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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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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학교는 많으나 교육은 부재요,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적다는 말을 듣습니다. 특히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패륜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이상적인 사제 관계를 배우게 됩니다. 스승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의 아름다운 사제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서 엘리사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주로 제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따르는 제자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와 함께 ①길갈에서 출발해서 ②벧엘, ③여리고, ④요단까지 떨어지지 않고 동행했습니다.
엘리야를 따라 거쳐왔던 이 네 곳을 잠시 살펴봅니다.
1)첫 번째가 길갈입니다.
이 길갈은 의미가 많은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⑴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험한 40년의 길을 마치고 이제 그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모맥을 거두는 시기라 요단의 강물이 언덕에 넘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넘치는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때의 일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명하여 한 지파마다 돌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수4:19-20)
여호수아가 진을 친 곳이 길갈이었고 기념비를 세운 곳이 길갈이었다.

⑵ 둘째는 단념의 길갈이었습니다.
(수5:8)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 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수5:9)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할례의 의미도 양피를 벰으로 죄악된 과거를 잘라버리고, 청산하듯이 애굽의 모든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는 뜻으로 길갈 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제자 된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의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과거를 굴러가게 하고 단념하는 길갈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2)두 번째가 벧엘입니다.
두 번 째로 간 곳은 벧엘이었습니다.
벧엘이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이곳은 야곱이 그의 형님 에서를 피하여 달아나다가 밤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또 야곱이 그의 방랑의 생활 20년을 청산하고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곳이 이 벧엘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돌 단을 쌓은 곳입니다.
단에 기름을 붇고 서원한 곳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는 길을 여호와께 믿음으로 맡긴 곳이 벧엘입니다.
3)세 번째가 여리고입니다.
①사실 여리고의 길은 대단한 결의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②여리고는 전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③이 전쟁은 그리스도를 위한 영적인 전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무너져 내리지 못한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훌륭한 제자로서의 삶은 이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4)네 번째가 요단강입니다.
①요단은 인생의 최종인 삶을 결산하는 길입니다.
②요단강은 이스라엘민족이 40년간의 광야생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회개함으로 요단강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갈라 주시므로 육지같이 건너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게 한 곳입니다.
예수님도 (마3:13)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단강은 모든 불 신앙을 청산하고 인본주의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어 가나안 땅의 새 사람으로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①길갈 ②벧엘, ③여리고, ④요단 이 네 곳에서 엘리사는 선지 생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마지막까지 자기 스승 없이는 그 어느 곳에도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가는 곳에 자기도 가고 스승이 머무는 곳에 자기도 머물려는 제자의 참 모습을 봅니다.
그 까닭은 스승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그와의 거룩한 교제, 거룩한 대화를 통해 좀 더 많은 영향을 받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 에딘브라 교회 묘지에 개 묘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개 무덤 옆에는 충견비가 세워져 있고 그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으로 개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주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사람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그 개는 주인의 묘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 개는 그후 14년 동안 주인의 무덤 곁에서 지키다 죽었습니다. "
그 개는 죽는 날까지 주인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 무덤을 지키다 죽었습니다.
`개도 이렇게 주인을 따르고 주인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무덤 곁을 떠나기를 싫어했는데 우리는 과연 최고의 스승인 주님 따르는 일에 이 개만도 못한 자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교훈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닮는 제자
스승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에게 마지막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9절)"라고 했습니다.
제자인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게 재물도 영예도 구하지 않았고 어떤 곤경에서의 해방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무엇보다도 스승 엘리야의 영, 즉 정신을 구했습니다.
여기 영감은 일반적으로 그의 높은 정신으로도 해석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스승을 대신할 예언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하던 일을 계승하고 그 생도들을 살펴보고 엘리야가 접했던 그 고난과 그 타락한 세대들과 대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정신을 갖지 않는다면 그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요 스승과 제자에게 걸 맞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떠날 것을 알고 그의 혼, 즉 정신을 원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존재를 가질 수 없다면 당신의 정신이라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 고 하는 요구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스승이요 훌륭한 제자입니까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의 손실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혼과 정신만 가진다면 당신의 존재(육체)가 떠난다 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 하는 정신입니다.
엘리사에게 있어서 스승 엘리야가 떠난 자리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인가
스승의 풍부한 재능이 아니라 그의 진지한 영혼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영혼을 붙잡아 그것을 나타낼 때만 그가 떠나고 없어도 일을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선하고 위대한 사람의 혼을 포착해서 그것을 물려받는 것은 그를 가장 깊이 가장 참되게 닮아 가는 일입니다.
위대한 화가에게서 그가 그린 그림의 선과 색만을 모방하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은 결코 미술 세계에서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작품으로부터 작가의 가슴속에 있던 영감과 열정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엘리사는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있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높고 더 좋은 것에 욕심 내는 것처럼 보이나 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것은 그의 진정한 겸손의 말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 성품, 이것은 선생님의 성품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약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영혼의 더 많은 부분이 필요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극복하기 의해 나에게는 당신의 영혼이 갑절이나 요구됩니다. '하는 간구입니다.
엘리사로서는 약간 지나친 소원인 것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사의 소원대로 과연 갑절의 영감을 엘리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1)엘리야로부터 받은 겉옷을 취해서 요단강을 치므로 물이 갈라지게 하였습니다.
2)2:19-를 보십시오!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물이 좋지 않아서 소금 한 그릇을 물 근원에 뿌림으로 물을 정화시키는 기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3)2:23-4절을 보십시오!
벧엘로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조롱.. 저주…암콤 둘.. 42명을 찢음
4)3장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연합해서 모압과 싸울 때 물이 없어서 전멸할 위기를 당하였는데... 개천을 파게 하고 그 개천이 물이 흘러 넘치게 하고 모압을 물리치게 했습니다.
5)4장을 보십시오! 선지생도중의 한 여인이 채주에게 두 아들을 종으로 빼앗기게 될 뻔했을 때, 기름 한 병뿐이었는데 그릇을 빌어오게 하여 그릇마다 가득 가득 채워지게 하는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6)역시 4장에서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도 하였고, 그 아들이 죽었을 때 살아나게도 하였습니다.
7)4:38-41절에서는 선지생도들이 흉년 중에 야등 덩굴을 솥에 넣고 끓이다가 사망의 독이 있다고 외치자 솥에 가루를 던짐으로 위험에서 구하였습니다.
8)4:42-4
4... 보리떡 20과 채소 한 자루로 100명이 먹고 남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9)5장을 보십시오! 수리아 장군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10)6장을 보십시오! 물에 빠진 도끼를 건져내어 주었습니다.
11)6장에 보시면 거룩한 간첩행위를 하였는데... 수리아 사람이 아무리 전쟁 준비를 치밀하게 하여도 이스라엘 왕에게 다 아뢰어 승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엘리사는 과연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아 귀한 일을 많이 한 선지자가 되어졌습니다.
3. 행하는 제자
제자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와 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11절)"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있어서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이제 떨어질 수 없는 스승과 작별의 순간이 왔습니다. 엘리사는 절망에 가까운 비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소리를 지르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하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갈라질 수 없는 사제지간의 모습입니다. 오늘 사제지간의 이런 애정과 의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①임금, ②스승, ③부모는 일체라는 것입니다.
임금님과 스승과 부모님의 그림자라도 밟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도덕이요 윤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스승의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서 병원에 입원시키는 일을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입니다.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총장실에 불을 지르고 기물을 태우고 하는 등의 보도를 접할 때 이 나라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말로 타이릅니다. 아무리 선생이 악할지라도 제자들에게 잘못되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스승을 잘 모시지 못하는 나라는 설 수 없습니다.
엘리사는 스승에 대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스승을 부를 수 있어야 이 역사, 이 나라가 소망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것은 갈라질 수 없는 사제지간의 애정이요 의리입니다.
엘리사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자 이때 엘리야는 평생 자기 몸에 걸치고 있던 겉옷을 던져 줍니다. 이것은 직무의 전승, 권능의 전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에게 있어서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엘리사는 실망과 비통 가운데서 스승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웠습니다. 방금 전에 요단강을 갈라 육지처럼 건너온 스승 엘리야는 불 수레와 불 말을 타고 승천했습니다.
엘리사는 강 건너 50여명의 생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그런데 강가에 와 보니 물이 합류되어 언덕까지 흐릅니다.
이때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게서 취한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 (14절)"졌습니다.
이것은 스승에게서 받은 것 가지고 스승이 하던 대로 실천해보라는 교훈입니다. 잘 되라, 사람 되라는 교훈을 받았으니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부른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에게 스승은 떠났으나 스승의 여호와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스승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은 제자 엘리사의 여호와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선임자들의 정신과 그 발자취를 따를 때에 선임자들이 체험한 은혜, 그 이상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옛날 나단이란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격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지환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 지환을 끼고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단이 병이 들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지환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생각하다가 세 아들을 하나씩 불렀습니다.
①먼저 큰아들에게 "너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이다. 내가 이 반지를 누구에게 주겠느냐 장차 너에게 주겠다. "고 말했습니다.
큰아들은 너무 기뻐서 이 비밀을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②그 다음 둘째 아들을 불러서 "너는 내 장자도 아니요 막내도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중간 아들이다. 내가죽을 때 이 반지를 네게 주마. "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도 너무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③나단은 또 막내아들을 불러서 "너는 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이다. 내가 죽을 때 이 반지를 네게 주마. "고 했습니다.
막내아들도 이 비밀을 갖고 기쁨으로 돌아갔습니다.
④얼마 후 나단은 임종이 가까운 것을 알고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금방 주인을 불러서 "이 반지와 꼭 같은 반지 2개를 만들어 달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단은 죽기 직전 세 아들을 각각 불러 지환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나단이 죽자 장례를 잘 치른 후 세 아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자기 것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결국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이 내용을 다 듣더니 명 판결을 내렸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끼고 있던 반지는 그 반지를 끼고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격자가 된다고 했으니 지금은 누구의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살면서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 반지이다. " 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을 받고 삼형제는 자기 반지가 진짜 반지 되게 하려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서 모두 훌륭한 인격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내가 옳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남에게 감화를 끼치고 선한 열매를 맺고 사는가 얼마나 덕을 끼치고 사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승들에게서 받은 교훈을 생활에 옮겨야겠습니다. 우리는 받은 말씀을 가지고 실천하며 사는 훌륭한 제자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1)처음과 시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끝은 더욱 중요합니다.
2)뿐만 아니라 지식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혼과 정신은 더욱 중요합니다.
3)스승의 혼과 정신을 물려받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4)말과 이론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행함과 실천은 더욱 중요합니다.
㉮스승 엘리야의 마지막 이적이 요단을 가르는 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 엘리사의 첫번 이적이 요단을 가르는 이적이었습니다. 스승보다 나은 제자입니다.
㉰스승의 소원은, 스승의 보람은 제자들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스승은 여기에 보람을 느끼고 제자들은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좋은 스승 엘리야와 좋은 제자 엘리사의 관계를 보면서 우리는 엘리사처럼 좋은 제자로서 참 스승이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가 다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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