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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바른 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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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 만큼 자녀 교육문제에 열심인 국민은 아마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줄로 압니다.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 부모의 극성스러움도 있지만 불안 심리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과외 하는데 우리 자녀만 안 하면 그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든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외국으로 이민 가는 우리 이웃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교육이민'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외국에 가면 자녀 교육을 잘 시킬 수 있을 것을까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목사님이 캐나다를 다녀와서 신문에 글을 쓰신 것을 읽어보았는데, 작년 한해 동안캐나다에 이민 온 한국인이 만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연령층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자녀 교육 때문에 한국의 좋은 직장 다 버리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곳 한인 교포 사회에서 또 다시 과외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 과외 하니 또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덩달아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의 표현이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서 안 새랴'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육제도가 문제입니까 교육제도가 문제이면 외국에 나가서 과외를 안 해야지요. 교육제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육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 가르치느냐 하는 사람에 있습니다. 교사의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라 교사의 인격이 더욱 중요합니다.
요즈음의 세태를 풍자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는 많으나 목자는 적다, 교사는 많으나 스승은 적다'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진정한 교육을 하는 곳이 있고, 진정한 교역자가 있고, 진정한 스승들이 있습니다.
거창에 가면 거창 고등학교가 있어요. 거창은 우리나라에 아주 오지입니다. 그런데 유명 인사들이 그곳에 자녀들을 많이 보내는 학교입니다. 그 곳은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교육을 하는 학교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졸업하는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에 그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있어요.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로 가지 말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하지 말고 가라.
열 번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이 말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소신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소신 있게 일하고 어디를 가든지 소신 있게 일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배운 학생들이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 학교가 이렇게 인격 교육으로 명문 고등학교가 된 것은 이 학교의 설립자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 설립자는 전 영창 선생님인데 이분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중에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6·25 동란이 터졌습니다.
'나의 조국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고 졸업식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힘있는 분들은 자녀들을 외국으로 내어 보낼 때인데 이분은 스스로 찾아 왔어요. 그래서 부산 영도에 천막을 쳐놓고 장기려 박사와 같이 보건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여생은 저 산골 오지 거창에 가서 문닫기 일보직전에 있던 거창 고등학교를 인수하여 다시 재건했습니다.
서울에서 인류 선생님을 모셔 왔어요. 제대로 월급도 주지도 못하는데 그런 선생들을 모셔와서 희생과 헌신과 사랑과 눈물과 땀으로 훌륭한 엘리트들을 양성해냈습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을 길러 냈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을 학교에서 길러 냈습니다.
교육의 성공은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사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육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을 볼 때에 지난주 광주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집단으로 자기 학교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중학생들이 선생님을 매도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하나의 글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곳은 아무 중학교 1학년 사회 선생님 안티 사이트입니다. 사회 선생님의 추태와 망상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쳐 타도와 추방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우리도 어릴 때는 낙서를 했지만 지금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이런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티 스쿨 사이트를 만들어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올리고 어떤 사이트에는 교사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교사를 죽이고 싶다. 교사들이여 없어져라. '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읽은 어떤 교사는 교사된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잘못된 교육의 책임은 먼저 부모에게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 제임스 콜론이라고 하는 사람이 '가장 강력한 교육기관은 정부의 손에 있지 아니하며 교육의 성패는 학교보다도 가정에 의해서 좌우된다' 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학교에서 자녀들이 체벌을 당하면 교장실에 항의 전화를 빗발같이 한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여러분의 자녀들이 바른 교육을 받겠습니까 이런 자녀가 학교에 와서 어떻게 선생님 말을 듣겠습니까
물론 잘못된 선생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가정에서 바로 되지 않은 아이 절대로 학교에서 바르게 교육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은 인정하셔야 합니다. 자녀 사랑하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도 보면 부모님들이 자녀교육 문제, 특히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한 가정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교역자들에게 교회 교적부에 올라 있는 연령대로 자녀 출석 숫자를 파악해 보라고 했습니다. 5세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자녀가 약 860명입니다. 영아부, 유치부 빼고 입니다. 이 860명중에 다른 교회에 나가는 자녀가 있다고 해도 지금 우리 교회에 나오는 숫자는 절반 밖에 안 됩니다. 그럼 나머지 여러분의 자녀들은 다 어디에 가 있습니까 이것이 자녀들 앞에 서 있는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오늘이 스승의 주일이라고 해서 꼭 교사만 스승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일생의 최고의 스승은 부모입니다. 잘못된 자녀교육의 책임을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에게도 물으십니다. 그 물음에 부모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자녀의 잘못은 100% 부모에게 있습니다.
두 번째 책임은 교사에게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에게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은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 대로 배우고 행동하는 대로 본받습니다. 그래서 교사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한번은 지방 순회를 하는데,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가 찾아와서 '간디 선샌님, 우리 아들이 사탕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사탕 좀 먹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 '
그 말에 간디가, '그러면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 오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다시 일주일 후에 갔어요. 간디는 아이에게 "얘야, 사탕을 먹지 말아라"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상해서, '선생님, 왜 일주일 전에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이제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간디가 '그때는 나도 사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교사입니다. 스승입니다.
오늘 저는 스승의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교회에서 주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님들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와 시간과 때로는 재정까지 털어 가면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에 주일 학교가 지금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근속하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진정한 교사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교회학교의 바른 교사상은 먼저 복음의 소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바울은 자신을 복음을 위해서 교사로 세움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는 소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복음으로 나를 사용하시고 부르시는 확실한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소명이 없이 교회가 임명했기 때문에, 옆에서 권면해서 교사가 되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열매가 많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확신이 있으면 내가 하는 이 직분이 얼마나 보람있고, 기쁘고, 즐겁고,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강의하다가 학생들에게 물었대요. '왜 신학교에 왔습니까' 어떤 학생은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받아보니까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야 되겠다'고 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이것저것 다 해도 되는 것이 없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고 생각해서 신학교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 목사님이, '그러면 보따리 싸서 가라'고 했답니다. 소명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복음으로 부르셨을 때에 가슴이 뜨겁고,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로 기쁩니다. 정말로 보람을 느낍니다. 이 일을 하는데 생명이 아깝지 않습니다.
여러분 목사가 여기서 설교 하니까 화려해 보이지만, 생명을 기르는 일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자녀 길러 보세요. 얼마나 속상한 때가 많습니까 목회자도 교인들 돌보다 보면 속상할 때 너무 많습니다. 억울한 소리도 들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고목 나무 이야기 들으셨지요. 어떤 목사님이 지나가다가 고목 나무을 보았는데 속이 텅 비어 있었어요. 그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고목 나무야, 너도 목회 했느냐'고 하셨답니다.
소명이 있는 교사에게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참 축복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지도를 받고 또 교회에 와서 이러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다면 큰복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어린 학생이 선생님에게 E-Mail을 보낸 것을 보았습니다. 집사님 가정의 아이인데 집이 태릉입니다. 거리가 먼데도 우리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소원이 교회 옆으로 이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교회 옆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집을 계약했습니다. 편지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학교 오고 갈 때마다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어서 좋고, 새벽 기도도 나올 수 있어서 좋고, 전도해서 친구들 데리고 올 수 있어서 좋다'
여러분 이런 자녀가 잘못 되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소명을 가지고 가르칠 때에 이런 믿음의 자녀들이 많이 자란다는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지난번에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는데 그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 지금 중학교 3학년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답니다. 지금도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절대로 탈선하지 않습니다.
이런 교육은 소명을 가진 교사라야만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명을 가진 선생님은 가슴이 뜨거워요. 그런 선생님은 학생들이 알아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교사에게 공부한 학생들은 그 뜨거운 가슴과 사랑을 전달받기 때문에 다음 주일이 기다려져요.
 둘째는 고난을 인내하는 교사입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고난이 먼저 옵니다. 바울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 일이 보람된 일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하고 바르게 가르치려면 반드시 희생과 헌신과 아픔이 따라야 됩니다. 자녀를 기를 때에 아픔이 따르고, 곡식이 바르게 자라려면 그 속에 거름이 들어가야 되듯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바르게 양육하려면 고난이 따릅니다.
교사가 갖추어져야 할 4가지 영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13, 14절을 읽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
교사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끝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꾸준하게 헌신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변화를 위해 사랑으로 가르칩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코카콜라 회사가 처음 특허를 냈을 때에 그 창업자가 조그만 약방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이 사업을 자꾸 변경하였습니다. 콜라가 많이 팔려 돈더미에 올라 큰 부자가 되었는데, 이 분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없애고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아들의 삼촌 캔들러 목사가 어린 조카를 위해서 기도하고 늘 살펴주었습니다. 한번도 책망하지 않고, 안아 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조카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어요. 삼촌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이 된 조카, '아서 주니어'는 어느 날 술병을 들고 자기 부인 앞에 나타났습니다.
'여보, 나 이제부터 술병의 마개를 따지 않겠소. 내가 이 순간부터 술을 끊겠소,'라고 다짐했습니다. 부인이 너무너무 좋아서 그 술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술병을 리본으로 묶어서 가보로 삼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술병은 코카콜라 회장 캔 들러 집안의 중요한 가보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의 역사입니다. 우리 교사님들, 가르치는 학생들 많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립 초등학교를 잘 운영하고 계시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사들을 모집할 때에 '이 교사가 아동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를 제일 먼저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면접할 때마다 그것을 알아보려고 여러 가지로 물어보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집에 강아지 키웁니까 동물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입니다.
여러분, 강아지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셋째는 정직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를 신뢰하지 않으면 옳은 교육이 될 수 없습니다. 신뢰를 받으려면 정직해야 합니다.
넷째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셔야 곡식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실력 있고, 재능이 있어도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늘 두고 있는 한가지 예화 사건이 있습니다.
감리교의 마경희 목사님으로 지금은 소천하셨습니다. 이 분이 일제 시절에 독방에서 감방 생활을 할 때에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았는데 아주 점잖게 생긴 노인의 얼굴이 지나갔어요. 그리고 다음에 또 귀공자 아들의 얼굴이 지나갔어요. 그 다음은 비둘기 한 마리가 삼각형 추를 내려놓고 갔답니다. 그 추를 자세히 보았더니 충성, 정직, 진실, 사랑이 써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어서 아주 흉악하게 생긴 깡패가 앞으로 지나갔는데 그 깡패가 아주 유순한 사람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깨니까 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내가 목회 하면서 한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믿음으로, 충성하고, 사랑으로 헌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가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저의 소신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변화시키는 원리와 법칙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의 마음에 신뢰와 사랑과 감동을 불어 넣어주는 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일을 하라고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마음은 백지 같아서 그리는 대로 그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사의 사명을 잘 완수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스승의 주일에 역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페스탈로치의 묘비 내용을 읽겠습니다. 평생을 어린이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서 살았던 페스탈로치 선생의 묘비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1846년 1월 12일에 세워졌습니다.
"1746년 1월 12일 취리히에서 태어나 1827년 2월 17일 브르크에서 숨진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여기에 잠자다. 노이호프에서는 가난한 자의 구호자였고,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에서는 국민에게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며, 슈탄스에서는 고아의 아버지, 부르크도르프와 뮌헨부흐제에서는 초등학교의 창시자, 이페르텐에서는 인류의 교육자였으며, 참된 인간이요, 기독교 신자, 그리고 시민이었으며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 '"
여러분이 죽은 후에 여러분의 묘비명에는 무엇이 새겨지기를 바라십니까
바라기는 우리 모두 훌륭한 스승으로 기억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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