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사의 열정이 주일학교를 살린다
본문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주일학교를 위해서 수고하시는 교사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쏟아지는 아침잠과 싸워야 하고 몰려오는 피곤함을 뒤로 한 채 교사라고 하는 직분 때문에 주일도 쉼이 없고 아침 일찍 교회로 달려 와야 하니까요
그러나 결코 여러분의 수고가 허되지 않음인 줄 믿습니다.
고전 15: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이 시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선생님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축복하기를 위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이 한 마디가 교사여러분들에게 큰 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국교회의 주일학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사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도대체 급격히 변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각 교회 주일학교 리더자들은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하고 그 이유를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너무 구식이어서 신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해요.
담임목사님의 목회가 어른들 치중이라서 ....
뭔가 아이들을 위해 해볼려고 해도 돈이 없어요.
매주일 비싼 간식사주고 해야 하는데 교회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지 않아서 주일학교 이렇게 되고 있다고.
돈 많이 들인다고 해서 아이들이 많이 몰려올까요.
우리 교회는 인재가 없어요.
젊은 선생님들이 너무 게을러 터져서...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우리 교회는 시설문제를 가지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모든 영상시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고 지금 주일학교는 영상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뽕 가게 하는 프로그램이 어디 있어야죠.
이렇게 수도 없이 주일학교가 부흥되지 않은 많은 원인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정말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영적으로 죽어 가는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정말 이런 것 때문인가
제가 내린 결론은 "NO, 아니오"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교사가 아이들에게 상처받고 교사의 직분을 내팽개쳐버리는 등 주일학교의 근본적인 붕괴를 가져온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봅니다.
참신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재정지원이 적어서도 아닙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서 오늘 우리 모두가 자녀 교육과, 우리의 후세대에 대한 신앙교육과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해서 함께 고민하며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교사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일학교 교사들이여! 비전이 있는 교사입니까
가르쳐도 변화하지 않고 따라오지 않는 주일학교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시는 교사들이여!
먼저 우리의 가슴에 꿈을 품으십시다.
내 속에 꿈이 없으면 나 자신도 살수 없을뿐더러 내게 배우는 아이들 역시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어떻게 살릴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교사 자신이 살아나지 않으면 아이들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꿈을 품어 봅시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꿈을 품어 봅시다.
그 꿈이 우리가 맡은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열매를 맺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풍성해지는 비전을 품어 봅시다.
그리고 그 비전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봅시다.
꿈은 나눌 때 더욱 커 집니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세워집니다.
나누지 않으면 공상에 그치고 말뿐이지만 함께 품고 기도하면 현실이 되는 것이 꿈의 속성입니다.
오늘 우리 교사들 속에 무슨 꿈을 품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우리 교사들의 가슴속에 품은 꿈이 바로 우리 교사들과 아이들을 살리는 씨앗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신앙의 가정들의 자녀 교육을 들어다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온전치 못하다면, 자식들에게라도 올바른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 할 터인데, 교회 직분자들부터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은 뒷전이고, 오로지 일류대학 진학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신앙생활은 일류대학에 합격한 후에나 하라고 호통을 칩니다.
어떤 지도자는 이를 더 부추기기까지 합니다.
주일학교 사역자들에게 적당히 하라고 훈계하면서, 교회가 입시 학원이라도 되는 양 고3때 주일학교 몇 번 나와서도 서울 대학 들어갔다면 우리교회에서 서울 대학 몇 명 들어갔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디모데처럼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쳐서 지혜를 얻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꿈을 꾸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피 묻은 복음을 통한 순수한 비전이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속에서도 피 묻은 복음을 통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매주일 격식에 따라 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에는 갖가지 사심과 욕심이 얼룩져 있습니다.
매주일 강단에서 메시지는 선포되고 있지만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며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설교자가 더 인기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결한 신앙을 지키라고 말씀하는 목사나 전도사는 시대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낙인이 찍히고 맙니다.
강단에서조차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실력이, 학교성전이, 돈이, 명예가 너희들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가르침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보다 학교성적인 우선이라는 생각과 가르침이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들도 또 어떻습니까
주일학교 예배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아이들을 그렇게 오래 붙잡아 두어서야 언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느냐고 항의합니다.
토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제자훈련이라도 할려고 하면 교회가 자기 아이들을 망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교회 수련회나 성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을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예배를 드립니까
성경에는 예배를 드리다가 망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가인입니다.
가인은 한마디로 예배를 통해 은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은 열납 하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물에만 은혜를 베푸시자 그는 화가 잔뜩 났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겠습니까
가인이 예배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원인이 자신의 부족한 정성과 진실하지 못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 미움만 쌓아갔습니다.
급기야 들에서 동생을 쳐죽이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에도 가인의 전철을 밟아 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시기, 질투, 미움만 잔뜩 쌓아 가지고 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서쪽보고 왔다가 동쪽 보가 나가야 할테인데 북쪽 보고 가는 성도들이 이외로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인처럼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릴 뿐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임하는 지세와 마음가짐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회는 다니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결코 그분께 자신과 자신의 자녀, 가족을 맡길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예배가 소중하지 않는데 자녀들이 드리는 예배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들에게 교회는 단지 악세사리에 불과합니다.
신앙생활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자격증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습관에 따라 예배는 드리지만, 지루하고 따분하고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입니다.
설교가 조금만 길어져도 막 화를 내는 사람들 있습니다.
아이들의 신앙을 위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학교공부에 방해가 되는 모든 행위를 저주합니다.
비록 그것이 교회 안의 신앙생활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믿지 않아도 학교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돈은 무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와 행복을 바라지 않아도 세상이 가져다주는 잠시잠깐의 달콤한 쾌락은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신앙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교회에서 대단히 열심히 봉사합니다.
중요한 직분도 맡은 사람입니다.
남들 보기에 믿음만 가지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분 역시 남들 앞에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은혜로운 말만합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다릅니다.
곁과 속이 다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도 체면상 공식적으로 주일예배만은 나가도록 허락합니다.
이 아이가 결국 자기 엄마를 "위선자"라고 저주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가지말고 공부하라고 혼을 내던 도중 교인에게서 전화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꾸고 웃음을 띠면서 "집사님, 안녕하세요.... " 하며 전화를 받는답니다.
그리고 "신앙이 어쩌고저쩌고.... "한답니다.
이런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는 자녀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많은 수의 크리스천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여호와 하나님의 찾아 쓰시는 사람이 되는 이을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의 자녀가 세상이 찾아 쓰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제가 왜 비전이야기를 하다 말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꿈을 가졌지만 잘못된 꿈, 잘못된 비전을 갖게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복음의 비전으로 피 흘려 세운 위대한 한국교회를 서서히 무너뜨린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 없는 비전을 가르친 일부 성공주의 사역자들이며, 여호와 하나님 없는 꿈에 열광한 일부 성도들입니다.
남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말하고, 자녀들에게는 세상이 가져다주는 성공을 강요하는 부모 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비전의 초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피 흘려가며 세운 교회를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으며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자식들에게 공부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마음속에 품게 하는 일이 절실한 때라 말입니다.
주일학교가 무너져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울상을 짓습니다.
대안이 없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챙겨야 하느냐고 남감해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회복하십시오.
거짓과 위선, 욕심을 버리고 순결한 비전을 회복하십시오.
교회 안에 순결한 비전의 외침이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마땅히 자기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순결한 비전을 물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나는 과연 열정이 있는 교사인가를 고민해 보셨습니까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겉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학교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교회 선생님이라고 다르게 보일까요.
어쩌면 그들 눈에는 학원 선생님이 제일 나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교회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설교가 끝나자마자 도망갑니다.
장담하건대 아이들은 앞으로 더 무서워질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아이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마약으로 찌든 아이들,
공부 스트레스로 정신이 이상해진 아이들,
밤새워 포르노를 보다가 선생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게임에 중독되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살인기술을 생각하는 아이들,
신앙과 삶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라 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부패한 사회를 애써 외면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해 혈기 끓는 눈길을 보내는 아이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이 무섭기만 합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오랜 경력을 가진 의사들은 그들이 펼치는 의술 인생 동안 "기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의학적으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 일처럼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기적을 경험하고, 또 몇몇 의사들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강의실에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이 늘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사도 늘 그것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실한 의사라도 자신이 가진 의술부터 최선을 다해 펼치는 것이 그의 우선적인 도리이자 사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육은 어떻습니까
의사가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다루는 것이라면, 교육은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정신적 깊이를 다룹니다.
교사가 의사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입술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가르침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안간힘을 다해 아이들을 품에 안으려고 합니까
내가 가르친 말씀이 생명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가지고 삶 속에서 씨름하기보다는 그저 주일 때우기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매순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저 아이는 장차 회개할 거야", "바로잡아주실 거야", "구원해 주실 거야" 하면서 기적만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서 역사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모범을 보이도록 하라는 사명을 받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열정이 없고, 사명감도 없고, 인간적으로 노력하는 의지조차 없고, 더러운 찌끼가 가득 찬 관처럼 세상의 찌끼로 꽉막혀 있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이 전달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는 데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즉, 질서와 규칙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연일 기적을 남발해가며 우주를 다스리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만일 일정한 질서 없이 그렇게 다스리신다면 어디 불안해서 살수 있겠습니까
내일은 또 이 지구가 어떻게 움직일까 불안해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내일은 기적적으로 서쪽에서 뜬다면, 또 다음 날도 기적적으로 남쪽에서 뜬다면 어떨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해나기 원하십니다.
정상적인 방법이란 무엇입니까
교육이라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가르치며, 본을 보이는 교육, 품어주고, 용서하고, 닦아주며, 싸매 주고, 눈물 흘려주는 교육,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날 아침에 좀더 잠을 자지 못해 짜증이 난 얼굴로, 아니면 늦게라도 나와주니 고맙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합니다.
사랑도 없고 눈물도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도 맨송맨송하기만 합니다.
부장집사님 "저희 반에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만 보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즉, 별도로 신경 쓰거나 관리하지 않아도, 기도해 주지 않아도 탈나지 않는 아이들만 달라는 것입니다.
앉아서 거저먹겠다는 식이지요. 그리고 근근이 기적만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쉬우시면 기적을 베푸셔서 장차 아이들을 고쳐주시겠지!"
이런 교사들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보다보다 못해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아이들이 불쌍해서 차마 두고 보실 수 없어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공로라는 듯 즐거워합니다.
"내가 뭐랬어 시간이 약이라니까, 애들은 다 저만할 때, 그런 과정을 겪는 거야. "
그러나 이 점도 잊지 마십시오.
참다못해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 가운데는 또 하나의 기적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교사를 바꾸시는 기적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이여 회개합시다.
솔직히 주일학교가 부흥하지 못하는 이유, 아이들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가 누구 때문입니까
목사님, 장로님 때문입니까
아예 예수님 때문이라고 하시지요
예수님이 우리 교회를 축복해 주지 않으셨고, 큰 교회가 못 되게 하셨고, 우리 교회에 인재도 보내주지 않으셨으니 이 모양이라고 따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게으른 것이 문제입니다.
교사들에게 열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재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끓어오르는 열정이 없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침체하는 것입니다.
피 묻은 복음의 열정이 식었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침체하고 교회가 문을 닫는 것입니다.
가슴을 모두 태울 만큼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습니까
적어도 이런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할 때 눈에서 눈물이 흐르던가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했던 때가 언제인지 생각나십니까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복받쳐오지 않습니까
괴로워서 잠이 오지 않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무엇인가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 직면해도, 누가 목숨을 위협해가며 나의 길을 막아서더라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을 보십시오.
불의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가 화를 당한다고 해도 그 일을 수행합니다.
바로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운동에 대한 열정과 소신이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환경정책을 비판하다가 직장을 잃는 한이 있어도 그는 꼭 그 길을 고집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가 월급을 따로 주는 것도 아닌데, 그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환경재해에 대한 경고와 함께 환경보호 운동을 벌입니다.
그 사람의 가슴에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열정, 생명에 대한 열정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라면 어떤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사람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사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열정을 품어야 합니다.
그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가정에서 포기하고, 학교에서도 꼴찌를 도맡아 하는 아이라도 주일학교 교사만큼은 그 아이에 대한 소망과 열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그 아이가 반의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라고 해도, 습관적으로 가출을 해서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못된 짓만 골라 한다고 해도 그 아이를 위해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가슴에 품은 불을 가지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는 교사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열정이 샘솟는 교사는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낙심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용기를 북돋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으면 자기 주머니를 털고, 시설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면 사랑과 눈물로 아이들을 껴안습니다.
아이들은 호텔 같은 시설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자기들을 향해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모습에 더 감동합니다.
교사들이 열정만 있어도 아이들은 감동합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마음을 엽니다.
당신의 마음에 생명에 대한 열정이 숨쉰다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죄악의 세상 가운데서 죽어 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열정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릎을 끓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아이들을 향한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열정만 회복되어도 우리가 맡은 반은 부흥할 것입니다.
열정의 불길만 솟아올라도 주일학교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열정의 불길만 솟아올라도 기관이 구역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매주 불같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실 것입니다.
교사들이 먼저 무릎을 꿇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십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쳐 디모데와 같은 좋은 인물들이 많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주일학교를 위해서 수고하시는 교사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쏟아지는 아침잠과 싸워야 하고 몰려오는 피곤함을 뒤로 한 채 교사라고 하는 직분 때문에 주일도 쉼이 없고 아침 일찍 교회로 달려 와야 하니까요
그러나 결코 여러분의 수고가 허되지 않음인 줄 믿습니다.
고전 15: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이 시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선생님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축복하기를 위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이 한 마디가 교사여러분들에게 큰 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국교회의 주일학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사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도대체 급격히 변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각 교회 주일학교 리더자들은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하고 그 이유를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너무 구식이어서 신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해요.
담임목사님의 목회가 어른들 치중이라서 ....
뭔가 아이들을 위해 해볼려고 해도 돈이 없어요.
매주일 비싼 간식사주고 해야 하는데 교회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지 않아서 주일학교 이렇게 되고 있다고.
돈 많이 들인다고 해서 아이들이 많이 몰려올까요.
우리 교회는 인재가 없어요.
젊은 선생님들이 너무 게을러 터져서...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우리 교회는 시설문제를 가지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모든 영상시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고 지금 주일학교는 영상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뽕 가게 하는 프로그램이 어디 있어야죠.
이렇게 수도 없이 주일학교가 부흥되지 않은 많은 원인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정말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영적으로 죽어 가는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정말 이런 것 때문인가
제가 내린 결론은 "NO, 아니오"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교사가 아이들에게 상처받고 교사의 직분을 내팽개쳐버리는 등 주일학교의 근본적인 붕괴를 가져온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봅니다.
참신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재정지원이 적어서도 아닙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서 오늘 우리 모두가 자녀 교육과, 우리의 후세대에 대한 신앙교육과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해서 함께 고민하며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교사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일학교 교사들이여! 비전이 있는 교사입니까
가르쳐도 변화하지 않고 따라오지 않는 주일학교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시는 교사들이여!
먼저 우리의 가슴에 꿈을 품으십시다.
내 속에 꿈이 없으면 나 자신도 살수 없을뿐더러 내게 배우는 아이들 역시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어떻게 살릴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교사 자신이 살아나지 않으면 아이들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꿈을 품어 봅시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꿈을 품어 봅시다.
그 꿈이 우리가 맡은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열매를 맺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풍성해지는 비전을 품어 봅시다.
그리고 그 비전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봅시다.
꿈은 나눌 때 더욱 커 집니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세워집니다.
나누지 않으면 공상에 그치고 말뿐이지만 함께 품고 기도하면 현실이 되는 것이 꿈의 속성입니다.
오늘 우리 교사들 속에 무슨 꿈을 품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우리 교사들의 가슴속에 품은 꿈이 바로 우리 교사들과 아이들을 살리는 씨앗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신앙의 가정들의 자녀 교육을 들어다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온전치 못하다면, 자식들에게라도 올바른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 할 터인데, 교회 직분자들부터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은 뒷전이고, 오로지 일류대학 진학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신앙생활은 일류대학에 합격한 후에나 하라고 호통을 칩니다.
어떤 지도자는 이를 더 부추기기까지 합니다.
주일학교 사역자들에게 적당히 하라고 훈계하면서, 교회가 입시 학원이라도 되는 양 고3때 주일학교 몇 번 나와서도 서울 대학 들어갔다면 우리교회에서 서울 대학 몇 명 들어갔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디모데처럼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쳐서 지혜를 얻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꿈을 꾸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피 묻은 복음을 통한 순수한 비전이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속에서도 피 묻은 복음을 통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매주일 격식에 따라 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에는 갖가지 사심과 욕심이 얼룩져 있습니다.
매주일 강단에서 메시지는 선포되고 있지만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며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설교자가 더 인기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결한 신앙을 지키라고 말씀하는 목사나 전도사는 시대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낙인이 찍히고 맙니다.
강단에서조차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실력이, 학교성전이, 돈이, 명예가 너희들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가르침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보다 학교성적인 우선이라는 생각과 가르침이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들도 또 어떻습니까
주일학교 예배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아이들을 그렇게 오래 붙잡아 두어서야 언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느냐고 항의합니다.
토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제자훈련이라도 할려고 하면 교회가 자기 아이들을 망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교회 수련회나 성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을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때 어떤 예배를 드립니까
성경에는 예배를 드리다가 망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가인입니다.
가인은 한마디로 예배를 통해 은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은 열납 하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물에만 은혜를 베푸시자 그는 화가 잔뜩 났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겠습니까
가인이 예배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원인이 자신의 부족한 정성과 진실하지 못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 미움만 쌓아갔습니다.
급기야 들에서 동생을 쳐죽이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에도 가인의 전철을 밟아 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시기, 질투, 미움만 잔뜩 쌓아 가지고 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서쪽보고 왔다가 동쪽 보가 나가야 할테인데 북쪽 보고 가는 성도들이 이외로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인처럼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릴 뿐 여호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임하는 지세와 마음가짐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회는 다니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결코 그분께 자신과 자신의 자녀, 가족을 맡길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예배가 소중하지 않는데 자녀들이 드리는 예배야 오죽하겠습니까
이들에게 교회는 단지 악세사리에 불과합니다.
신앙생활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자격증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습관에 따라 예배는 드리지만, 지루하고 따분하고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입니다.
설교가 조금만 길어져도 막 화를 내는 사람들 있습니다.
아이들의 신앙을 위해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학교공부에 방해가 되는 모든 행위를 저주합니다.
비록 그것이 교회 안의 신앙생활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믿지 않아도 학교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돈은 무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와 행복을 바라지 않아도 세상이 가져다주는 잠시잠깐의 달콤한 쾌락은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신앙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교회에서 대단히 열심히 봉사합니다.
중요한 직분도 맡은 사람입니다.
남들 보기에 믿음만 가지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분 역시 남들 앞에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은혜로운 말만합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다릅니다.
곁과 속이 다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도 체면상 공식적으로 주일예배만은 나가도록 허락합니다.
이 아이가 결국 자기 엄마를 "위선자"라고 저주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가지말고 공부하라고 혼을 내던 도중 교인에게서 전화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꾸고 웃음을 띠면서 "집사님, 안녕하세요.... " 하며 전화를 받는답니다.
그리고 "신앙이 어쩌고저쩌고.... "한답니다.
이런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는 자녀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많은 수의 크리스천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여호와 하나님의 찾아 쓰시는 사람이 되는 이을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의 자녀가 세상이 찾아 쓰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제가 왜 비전이야기를 하다 말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꿈을 가졌지만 잘못된 꿈, 잘못된 비전을 갖게 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복음의 비전으로 피 흘려 세운 위대한 한국교회를 서서히 무너뜨린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 없는 비전을 가르친 일부 성공주의 사역자들이며, 여호와 하나님 없는 꿈에 열광한 일부 성도들입니다.
남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말하고, 자녀들에게는 세상이 가져다주는 성공을 강요하는 부모 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비전의 초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피 흘려가며 세운 교회를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으며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자식들에게 공부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마음속에 품게 하는 일이 절실한 때라 말입니다.
주일학교가 무너져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울상을 짓습니다.
대안이 없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챙겨야 하느냐고 남감해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회복하십시오.
거짓과 위선, 욕심을 버리고 순결한 비전을 회복하십시오.
교회 안에 순결한 비전의 외침이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마땅히 자기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순결한 비전을 물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나는 과연 열정이 있는 교사인가를 고민해 보셨습니까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겉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학교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교회 선생님이라고 다르게 보일까요.
어쩌면 그들 눈에는 학원 선생님이 제일 나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교회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설교가 끝나자마자 도망갑니다.
장담하건대 아이들은 앞으로 더 무서워질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아이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마약으로 찌든 아이들,
공부 스트레스로 정신이 이상해진 아이들,
밤새워 포르노를 보다가 선생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게임에 중독되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살인기술을 생각하는 아이들,
신앙과 삶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라 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부패한 사회를 애써 외면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해 혈기 끓는 눈길을 보내는 아이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이 무섭기만 합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오랜 경력을 가진 의사들은 그들이 펼치는 의술 인생 동안 "기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의학적으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 일처럼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기적을 경험하고, 또 몇몇 의사들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강의실에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이 늘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사도 늘 그것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실한 의사라도 자신이 가진 의술부터 최선을 다해 펼치는 것이 그의 우선적인 도리이자 사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육은 어떻습니까
의사가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다루는 것이라면, 교육은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정신적 깊이를 다룹니다.
교사가 의사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입술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가르침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안간힘을 다해 아이들을 품에 안으려고 합니까
내가 가르친 말씀이 생명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가지고 삶 속에서 씨름하기보다는 그저 주일 때우기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매순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저 아이는 장차 회개할 거야", "바로잡아주실 거야", "구원해 주실 거야" 하면서 기적만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서 역사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모범을 보이도록 하라는 사명을 받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열정이 없고, 사명감도 없고, 인간적으로 노력하는 의지조차 없고, 더러운 찌끼가 가득 찬 관처럼 세상의 찌끼로 꽉막혀 있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이 전달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는 데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즉, 질서와 규칙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연일 기적을 남발해가며 우주를 다스리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만일 일정한 질서 없이 그렇게 다스리신다면 어디 불안해서 살수 있겠습니까
내일은 또 이 지구가 어떻게 움직일까 불안해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내일은 기적적으로 서쪽에서 뜬다면, 또 다음 날도 기적적으로 남쪽에서 뜬다면 어떨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해나기 원하십니다.
정상적인 방법이란 무엇입니까
교육이라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변화시켜 나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가르치며, 본을 보이는 교육, 품어주고, 용서하고, 닦아주며, 싸매 주고, 눈물 흘려주는 교육,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날 아침에 좀더 잠을 자지 못해 짜증이 난 얼굴로, 아니면 늦게라도 나와주니 고맙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합니다.
사랑도 없고 눈물도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도 맨송맨송하기만 합니다.
부장집사님 "저희 반에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만 보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즉, 별도로 신경 쓰거나 관리하지 않아도, 기도해 주지 않아도 탈나지 않는 아이들만 달라는 것입니다.
앉아서 거저먹겠다는 식이지요. 그리고 근근이 기적만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쉬우시면 기적을 베푸셔서 장차 아이들을 고쳐주시겠지!"
이런 교사들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보다보다 못해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아이들이 불쌍해서 차마 두고 보실 수 없어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공로라는 듯 즐거워합니다.
"내가 뭐랬어 시간이 약이라니까, 애들은 다 저만할 때, 그런 과정을 겪는 거야. "
그러나 이 점도 잊지 마십시오.
참다못해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 가운데는 또 하나의 기적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교사를 바꾸시는 기적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이여 회개합시다.
솔직히 주일학교가 부흥하지 못하는 이유, 아이들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가 누구 때문입니까
목사님, 장로님 때문입니까
아예 예수님 때문이라고 하시지요
예수님이 우리 교회를 축복해 주지 않으셨고, 큰 교회가 못 되게 하셨고, 우리 교회에 인재도 보내주지 않으셨으니 이 모양이라고 따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게으른 것이 문제입니다.
교사들에게 열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재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끓어오르는 열정이 없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침체하는 것입니다.
피 묻은 복음의 열정이 식었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침체하고 교회가 문을 닫는 것입니다.
가슴을 모두 태울 만큼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습니까
적어도 이런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할 때 눈에서 눈물이 흐르던가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했던 때가 언제인지 생각나십니까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복받쳐오지 않습니까
괴로워서 잠이 오지 않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무엇인가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 직면해도, 누가 목숨을 위협해가며 나의 길을 막아서더라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을 보십시오.
불의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가 화를 당한다고 해도 그 일을 수행합니다.
바로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운동에 대한 열정과 소신이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환경정책을 비판하다가 직장을 잃는 한이 있어도 그는 꼭 그 길을 고집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가 월급을 따로 주는 것도 아닌데, 그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환경재해에 대한 경고와 함께 환경보호 운동을 벌입니다.
그 사람의 가슴에는 환경과 자연에 대한 열정, 생명에 대한 열정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라면 어떤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사람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사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열정을 품어야 합니다.
그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가정에서 포기하고, 학교에서도 꼴찌를 도맡아 하는 아이라도 주일학교 교사만큼은 그 아이에 대한 소망과 열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그 아이가 반의 분위기를 흐리는 아이라고 해도, 습관적으로 가출을 해서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못된 짓만 골라 한다고 해도 그 아이를 위해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가슴에 품은 불을 가지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는 교사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열정이 샘솟는 교사는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낙심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용기를 북돋습니다.
교회가 돈이 없으면 자기 주머니를 털고, 시설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면 사랑과 눈물로 아이들을 껴안습니다.
아이들은 호텔 같은 시설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자기들을 향해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모습에 더 감동합니다.
교사들이 열정만 있어도 아이들은 감동합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마음을 엽니다.
당신의 마음에 생명에 대한 열정이 숨쉰다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죄악의 세상 가운데서 죽어 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열정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릎을 끓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아이들을 향한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열정만 회복되어도 우리가 맡은 반은 부흥할 것입니다.
열정의 불길만 솟아올라도 주일학교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열정의 불길만 솟아올라도 기관이 구역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매주 불같은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실 것입니다.
교사들이 먼저 무릎을 꿇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십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쳐 디모데와 같은 좋은 인물들이 많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