씀과 맞지 않으면 정녕코 아침빛을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구름이나 안개를 걷히게 하고 눈에 쓴 안경을 벗기듯이 가려진 모든 것을 벗겨야 한다(요 12:39-43; 고후 3:16; 4:3).
(2)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한 해가 떠오른다
그 태양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 예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떠오르므로 영원한 해돋이를 맞이하려면 그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 모든 만물은 그에 의해 피조되었으며 단 하나도 그분이 짓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요 1:1-3). 그분은 태초의 알파이시며 오메가이시고 생명이며 빛이며 사랑이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요 1:12; 20:31).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요 3:18).
'예수'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인데 그 뜻은 '야훼는 구원이 되셨다'이다. 모세라는 종을 통하여 약하고 낮고 천한 옛언약을 맺을 때 계시하신 이름은 예수라는 아들을 통해 영원한 새언약을 맺으실 때 온전하게 계시되었다. 마치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신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 외에 천하 인간에게 구원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며(행 4:12) 그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는다(욜 2:32; 행 2:21,38). 그 이름은 하늘에 계신 이의 최고의 이름이다(빌 2:10,1). 그러므로 말에나 일에는 다 그 이름으로 할 때 그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다(골 3:17). 성도의 이마에는 그 이름이 새롭게 기록된다(계 22:4).
(3) 그 이름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당시의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다고 책망했다(말 1:6). 의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의로운 제물을 드릴 때 그 이름이 오히려 이방인들 가운데서 크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말 1:11-14). 야훼()라는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알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한 이름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랬으며 지금도 이름을 정확히 부를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름은 '예수'라는 완전한 이름으로 계시되었다(요 5:43; 17:26). 그가 자기 땅 자기 백성들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요 1:11-13, 엡 4:4-6).
그 이름을 위할 종을 불렀고 그 종은 그 이름을 이방인에게로 알렸다(행 9:15,16; 롬 9:17,29; 10:12,13). 유대인들은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다. 이방인들에게 전파된 이름도 부를 줄 모르는 그 이름이 아니다. 그들이 불러서 구원을 얻을 이름은 오직 '예수'이며 그 이름은 이방인들 중에서 크게 되신 주 여호와 하나님 전능하시며 영존하신 아버지의 이름이다.
(4) 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하고 치료하는 광선을 비취게 하려면 그 이름을 불러라
그 해는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땅을 비춘다(고후 4:3-6). 그 빛이 오기 전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었다. 그 이름을 믿고 부르는 자는 죄사함과 새생명의 축복의 해를 맞이한다. 그 찬란한 영광의 복음은 무엇인가 영광스런 교회가 탄생한 오순절날에 천국열쇠를 받은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에서부터 선포된 사도행전 2:38절이다(미 4:1,2). 그 약속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주신 것이다(행 2:39). 그 복음을 순종할 때 영생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벧전 1:22-25).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는다(행 10:42; 요일 2:12).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사도들은 다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행 8:16; 10:48; 19:5, 22:16).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 아래에서 그 이름을 대적했으나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행 3:616; 4:17,18; 5:28,40-42). 그들은 축도하는 말이나 침례주는 일이나 다 그 이름으로 했다(골 3:17). 과연 당신의 마음에도 영원한 태양빛이 떠올랐는가(고후 4:3-6) 말씀이 기록된 성경과 맞지 않으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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