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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나라 사랑, 교회 사랑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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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 주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한국 교회가 복음을 받아 들인지 3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어린 교회인데, 거기서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고난 속에 있는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교회가 민족을 고난을 대신 지고,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가슴에 안고, 십자가를 지며, 민족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짧은 신앙 속에서 우리 조국에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었으며, 거기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서, 역사를 잊어 버리면, 반복되는 역사 속에 다시 아픔을 겪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
과거를 빨리 잊는 민족은 아픔을 다시 되풀이 한다, 하는 것이 역사가들의 증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 천 년의 역사를 보면, 끊임없는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분열과 갈등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특히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서 민족은 수난과 고난이 끊일 날이 없었으며, 백성들은 비참한 생활과 인권 유린과 고통 속에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극 드라마를 보니, 왜 우리 민족이 고생을 했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상 모략과 거짓 속에 몇 천 년을 보내니, 나라 모양이 파괴적이고, 부정적이어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좀 더 진취적인 일을 절대로 못하고, 몇 천 년을 앉아서 싸움과 그 뒤 치다꺼리로 세월을 다 보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가 들어 와서 문맹을 퇴치하고, 우상 숭배를 막아내고, 사람들이 정직하게 사는 것을 가르치고, 부지런하게 사는 것을 가르치고, 일 안하고 거드름만 피고 일 안 하는 양반들에게, 일은 그저 서민, 평민, 상인들이 하는 것이라 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볼 수 없는 비참한 역사를 통해서 무지와 분열과 갈등과 시기와 질투, 중상 모략이 이 민족의 과거를 어둡게 만들어서, 결국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 힘 없이 무너지게 되고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한일 합병이라고 해서 1910년에 일본이 한국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수 많은 헌병들과 순사 보조원을 두어서, 무지하고, 몽매한 이 백성들을 비참하게 유린하고, 국가를 말살하고, 문화를 완전히 죽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쓰라린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05인 사건, 아마 역사에 거의 잊어 버려져 가고 있습니다.
1910년 12월29일 테라우찌 총독이 압록강 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려고, 평북을 지나가는 기회를 타서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혐의로, 1년이 지난 1911년 10월 105명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검거하게 됩니다.
갖은 고문으로 허의 자백을 받으려고 했지만, 결코 한 사람도 그런 허의 사실을 사실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때려도, 불로 고문을 해도, 손톱을 뽑아도 그리고, 다리를 꺾어도 아닌 것은 아니고, 한 것은 했다고 말하고, 한 사람도 허의 자백을 하지 않자, 총독부의 허의 날조임이 백일하에 들어나니, 99명은 무죄 석방을 시키고, 윤 치호, 양 기탁, 안 태국, 이 승훈, 임 치정, 옥 관빈 이 여섯 지도자들은 4년이라는 징역을 언도하고, 일 년 후에는 특사라고 인심을 쓴다며 다 내보냈습니다.
이것이 105인 사건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그 신앙을 훌륭하게 지키고, 민족을 위해서 헌신한 이 수 많은 사람들을 옥에다 가두고 고문해서 저 들을 처형시키려고 했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해야 될 일들입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1920년까지 극악무도한 일본 헌병들은 인간의 모든 권리 마저 박탈하고, 비참한 식민지 노예 생활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간섭을 하고, 특히 교회를 핍박을 했습니다.
예배 드리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예배를 드릴 때, 순사가 와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말을 하면 곧 붙잡아 갔습니다.
울 밑에선 봉선화 같은 노래를 만들어 민족의 한을 노래했습니다.
1919년 사탕 수수 이민을 이야기 하지만, 그 때 하와이로 팔려 온 사람보다, 1919년에 벌써 만주에 이 일본 학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이민을 간 사람이 만주에만 1,060,000명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은 교인들이 그 곳에 가서 교회를 수 십 개를 세워서, 만주 근처에만 한인 교회들이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수 십 개의 교회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 때, 장로교 교세가 교인 수가 14만4천261명이었고, 학습 교인은3만5천5백8명이었고, 세례 교인은4만6천934명이었습니다.
교회는1,448이고, 학교 수는 656개의 선교사 크리스천 미션 스쿨이 전국에 있었습니다.
아마, 감리교, 다른 교단까지 포함하면1,000개가 넘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이 교회가 핍박을 받아서, 수 많은 사람, 적어도 백 만 명이 만주로 이민을 가고, 피난을 나갔던 것입니다.
지금,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합해야 한 백 만 명이 조금 넘을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온 것처럼, 그 때 벌써, 이 무서운 핍박과 학정에 시달려서 이민을 저 만주로 갔던 것입니다.
유 관순,
3. 1운동에 대해서도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화 학당에서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 다섯, 여섯 명이 교장 선생님이 나가지 말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담을 넘어서 거리로 나와 학생들 틈에 끼어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붙잡혀서 결국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나라를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사실, 감격스러운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는 고향에 내려 가서, 뒷동산 매봉이라는 곳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옛날에 프랑스의 쟌 다르크가 조국을 위해서 19세 때 나가 싸워서 승리한 것처럼, 내게도 힘을 달라고 기도한즉 하늘에서 주의 음성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관순아 내가 네게 힘을 주어, 넉넉히 이기게 하리라. " 그 음성을 듣고 확신 속에 자기는 잃어 버린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김 익두 목사님, 황해도 안악골에 김 익두라고 하면,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그가 예수 믿고, 회개해서 1950년10월14일, 교회를 지키던 중 UN군이 다시 잃어 버린 신천에 들어오던 날, 그는 모처럼 교회 새벽종을 30분 동안 이나 치고, 교인들을 다시 모았습니다.
공산당이 들어 와서, 교회를 막고, 새벽 기도를 못 드리고, 저는 교회를 지키려고 교회 강단에서 기도 하고 있다가, UN군이 신천에 들어오는 날, 교인들을 데려다가 만세를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성가대 연습실에 인민군에게 끌려가서 몇 몇의 성도들과 함께 새벽에 총살을 당하고 순교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잊어 버리면,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사 참배에 주 기철 목사는 반대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신사 참배를 거절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지금 보아도 잔인합니다.
사람들이 감정이 없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국의 교인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예배 드리기 전에 허락하면, 목사님이 가서 신사에 가서 절을 해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죽기를 결심하고, 신사 참배를 반대하니, 주 기철 목사를 여러 번 투옥하고, 마침내 고문과 고통 속에서 저는 거의 건강을 잃고, 시체가 되어 순교자로 나왔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에게 독살을 시켰을 것이다, 주사를 놓고, 죽게 했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일사 각오를 하고, 한 번 죽는 것인데, 바로 죽게 해 주시고, 주님을 위해 죽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결심을 하고, 일사 각오의 설교를 하니까, 죽기로 결심한 사람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죽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순교자로 우리는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이런 정신과 사상과 이런 신앙의 절개를 우리는 참으로 훌륭한 선배들, 신앙의 선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신앙을 물려 받을 뿐 아니라, 우리도 지키고, 다음 세대에도 물려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성경 본 문은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기도가 무슨 기도인가 하면, 죽기로 결심한 것이며, 사자의 먹이가 되겠다는 결심이고, 여호와 하나님께 생명을 바쳐서 주님이 주신 민족과 조국과 신앙을 지키겠다는 아름다운 신앙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 기철 목사님이나, 김 익두 목사님이나, 훌륭한 신앙의 선진들이 생명을 바쳐서 나라와 민족과 신앙을 지켜 간 이 신앙과 동질의 것이며, 같은 색깔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다니엘처럼 훌륭한 신앙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70년 만에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은 36년 만에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며, 조국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연한 일은 절대 아닙니다.
최 권능 목사, 예수 천당 하던 사람,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도 열심히 전도 하러 다니는데, 전도도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해서 예수 천당이었습니다.
하루는 순사가 말을 타고 가는데, 그 말에 대고 예수 천당 했더니 말이 놀라 순사가 말에서 떨어 졌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권능의 사람이었습니다.
1939년 5월에 붙잡혔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절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1944년3월1일 옥 중에서도 40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면회를 사절하고, 40일 동안 죽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던 중에4월10일, 집으로 전보가 왔습니다.
면회를 사절했기 때문에 아무도 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고문을 많이 당하고,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고, 추위에 고통을 받고, 결국 40일을 굶고, 그리고 집으로 데려 가라고 전보가 온 것입니다.
가보니, 사람이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를 메어다가 집에 데려다 놓고, 며칠을 지나는데, 4월15일에 이 목사님이 하늘에서 전보가 왔다고 했습니다. 무슨 전보냐고 하니, 빨리 오라는 전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라는 전보를 받고, 조용히 눈을 감고 순교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10년을 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있었던, 이 교회의 수난과 민족의 수난과 민족 해방 운동과 이 감격스러웠던 해방의 소식, 이런 이야기를 아마 10년을 해도 다 못 다할 것입니다.
최근에 인터넷에 감동적인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음악까지 넣어 아름답게 만들어서, 읽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감동을 줍니다.
육군 사관학교 교장이, 준장이죠, 그 분이 생도들에게 아침 조회 시간에 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누가 정리를 해서 어느 분에게E-mail로 보냈는데, 너무 감동적이니까, 인터넷에 올려 놓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파장이 일어 났습니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이 욕을 하고, 자기 자식을 육군 사관학교에 보내려고 했는데, 안 보내기로 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 정희 전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 별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여튼 그 이야기를 듣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또 감동을 받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마음 속에 간직했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는 이런 내용입니다.
대한 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여! 50대, 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는 조국을 위해서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이 풍요는 지난 날, 50대, 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5. 16 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의 또 다른 나라에서 똑 같은 쿠데타가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였습니다.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하고, John F. Kennedy가 당시의 대통령이었는데, 박 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끝내 박 정희를 케네디는 끝내 만나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호텔에 돌아 와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 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 없이 눈물을 흘리고 돌아 갔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한국에 돈을 빌려 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분단된 공산국과 대치하고 있는 서독에 돈을 빌리러 대사를 파견해서, 1억4천 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 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1억4천 만 마르크를 빌리고, 그 때 광부는 고졸 출신의 광부5백 명 모집하는데4만6천 명이 몰렸습니다.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접을 하는데, 손이 깨끗하고 고우니까, 연탄을 묻혀 시커멓게 하고 거칠게 만들어서 가서 합격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김포 공항에 왔는데, 간호사와 광부의 가족, 친척들이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낯선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 병원에 뿔뿔이 흩어져서, 말도 통하지 않은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코올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시체를 이리 굴리며, 저리 굴리면서 하루 종일 닦았습니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1,000mm깊은 땅굴 속에 뜨거운 지열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을 해서 수 십 시간씩 일하여, 서독의 매스컴들은 대단한 민족이라고,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Korean Angel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는 것입니다.
몇 년 후에 뤼부케 독일 대통령의 초대로 박 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전용기는 말할 것도 없고, North West 비행기를 빌리기로 계약했지만, 쿠데타 군인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결정 때문에 서독 정부에서 국빈용 항공기를 서울에 보내고, 일행이 독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500명이 모인 강단에 들어 가서,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모인 그 강단에서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나라가 가난한 이유 때문에 이역 만리 타국에 와서 땅 속1,000mm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고생한 백성들을 보니 지도자로서 목이 메어 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자, 열심히 일해서,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자는 말만 반복하고, 결국 말을 끝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돌아 오는 차에서 대통령은 육 여사와 한 없이 눈물을 흘리니, 독일의 대통령이 손수건을 건네 주면서 눈물을 닦고 같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두고 어디를 가냐고 울부짖는 간호사들이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껴 안아 주면서 조그만 참자고 위로했다는 것입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 절을 하며, 한국을 도와달라고 그들은 외쳤으며, 우리 나라를 도와 달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며, 번 돈을 끊임없이 한국과 가족들과 조국에 보냈습니다.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돈을 좀 빌려 주십시오.
한국에 돈을 빌려 주세요, 여러분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이기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을 꼭 갚겠습니다.
절대로 갚겠습니다. 반복해서 말 했다는 것입니다.
박 정희 대통령이 잘 했다, 못 했다, 그가 훌륭하다, 안 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고, 또 역사는 공과 과가 있습니다.
좋은 점, 나쁜 점, 잘한 점, 못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우리가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의 어려움을 벗어난 지금, 지난 날을 잊어 버리면, 다시 민족은 역사의 반복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가장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UN에 120개국이 등록이 되었는데, 필리핀 국민 소득은 170불이고, 태국은 220불이었습니다. 한국은 76불이었습니다.
인도가 가장 가난한 나라이고, 다음에 우리나라였습니다.
1964년 국민 소득이 100달러가 되었습니다.
단군이래4,600년이 걸려서 100불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구세대, 보수 이 사람들은 조국의 재건을 위해서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습니다. 있는 것 모두를 팔아서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그 때에 중남미, 미국, 캐나다로 저 호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가고, 조국을 위해 마음껏 기도하고, 두고 온 가족들을 도와 주며, 월남과 중동에 가서 젊은이들이 생명을 바쳐 일하면서, 그들은 한국의 경부 고속도로를 놓은 그런 큰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이 납니다. 머리카락을 팔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동네에서 머리카락을 판 사람이 많습니다.
하도 가난해서 배가 고픈 사람은 긴 머리를 많이 잘랐습니다.
그 머리카락으로 가발 산업을 시작해서, 1960,70년대 한국의 가발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플라스틱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고, 인형을 만들어서 팔았고, 쥐 잡기 운동을 하여 쥐 털로 만들어 Korean Mink라 하여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서 외국에 팔았다는 것입니다.
1965년1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습니다.
거지가1억 달러를 만들었다는 것을 세계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수고와 희생과 땀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는 것인데, 젊은 세대는 풍요를 누릴 수 있으면서 그것이 왔는지 알지 못하고, 그것이 누구에게서 온 땀과 희생과 수고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얼마 전, 미주에 있는 어느 한인 회장이 태권도 사범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는 조국을 떠나서 태권도가 대한민국의 운동이고, 그리고, 태권도를 보급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을 떠나서 미국에 와서 부지런히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태권도를 할 때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이 구령이 전부 한국어입니다.
코 큰 서양 아이들도 한국어 구령에 맞추어 합니다. 열중 쉬어, 차려 전부 한국말로 합니다.
태극기를 앞 뒤에 붙입니다. 그래서 저는 애국한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조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고, 얼마 전에 한국에 있는 체육 대회에 미국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데리고 한국에 갔었습니다.
놀랍게도 북한 선수들이 나오니까, 열광을 하고, 한국 사범이 데리고 간 미국 태권도 선수를 보니 야유를 보내고 조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한국이 싫어서 미국으로 도망 간 배신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놈들에게 빌붙어서 먹는 이단처럼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습니다.
평생을 조국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부심과 긍지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배신감마저 느꼈다는 심각한 이야기를 글에 써서 신문에 냈던 것입니다.
그는 다시는 조국을, 대한민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결심을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오래 저의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오늘 신앙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뿌리와 신앙의 위대한 선진들의 이 신앙 자세를 잊어 버리고, 우리가 고생한 일들을 잊어 버리고, 사실 한국이 IMF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우리가 한국에 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노력을 다해서 수 억불의 자금을 모아서 한국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국에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도록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 조국을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조국을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한국 교회가 깨어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한국 교회가 이기심과 자기 중심적 왕국을 깨뜨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면, 민족은 살아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해외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마치 다니엘에 죽음을 결심하고 기도하듯이 사자 굴에 들어 갈 것을 결심하고,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기도했다는 사실, 신앙의 정절인 것입니다.
남미로 간 교구들은 부지런히 벌어서 고통스러운 가운데, 조국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돈을 보내고, 미국에 와서도 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민 초기에 말을 할 수 있었습니까
멸시와 천대를 받아 가면서 우리는 부지런히 일을 하며,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힘차게 이 땅에서 정착하는 신앙의 사람들인데, 지금 세대는 지난 세대를 무시하고, 지난 세대의 땀과 눈물과 생명을 무시하고, 나라와 민족 해방을 위해 생명을 뿌린 신앙의 위대한 선진들의 이 피와 순교의 정신과 희생을 잊어 버리고,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저도 구세대인 것 같습니다.
베를린에 있으면서 목회할 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안 정순, 안 장례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는 눈이 둥그렇고, 키가 크고, 마음이 착하고 여리고 순박한 자매였습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한국에서 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충격에 떨면서 저에게 왔습니다.
목사님! 하고는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안정을 시키고 물었더니, 병원에서 일을 하는데, 말이 안 통하고 무얼 실수했다고 해서, 카톨릭 병원이었는데, 간호사가 무얼 잘 못했다고 머리를 잡아서 잘라 버린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여자가 머리를 잘리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습니까
이 자매는 말을 잃고, 정신이 나가 울면서 저에게 온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이면 베를린에서 설교를 하고, 오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본이나, 퀠렌이나, 푸랑크프르트나 하이델베르크, 함부르크라는 도시로 계속 다니면서 일주일에도 대여섯 교회를 방문하면서 그 지하에서 고생하는 광부들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개척하고 그들을 위해 위로하고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지나서, 지금 그 분들이 자리 잡고, 미국에 오신 분들도 계시고, 안정된 삶을 삽니다.
물론 1966년12월, 3년 고용 기간을 채우고 142명의 광부가 귀국했을 때, 거의 전원이1회 이상 골절상 병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망자도 있었고, 실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간호사의 사정도 비슷했습니다.
1966년1월 128명이 독일로 떠날 때, 고용 조건 110달러, 440마르크였습니다.
독일 땅에 도착한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그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닦는 작업을 하면서 70년대 중반에는 베를린에만 간호사가2,000명이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 2,000명의 간호사들이 그 곳의 병원에 근무 했으며, 66년부터 76년까지 독일로 건너 간 간호사가 10,030명이 되었고, 광부는7,800명이 갔다는 것입니다.
매달 송금하는 연간 송금이 오천 만 불이었는데, 당시 GNP의2%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러니컬하게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전에 잘 살아서 우리가 그 곳에 가서 배우고, 공부하고, 시찰단을 보내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잘 살아 볼까 하던 그 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GNP가 그 정도에 머물고 있고, 만 불 되는 한국에 와서, 외국 근로자가 무리를 지어 직장을 구하는 모습은, 그냥 우연히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 있게 일어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 있게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분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그래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합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비 논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성실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 일은 잊혀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 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 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움을 주면 공격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이 발 길로 채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마더 테레사의 글에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에 묶일 것인가 나만 알고, 불 필요한 갈등과 중상과 모략과 쓸데없는 감정에 붙잡혀서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월 스트리트 저널의 한 기업의 광고가 이렇게 실려 있습니다.
진정한 애국심이란 우연히 지나가다가 국기를 보고, 목이 메어오는 것 이상의 무엇을 느끼는 것이 애국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을 자유의 나라로 그대로 지키려는 여러분의 결단에 관계된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하는 자발적인 생각에도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민주주의의 진가는 전체의 이익을 우선할 줄 아는 여러분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능력, 일억 삼천 백만의 사람이 이 나라를 산산이 흩어지게 할 수도 있고, 또 이 나라를 뭉치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어느 쪽에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광고의 전문이었습니다.
참으로 신선한 기업 광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다시 바꿉니다.
대한민국의4천3백만 국민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이 나라를 우습게 만들 수도 있고,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넘어지게 할 수도 있고, 위대하게 세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쪽에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이 광고는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조국을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삼가,
삼가라는 말은 (신 28:1)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먼저 들어야 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데, 삼가라는 말은 집중해서 들으라는
것이며, 두려운 마음으로 들으라는 것이며, 예외 없이 들으라는 말이며,
빠짐없이 들으라는 말이며, 절대적으로 들으라는 말씀이고, 분별 있게
들으라는 말씀이고, 겸허하게 들으라는 말씀인데, 하나는 사랑이고, 하나는
정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러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축복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은 우리 자신이 바로 사는 것이고, 우리
민족이 지금 살아 가는 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결정과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니까, 우리는 한국을 위해서 기도할 일 밖에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미국에 사니까, 미국에도 우리가 참여해서 이 땅이 바로 잡히고, 이 국가가 바로
되고, 이 민족이 바로 되고, 이 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도 편안히 잘 삽니다.
이 나라가 잘 못되면, 우리도 살 길이 없습니다.
남자끼리 결혼하는 그런 사람들은 좀 미안하지만, 아웃 시키고, 올바른 정신
가진 사람을 찍어서 지도자로 머리 위에 얹어서, 우리를 지도해 달라고 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선거해야 되고, 투표에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11월 선거에도 어디 출장을 가야 하는데, 비행기 시간이 아침
7시였습니다.
새벽 5시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투표소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을에 투표소가 몇 군데 있는데, 그 때 가니 준비하고 있는데, 문 열자 마자 제가 6시에 들어 가서 투표를 했습니다.
나의 주권을 행사하고, 투표하고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생각하고, 우리가 참여해야 되느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 지기 위해서 우리가 일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 가지고, 자기 중심적인 세속에 빠지면 결국 우리는 역사 속에 다시 반복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위대한 선진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신 명단을 쭉 훑어보니, 참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오기에 수 많은 분들이 눈물 뿌려 기도하고, 성전 건축하고 참 애쓰신 수 많은 분들의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 한 분, 한 분들이 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믿음을 지키시던 분들이신 것입니다.
배 기순 권사님, 여러분 아시죠.
암에 걸려서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돌아 가셨지만, 마지막 날까지 몸이 불편해도, 헌금 위원 가운 입으시고, 그 노년에 마지막까지 충성되게 교회를 위해서, 교회에 헌금하고, 헌금 위원하고, 그렇게 하고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김 병수 장로님, 교회를 처음부터 말없이 오늘까지 신실하게 교회를 세워 주시고, 창립 멤버서부터 돌아 가실 때까지 끊임없이 신실하게 섬기셨습니다.
강 순옥, 오 응덕 권사님, 이 업비, 홍 금전 권사님, 홍 권사님 허리가 얼마나 굽었는지, 여러분! 모두 기억이 나시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꼬부라진 허리를 가지고 교회 오셔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렇게 기도하시던 그 모습, 여러분 잊지 않으시죠.
그 자제분들이 그 기도로 교회 와서 예수 믿고, 봉사하는 지금 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유 원희, 박 금주 권사님, 한 학서 집사님, 변 리복 집사님, 최 돈연 집사님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되게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쳐 수고하신 분들입니다.
강 태권 집사님, 교회 수리 다 하시고, 정말 목숨 바쳐 일하신 분입니다.
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한 분, 한 분 귀한 분 들인데, 이런 신앙의 위대한 부모님과 신앙의 위대한 선진들을 모시고 있으면, 이 신앙을 우리가 본 받아서 이것을 우리 자손으로 넘겨 주고,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 분들은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친 분 들입니다.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수 없이 수 십 명, 수 백 명의 믿음의 위대한 선진들이 제단을 여기까지 쌓아 올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직분과 사명을, 그리고 이 찬란한 역사를 붙잡고 그리고 이루어서, 더 크게, 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옛날, 고사에 어떤 나라가 이웃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놀라서 도망을 가고, 한 여인이 갓난 아기를 하나 업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손을 잡고 도망을 가는 아이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적군의 함성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오고, 여인은 할 수없이 등에 업힌 아이를 나무 밑에 내려 놓고, 아이의 손을 잡고 뜁니다.
결국, 붙잡혔습니다.
아까부터 말 위에서 이 여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적장이 너는 왜 갓난 아기를 버리고, 걸음이 느린 아이를 데리고 갔느냐고 물었더니, 업은 아이는 나의 아이이고, 잡은 아이는 형님의 아이입니다.
저도 제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사적인 사랑이고, 형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적인 의입니다.
의를 버리고, 사적인 사랑을 택하면 우리 집이나, 우리 나라가 어떤 꼴이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적장은 감탄을 해서 의를 아는 백성이 있는 나라는 이길 수 없다고 하면서 물러 갔다는 중국 고사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가 의를 위해서 이제는 초연이 나라를 세우고, 기도하는 새 결단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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