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존경 받는 스승
본문
스승의 날이 지난 15일 지났습니다. 선생을 기억하며 은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물론 평소에도 하고 있지만 특별히 1년에 한번씩 날을 제정하여 이 날만은 선생을 기리기 위해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찾아보며 은사 선생님을 돌아 보는 날이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매년 5월 첫 번째 화요일입니다. 85년부터 NEA·PTA라는 단체가 정식으로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5월4일이 스승의 날(National Teacher Day)이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서 미국의 교원단체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미국에도 우리의 교육주간에 해당하는 '스승에 대한 감사 주간(Teacher Appreciation Week)'이 있는데 매년 5월 첫째 주다.
올해는 5얼 7-12일이 그 주간이다. 스승과 교직에 대한 존경과 지원을 강화하는 때인 스승의 날의 기원은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승의 날의 기원은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드브리지라는 알칸사스의 한 교사가 1944년 교사에 존경을 표하기 위한 국가 기념일의 필요성을 정치, 교육지도자들에게 서신을 교환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편지를 보낸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 루즈벨트대통령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53년 스승의 날을 만들기 위해 81차 의회에서 설득작업을 폈다.
70년대 후반 미국교원연합 NEA는 인디애나와 캔사스 지부가 연합해 의회 로비 작업을 폈고 의회는 1980년 한해만 5월7일을 스승의 날로 선포했다. NEA는 1985년 NEA와 National PTA가 '스승에 대한 감사 주간'을 만들 때까지 5월 첫 번째 화요일을 스승의 날로 행사를 치러왔다. NEA는 85년 대의원회를 통해 스승의 날을 5월 첫 번째 화요일을 스승의 날로 확정했다. NEA는 스승의 날에 학부모, 사회, 학생들이 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20여가지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제안했다. -은행이나 여타의 사업장 등에서는 이날을 축하하는 전자간판을 운영하자 -이날만은 교사들에게 할인혜택을 부여하자 -각종 축하모임에 교육관계자들을 초청하자 -교실문 앞에는 교사의 이름과 축하 메시지를 달아놓자 -학생들은 사탕이나 과일 등을 축하 카드와 더불어 선물하자 -풍선과 꽃들을 모든 교사 휴게실에 제공하자 -휴식과 활력을 되찾는 점심시간을 마련하자 -언론인과 작가들은 1일교사로 참가해 이 체험을 지면에 옮기자 -라디오에서는 축하 멘트를 하고 음악도 틀자 나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기를 "존경받는 선생"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 연 존경받는 선생이 될 수 있을까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아는 말슴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선생이고 엘리사는 그의 제자입니다. 제자와 선생사이에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에 엘리야는 아주 훌륭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엘리야의 업적은 우상으로 망해 가는 국가와 민족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아합정건과 갈멜산에서 850:1이라는 수적인면에서 열세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신과 우상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기적으로 보여주222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끄집어 내렸고 3년 6개월동안에 비가 오지 않는 한재속에서 단비를 내리게 하는 기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준 엘리사의 선생입니다. 참으로 엘리사에게는 훌륭한 선생임을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과연 엘리야는 어떤면에서 훌륭한 선생인가
1 선생님을 사모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선생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읽어 드린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엘리야는 자신의 제자인 엘리사로 하여금 참으로 사모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토록 사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따라가는 것을 바라볼 때 그는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있었다. 네 번씩이나 옮기면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한 말이 있다. 왕하 2:1-2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하는 말을 거듭거듭 3번식이나 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생을 사모하였고 사모하게 했는가를 보여준 말씀이다. 제자는 선생을 사모해야 하고 선생은 제자들을 부러워하게 하는 선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의 권위를 보여준 말씀입니다. 요즘은 선생의 권위가 실추된 면을 보여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생 알기를 거지 같이 알기 때문에 선생을 따르는 제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 현실의 고민 거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상에 공개된 금년도 서울대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수들을 존경하느냐" 하는 질문에 42%가 존경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자기의 지도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개탄할 일인가를 보여준다. 얼마전에 인천의 K여중3학년 S(15세)양이 잡담을 하는 자신에게 꾸지람을 하는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폭행, 어른들의 한숨을 자아내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대구 이모 군은 숙제를 해오지 않아 체벌(얼굴에 도장을 찍는 행위)을 받는 것에 반발하여 선생님에게 전치2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도 발생하여 다시금 이 나라의 교권의 위치를 생각하게 됐다. 일전에 총장이 자동차를 시위학생들이 올라가 찌그러뜨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선생님의 권위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이며 또한 선생의 머리를 삭발시키는 일들은 일련의 선생의 권위가 ㅊ락함을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엘리사는 선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했으면 그 숫한 거절을 당하면서도 따라가는 모습은 선생님을 사모하고 권위가 있음을 보여준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보여줄 것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자가 선생을 생각할 때 별 볼일 없는 선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같이 따를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은 그 만큼의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학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시당하고 없수히 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줄수 있는 스승은 다음에 3가지를 갗추어야 한다.
1)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고매한 인격은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은 사람과 사람을 격리 한다. 즉 겸손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 그리해야 사람이 따른다. 탐심이 가득한 사람은 안 된다. 이타주의 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이타주의에 사람이 된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2) 무엇인가를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교수는 실력이 있어야 하며 학생은 실력이 있어야 하고 신앙인은 주님의 인격이 있어야 하며 가져야 하며 소유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넉넉해야 한다. 가진 자가 되어야 따르게 하고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3) 가진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소유했다 하더라도 줄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지 그렇지 않는다면 따를 사람이 어디 있으며 따를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진 자에게 얻을 수 있는 기대감이 있는 분위기와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따르고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에 소홀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 일으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신뢰로써 선생님과 학생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회복함으로서 사제의 윤리를 바로잡고 참된 학풍을 일으키며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바로 인식하고 존경하는 기풍을 길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윤리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이스승의 날을 정한다. (1964년 5월 16일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 결의문)
2 끝가지 선생을 따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고 따르게 한 사건을 볼 수 있다. 만약에 중도에 중단하는 일이 있었다면 상호간 유익이 없었을 것이다. 존경 받는 스승은 제자들을 따르게 하고 따른다고 하면 마지막까지 따르게 하는 것이며 또한 제자들은 끝까지 따라야 진정한 제자의 도를 다한 사람일 것입니다.
왕하 2:1-6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따라야 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말씀입니다.
학창 생활을 하는 중에도 존경하고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잊혀지지 않은 선생이나 교수가 되어야 하며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라이 될 때 그 선생은 제자으 머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 존경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학창 생활에 좋은 관계를 가져야하기도 하지만 하고 난 후에도 계속적으로 관계를 끊기지 않는 선생과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제자 좋은 선생이 될 것은 당연하다.
3 갑절에 능력을 받게 하는 사람입니다.
왕하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게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바라고 따랐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머물라 하여도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엘리야의 정신을 볼 수 있다. 갑절의 영감이란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성령 충만은 권능을 의미한다. 오순절 다락방에 참석하기 이전에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성령 충만은 권능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갑절에 영감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힘이 필요를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한계 아는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을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알고 항상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신앙인의 바른 자세를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율법을 행하는 성도가 될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을 알게될 것이다. 그럼으로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되는 놀라운 진리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내가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을 알게 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케 되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를 아는 신령한 지식이 담겨지게 될 것이다. 전도해 본 사람이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지만 전도한번 해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또한 전도해본 사람은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다른 힘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한번 나아가 외칠 때 3천명 4천명씩 전도된 사건을 생각할 때 이는 인간의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하여 되어진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같은 사람은 다른 힘 즉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엘리사는 이 같이 자신에게 다른 힘이 필요를 절실히 깨달은 바가 있기에 엘리야를 죽기를 다하고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엘리사는 어떤 일에 힘을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새 힘이 필요하게 느겼을런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힘을 받기 위해 따르던 그는 진정으로 엘리야의 배나 되는 영감을 받은 사건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내가해서 안 되는 일이 없습니까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나의 한계를 느껴보지는 않았는지 모릅니다. 이를 위해 갑절의 영감을 위해 도전하지 않겠습니까 가정 생활을 위해 아니면 교회생활에서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학원 현장에서 필요하지 않습니까 어디에서 어느 현장에서 필요한지는 여러분들이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우리의 원하는 필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엘리사는 그 시대에 경건 생활과 신령한 생활에 부족을 채우는 아름다운 기지를 발휘하여 자존심을 구기면서 선생을 따른 결과 갑절의 영감을 받아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가운데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말씀을 줄이려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선생을 통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1) 스승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스승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3) 갑절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것을 하게 한 엘리야는 진정으로 존경받는 스승이요 선생의 본을 보여준 모범적인 선생으로 치부하게 된 것입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아 이 말씀으로 한번 다시 선생으로서 존경받는 스승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올해는 5얼 7-12일이 그 주간이다. 스승과 교직에 대한 존경과 지원을 강화하는 때인 스승의 날의 기원은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승의 날의 기원은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드브리지라는 알칸사스의 한 교사가 1944년 교사에 존경을 표하기 위한 국가 기념일의 필요성을 정치, 교육지도자들에게 서신을 교환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편지를 보낸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 루즈벨트대통령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53년 스승의 날을 만들기 위해 81차 의회에서 설득작업을 폈다.
70년대 후반 미국교원연합 NEA는 인디애나와 캔사스 지부가 연합해 의회 로비 작업을 폈고 의회는 1980년 한해만 5월7일을 스승의 날로 선포했다. NEA는 1985년 NEA와 National PTA가 '스승에 대한 감사 주간'을 만들 때까지 5월 첫 번째 화요일을 스승의 날로 행사를 치러왔다. NEA는 85년 대의원회를 통해 스승의 날을 5월 첫 번째 화요일을 스승의 날로 확정했다. NEA는 스승의 날에 학부모, 사회, 학생들이 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20여가지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제안했다. -은행이나 여타의 사업장 등에서는 이날을 축하하는 전자간판을 운영하자 -이날만은 교사들에게 할인혜택을 부여하자 -각종 축하모임에 교육관계자들을 초청하자 -교실문 앞에는 교사의 이름과 축하 메시지를 달아놓자 -학생들은 사탕이나 과일 등을 축하 카드와 더불어 선물하자 -풍선과 꽃들을 모든 교사 휴게실에 제공하자 -휴식과 활력을 되찾는 점심시간을 마련하자 -언론인과 작가들은 1일교사로 참가해 이 체험을 지면에 옮기자 -라디오에서는 축하 멘트를 하고 음악도 틀자 나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기를 "존경받는 선생"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 연 존경받는 선생이 될 수 있을까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아는 말슴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선생이고 엘리사는 그의 제자입니다. 제자와 선생사이에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에 엘리야는 아주 훌륭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엘리야의 업적은 우상으로 망해 가는 국가와 민족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아합정건과 갈멜산에서 850:1이라는 수적인면에서 열세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신과 우상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기적으로 보여주222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끄집어 내렸고 3년 6개월동안에 비가 오지 않는 한재속에서 단비를 내리게 하는 기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준 엘리사의 선생입니다. 참으로 엘리사에게는 훌륭한 선생임을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과연 엘리야는 어떤면에서 훌륭한 선생인가
1 선생님을 사모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선생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읽어 드린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엘리야는 자신의 제자인 엘리사로 하여금 참으로 사모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토록 사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따라가는 것을 바라볼 때 그는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있었다. 네 번씩이나 옮기면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한 말이 있다. 왕하 2:1-2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하는 말을 거듭거듭 3번식이나 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생을 사모하였고 사모하게 했는가를 보여준 말씀이다. 제자는 선생을 사모해야 하고 선생은 제자들을 부러워하게 하는 선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생의 권위를 보여준 말씀입니다. 요즘은 선생의 권위가 실추된 면을 보여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생 알기를 거지 같이 알기 때문에 선생을 따르는 제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 현실의 고민 거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상에 공개된 금년도 서울대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수들을 존경하느냐" 하는 질문에 42%가 존경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자기의 지도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개탄할 일인가를 보여준다. 얼마전에 인천의 K여중3학년 S(15세)양이 잡담을 하는 자신에게 꾸지람을 하는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폭행, 어른들의 한숨을 자아내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대구 이모 군은 숙제를 해오지 않아 체벌(얼굴에 도장을 찍는 행위)을 받는 것에 반발하여 선생님에게 전치2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도 발생하여 다시금 이 나라의 교권의 위치를 생각하게 됐다. 일전에 총장이 자동차를 시위학생들이 올라가 찌그러뜨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선생님의 권위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이며 또한 선생의 머리를 삭발시키는 일들은 일련의 선생의 권위가 ㅊ락함을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엘리사는 선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했으면 그 숫한 거절을 당하면서도 따라가는 모습은 선생님을 사모하고 권위가 있음을 보여준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보여줄 것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자가 선생을 생각할 때 별 볼일 없는 선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같이 따를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은 그 만큼의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학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시당하고 없수히 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줄수 있는 스승은 다음에 3가지를 갗추어야 한다.
1)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고매한 인격은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은 사람과 사람을 격리 한다. 즉 겸손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 그리해야 사람이 따른다. 탐심이 가득한 사람은 안 된다. 이타주의 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이타주의에 사람이 된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2) 무엇인가를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교수는 실력이 있어야 하며 학생은 실력이 있어야 하고 신앙인은 주님의 인격이 있어야 하며 가져야 하며 소유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넉넉해야 한다. 가진 자가 되어야 따르게 하고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3) 가진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소유했다 하더라도 줄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지 그렇지 않는다면 따를 사람이 어디 있으며 따를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가진 자에게 얻을 수 있는 기대감이 있는 분위기와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따르고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에 소홀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 일으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신뢰로써 선생님과 학생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회복함으로서 사제의 윤리를 바로잡고 참된 학풍을 일으키며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바로 인식하고 존경하는 기풍을 길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윤리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이스승의 날을 정한다. (1964년 5월 16일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 결의문)
2 끝가지 선생을 따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따르고 따르게 한 사건을 볼 수 있다. 만약에 중도에 중단하는 일이 있었다면 상호간 유익이 없었을 것이다. 존경 받는 스승은 제자들을 따르게 하고 따른다고 하면 마지막까지 따르게 하는 것이며 또한 제자들은 끝까지 따라야 진정한 제자의 도를 다한 사람일 것입니다.
왕하 2:1-6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따라야 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말씀입니다.
학창 생활을 하는 중에도 존경하고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잊혀지지 않은 선생이나 교수가 되어야 하며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라이 될 때 그 선생은 제자으 머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 존경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학창 생활에 좋은 관계를 가져야하기도 하지만 하고 난 후에도 계속적으로 관계를 끊기지 않는 선생과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제자 좋은 선생이 될 것은 당연하다.
3 갑절에 능력을 받게 하는 사람입니다.
왕하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게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바라고 따랐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머물라 하여도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엘리야의 정신을 볼 수 있다. 갑절의 영감이란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성령 충만은 권능을 의미한다. 오순절 다락방에 참석하기 이전에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성령 충만은 권능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갑절에 영감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힘이 필요를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한계 아는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을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알고 항상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신앙인의 바른 자세를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율법을 행하는 성도가 될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을 알게될 것이다. 그럼으로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되는 놀라운 진리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내가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을 알게 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케 되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를 아는 신령한 지식이 담겨지게 될 것이다. 전도해 본 사람이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지만 전도한번 해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또한 전도해본 사람은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다른 힘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한번 나아가 외칠 때 3천명 4천명씩 전도된 사건을 생각할 때 이는 인간의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하여 되어진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같은 사람은 다른 힘 즉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엘리사는 이 같이 자신에게 다른 힘이 필요를 절실히 깨달은 바가 있기에 엘리야를 죽기를 다하고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엘리사는 어떤 일에 힘을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새 힘이 필요하게 느겼을런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힘을 받기 위해 따르던 그는 진정으로 엘리야의 배나 되는 영감을 받은 사건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내가해서 안 되는 일이 없습니까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나의 한계를 느껴보지는 않았는지 모릅니다. 이를 위해 갑절의 영감을 위해 도전하지 않겠습니까 가정 생활을 위해 아니면 교회생활에서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학원 현장에서 필요하지 않습니까 어디에서 어느 현장에서 필요한지는 여러분들이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 우리의 원하는 필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엘리사는 그 시대에 경건 생활과 신령한 생활에 부족을 채우는 아름다운 기지를 발휘하여 자존심을 구기면서 선생을 따른 결과 갑절의 영감을 받아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가운데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말씀을 줄이려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선생을 통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1) 스승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스승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3) 갑절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것을 하게 한 엘리야는 진정으로 존경받는 스승이요 선생의 본을 보여준 모범적인 선생으로 치부하게 된 것입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아 이 말씀으로 한번 다시 선생으로서 존경받는 스승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