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선생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본문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가 참 많습니다. 연세대학교와 이화대학교는 물론이요, 중앙대와 한양대, 경희대와 배재대학교 등, 대학만 해도 부지기수입니다. 감리교회 계통의 대학교와 중고등 학교도 참 많습니다. 그런 학교 중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가 있 는데, 그 교장선생님이 쓰신 글을 최근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의 유수자 교장선생님은 출근길에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 중의 한 명에게 가방을 들어달라고 부탁을 한답니다. 그리고 그 학생과 함께 교장실까지 동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 장실까지 가는 동안, 교장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 를 물어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장실에 도착하면, 그 학생으로 하여금 교장실 안에 걸려있는 예수님 사진 앞에 서게 하고서는, 교장선생님이 그 학생을 위하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학생이 매향학교를 선택하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선택하신 그 학생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학생의 건강 한 학교생활과 그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5년이 넘도록 하셨다고 하니, 어림잡아 천 명 이 상의 학생이 교장선생님의 기도를 받고 졸업을 한 셈입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교장선생님의 기도를 받은 학생들만큼은 결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다 훌륭하게 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혹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가도, 그날 교장선생님께 기도 받은 일이 생 각나면, 다시금 바른생활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학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좋은 스승이 많기 때문에 하 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유수자 교장선생님처럼 훌 륭한 스승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세상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 까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중에는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제일 정의로우며, 자기생각이 제 일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겸손한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 에게서 뭔가 배우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세상에는 본받을만한 사람들이 참 적지 않습니다. 지 난 시간에 소개해드린 김인수 교수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그분의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도 그분과 같은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본받을만한 분들이 의외로 많습 니다. 우리가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말짱 틀려먹은 사람들 뿐이겠지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겸손히 자신을 낮추게 될 경우에는 초등학교 어린아이한테서도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옛날 랍비문서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내 선생님 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동료들로부터는 더 많은 것 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내 제자들, 곧 어린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배웠다. ’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안 좋은 점만을 찾아내어 불평을 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타인의 나쁜 점을 비난하면서, 그 자신이 그 나쁜 점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튼, 불평과 원망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서, 우리가 본받고 따를만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안 좋은 점만을 찾아내어 비 난하거나 불평을 할 게 아니라, 좋은 점과 배워야 할 점을 발견하 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 좋은 점과 배워야 할 점을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즉,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알고, 그들의 좋은 점을 본받도록 힘쓰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엘리사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농사를 짓던 농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열두 겨리 소를 몰면서 밭을 갈고 있던 중에, 엘리야의 지명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단 엘리야의 제자가 되자, 엘리사는 스승의 뒤를 아주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길갈에서 는, 엘리야가 엘리사를 두고 떠나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 는 “선생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 ”고 하면서 엘리야의 뒤를 바 짝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가는 대로, 길갈에서 벧엘, 벧엘 에서 여리고, 여리고에서 다시 요단강까지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엘 리야는, 그처럼 열심히 따라다니는 엘리사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습 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내가 죽기 전에 자네에게 뭘 해주면 좋겠는가”고 물었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영력을 나눠 주실 때에, 제게는 두 몫을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 의 남은 일을 수행하겠습니다(왕하2:9).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얼마 나 멋있는 말입니까 믿음이나 영력에 대한 욕심은,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괜찮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엘리사는 그 영력을 가지 고 다른 일에 사용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이 하다 남은 일을 마저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가)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엘리사는 아주 올바른 선택과 결단을 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를 지명하여 불렀을 때, 엘리사는 주저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엘리야에 관한 소 식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찾아가서 그를 스승 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리라 여겨 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엘리야가 그를 부르자마자, 그처럼 신속하게 따라나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미 오랫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다가 엘리야 에 관한 소식을 들었겠지요. 성경을 잘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준 비된 자를 들어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엘리야가 그를 부르 자, 지체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이다 싶으 면, 주저할 것 없이 용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속히 미련을 버려야 합 니다. 어쨌든, 물실호기(勿失好機)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나)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를 아주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물 론, 그는 일찌감치 ‘스승인 엘리야를 따르면 결코 손해가 나지 않으 리라, 열심히 따라다닌 만큼 보람을 얻게 되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 었습니다. 엘리사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그 는 스승의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모든 것을 잘 배우고 익혔습 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길로 가야 옳은지,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잘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올바른 선택을 해서 복된 길 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만 열심을 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엘리사에게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다)엘리사는 거룩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세상욕심은 우리를 병들 게 하고 죄를 짓게 하지만, 거룩한 욕심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엘리사는 다른 제자들보다 갑절의 영력을 요구했 습니다. 자랑하거나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남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 다면, 거룩한 욕심은 얼마든지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거룩한 욕심이 부족합니다. 세상욕심에 비하 면, 거룩한 욕심은 ‘새 발의 피’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악신이 그 들의 눈을 어둡게 했기 때문(고후4:4)’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는 악신이란, 우리가 세상욕심을 품게 될 때에 찾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말합니다.
그 악한 영을 물리치고 성도다운 모습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거룩한 욕심’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 게 요구했던 갑절의 영력을, 우리 또한 주님께 소원해야 합니다. 그 래서 주님의 남은 뜻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 한 욕심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크신 복을 많 이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따른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 예수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습니다.
아주 훌륭한 목사로 정평이 나 있을지라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 게 되면, 그에게서 많은 허물과 약점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과 생활을 본받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 그 남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1. 주님을 열심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와 능력을 많 이 힘입어야 합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환 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올바른 인생 을 살고자 원한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냥 말로만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다녔던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따르도록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 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주님의 모습 이 영광스럽게 변하더니,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주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으면, 베드로가 “정말 굉장하군요! 저희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선생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싶습니다.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잠시 후,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거룩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 라!” 제자들이 곧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모세와 엘리사는 보이지 않 고, 예수님만이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때 당시 당신의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 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 기 위해서, 그와 같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따 르려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 고난 뒤에는 영광 스런 미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입니다. 더군다나, 열심을 내어 주님을 따르게 될 경우에는 더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를 때에 겪는 그 많은 아픔과 시련 뒤에는, 참으 로 중요한 교훈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영 광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스승이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섬기 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 어떤 수도승에게 사랑하는 제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 제자가 그만 스승의 눈을 피하여 매일 밤 월담해 나가서는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스승은 일찍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 니다. 그래서 마음 아파하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담장 아래에 가 보니, 몇 개의 디딤 상자가 쌓여 있었습 니다. 그는 그것을 치우고, 자신이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밖에 나갔던 제자가 새벽녘에 담을 넘어 들어오는데, 발에 느껴지 는 감각이 이상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스승 의 등이었습니다. 그 제자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눈물로 사죄했 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외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 리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그 죄에서 건져내시고자 십자가를 지셨 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런 데, 그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 또한 제 몫의 십자가를 져야만 한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가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또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의 모범 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 들의 선생이 되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달이 태양 빛을 받아 되쏘 듯이,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빛을 받아서 다시금 그 빛을 이 세상 에 되비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만 해가지고서는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처럼, 자 기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비 난하거나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바라보는 사람들 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허물을 따지거나 흉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면, 세상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 자가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상 사람들의 거울이 되고 빛이 되 어야 한다는 사실을! 만일 우리가 다른 형제의 허물과 잘못을 따지 면서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면, 우리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 질은 수없이 더 많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사람 곁눈질 하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봐 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는 오직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하고 있다(고후4:5)’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주님만 을 바라보면서 예수님만을 증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 까 말로써가 아니라, 섬기는 종이 되어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는 영광스런 미래가 있습니다. 주님의 칭찬 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후손들로부터는 존경을 받 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길이 기억 되는 아름다운 인물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쪼록, 그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 그때까지, 부지런히 주님의 뒤를 따르면서 본받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 학교의 유수자 교장선생님은 출근길에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 중의 한 명에게 가방을 들어달라고 부탁을 한답니다. 그리고 그 학생과 함께 교장실까지 동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 장실까지 가는 동안, 교장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 를 물어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장실에 도착하면, 그 학생으로 하여금 교장실 안에 걸려있는 예수님 사진 앞에 서게 하고서는, 교장선생님이 그 학생을 위하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학생이 매향학교를 선택하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선택하신 그 학생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학생의 건강 한 학교생활과 그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5년이 넘도록 하셨다고 하니, 어림잡아 천 명 이 상의 학생이 교장선생님의 기도를 받고 졸업을 한 셈입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교장선생님의 기도를 받은 학생들만큼은 결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다 훌륭하게 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혹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가도, 그날 교장선생님께 기도 받은 일이 생 각나면, 다시금 바른생활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학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좋은 스승이 많기 때문에 하 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유수자 교장선생님처럼 훌 륭한 스승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세상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 까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중에는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제일 정의로우며, 자기생각이 제 일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겸손한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 에게서 뭔가 배우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세상에는 본받을만한 사람들이 참 적지 않습니다. 지 난 시간에 소개해드린 김인수 교수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그분의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도 그분과 같은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본받을만한 분들이 의외로 많습 니다. 우리가 비판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말짱 틀려먹은 사람들 뿐이겠지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겸손히 자신을 낮추게 될 경우에는 초등학교 어린아이한테서도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옛날 랍비문서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내 선생님 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동료들로부터는 더 많은 것 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내 제자들, 곧 어린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배웠다. ’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게 된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안 좋은 점만을 찾아내어 불평을 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타인의 나쁜 점을 비난하면서, 그 자신이 그 나쁜 점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튼, 불평과 원망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서, 우리가 본받고 따를만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안 좋은 점만을 찾아내어 비 난하거나 불평을 할 게 아니라, 좋은 점과 배워야 할 점을 발견하 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 좋은 점과 배워야 할 점을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즉,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알고, 그들의 좋은 점을 본받도록 힘쓰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엘리사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농사를 짓던 농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열두 겨리 소를 몰면서 밭을 갈고 있던 중에, 엘리야의 지명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단 엘리야의 제자가 되자, 엘리사는 스승의 뒤를 아주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길갈에서 는, 엘리야가 엘리사를 두고 떠나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 는 “선생님 곁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 ”고 하면서 엘리야의 뒤를 바 짝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가는 대로, 길갈에서 벧엘, 벧엘 에서 여리고, 여리고에서 다시 요단강까지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엘 리야는, 그처럼 열심히 따라다니는 엘리사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습 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내가 죽기 전에 자네에게 뭘 해주면 좋겠는가”고 물었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영력을 나눠 주실 때에, 제게는 두 몫을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 의 남은 일을 수행하겠습니다(왕하2:9).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얼마 나 멋있는 말입니까 믿음이나 영력에 대한 욕심은,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괜찮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엘리사는 그 영력을 가지 고 다른 일에 사용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이 하다 남은 일을 마저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가)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엘리사는 아주 올바른 선택과 결단을 했습니다. 엘리야가 그를 지명하여 불렀을 때, 엘리사는 주저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엘리야에 관한 소 식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찾아가서 그를 스승 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리라 여겨 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엘리야가 그를 부르자마자, 그처럼 신속하게 따라나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미 오랫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다가 엘리야 에 관한 소식을 들었겠지요. 성경을 잘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준 비된 자를 들어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엘리야가 그를 부르 자, 지체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이다 싶으 면, 주저할 것 없이 용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속히 미련을 버려야 합 니다. 어쨌든, 물실호기(勿失好機)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나)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를 아주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물 론, 그는 일찌감치 ‘스승인 엘리야를 따르면 결코 손해가 나지 않으 리라, 열심히 따라다닌 만큼 보람을 얻게 되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 었습니다. 엘리사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그 는 스승의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모든 것을 잘 배우고 익혔습 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길로 가야 옳은지,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잘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올바른 선택을 해서 복된 길 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만 열심을 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엘리사에게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다)엘리사는 거룩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세상욕심은 우리를 병들 게 하고 죄를 짓게 하지만, 거룩한 욕심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엘리사는 다른 제자들보다 갑절의 영력을 요구했 습니다. 자랑하거나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남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 다면, 거룩한 욕심은 얼마든지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거룩한 욕심이 부족합니다. 세상욕심에 비하 면, 거룩한 욕심은 ‘새 발의 피’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악신이 그 들의 눈을 어둡게 했기 때문(고후4:4)’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는 악신이란, 우리가 세상욕심을 품게 될 때에 찾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말합니다.
그 악한 영을 물리치고 성도다운 모습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거룩한 욕심’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 게 요구했던 갑절의 영력을, 우리 또한 주님께 소원해야 합니다. 그 래서 주님의 남은 뜻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 한 욕심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크신 복을 많 이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따른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 예수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습니다.
아주 훌륭한 목사로 정평이 나 있을지라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 게 되면, 그에게서 많은 허물과 약점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과 생활을 본받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 그 남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1. 주님을 열심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와 능력을 많 이 힘입어야 합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환 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올바른 인생 을 살고자 원한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냥 말로만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다녔던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따르도록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 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주님의 모습 이 영광스럽게 변하더니,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주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영광스러웠으면, 베드로가 “정말 굉장하군요! 저희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선생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고 싶습니다. ”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잠시 후,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거룩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 라!” 제자들이 곧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모세와 엘리사는 보이지 않 고, 예수님만이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때 당시 당신의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 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 기 위해서, 그와 같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따 르려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 고난 뒤에는 영광 스런 미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입니다. 더군다나, 열심을 내어 주님을 따르게 될 경우에는 더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를 때에 겪는 그 많은 아픔과 시련 뒤에는, 참으 로 중요한 교훈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영 광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스승이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섬기 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 어떤 수도승에게 사랑하는 제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 제자가 그만 스승의 눈을 피하여 매일 밤 월담해 나가서는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스승은 일찍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 니다. 그래서 마음 아파하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담장 아래에 가 보니, 몇 개의 디딤 상자가 쌓여 있었습 니다. 그는 그것을 치우고, 자신이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밖에 나갔던 제자가 새벽녘에 담을 넘어 들어오는데, 발에 느껴지 는 감각이 이상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스승 의 등이었습니다. 그 제자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눈물로 사죄했 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외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 리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그 죄에서 건져내시고자 십자가를 지셨 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런 데, 그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 또한 제 몫의 십자가를 져야만 한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가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또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의 모범 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 들의 선생이 되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달이 태양 빛을 받아 되쏘 듯이,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빛을 받아서 다시금 그 빛을 이 세상 에 되비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만 해가지고서는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처럼, 자 기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비 난하거나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바라보는 사람들 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허물을 따지거나 흉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면, 세상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 자가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상 사람들의 거울이 되고 빛이 되 어야 한다는 사실을! 만일 우리가 다른 형제의 허물과 잘못을 따지 면서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면, 우리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 질은 수없이 더 많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사람 곁눈질 하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봐 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는 오직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하고 있다(고후4:5)’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주님만 을 바라보면서 예수님만을 증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 까 말로써가 아니라, 섬기는 종이 되어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는 영광스런 미래가 있습니다. 주님의 칭찬 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후손들로부터는 존경을 받 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길이 기억 되는 아름다운 인물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쪼록, 그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 그때까지, 부지런히 주님의 뒤를 따르면서 본받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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