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나라 사랑
본문
이번 수요일은 3·1운동이 일어난지 8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인 싱가폴과 우리보다 못 사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면서 우리 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를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제가 설교 중간 중간에 이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때에 여러분께서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운동이기에 의미가 깊습니다. 이 운동은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는 나라 사랑의 정신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면서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진정한 나라 사랑이 무엇인가를 미가서를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미가 선지자가 살고 있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의 사회와 유사한 점이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가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인데,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고위관리, 혹은 상류층에게 예언한 분인데 비해서 미가는 농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라셋' 사람이었다는 간단한 내용 외에는 그의 가문이나 직업에 대한 것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을 것을 보면 미가는 필경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활동한 모라셋은 유다 산골에서 해변가 평야 쪽으로 뻗은 낮으막한 산맥중 해발 약 1,000피트 가량 되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 마을은 아모스가 살던 드고아에서 17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와 미가와의 다른 점은 아모스는 적막한 사막에서 살았다면, 미가는 건실한 농부들이 근근히 소작농에 종사하는 농촌에서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가는 평범한 서민들의 고통이나 애환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으므로 '민주주의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가가 살고 있던 시대가 얼마나 무질서했던가는 미가서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당시 지주계급들은 무정하게도 농민을 짓밟고 간교한 장삿군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득추구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미2: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2)정치가들과 고위관리들은 얼마나 백송들을 탄압했는가를 3:1-3에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고 하면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글들로 강하게 예언했습니다.
(3)부자들은 냉혈한 채권자가 되어 농부과 과부와 고아의 것들을 무정하게 뺏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미2:8-9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 중 겉옷을 벗기며 내 백성의 부녀들을 너희가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도다"
(4)가장 공정해야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재판을 일삼고 있다는 데 대해 분노를 터트리고 있습니다. 미7:3-4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더욱이나 그 사회를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도해야할 종교 지도자들이나 예언가들도 심한 병에 걸렸음에 대해 전편에 계속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미가서를 읽고 있노라면 오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해주셨더니 방자하여져서 세계에서 부끄러운 일들을 가장 잘 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있음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금은 상당히 개선된 점이 많아졌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나쁜 면에서 두드러진 것이 다섯 가지가 됩니다.
(1)한국은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라는 오명(汚名)을 한국은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 1인 월도서 구입비가 몇 천원 내외인데 비해서 술값으로는 1인당 13만 4백원을 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년간 수십조 이상을 술값으로 날려보낸다는 점입니다.
(2)한국인의 금메달감은 버려진 아기를 최고 많이 수출하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해방이후 해외 입양자수가 무려 14만 명이나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은 아기수출로 매년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날카롭게 혹평하고 있을 정도인 것입니다.
(3)또한 부정부패가 얼마나 판을 치고 있는지 세계 각국의 청렴도 지수를 조사해보니까, 제일 께끗한 나라가 덴마크, 그 다음이 핀랜드, 그 다음이 뉴질랜드, 스웨덴인 반면, 우리 나라는 얼마나 엉터리인지, 자메이카나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공동 50위국에 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25%라고 하는 나라가 이 모양이니 너무나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사회가 부정부패의 사슬을 끓지 못하는 것은 인맥사회를 벗어나기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혈연(血緣)이나 지연(地緣)이나 학연(學緣) 둥, 끈끈한 인정으로 얽혀진 사회이기에 공과 사를 분명히 하지 못하게 함으로 부패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즈음 정치가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갈라지면서 4파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갈라지고 있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고 있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다시금 지역별로 나누고 있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4)한국은 가짜 상품 등 가짜가 판을 치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박사학위까지 가짜투성이요, 그런 학위를 받은 분들에 제일 많은 쪽이 목사라는 점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말,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번에 싱가폴에 갔더니 그곳에 있는 한국 가이드가 싱가폴 사람들 중에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에 가면 비록 가짜지만 세계 유명한 상표를 붙인 상품을 싸게 살수가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처럼 한국 사람들이 가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대단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한지요, 그러한 결과, 겉으로는 멀쩡하고 튼튼하게 보이던 다리나 백화점이나 건물 등이나 순식간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5)교통사망률이나 40대 사망률, 청소년 자살율, 양주나 가구, 모피코트 등, 사치품 수입 등이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나라가 윤리나 도덕적으로 형편 없는 나라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의 모든 부끄러운 것들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한국은 도덕철학이 결여되었다는 점입니다. 급성장한 경제로 물질문명은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신문명은 세계 중위권, 더 나가서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부동산투기나 부도덕한 방법을 부(富)를 독점한 한국사회의 5% 미만의 사람들이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국내에서는 마구 돈을 뿌리기 시작함으로 향락산업이나 음란산업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IMF 기간에도 해외 나가서는 사치향락품을 마구잡이로 사들임으로 온 국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좋지 않는 상황에서 제일 영향을 받는 것은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제일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철학의 빈곤에 있습니다.
싱가폴을 돌아보면서 그 사실을 절실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너무나 못 사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보면 잘 살고 있는 우리 나라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고 싱가폴을 돌아보면서 우리 나라가 나갈 길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싱가폴은 아주 작은 나라였지만 아주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땅은 우리 나라 제주도보다 작고 인구는 300만에 불과하며, 물도 없어서 말레이시아에서 송수관으로 수입해다가 먹을 정도로 자원이 없는 나라이지만 국민 GNP가 무려 3만불이었고, 국민의 주택보급율이 90%이었습니다.
노인들도 복지연금을 받고 살 뿐 아니라, 만약에 노인들이 거리에서 노숙하거나 거지행위를 하면 그 자녀들이 무서운 벌금을 받게 하는 등, 효도를 장려하는 나라였습니다.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정원국가, 혹은 열대상아의 나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공무원들에게 높은 봉급을 주는 대신, 만약에 공무원이 부정부패를 하다 발각되면 당장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후손 4대까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태형이라는 무서운 매를 맞습니다.
그 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매에다가 화공약품을 발라서 때리면 몸이 상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치료해주고 나으면 다시 때리고 다시 치료하는 등, 거의 4년동안 그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또한 치안이 아주 잘된 나라로 범죄가 별로 없는 반면, 공중질서가 아주 잘된 나라였습니다. 국민들에게도 질서를 지키도록 법을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길에다 담배꽁초를 버리면 벌금이 500불(우리 나라 돈으로 60만원)이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들키면 벌금이 1000불(우리 나라 돈으로 120만원)이요, 가짜를 팔다가 발각되면 무서운 벌금은 물론이고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주차 위반하면 벌금 15만원, 두 번 위반하면 면허를 취소할 정도요, 더욱이나 마약을 팔면 심한 경우에는 사형까지 시킬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물질문명과 아울러 정신문명이 높은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를 돌아보면서 너무나 부러웠고,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기독교인이 25%라는 우리 나라가 바로 그러한 나라가 되어야 할 터인데 엉뚱하게 비기독교국가가 그런 도덕적으로 바른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목사 부부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들을 심한 부끄러움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3·1절을 맞으면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차리어야 합니다. 어느 정치가들이나 어느 재벌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기독교인들부터 바로 서야 하겠다는 결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모든 비리를 지적한 것만 아니라 그 암담한 이스라엘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3장까지는 심판을 예고했다면, 4-5:15까지는 그리스도 왕국의 도래를 예언하고, 6장부터는 그 때까지 해야될 신앙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5:7에서는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 했습니다.
이는 그 유명한 '남은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리 시대가 썩고 병들었어도 자기의 남은 백성을 그루터기로 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 서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를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임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라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기만 홀로 의롭게 버티고 있는 줄 절망하는 마음이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남은 자 7,000명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발견하고 감격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가 병들고 교회가 보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들을 세우고 계시는 것이니, 문제는 우리가 각자 성도로서는 할 일을 하면서 남은 자의 대열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가는 그런 암담한 시대 속에서도 성도로서 해야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미6:8의 말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세 가지를 행하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라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1. 공의를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우주의 기초는 공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로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나라의 기초도 역시 공의입니다. 이 공의가 무너지면 나라가 흔들립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공의가 계속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의 각자 위치에서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의를 소금으로 표현했습니다. 소금은 쎡지않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썩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썩어 보여도 오직 버티면서 의를 지켜야 합니다.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해야 합니다. 공무원이든, 학자이든, 상인이든, 주부이든, 가정에서, 직장에서, 있는 위치에서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소금이 썩지 않으려면 먼저, 짠맛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짠맛을 잃은 성도는 먼저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밟고 다음에는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습니다. 성도의 짠맛은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이 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리스도의 의를 지키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소금은 희생할 때 공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소금은 자기가 녹아야 짠맛을 내며 방부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공의의 삶을 살려고 할 때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공의의 삶은 많은 희생이 요구됩니다. 고독도 당하고 물질의 손해도 당하고 요셉과 다니엘처럼 엄청난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당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더 큰 은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아무리 사회가 썩고 유혹이 많고, 모든 사람들이 세상 방법대로 산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소금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희생을 각오하십시오. 어떤 불의의 유혹도 극기하십시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로서 인정을 받아 더 큰 은혜와 능력을 받을 것이요, 동시에 그것이 나라 사랑의 길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자(仁慈)란 자비를 말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을 말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을 말합니다. 먼저 공의를 행해야 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의는 무죄한 사람을 해롭게 하지는 않으나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을 공의를 소금으로 비유하신 것처럼, 사랑은 빛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착한 행실, 곧 사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빛은 그리스도의 빛,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빛은 희생할 때 밝아집니다. 촛불은 자기 녹아짐을 통해서만 빛을 발합니다. 녹아짐 없이 빛을 낼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안됩니다.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물질이나 시간, 봉사를 희생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빛은 다른 이의 어둠을 벗기어줄 뿐 아니라, 다른 이의 길을 인도해 줍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의 허물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할 때 상대방의 허물까지 덮어주고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의 아름다움을 어디 있습니까 님편이나 아내의 허물도 다 덮어주는 데 있습니다. 사랑의 또 다른 면은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엄마가 자기 아이의 허물까지 덮어주는 사랑으로 끝납니까 아닙니다. 아이의 허물을 씻겨주고 고쳐주도록 도와주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거리에 나서서 목청을 돋우어 의를 외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묵묵히 희생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한국 사회가 질서가 잡히지 않고 혼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나없이 자기 이득만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요, 공의를 외치는 것도 그 속중심이 자기 이해관계에서 기인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한 공의의 외침은 공허한 것일 뿐입니다. 진정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공의를 외치고 봉사를 할 때만이 진정한 나라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이웃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기 위해서 초처럼 희생으로 녹아집시다. 우리는 불우한 내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서 희생으로 나누는 삶을 삽시다. 그것이 바로 나라 사랑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거리에 앉아 있는 거지에게 돈 한푼을 주는 것이나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도 나라 사랑이요,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도 나라 사랑이요, 한 영혼을 구하는 것도 나라 사랑인 줄로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여야 합니다.
미가서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악의 골자기에 빠져 헤메이는 인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실 뿐 아니라 친히 낮고 천한 곳에 육신을 입고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가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점에서는 아모스와 공통점이 있으나 겸손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 점에서는 아모스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예언은 메시아는 왕의 후손을 통해서 오시지 않고 평민 가운데서 미천한 몸으로 겸손히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의는 사랑이 있을 때 온전해지는 것이요, 사랑은 겸손을 가질 때만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도와줄 때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섬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본을 받아, 오직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공의와 사랑 뿐 아니라 겸손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십자가를 지는 섬김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겸손히 섬기려고 오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공의를 나타낼 때나 사랑을 나타낼 때나 섬기려는 자세에서 해야 합니다. 왜 사회가 어지럽기만 합니까 서로 높아지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교회가 시험에 듭니까 섬기려는 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나라가 세계 앞에 비난을 받을 때가 많습니까 조금 경제적으로 살만하다고 해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 가서 보면 한국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친절한 것같으나 속중심은 차거운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에 온 그 나라 노동자들이 너무나 천대를 받고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가 20만 6천명인데 61%가 불법체류자로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면서 갖은 천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들은 그 나라에서는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는 한국을 증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식사를 정성껏 대접하는 것도 큰 나라 사랑의 하나인 것입니다. 나라 사랑은 멀리 가서 큰 일, 큰 위대한 업적만 남기는 것만 아니라, 성도로서 자기의 가정, 자기의 직장, 자기의 이웃에서 묵묵히 희생하며 집에서 등 하나 끄는 것이나 물 한 방울 아끼는 것이나 내 집 앞을 쓰는 것도 나라 사랑이요, 산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나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것도 나랑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81주년이 되는 3·1절을 맞으면서 우리 한국의 1200만의 성도들 각자가, 아니 수백만, 아니 더 줄여서 수십만의 성도만이라도 남은 자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적은 빛, 적은 소금, 적은 섬김의 삶을 나타낼 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은 의연히 빛날 것이며, 세계 만방을 향해 마지막 때 선교국가로서 크게 쓰임 받는 날이 머지 않을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날을 맞이하면서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진정한 나라 사랑이 무엇인가를 미가서를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미가 선지자가 살고 있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의 사회와 유사한 점이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가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인데,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고위관리, 혹은 상류층에게 예언한 분인데 비해서 미가는 농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라셋' 사람이었다는 간단한 내용 외에는 그의 가문이나 직업에 대한 것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을 것을 보면 미가는 필경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활동한 모라셋은 유다 산골에서 해변가 평야 쪽으로 뻗은 낮으막한 산맥중 해발 약 1,000피트 가량 되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 마을은 아모스가 살던 드고아에서 17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와 미가와의 다른 점은 아모스는 적막한 사막에서 살았다면, 미가는 건실한 농부들이 근근히 소작농에 종사하는 농촌에서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가는 평범한 서민들의 고통이나 애환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으므로 '민주주의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가가 살고 있던 시대가 얼마나 무질서했던가는 미가서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당시 지주계급들은 무정하게도 농민을 짓밟고 간교한 장삿군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득추구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미2: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2)정치가들과 고위관리들은 얼마나 백송들을 탄압했는가를 3:1-3에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고 하면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글들로 강하게 예언했습니다.
(3)부자들은 냉혈한 채권자가 되어 농부과 과부와 고아의 것들을 무정하게 뺏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미2:8-9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 중 겉옷을 벗기며 내 백성의 부녀들을 너희가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도다"
(4)가장 공정해야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재판을 일삼고 있다는 데 대해 분노를 터트리고 있습니다. 미7:3-4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더욱이나 그 사회를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도해야할 종교 지도자들이나 예언가들도 심한 병에 걸렸음에 대해 전편에 계속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미가서를 읽고 있노라면 오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해주셨더니 방자하여져서 세계에서 부끄러운 일들을 가장 잘 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있음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금은 상당히 개선된 점이 많아졌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나쁜 면에서 두드러진 것이 다섯 가지가 됩니다.
(1)한국은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라는 오명(汚名)을 한국은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 1인 월도서 구입비가 몇 천원 내외인데 비해서 술값으로는 1인당 13만 4백원을 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년간 수십조 이상을 술값으로 날려보낸다는 점입니다.
(2)한국인의 금메달감은 버려진 아기를 최고 많이 수출하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해방이후 해외 입양자수가 무려 14만 명이나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은 아기수출로 매년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날카롭게 혹평하고 있을 정도인 것입니다.
(3)또한 부정부패가 얼마나 판을 치고 있는지 세계 각국의 청렴도 지수를 조사해보니까, 제일 께끗한 나라가 덴마크, 그 다음이 핀랜드, 그 다음이 뉴질랜드, 스웨덴인 반면, 우리 나라는 얼마나 엉터리인지, 자메이카나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공동 50위국에 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25%라고 하는 나라가 이 모양이니 너무나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한국사회가 부정부패의 사슬을 끓지 못하는 것은 인맥사회를 벗어나기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혈연(血緣)이나 지연(地緣)이나 학연(學緣) 둥, 끈끈한 인정으로 얽혀진 사회이기에 공과 사를 분명히 하지 못하게 함으로 부패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즈음 정치가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갈라지면서 4파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갈라지고 있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고 있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다시금 지역별로 나누고 있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4)한국은 가짜 상품 등 가짜가 판을 치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박사학위까지 가짜투성이요, 그런 학위를 받은 분들에 제일 많은 쪽이 목사라는 점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말,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번에 싱가폴에 갔더니 그곳에 있는 한국 가이드가 싱가폴 사람들 중에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에 가면 비록 가짜지만 세계 유명한 상표를 붙인 상품을 싸게 살수가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처럼 한국 사람들이 가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대단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한지요, 그러한 결과, 겉으로는 멀쩡하고 튼튼하게 보이던 다리나 백화점이나 건물 등이나 순식간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5)교통사망률이나 40대 사망률, 청소년 자살율, 양주나 가구, 모피코트 등, 사치품 수입 등이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나라가 윤리나 도덕적으로 형편 없는 나라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의 모든 부끄러운 것들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한국은 도덕철학이 결여되었다는 점입니다. 급성장한 경제로 물질문명은 세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신문명은 세계 중위권, 더 나가서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부동산투기나 부도덕한 방법을 부(富)를 독점한 한국사회의 5% 미만의 사람들이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국내에서는 마구 돈을 뿌리기 시작함으로 향락산업이나 음란산업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IMF 기간에도 해외 나가서는 사치향락품을 마구잡이로 사들임으로 온 국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좋지 않는 상황에서 제일 영향을 받는 것은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제일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철학의 빈곤에 있습니다.
싱가폴을 돌아보면서 그 사실을 절실하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너무나 못 사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보면 잘 살고 있는 우리 나라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고 싱가폴을 돌아보면서 우리 나라가 나갈 길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싱가폴은 아주 작은 나라였지만 아주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땅은 우리 나라 제주도보다 작고 인구는 300만에 불과하며, 물도 없어서 말레이시아에서 송수관으로 수입해다가 먹을 정도로 자원이 없는 나라이지만 국민 GNP가 무려 3만불이었고, 국민의 주택보급율이 90%이었습니다.
노인들도 복지연금을 받고 살 뿐 아니라, 만약에 노인들이 거리에서 노숙하거나 거지행위를 하면 그 자녀들이 무서운 벌금을 받게 하는 등, 효도를 장려하는 나라였습니다.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정원국가, 혹은 열대상아의 나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공무원들에게 높은 봉급을 주는 대신, 만약에 공무원이 부정부패를 하다 발각되면 당장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후손 4대까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태형이라는 무서운 매를 맞습니다.
그 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매에다가 화공약품을 발라서 때리면 몸이 상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 치료해주고 나으면 다시 때리고 다시 치료하는 등, 거의 4년동안 그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또한 치안이 아주 잘된 나라로 범죄가 별로 없는 반면, 공중질서가 아주 잘된 나라였습니다. 국민들에게도 질서를 지키도록 법을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길에다 담배꽁초를 버리면 벌금이 500불(우리 나라 돈으로 60만원)이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들키면 벌금이 1000불(우리 나라 돈으로 120만원)이요, 가짜를 팔다가 발각되면 무서운 벌금은 물론이고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주차 위반하면 벌금 15만원, 두 번 위반하면 면허를 취소할 정도요, 더욱이나 마약을 팔면 심한 경우에는 사형까지 시킬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물질문명과 아울러 정신문명이 높은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를 돌아보면서 너무나 부러웠고,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기독교인이 25%라는 우리 나라가 바로 그러한 나라가 되어야 할 터인데 엉뚱하게 비기독교국가가 그런 도덕적으로 바른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목사 부부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들을 심한 부끄러움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3·1절을 맞으면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차리어야 합니다. 어느 정치가들이나 어느 재벌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기독교인들부터 바로 서야 하겠다는 결단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모든 비리를 지적한 것만 아니라 그 암담한 이스라엘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3장까지는 심판을 예고했다면, 4-5:15까지는 그리스도 왕국의 도래를 예언하고, 6장부터는 그 때까지 해야될 신앙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5:7에서는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 했습니다.
이는 그 유명한 '남은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리 시대가 썩고 병들었어도 자기의 남은 백성을 그루터기로 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 서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를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임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라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기만 홀로 의롭게 버티고 있는 줄 절망하는 마음이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남은 자 7,000명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발견하고 감격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가 병들고 교회가 보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남은 자들을 세우고 계시는 것이니, 문제는 우리가 각자 성도로서는 할 일을 하면서 남은 자의 대열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가는 그런 암담한 시대 속에서도 성도로서 해야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미6:8의 말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세 가지를 행하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라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1. 공의를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우주의 기초는 공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로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나라의 기초도 역시 공의입니다. 이 공의가 무너지면 나라가 흔들립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공의가 계속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의 각자 위치에서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의를 소금으로 표현했습니다. 소금은 쎡지않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썩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썩어 보여도 오직 버티면서 의를 지켜야 합니다.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해야 합니다. 공무원이든, 학자이든, 상인이든, 주부이든, 가정에서, 직장에서, 있는 위치에서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소금이 썩지 않으려면 먼저, 짠맛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짠맛을 잃은 성도는 먼저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밟고 다음에는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습니다. 성도의 짠맛은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이 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리스도의 의를 지키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소금은 희생할 때 공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소금은 자기가 녹아야 짠맛을 내며 방부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공의의 삶을 살려고 할 때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공의의 삶은 많은 희생이 요구됩니다. 고독도 당하고 물질의 손해도 당하고 요셉과 다니엘처럼 엄청난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당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더 큰 은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아무리 사회가 썩고 유혹이 많고, 모든 사람들이 세상 방법대로 산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소금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희생을 각오하십시오. 어떤 불의의 유혹도 극기하십시오. 그 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로서 인정을 받아 더 큰 은혜와 능력을 받을 것이요, 동시에 그것이 나라 사랑의 길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자(仁慈)란 자비를 말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을 말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을 말합니다. 먼저 공의를 행해야 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의는 무죄한 사람을 해롭게 하지는 않으나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을 공의를 소금으로 비유하신 것처럼, 사랑은 빛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착한 행실, 곧 사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빛은 그리스도의 빛,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빛은 희생할 때 밝아집니다. 촛불은 자기 녹아짐을 통해서만 빛을 발합니다. 녹아짐 없이 빛을 낼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안됩니다.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물질이나 시간, 봉사를 희생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빛은 다른 이의 어둠을 벗기어줄 뿐 아니라, 다른 이의 길을 인도해 줍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의 허물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할 때 상대방의 허물까지 덮어주고 용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의 아름다움을 어디 있습니까 님편이나 아내의 허물도 다 덮어주는 데 있습니다. 사랑의 또 다른 면은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엄마가 자기 아이의 허물까지 덮어주는 사랑으로 끝납니까 아닙니다. 아이의 허물을 씻겨주고 고쳐주도록 도와주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거리에 나서서 목청을 돋우어 의를 외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묵묵히 희생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한국 사회가 질서가 잡히지 않고 혼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나없이 자기 이득만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요, 공의를 외치는 것도 그 속중심이 자기 이해관계에서 기인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한 공의의 외침은 공허한 것일 뿐입니다. 진정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공의를 외치고 봉사를 할 때만이 진정한 나라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이웃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기 위해서 초처럼 희생으로 녹아집시다. 우리는 불우한 내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서 희생으로 나누는 삶을 삽시다. 그것이 바로 나라 사랑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거리에 앉아 있는 거지에게 돈 한푼을 주는 것이나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도 나라 사랑이요,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도 나라 사랑이요, 한 영혼을 구하는 것도 나라 사랑인 줄로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행하여야 합니다.
미가서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악의 골자기에 빠져 헤메이는 인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실 뿐 아니라 친히 낮고 천한 곳에 육신을 입고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가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점에서는 아모스와 공통점이 있으나 겸손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 점에서는 아모스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예언은 메시아는 왕의 후손을 통해서 오시지 않고 평민 가운데서 미천한 몸으로 겸손히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의는 사랑이 있을 때 온전해지는 것이요, 사랑은 겸손을 가질 때만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도와줄 때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섬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본을 받아, 오직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공의와 사랑 뿐 아니라 겸손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십자가를 지는 섬김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겸손히 섬기려고 오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공의를 나타낼 때나 사랑을 나타낼 때나 섬기려는 자세에서 해야 합니다. 왜 사회가 어지럽기만 합니까 서로 높아지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교회가 시험에 듭니까 섬기려는 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나라가 세계 앞에 비난을 받을 때가 많습니까 조금 경제적으로 살만하다고 해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 가서 보면 한국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친절한 것같으나 속중심은 차거운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에 온 그 나라 노동자들이 너무나 천대를 받고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가 20만 6천명인데 61%가 불법체류자로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면서 갖은 천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들은 그 나라에서는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는 한국을 증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식사를 정성껏 대접하는 것도 큰 나라 사랑의 하나인 것입니다. 나라 사랑은 멀리 가서 큰 일, 큰 위대한 업적만 남기는 것만 아니라, 성도로서 자기의 가정, 자기의 직장, 자기의 이웃에서 묵묵히 희생하며 집에서 등 하나 끄는 것이나 물 한 방울 아끼는 것이나 내 집 앞을 쓰는 것도 나라 사랑이요, 산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나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것도 나랑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81주년이 되는 3·1절을 맞으면서 우리 한국의 1200만의 성도들 각자가, 아니 수백만, 아니 더 줄여서 수십만의 성도만이라도 남은 자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적은 빛, 적은 소금, 적은 섬김의 삶을 나타낼 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은 의연히 빛날 것이며, 세계 만방을 향해 마지막 때 선교국가로서 크게 쓰임 받는 날이 머지 않을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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