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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거짓선생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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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을 구경해 보셨습니까 어렸을 적에 서커스를 구경할 때면 어김없이 마술사가 등장을 해서 멋진 마술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 마술을 구경하노라면 너무도 신기할 뿐입니다. 마술사의 모자에서 비둘기가 수십마리가 나오는가 하면, 사라졌던 동전이 입에서도 나오고 귀에서도 자꾸 자꾸 나오곤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마술사들은 참 부자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필요할 때 코잔등을 한번 슬쩍 만져서 돈을 만들고, 또 귓불도 한번 만져서 돈을 만들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성장해서야 비로소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 자신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진짜인줄만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는데도 이와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하기전까지는 가짜를 가짜로 알지 못하고 진짜인양 속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주위에는 진짜를 흉내내는 거짓된 가짜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시대에도 거짓을 퍼트리는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평화를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거짓평화를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이 퍼트린 종교는 쉽고, 편하고, 주위와 적당하게 타협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영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골라서 함으로서 그들을 안심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짓된 모습이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시대에도 여전히 거짓된 자들이 거짓된 모습으로 진짜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교회내에 슬그머니 들어오고 있는 이러한 거짓된 것들에 관해 경계할 것을 당부하면서 거짓된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도 베드로의 교훈이 그 시대를 향해서만 했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위에도 이런 거짓된 자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거짓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여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진짜인줄 착각하고 그들을 따라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의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이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할 중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는 거짓선생들의 모습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속이는 것입니다. (1절)
마술사가 현란한 손 동작으로 관객들의 눈을 속이듯이 거짓선생들의 특징도 속이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속이는 방법은 마술사와는 또 다릅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그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자란 집은 전통적인 한옥이었습니다. 방이 모두 온돌이었고 연탄을 때서 방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런 집의 특징을 잘 아시겠지만 아랫목은 발이 뜨거울 정도로 뜨겁지만 윗목은 얼음장같이 싸늘합니다. 저희 집은 3남 2녀였기 때문에 가족이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아랫목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난립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TV에 '여로'라는 것이 방영되었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이 시간이 되면 동네가 쥐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다행히 동네 TV가 있는 집이 두 집이었는데 그 중에 저희집이 속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TV앞에 앉습니다. 그것도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아랫목 쟁탈전을 벌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저는 제일 막내였고 어렸기 때문에 아랫목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푸대접당하는 쪽은 저희 둘째형입니다.
큰형은 장남이니까 아랫목을 차지하고 저는 막내니까 또 따뜻한 자리에 앉았는데 항상 차남인 저희 둘째형은 제일 추운쪽에 앉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방송이 끝날때 쯤이면 제가 늘 제일 추운 곳에 앉아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둘째형이 제의를 합니다. 발이라도 아랫목에 조금 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발만이라도 아랫목에 펼 수 있도록 자리를 조금 비켜줍니다. 그러면 기회를 봐서 우리가 재미있어서 막 웃을 때 발을 조금 더 안쪽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슬퍼할 때, 또 발을 조금 안으로 집어 넣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기회를 봐서 밀어넣다가 보면 어느새 제자리는 윗목이 되어 버리고 형의 자리는 아랫목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TV를 볼 때는 정신이 없어서 내가 밖에 나와 있는지 안에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다 끝나고 나면 몹씨 춥습니다. 그래서 내 자리를 살펴보면 자리가 뒤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엉엉 울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거짓선생들이 특징이 무엇입니까 가만히 들어옵니다. 내가 '거짓선생이요'하며 떠들면서 우리에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들어와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만히 들어와서 하는 일은 그들의 '지어낸 말'을 합니다.
여기서 '지어낸 말'이란 원어로 '플라스토스'라는 말인데 이 말에서 영어의 '플라스틱'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가만히 들어와서 훌륭한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구원'에 대해서도 말하고 '예수'에 대해서도 말하고 '영생'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모두 자신이 지어낸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단이 하와를 속일 때도 이런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사단은 슬그머니 찾아와서 하와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정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하와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조장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즉 '네가 그것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란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어낸 말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여호와 하나님같이 되리라"였습니다.

 두번째는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1절 下)
즉 그들의 특징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부인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셨는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부인하고, 심지어 영원한 심판의 실재까지도 부인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로 부터 시작해서 예수그리스도로 끝을 맺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가 기독교의 전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외에 다른 것으로 대치되는 것은 거짓입니다. 거짓교리이며, 거짓선생들입니다.
우리나라가 70년대 80년대 군부독재시절을 거쳐오면서 '민중신학'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민중신학'이라는 말을 여러분들 가운데 들어보신분도 있을 것이고 생전처음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카톨릭까지 포함해서 말한다면 20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신학을 거의 모방해왔습니다. 우리의 신학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가 부흥한 국가,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는 한국에 다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학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학자들은 굉장히 부끄러워했었습니다.
그러다가 7-80년대 군부독재에 항거하면서 생겨나게 된 것이 이른바 '민중신학'입니다. 민중신학이 생기고 부터 학자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남의 신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신학이 정립되었다고 흥분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민중신학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부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이 있다는 것도 부인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실재성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가 전부가 아니라 '민중'이 전부입니다. 장래 우리가 들어가게될 영원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부인하고 이땅에서 민중이 주인이 주인이 되는 세계의 건설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모든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니라 억압받고 있는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인 부활로 그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민중들의 의식을 부활시킨 것에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사상에 심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민중을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라고 역설하면서 '죄'를 말하고, '천국'을 말하고, '예수의 죽음'을 말하면 너무나 어리석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는 많은 사람들도 온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기 보다는 '인류애'를 말하고 '봉사'를 말하고 '인간다운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과,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사실과,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면 그들은 거짓선생들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풍부하고, 아무리 세상적인 식견이 뛰어나고, 아무리 논리가 정연해도 그들은 거짓선생들입니다.
한때 감리교 학자 가운데 종교다원주의를 들고 나온적이 있었습니다. 즉 기독교외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서 불교에도 구원이 있고 유교에도 구원이 있고 힌두교에도 구원이 있고 그외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는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을 내포하고 있고 또 그것을 통해 구원을 이룰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현대인들이 들으면 아주 그럴싸한 말입니다. 기독교가 자기들만의 구원을 주장하는데 반해, 얼마나 합리적이고 올바르고 이성적인 생각입니까 현대인들은 기독교가 자기들만의 구원을 말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주장들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는자들은 기독교학자라는 가면을 쓴 거짓선생들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주장이 지극히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그리고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를 편협하다고 생각을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올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번째는 호색하는 것입니다. (2절)
유다서를 보면 그 거짓선생들을 가리켜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는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거짓선생들의 또 다른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욕을 만족시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디도서에서도 이런자들을 가리켜서 "저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닌 가증한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6절)고 했습니다.
며칠전 신문을 보니까 통일교가 브라질에서 대규모집회를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세계 여러국가에서 종교인들과 유명한 인사들을 초청하고 항공료로 부터 시작을 해서 숙박과 관광에 드는 비용을 모두 통일교에서 부담을 하고 그 집회에 초청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 집회의 하일라이트는 교주 문선명이가 연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지금까지 자신이 주장해왔던 것을 되풀이 했습니다. 즉 "예수는 죽었기 때문에 완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했기에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 완전히 구원을 받으려면 재림주인 문선명자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자신과 몸을 섞는 피가름을 통해서 이루어질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들으면 정말 황당무개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짓선생을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거짓선생들은 교리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신 주를 부인합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호색하는자들입니다.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거짓선지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14절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들을 가리켜서 "임박할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한 종이라고 주장할지는 몰라도 그들은 마지막날에 우리 주님으로 부터 거절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심판대 앞에서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좇아내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하셨듯이 그들은 마지막날에 거절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탐심을 소유한자들입니다(3절)
즉 종교를 이용해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보면 주님은 언제나 가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구약 미가서를 보면 이때 당시의 거짓선지자들에 대해 묘사하기를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을 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미3:11)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거짓 선지자들의 관심은 오직 '돈'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편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이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앞에 목회자들이 먼저 머리를 숙여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 우리 노회에서 그리고 시찰회에서 공문서가 많이 날라옵니다. 그런데 날라오는 공문서마다 거의 대부분이 '부부동반 야유회' '부부동반 친목회' 이런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올봄에 벌써 이런 공문을 제가 4통이나 받았습니다. 물론 저는 그때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을 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것이 모두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목회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줄기차게 목회사역만 감당하다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일찍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젊은 목회자들이 실제로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이러한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 나쁜 것은 모이면 놀러갈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할 것인가 이런 것을 논하지 않고 그저 하루 휴식을 취하고,그저 하루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만족해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대의 거짓선생들은 어떤자들입니까 백성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하는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축복을 부르짓고, 성도들의 삶에 소망과 희망을 말하면서 '천국'이 선포되지 않고 '지옥' 선포되지 않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죄지은 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전파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뿐만아니라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 주시면서 십자가의 '피' 공로로 우리를 사신 주님대신에 민중신학을 말하고 그리스도인의 세상적인 윤리와 도덕을 중요시한다면 그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호색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심판받을 만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와서 여러분의 귀에 달콤하고, 듣기에 좋고, 소망적인 말만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회개하라'고 말하면 부담스러워 하고 '심판과 지옥'을 말하면 듣기 싫어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말씀으로 자라지 아니하면 진짜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마술을 보면서 그것이 진짜인양 속고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 교훈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거짓선생의 모든 교훈으로 부터 여러분을 분리시켜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뜻 가운데 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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