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사가 가져야할 자아상
본문
김남준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교사 리바이벌이라는 책이 있지요 교회 교사 선생님들은 일류 교사들이시니까 다 읽어보셨을 줄로 압니다. 그 책 서론에 보면, 오늘날 교회교육의 현장을 둘러싼 우리의 논의는 너무 환경 중심적인데, 이런 환경 중심적 논의를 속히 그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하기를, 교회학교의 성공은 교사들의 영적 건강함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기에, 무엇보다 먼저 교사들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서, 교사들을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한 사람이 교회 부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듯이, 잘 세워진 교사 한 사람이 교회학교를 크게 좌우합니다. 영적으로 잘 세워진 교사 한 사람이 한 어린 영혼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학교 교사들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근심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는 산모의 젖을 먹으면 갓난아기는 설사를 한답니다.
주전자 속에 흙을 집어넣고 물을 부으면 흙탕물밖에 안 나오듯이, 건강치 못한 자아상을 가진 교사로부터 좋은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을 듣고 보는 학생이 설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고귀한 사명을 가진 교사는 누구보다도 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자아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견을 의미합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하는가 아니면 무가치한 존재로 평가하는가 자신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가 아니면 능력이 없는 자로 보는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견이 바로 자아상입니다.
내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인생이 좌우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화실 근처의 길거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화가가 그의 창문을 통해 패배감에 젖어 절망의 계곡에 떨어진 그 거지의 얼굴을 모델로 하여 중요한 변화를 주면서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 변화란, 초점이 없이 허공 중에 박힌 그 거지의 눈을 생기 있고 활기에 넘치는 의욕에 찬 사람의 번쩍이는 눈으로 바꾸어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화가는 또한 맥이 풀린 그 거지의 힘없는 얼굴을 강철같은 굳은 의지의 결단성이 강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 화가는 거지를 불러 자기가 그린 그 그림을 보게 하였습니다. 거지는 그 그림 속의 모델이 바로 자신이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게 누구입니까" 그 거지가 물었을 때 화가는 조용히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여 그를 가리켰습니다. 그 거지는 다시 초상화를 보면서도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저 그림의 사람이 바로 저란 말인가요 저 그림의 사람이 도대체 저일 수가 있을까요" 거지는 머뭇거리면서 힘없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가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내가 당신을 보고 그린 그림이 저것입니다. " 그 말을 들은 거지는 그 순간 그의 어깨를 똑바로 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본 내가 바로 저 그림 속의 사람이라면, 나는 앞으로 저 그림의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냐 거지로 생각하면 거지같이 살고, 10명의 정탐꾼 같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부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아상이 올바르면 나의 인생은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또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가르치는, 만나는 사람들 앞에도 얼마나 긍정적이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올바른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1. 잘못된 자아상
여기 잘못된 자아상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자기 스스로 평가한 대로 보는 자아상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겪는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믿는 깊은 자기 확신, 이건 잘못된 자아상입니다. 어느 학자가 벼룩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지요. 한 용기에다가 벼룩을 집어넣고는 마음껏 뛰놀게 하다가 어느 순간 10cm 높이에 유리벽을 설치합니다. 벼룩은 평상시에는 30-40cm를 뜁니다. 아주 잘 뛰는 놈은 1m도 뛴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리벽을 설치하면 처음엔 평상시와 같이 힘껏 뜁니다. 그러면 유리벽에 탁 부딪힙니다. 그 실험을 계속 하게 되면 이 벼룩이 이런 경험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아, 이거 이상 뛰어봤자 진짜 벼룩이네. 이 이상은 나는 뛸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이제는 유리벽을 치워도 벼룩은 10cm 높이 정도 이상으로는 뛰지 않습니다. 실패의 마인드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진정 더 잘할 수 있는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고 어려움을 겪고 낙심하게 되면 그 다음은 진짜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반복된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그대로 믿는 거지요. 이런 자아상을 가진 사람에게 위대한 미래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②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기준과 판단에 묶여버린 자아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나에 대한 평가, 거기에 묶여 '그래, 나는 그런 놈이야.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돼!', 이래 생각하고 산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자아상입니다.
어떤 학생 하나가 '너는 어째 그리 공부를 못 하냐' 그 소리만 늘 듣고 자랐어요. 거기다가 부모님에게 맨날 책망할 때마다 '아이구, 빌어먹을 놈!' 그 소리 듣고 자랐어요. 그러니 그 학생의 마음 속엔 항상 소리가 들려와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나는 공부 못해!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야. ' 공부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학생이 예수님을 만났어요. 은혜를 크게 받았어요. 자아상이 달라졌어요. 이젠 공부하고 싶어 야단났습니다.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충만했어요. 졸업 땐 전교 10등으로 졸업했어요. 그 학생이 접니다. 여러분, 나의 자아상이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기준과 판단에 묶여 있는 한 더 나은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교사, 성도가 가져야 할 자아상은 무엇입니까
C. S 루이스는 말하기를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고 계시느냐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댄 스니드가 쓴 책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참 좋은 나라는 책이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정말 귀한 책입니다. 스니드는 그 책에서 "건강한 자아개념을 형성하는 첫 단계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에 대해 진정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창조주 되시고, 나의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가, 66권 성경 곳곳에서 구원받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내가 나를 평가하는 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 그걸 나의 자아상을 삼아야 합니다. 왜요 여호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완전하게 평가할 사람 있어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내가 아니다 그러면 어리석지요 더 이상 나 자신의 평가를 생각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를 나의 자아상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는 첫째,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즘은 가면 갈수록 여자분들은 얼마나 기가 사는지, 옛날에는 뭐 간 큰 남자 시리즈 이야기를 했는데요, 요즘은 이런 답니다. 여자들이 외출하면서 냉장고 문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나가는데, 뭐라고 써놓는 줄 아세요 "까불지마라. " 이래 써놓는답니다. 무슨 뜻인 줄 아세요 까-가스조심 / 불-불조심 / 지-지프조심(자꾸 조심) / 마-마누라 찾지 마라 / 라-라면 끓여먹고 기다려!
여러분, 기죽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구주로 믿는 그 순간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제가 거제도에 10년 있었는데, 대통령 아들을 몇 번 봤어요. 그는 대통령의 아들일 뿐이지, 대통령이 아니에요. 그런데 대통령의 아들 온다 그러니까 난리 나더라고요. 당당하게 걸어다닙디다.
예수 믿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입니까 좀 당당하게 삽시다. 특히 남자들이 좀 당당해집시다. 교사 여러분, 교사의 일이라는 게, 그래요. 요즘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나 좀 어렵다고 기죽어 살지 맙시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런 자세, 그런 태도로 사는 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②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거울을 몇 번 보십니까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하십니까 황수관 박사님 강의를 들어보면, 웃음이 안 나오면 거울 쳐다보랍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보면, 세상에 안 웃을 수가 없대요.
여러분, 거울을 보면 내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살아온 나의 내적 이미지도 떠오릅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말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면서, 너는 어찌 그리 못 생겼냐 참 이상하게도 생겼다. 어이구, 너라는 인간은 참 구제불능이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평소에 자기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자기 자아상입니다.
그러나 거울을 볼 때마다 세상에 그 거울 속에 그렇게 멋있는 남자가 들어있을 수 있어요 그래 거울 쳐다볼 때마다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특별하게 보는 사람,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그만큼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그러거든요. 거울을 볼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듣는 앞에서, '야 거울 속에 장동건 같고 배용준 같은 멋있는 남자 들어있네. 이래 멋있을 수 있어!' 그러면 뒤에서 다 넘어집니다. 넘어지든지 말든지, 저는 저 자신을 볼 때마다 그래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하여 자신의 존재나 인생에 만족하고 있지 못한다 그러지요 이런 불만족은 자신을 비관하는 병적인 열등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의 말을 귀담아 들으세요.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광활한 태양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경탄하면서 정작 가장 경탄해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경탄하지 않는다. "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지어진 오묘한 존재이며 걸작 중의 걸작품임을 인정하십시오. 당당한 자신감으로 걸작품답게 살아가는 것이 교사가 가져야 할 자세인 줄 믿습니다.
③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시8편 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셨는데, 여러분, 내가 천지 우주만물을 지으신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놀랍지 않습니까 나는 저주의 대상이 아니요, 영원히 형벌 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나는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요, 애정의 대상자요, 관심의 대상자입니다.
여러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보면 어떻습디까 저는 제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아보니까, 밥 안 먹어도 배부르더라고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저주의 대상, 미워하시는 대상으로 보시지 않고 사랑의 대상자로 삼아주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④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1장 11절에 보면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고 하십니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가 하고 싶어 교사합니까 달란트와 은사가 있어서 합니까 오늘 저는 목사가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달란트와 은사가 있어서 목사 된 것 아닙니다. 오늘도 제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목회 하려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부르셨기에, 오늘 이 시대, 저 교회로 나를 부르셨기에, 그래서 그분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기에 최선을 다해 목회 하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 나를 부르셨다. 이것이 내가 일해야 될 이유, 충성해야 될 이유로 알고, 나를 교사로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교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⑤나는 성령 안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한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겠다는 말씀은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3대 사역, 즉 예수님이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셨듯이 성령 안에서 나도 그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겠다는 것은 질적, 본질적 이야기가 아니라 선교적 개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이 땅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마침내 실행될 대대적인 세계 복음화의 위대한 비전을 바라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예수님보다도 더 멀리, 더 넓은 지역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오늘 본문 전후 문맥을 살필 때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나도 할 수 있고, 내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 우리 교사들이 가져야 할 자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단한 사람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지금보다 10배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 나도 한 영혼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교사가 가르칠 때 얼마나 힘있고,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가르침이 되겠습니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가르치게 될 때 학생들에게 긍정적 마음을 심어주고, 꿈을 심어주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고, 가능성을 심어주는, 정말 탁월한 교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교사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교사 여러분과 성도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주안에서 더 복되고 은혜로운 열매 많이 남기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맞는 말입니다. 목회자가 한 사람이 교회 부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듯이, 잘 세워진 교사 한 사람이 교회학교를 크게 좌우합니다. 영적으로 잘 세워진 교사 한 사람이 한 어린 영혼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학교 교사들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근심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는 산모의 젖을 먹으면 갓난아기는 설사를 한답니다.
주전자 속에 흙을 집어넣고 물을 부으면 흙탕물밖에 안 나오듯이, 건강치 못한 자아상을 가진 교사로부터 좋은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을 듣고 보는 학생이 설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고귀한 사명을 가진 교사는 누구보다도 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자아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견을 의미합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하는가 아니면 무가치한 존재로 평가하는가 자신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가 아니면 능력이 없는 자로 보는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견이 바로 자아상입니다.
내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인생이 좌우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화실 근처의 길거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화가가 그의 창문을 통해 패배감에 젖어 절망의 계곡에 떨어진 그 거지의 얼굴을 모델로 하여 중요한 변화를 주면서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 변화란, 초점이 없이 허공 중에 박힌 그 거지의 눈을 생기 있고 활기에 넘치는 의욕에 찬 사람의 번쩍이는 눈으로 바꾸어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화가는 또한 맥이 풀린 그 거지의 힘없는 얼굴을 강철같은 굳은 의지의 결단성이 강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 화가는 거지를 불러 자기가 그린 그 그림을 보게 하였습니다. 거지는 그 그림 속의 모델이 바로 자신이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게 누구입니까" 그 거지가 물었을 때 화가는 조용히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여 그를 가리켰습니다. 그 거지는 다시 초상화를 보면서도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저 그림의 사람이 바로 저란 말인가요 저 그림의 사람이 도대체 저일 수가 있을까요" 거지는 머뭇거리면서 힘없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가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내가 당신을 보고 그린 그림이 저것입니다. " 그 말을 들은 거지는 그 순간 그의 어깨를 똑바로 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본 내가 바로 저 그림 속의 사람이라면, 나는 앞으로 저 그림의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냐 거지로 생각하면 거지같이 살고, 10명의 정탐꾼 같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부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아상이 올바르면 나의 인생은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또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가르치는, 만나는 사람들 앞에도 얼마나 긍정적이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올바른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1. 잘못된 자아상
여기 잘못된 자아상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자기 스스로 평가한 대로 보는 자아상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겪는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믿는 깊은 자기 확신, 이건 잘못된 자아상입니다. 어느 학자가 벼룩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지요. 한 용기에다가 벼룩을 집어넣고는 마음껏 뛰놀게 하다가 어느 순간 10cm 높이에 유리벽을 설치합니다. 벼룩은 평상시에는 30-40cm를 뜁니다. 아주 잘 뛰는 놈은 1m도 뛴다고 합니다. 이렇게 유리벽을 설치하면 처음엔 평상시와 같이 힘껏 뜁니다. 그러면 유리벽에 탁 부딪힙니다. 그 실험을 계속 하게 되면 이 벼룩이 이런 경험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아, 이거 이상 뛰어봤자 진짜 벼룩이네. 이 이상은 나는 뛸 수가 없구나!' 그래서 이제는 유리벽을 치워도 벼룩은 10cm 높이 정도 이상으로는 뛰지 않습니다. 실패의 마인드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진정 더 잘할 수 있는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고 어려움을 겪고 낙심하게 되면 그 다음은 진짜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반복된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그대로 믿는 거지요. 이런 자아상을 가진 사람에게 위대한 미래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②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기준과 판단에 묶여버린 자아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나에 대한 평가, 거기에 묶여 '그래, 나는 그런 놈이야.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돼!', 이래 생각하고 산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자아상입니다.
어떤 학생 하나가 '너는 어째 그리 공부를 못 하냐' 그 소리만 늘 듣고 자랐어요. 거기다가 부모님에게 맨날 책망할 때마다 '아이구, 빌어먹을 놈!' 그 소리 듣고 자랐어요. 그러니 그 학생의 마음 속엔 항상 소리가 들려와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나는 공부 못해!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야. ' 공부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학생이 예수님을 만났어요. 은혜를 크게 받았어요. 자아상이 달라졌어요. 이젠 공부하고 싶어 야단났습니다.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충만했어요. 졸업 땐 전교 10등으로 졸업했어요. 그 학생이 접니다. 여러분, 나의 자아상이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기준과 판단에 묶여 있는 한 더 나은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교사, 성도가 가져야 할 자아상은 무엇입니까
C. S 루이스는 말하기를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고 계시느냐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댄 스니드가 쓴 책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참 좋은 나라는 책이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정말 귀한 책입니다. 스니드는 그 책에서 "건강한 자아개념을 형성하는 첫 단계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에 대해 진정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창조주 되시고, 나의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가, 66권 성경 곳곳에서 구원받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내가 나를 평가하는 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 그걸 나의 자아상을 삼아야 합니다. 왜요 여호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완전하게 평가할 사람 있어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내가 아니다 그러면 어리석지요 더 이상 나 자신의 평가를 생각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를 나의 자아상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는 첫째,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즘은 가면 갈수록 여자분들은 얼마나 기가 사는지, 옛날에는 뭐 간 큰 남자 시리즈 이야기를 했는데요, 요즘은 이런 답니다. 여자들이 외출하면서 냉장고 문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나가는데, 뭐라고 써놓는 줄 아세요 "까불지마라. " 이래 써놓는답니다. 무슨 뜻인 줄 아세요 까-가스조심 / 불-불조심 / 지-지프조심(자꾸 조심) / 마-마누라 찾지 마라 / 라-라면 끓여먹고 기다려!
여러분, 기죽지 맙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구주로 믿는 그 순간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제가 거제도에 10년 있었는데, 대통령 아들을 몇 번 봤어요. 그는 대통령의 아들일 뿐이지, 대통령이 아니에요. 그런데 대통령의 아들 온다 그러니까 난리 나더라고요. 당당하게 걸어다닙디다.
예수 믿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입니까 좀 당당하게 삽시다. 특히 남자들이 좀 당당해집시다. 교사 여러분, 교사의 일이라는 게, 그래요. 요즘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나 좀 어렵다고 기죽어 살지 맙시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런 자세, 그런 태도로 사는 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②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거울을 몇 번 보십니까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하십니까 황수관 박사님 강의를 들어보면, 웃음이 안 나오면 거울 쳐다보랍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보면, 세상에 안 웃을 수가 없대요.
여러분, 거울을 보면 내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살아온 나의 내적 이미지도 떠오릅니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말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면서, 너는 어찌 그리 못 생겼냐 참 이상하게도 생겼다. 어이구, 너라는 인간은 참 구제불능이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평소에 자기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자기 자아상입니다.
그러나 거울을 볼 때마다 세상에 그 거울 속에 그렇게 멋있는 남자가 들어있을 수 있어요 그래 거울 쳐다볼 때마다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특별하게 보는 사람,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그만큼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그러거든요. 거울을 볼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듣는 앞에서, '야 거울 속에 장동건 같고 배용준 같은 멋있는 남자 들어있네. 이래 멋있을 수 있어!' 그러면 뒤에서 다 넘어집니다. 넘어지든지 말든지, 저는 저 자신을 볼 때마다 그래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하여 자신의 존재나 인생에 만족하고 있지 못한다 그러지요 이런 불만족은 자신을 비관하는 병적인 열등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 어거스틴의 말을 귀담아 들으세요.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광활한 태양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경탄하면서 정작 가장 경탄해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경탄하지 않는다. "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지어진 오묘한 존재이며 걸작 중의 걸작품임을 인정하십시오. 당당한 자신감으로 걸작품답게 살아가는 것이 교사가 가져야 할 자세인 줄 믿습니다.
③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시8편 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셨는데, 여러분, 내가 천지 우주만물을 지으신 그 크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놀랍지 않습니까 나는 저주의 대상이 아니요, 영원히 형벌 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나는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요, 애정의 대상자요, 관심의 대상자입니다.
여러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보면 어떻습디까 저는 제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아보니까, 밥 안 먹어도 배부르더라고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저주의 대상, 미워하시는 대상으로 보시지 않고 사랑의 대상자로 삼아주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④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1장 11절에 보면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고 하십니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가 하고 싶어 교사합니까 달란트와 은사가 있어서 합니까 오늘 저는 목사가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달란트와 은사가 있어서 목사 된 것 아닙니다. 오늘도 제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목회 하려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부르셨기에, 오늘 이 시대, 저 교회로 나를 부르셨기에, 그래서 그분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기에 최선을 다해 목회 하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 나를 부르셨다. 이것이 내가 일해야 될 이유, 충성해야 될 이유로 알고, 나를 교사로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교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⑤나는 성령 안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한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겠다는 말씀은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3대 사역, 즉 예수님이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셨듯이 성령 안에서 나도 그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겠다는 것은 질적, 본질적 이야기가 아니라 선교적 개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이 땅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마침내 실행될 대대적인 세계 복음화의 위대한 비전을 바라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예수님보다도 더 멀리, 더 넓은 지역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오늘 본문 전후 문맥을 살필 때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나도 할 수 있고, 내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 우리 교사들이 가져야 할 자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단한 사람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지금보다 10배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 나도 한 영혼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교사가 가르칠 때 얼마나 힘있고,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가르침이 되겠습니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가르치게 될 때 학생들에게 긍정적 마음을 심어주고, 꿈을 심어주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고, 가능성을 심어주는, 정말 탁월한 교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교사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교사 여러분과 성도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주안에서 더 복되고 은혜로운 열매 많이 남기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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