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참 좋은 스승
본문
예년 같으면 금년도의 우리 교회 표어를 제목으로 하여 말씀을 전하는 주일이지만 우리 교회의 금년의 표어인 “예수님을 따라서”라는 제목의 설교는 3월에 부임하실 고목사님의 몫으로 놔두고 “참 좋은 스승”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스승들 가운데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의 스승님들은 물론이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계시고 교회의 교사나 목회자들도 계시고 주변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는 직장에서의 선배나 동료들이 좋은 스승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때 그 때 영향을 끼친 이들이야말로 한 인생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스승을 잘못 만나서 잘못된 인생 길을 간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도둑 스승을 만나서 일생을 도둑놈으로 살다가 끝낸 인생도 있습니다. 선배를 잘 못 만나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정말 주변의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삽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작으만치 7페이지에 달하는 호소문이 교회팩스로 내 이름으로 와서 읽어보았더니 우리 교회에 다니던 모 집사님에 관한 것인데 그분의 회사에서 중직을 맡았던 분으로서 그 집사님 때문에 정신적, 금전적 피해를 받아서 가정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호소하면서 나의 도움을 청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여러 해전에 우리 교회를 떠난 분이어서 제적이 된 분인데 그것을 모르고 지금도 우리 교회 집사님으로 알고 제게 팩스로 보낸 것입니다. 사장을 잘못 만나 자신의 인생과 가족 전체가 망가지게 된 경우였습니다. 한 일생에 있어서 사람 하나, 선배 하나, 스승 하나 잘못 만나서 패가된 경우입니다.
올바른 스승을 만나면 인생은 성공합니다. 반대로 바르지 못한 스승을 만나면 일생은 실패합니다. 다행한 것은 저나 여러분 성도님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가장 올바르고 정직한 스승을 만났기에 올바른 길을 이제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스승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시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 분의 인도를 받고 지도를 받게되었으니 이런 엄청난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들의 스승 예수님의 지도만 제대로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100% 성공입니다.
문제는 스승의 지도를 제대로 받는가에 있습니다. 그 스승을 참으로 고맙게 받아드려서 그 스승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으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의 지도를 받지 않고 거역하고 불순종한다면 좋은 스승을 만난 보람이 없을 것이고 결국엔 실패의 인생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권고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스승을 옆에 모시고 있다고 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의 본문을 보면 사무엘이 어렸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괘가 있는 성전 안에서 누워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아!” 라고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듣고 처음에는 엘리 예언자가 부르는 줄 알고 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부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제 처소로 다시 와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또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엘리의 방으로 달려갔지만 엘리는 아니 불렀다고 했습니다. 이런 똑 같은 일이 세 번씩이나 일어나자 엘리 선지자가 그제야 깨닫고 사무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다음에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니 빨리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 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과연 그가 일러준 대로 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사무엘은 바로 엎드리어 “말씀하십시요. 제가 듣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스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나서 그 스승의 말씀대로 순종했고 실천했던 사무엘은 결국 교회와 나라와 민족 전체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는 대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신약의 본문에는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갈리리로 나가는 길에 빌립을 도중에 만나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했을 때 빌립은 예수님을 주저 없이 곧 바로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단번에 영접했던 것입니다. 이미 빌립과는 같은 동네 친구들인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기에 그 두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빌립이 많이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도 예수님을 만나서 스승으로 그를 모시고 따르려고 나섰다가 그 마음을 아신 예수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한 것이 확실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 라는 예수님의 부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수님을 곧바로 따랐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따르다 보니 너무 좋아서 자기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너도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만나보고 제자가 되라” 라고 큰 스승을 소개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알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때 빌립이 단호하게 “와서 보시오”라고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직접 대하여 보고는 “선생님 선생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가 바로 바돌로메라 이름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자칫하면 그 이름이 영원히 없어져버릴 뻔했지만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함에서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의 삶도 달라졌고 그리고 그의 이름도 성경에 영원히 보존되게 되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여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나서 자신들의 일생을 정말 멋지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복 받은 자들입니다.
제자란 스승의 말씀과 삶에 감동을 받아서 그를 따르는 자입니다. 스승이 주시는 교훈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비록 100%는 못 따르지만 최대로 노력을 하여 스승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교훈만이 아니라 스승의 삶을 배우면서 그것을 자신의 삶에 옮기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스승 예수님의 삶의 자세를 배워서 그 삶을 실천해 가야하며 그가 주시는 교훈들을 깊이 음미하면서 실생활 속에서 그 교훈을 실현해가야 합니다. 좋고 참된 우리들의 스승 예수님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정말로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 받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고, 예수님의 교훈을 그대로 순종하면서 산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됩니다. 작은 예수님이 됩니다. 스승 예수님의 판에 박은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삶을 살아야 최고의 삶인지 잘 판단이 아니 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가치관이 최고인지 판단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이 매우 모호한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어떤 철학자의 학설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어느 성현군자의 어록을 뒤져보기도 합니다. 때론 존경하는 선배를 찾아가서 의논도 해 봅니다. 부모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합니다. 목사님과 상담도 합니다. 인간사의 복잡한 문제들을 존경하는 스승의 지혜를 빌려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챤들에게는 최고의 스승 예수님이 계십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빨리 그 문제를 예수님에게 가지고 가면 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 삶, 교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참 스승을 배웁니다. 어떤 성도는 일상의 모든 삶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로 예수님에게 접근합니다. “예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하면서 직접 묻습니다. 그리고 해답을 얻습니다. 어떤 성도는 문제가 생기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할 까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런 경우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를 생각하면서 해결방법을 모색합니다. 예수님을 참 스승으로 모시고 살고 그 스승의 지시를 받으면서 살려고 하는 제자의 자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태도가 아닐까요 최고의 스승으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면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산다고 말하면서도 실생활 속에서는 예수님에게 상담하거나 자문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속을 태우고 고민하고 번민한다면 그것은 크나 큰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사에 예수님과 의논하고 상의하는 성도를 "어린 아이 신자"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 안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분은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면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자신과 자신의 삶 전체를 맡기는 자세를 갖습니다. 그러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수님에게 그 문제를 가지고 갑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얼굴을 향하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순종할 자세를 갖는 이유는 인간 자신이 얼마나 간사한 존재이며 이기적인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앗 차 하는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욕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임을 알기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먼저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고 기도함에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 인간적인 이기심이 배제된 그 어떤 것,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똑똑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지혜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성을 알기에 먼저 예수님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대 스승이신 예수님에게 먼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제자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자기를 따라주는 자기의 제자를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고 안내합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의지하고 순종하고 따라오는 제자를 어여삐 여기셔서 최선의 길로 인도합니다. 매사에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서 살려는 사람, 예수님의 삶을 본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 문제를 전적으로 예수님에게 상의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사랑하셔서 옳고 선한 길로 반드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자기 부정입니다. 자기 부정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자기를 부정한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 자기의 마음, 자기의 소원, 자기의 생각 등등 모두를 일단은 뒤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따르려는 스승만을 바라보면서 그 분에게 절대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스승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바로 첫 입구에 그 십자가가 놓여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초심에서 절대 순종의 길을 예수님은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한 중간에서나 혹은 마지막 부분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고서야 스승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가장 행복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선하고 가장 확실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여러분도 멋진 인생, 선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그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
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부정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자기의 고집, 생각, 이기심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서야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습니다. 금년 한 해의 표어를 주일마다 수요일마다 읽으시면서 먼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으니 마음놓고 그 스승을 따르면 반드시 행복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분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만을 스승으로 모심으로서 새 해가 보람차고 의미 있고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스승들 가운데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의 스승님들은 물론이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계시고 교회의 교사나 목회자들도 계시고 주변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는 직장에서의 선배나 동료들이 좋은 스승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 때 그 때 영향을 끼친 이들이야말로 한 인생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스승을 잘못 만나서 잘못된 인생 길을 간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도둑 스승을 만나서 일생을 도둑놈으로 살다가 끝낸 인생도 있습니다. 선배를 잘 못 만나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정말 주변의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삽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작으만치 7페이지에 달하는 호소문이 교회팩스로 내 이름으로 와서 읽어보았더니 우리 교회에 다니던 모 집사님에 관한 것인데 그분의 회사에서 중직을 맡았던 분으로서 그 집사님 때문에 정신적, 금전적 피해를 받아서 가정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호소하면서 나의 도움을 청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여러 해전에 우리 교회를 떠난 분이어서 제적이 된 분인데 그것을 모르고 지금도 우리 교회 집사님으로 알고 제게 팩스로 보낸 것입니다. 사장을 잘못 만나 자신의 인생과 가족 전체가 망가지게 된 경우였습니다. 한 일생에 있어서 사람 하나, 선배 하나, 스승 하나 잘못 만나서 패가된 경우입니다.
올바른 스승을 만나면 인생은 성공합니다. 반대로 바르지 못한 스승을 만나면 일생은 실패합니다. 다행한 것은 저나 여러분 성도님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가장 올바르고 정직한 스승을 만났기에 올바른 길을 이제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스승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시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 분의 인도를 받고 지도를 받게되었으니 이런 엄청난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들의 스승 예수님의 지도만 제대로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100% 성공입니다.
문제는 스승의 지도를 제대로 받는가에 있습니다. 그 스승을 참으로 고맙게 받아드려서 그 스승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으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의 지도를 받지 않고 거역하고 불순종한다면 좋은 스승을 만난 보람이 없을 것이고 결국엔 실패의 인생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권고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스승을 옆에 모시고 있다고 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의 본문을 보면 사무엘이 어렸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괘가 있는 성전 안에서 누워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아!” 라고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듣고 처음에는 엘리 예언자가 부르는 줄 알고 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부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제 처소로 다시 와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또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엘리의 방으로 달려갔지만 엘리는 아니 불렀다고 했습니다. 이런 똑 같은 일이 세 번씩이나 일어나자 엘리 선지자가 그제야 깨닫고 사무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다음에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니 빨리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 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과연 그가 일러준 대로 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사무엘은 바로 엎드리어 “말씀하십시요. 제가 듣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스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나서 그 스승의 말씀대로 순종했고 실천했던 사무엘은 결국 교회와 나라와 민족 전체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는 대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신약의 본문에는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갈리리로 나가는 길에 빌립을 도중에 만나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했을 때 빌립은 예수님을 주저 없이 곧 바로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단번에 영접했던 것입니다. 이미 빌립과는 같은 동네 친구들인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기에 그 두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빌립이 많이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도 예수님을 만나서 스승으로 그를 모시고 따르려고 나섰다가 그 마음을 아신 예수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한 것이 확실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 라는 예수님의 부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수님을 곧바로 따랐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따르다 보니 너무 좋아서 자기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너도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만나보고 제자가 되라” 라고 큰 스승을 소개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알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때 빌립이 단호하게 “와서 보시오”라고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직접 대하여 보고는 “선생님 선생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가 바로 바돌로메라 이름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자칫하면 그 이름이 영원히 없어져버릴 뻔했지만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함에서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의 삶도 달라졌고 그리고 그의 이름도 성경에 영원히 보존되게 되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여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좋은 스승을 만나서 자신들의 일생을 정말 멋지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복 받은 자들입니다.
제자란 스승의 말씀과 삶에 감동을 받아서 그를 따르는 자입니다. 스승이 주시는 교훈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비록 100%는 못 따르지만 최대로 노력을 하여 스승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교훈만이 아니라 스승의 삶을 배우면서 그것을 자신의 삶에 옮기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스승 예수님의 삶의 자세를 배워서 그 삶을 실천해 가야하며 그가 주시는 교훈들을 깊이 음미하면서 실생활 속에서 그 교훈을 실현해가야 합니다. 좋고 참된 우리들의 스승 예수님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정말로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 받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고, 예수님의 교훈을 그대로 순종하면서 산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됩니다. 작은 예수님이 됩니다. 스승 예수님의 판에 박은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삶을 살아야 최고의 삶인지 잘 판단이 아니 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가치관이 최고인지 판단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이 매우 모호한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어떤 철학자의 학설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어느 성현군자의 어록을 뒤져보기도 합니다. 때론 존경하는 선배를 찾아가서 의논도 해 봅니다. 부모님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합니다. 목사님과 상담도 합니다. 인간사의 복잡한 문제들을 존경하는 스승의 지혜를 빌려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챤들에게는 최고의 스승 예수님이 계십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빨리 그 문제를 예수님에게 가지고 가면 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 삶, 교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참 스승을 배웁니다. 어떤 성도는 일상의 모든 삶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로 예수님에게 접근합니다. “예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하면서 직접 묻습니다. 그리고 해답을 얻습니다. 어떤 성도는 문제가 생기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할 까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런 경우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를 생각하면서 해결방법을 모색합니다. 예수님을 참 스승으로 모시고 살고 그 스승의 지시를 받으면서 살려고 하는 제자의 자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태도가 아닐까요 최고의 스승으로 예수님을 모신 사람이면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산다고 말하면서도 실생활 속에서는 예수님에게 상담하거나 자문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속을 태우고 고민하고 번민한다면 그것은 크나 큰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사에 예수님과 의논하고 상의하는 성도를 "어린 아이 신자"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 안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분은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면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자신과 자신의 삶 전체를 맡기는 자세를 갖습니다. 그러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수님에게 그 문제를 가지고 갑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얼굴을 향하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순종할 자세를 갖는 이유는 인간 자신이 얼마나 간사한 존재이며 이기적인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앗 차 하는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욕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임을 알기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먼저 예수님에게 마음을 열고 기도함에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 인간적인 이기심이 배제된 그 어떤 것,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똑똑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지혜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죄성을 알기에 먼저 예수님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대 스승이신 예수님에게 먼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제자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자기를 따라주는 자기의 제자를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고 안내합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의지하고 순종하고 따라오는 제자를 어여삐 여기셔서 최선의 길로 인도합니다. 매사에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서 살려는 사람, 예수님의 삶을 본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 문제를 전적으로 예수님에게 상의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사랑하셔서 옳고 선한 길로 반드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자기 부정입니다. 자기 부정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자기를 부정한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 자기의 마음, 자기의 소원, 자기의 생각 등등 모두를 일단은 뒤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따르려는 스승만을 바라보면서 그 분에게 절대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스승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바로 첫 입구에 그 십자가가 놓여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초심에서 절대 순종의 길을 예수님은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한 중간에서나 혹은 마지막 부분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십자가를 지고서야 스승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가장 행복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선하고 가장 확실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여러분도 멋진 인생, 선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그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
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부정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자기의 고집, 생각, 이기심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서야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습니다. 금년 한 해의 표어를 주일마다 수요일마다 읽으시면서 먼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으니 마음놓고 그 스승을 따르면 반드시 행복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분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만을 스승으로 모심으로서 새 해가 보람차고 의미 있고 아름답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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