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스승과 제자
본문
올해도 스승의 날을 지내면서 몇 분들부터 따뜻한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이 같은 대우를 받을만한 좋은 스승인가 또 한 가지는 ‘왜 너는 스승을 찾아서 감사를 표현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서신을 쓰면서 제게 큰 영향을 주셨던 선생님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모두 스승이 있습니다. 스승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의 사람이 된 것, 좋은 스승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좋은 스승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좋은 스승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스승이 되는 것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좋은 스승은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부와 같습니다. 미래에 좋은 수확을 거두려면 좋은 농부가 있어야 하듯이 미래를 끌고 갈 좋은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이 많아야 합니다.
1. 성경에 있는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모습들
1) 대표적으로 모세와 여호수아
80세의 모세는 청년 여호수아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 후 40년간 모세와 여호수아는 늘 같이 있었습니다. 120세가 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했습니다. 자신이 못다한 일을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78). ”
2) 엘리야와 엘리사
북이스라엘의 영적 암흑의 시기였던 아합 왕 때에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입니다. 그 선지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수제자였습니다. 엘리야 선생님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엘리사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지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감지했기에 엘리사는 엘리야 선생님을 붙좇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엘리사는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줄곧 따랐습니다.
요단을 건넌 다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슨 소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 2:9). ” 엘리사의 소원은 한 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의 영성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난국을 해결하고 선생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참 좋은 제자였습니다.
3) 예수님과 제자들 특히 베드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간 숙식을 같이 했습니다만 제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찾으셔서 그들을 회복하셨습니다. 디베랴 바다로 고기잡이하러 나갔던 7제자들에게 조반까지 차려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는 대답을 받아내신 주께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네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너는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도 할 뿐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참 좋은 선생님이셨습니다. 영원한 사표이십니다.
여러분, 모세가 없는 여호수아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가 없는 모세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없는 제자들, 제자들 없는 예수님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높이 기려야 할 인간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2. 바울과 디모데를 통한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모습
1) 바울과 디모데는 20년간의 교분이 있었습니다.
주후 4748년경에 바울(40대 중년)과 디모데(20대 청년)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 방문 시 디모데의 회심 가능성, 아니면 적어도 디모데의 외조모인 로이스와 어머니인 유니게는 회심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행 14:67, 2123, 딤후 3:11, 딤후 1:5).
주후 50년경에는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동참하고(행 16:13), 이때 장로의 회에서 디모데가 안수 받고 전도자(순회 교사)가 됩니다(딤전 4:14). 51년경에는 고린도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힘 있게 일하기 시작했습니다(행 18:5). 52년경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데, 고린도 사역 중에 순회교사 자격으로 데살로니가교회에 다녀오게 했습니다(살전 3:18).
53년부터 바울의 3차 선교여행에 디모데가 줄곧 동행하는데, 556년경에는 마게도냐 교회와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특사(순회교사)로 파견되었고(행 19:22), 57년경에 디모데는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 길에 합류하여 동행합니다(행 20:4). 61년경에 바울이 로마 1차 수감 중에도 디모데가 곁에 있어 수종하였고(빌 1:1, 골 1:1, 몬 1:1), 바울이 수감되어 있던 중이거나 석방(63년경) 후 즉시 디모데를 빌립보교회로 파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빌 2:1924).
6368년경에 바울의 제4차 선교여행이 시작되었는데, 64년경에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빌립보에서 온 디모데를 만납니다. 그때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목회하도록 하고 자신은 마게도냐로 떠납니다(딤전 1:3). 6465년경에 마게도냐에서 디모데전서를 보냅니다. 6566년경에는 로마서바나로마 선교여행을 가졌습니다. 67년경 바울은 로마에서 체포되어 수감되고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를 보냅니다. 그리고 68년경에 로마감옥에서 바울은 순교하게 됩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20년간의 사제지간을 요약하면 바울은 참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충성스러운 제자였습니다.
2)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제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순교할 날이 다가옴을 예감하면서 제자 디모데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네가 보고 싶다’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4:9, 21을 보세요. 혹 얼굴을 보지 못하면 이 편지를 통해 스승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보낸 유서입니다. 딤후 1:15을 보면 제자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잘 보여줍니다.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릅니다(2절).
마음껏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기원합니다(2절).
디모데를 항상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3절).
좋은 제자를 주신 것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3절).
디모데의 눈물을 보기 원한다고 했습니다(4절). 사나이의 눈물! 순수함과 열정을 지녔던 디모데로부터 바울은 늘 신선한 도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디모데에게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순결한 믿음이 있습니다(5절).
바울은 주님 앞에 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최후의 여정에 디모데와 동행하고 싶었습니다. 제자 디모데를 만나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서로 나누며 영적인 재충전과 도전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고 싶은 제자가 있습니까 생각만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자가 있습니까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마감하려면 좋은 제자를 두어야 합니다.
3)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스승과 제자관계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제자 디모데를 향하여 분명한 소망 한 가지를 피력합니다. 그것은 평소에 디모데에게 늘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 되어 주께서 네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라!” 2:17을 보세요.
제자 삼는 사역을 하라!(2절)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라!(34절)
말씀대로 정로로 달리는 경주자가 되라!(5절)
열심히 일하고 인내로 추수를 기다리는 복음의 농부가 되라!(6절). 지혜로운 일꾼이 되라!(7절)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라(1절)’고 말씀했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2:15). ”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2:22). ”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4:12, 5). ”
여러분, 스승의 보람이 무엇입니까 스승의 보람은 훌륭한 제자들을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기의 영역에서 힘 있게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스승은 힘이 솟습니다. 자기를 훌쩍 뛰어넘는 제자들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냥 흐뭇해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 한 번 상상해보세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노인입니다. 몸도 많이 약해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석방의 기회는 물 건너가고 대신에 죽음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디모데를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지고 맥박이 청년처럼 뛰고 미래가 희망차게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빨리 오라고 한 것이다. “어서 만나고 싶구나! 네 모습 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바울은 마가도 함께 데려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네가 올 때 마가도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4:11). 마가는 1차 선교여행에 데리고 갔다가 중도 하차하여 실망을 주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훌륭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를 키웠던 스승은 바나바와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이제 마가는 여러 교회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입니다. 이 당시 복음서의 집필을 끝냈든지 적어도 자료 수집은 거의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주로 베드로 사도로부터 들었던 얘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가를 부른 것 같습니다. 마가로부터 예수님 얘기를 듣기 위해서 말입니다.
4:11 전반 절에는 지금 바울 곁에 누가만 있다고 합니다. 누가는 바울 곁에서 간병하는 주치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그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하고 있던 중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희망했습니다. 복음서 기자 두 사람 마가와 누가, 그리고 에베소교회의 젊은 목사 디모데는 복음을 땅 끝으로 들고 갈 차세대 주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함께 만나 꿈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복음 1세대 주자 바울과 복음 2세대 주자 세 사람이 만나 앞으로 전개될 복음의 3세대를 구상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바통 터치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구상했던 제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임은 과거를 회상하고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꿈꾸는 모임이기를 바울은 바랐을 것입니다. 마가와 누가로부터 복음서 얘기를 들으며 마지막 날들을 다시 예수님께 집중하고자 했던 모임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탁과 비전을 다시 정리하는 자리이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비전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리이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스승이 가장 행복한 스승이겠습니까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제자를 둔 스승일 것입니다. 오늘날 전쟁터와 같은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자리가 필요합니까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이 마련하기 어려우면 제자들이라도 이런 자리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자리, 스승과 제자와 제자의 자녀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일의 모임, 교회학교의 모임, 목장 모임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본문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깨끗한 바울의 마지막 모습, 제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므로 자기도 그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고 신뢰했듯이 바울도 자기의 제자들을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제자들을 남기고 가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예수님처럼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만나보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보고자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최후의 모습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가슴에 각인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1) 주의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이 바로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길임을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이 감옥일 수 있습니다. 외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을 다 소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길입니다. 복음의 사역자들이 가야 할 길이 바로 순교자의 길,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바울은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 그래도 그 길은 희망이 가득한 길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4:8을 보세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3) 그래서 바울은 제자들에게 힘 있게 권면합니다. ‘나처럼 믿음의 대장부가 되라! 한 번 사는 인생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라! 나의 뒤를 따라와 다오! 나를 본받으라! 내가 주님을 본 받고자 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나처럼 주님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기 위해 고난의 현장, 순교의 현장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행복한 스승이었습니다. 미래를 맡기고 갈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와 마가와 누가도 행복한 제자들이었습니다. 바울 같은 스승을 모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행복합니까 여러분이 좋은 스승이 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통해 열리게 될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제자가 될 때 행복합니다. 이유는 진리와 은총의 유산을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스승, 좋은 제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사제지간입니다. 사도가 무너지고 제자도가 우습게 여겨지는 시대에, 사제지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는 이 때에 교회 안에서부터 스승 모시기 운동, 제자 삼기 운동이 조용히 펼쳐져야 합니다.
오늘은 교사 주일입니다.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여러분들은 미래를 여는 분들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존경하십시오! 지난 주일에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학교선생님에게 하는 것 반만이라도 교회 선생님들께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교사 선생님들에게 잘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우리교회는 오늘 하루만 아니라 좋은 제자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행복해하고 좋은 선생님들 때문에 제자들이 행복해하는 공동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으신 선생님들 때문에 훌륭한 제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교회,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희망찬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모두 스승이 있습니다. 스승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의 사람이 된 것, 좋은 스승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좋은 스승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좋은 스승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스승이 되는 것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좋은 스승은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부와 같습니다. 미래에 좋은 수확을 거두려면 좋은 농부가 있어야 하듯이 미래를 끌고 갈 좋은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이 많아야 합니다.
1. 성경에 있는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모습들
1) 대표적으로 모세와 여호수아
80세의 모세는 청년 여호수아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 후 40년간 모세와 여호수아는 늘 같이 있었습니다. 120세가 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안수했습니다. 자신이 못다한 일을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78). ”
2) 엘리야와 엘리사
북이스라엘의 영적 암흑의 시기였던 아합 왕 때에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교입니다. 그 선지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수제자였습니다. 엘리야 선생님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엘리사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지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감지했기에 엘리사는 엘리야 선생님을 붙좇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엘리사는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줄곧 따랐습니다.
요단을 건넌 다음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슨 소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 2:9). ” 엘리사의 소원은 한 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의 영성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난국을 해결하고 선생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참 좋은 제자였습니다.
3) 예수님과 제자들 특히 베드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간 숙식을 같이 했습니다만 제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찾으셔서 그들을 회복하셨습니다. 디베랴 바다로 고기잡이하러 나갔던 7제자들에게 조반까지 차려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는 대답을 받아내신 주께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네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너는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도 할 뿐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참 좋은 선생님이셨습니다. 영원한 사표이십니다.
여러분, 모세가 없는 여호수아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가 없는 모세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없는 제자들, 제자들 없는 예수님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높이 기려야 할 인간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2. 바울과 디모데를 통한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모습
1) 바울과 디모데는 20년간의 교분이 있었습니다.
주후 4748년경에 바울(40대 중년)과 디모데(20대 청년)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 방문 시 디모데의 회심 가능성, 아니면 적어도 디모데의 외조모인 로이스와 어머니인 유니게는 회심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행 14:67, 2123, 딤후 3:11, 딤후 1:5).
주후 50년경에는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동참하고(행 16:13), 이때 장로의 회에서 디모데가 안수 받고 전도자(순회 교사)가 됩니다(딤전 4:14). 51년경에는 고린도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힘 있게 일하기 시작했습니다(행 18:5). 52년경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데, 고린도 사역 중에 순회교사 자격으로 데살로니가교회에 다녀오게 했습니다(살전 3:18).
53년부터 바울의 3차 선교여행에 디모데가 줄곧 동행하는데, 556년경에는 마게도냐 교회와 고린도교회에 바울의 특사(순회교사)로 파견되었고(행 19:22), 57년경에 디모데는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 길에 합류하여 동행합니다(행 20:4). 61년경에 바울이 로마 1차 수감 중에도 디모데가 곁에 있어 수종하였고(빌 1:1, 골 1:1, 몬 1:1), 바울이 수감되어 있던 중이거나 석방(63년경) 후 즉시 디모데를 빌립보교회로 파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빌 2:1924).
6368년경에 바울의 제4차 선교여행이 시작되었는데, 64년경에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빌립보에서 온 디모데를 만납니다. 그때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목회하도록 하고 자신은 마게도냐로 떠납니다(딤전 1:3). 6465년경에 마게도냐에서 디모데전서를 보냅니다. 6566년경에는 로마서바나로마 선교여행을 가졌습니다. 67년경 바울은 로마에서 체포되어 수감되고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를 보냅니다. 그리고 68년경에 로마감옥에서 바울은 순교하게 됩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20년간의 사제지간을 요약하면 바울은 참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충성스러운 제자였습니다.
2)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깊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제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순교할 날이 다가옴을 예감하면서 제자 디모데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네가 보고 싶다’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4:9, 21을 보세요. 혹 얼굴을 보지 못하면 이 편지를 통해 스승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보낸 유서입니다. 딤후 1:15을 보면 제자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잘 보여줍니다.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릅니다(2절).
마음껏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기원합니다(2절).
디모데를 항상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3절).
좋은 제자를 주신 것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3절).
디모데의 눈물을 보기 원한다고 했습니다(4절). 사나이의 눈물! 순수함과 열정을 지녔던 디모데로부터 바울은 늘 신선한 도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디모데에게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순결한 믿음이 있습니다(5절).
바울은 주님 앞에 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최후의 여정에 디모데와 동행하고 싶었습니다. 제자 디모데를 만나 기도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서로 나누며 영적인 재충전과 도전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고 싶은 제자가 있습니까 생각만 해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자가 있습니까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마감하려면 좋은 제자를 두어야 합니다.
3)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스승과 제자관계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제자 디모데를 향하여 분명한 소망 한 가지를 피력합니다. 그것은 평소에 디모데에게 늘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좋은 일꾼 되어 주께서 네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라!” 2:17을 보세요.
제자 삼는 사역을 하라!(2절)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라!(34절)
말씀대로 정로로 달리는 경주자가 되라!(5절)
열심히 일하고 인내로 추수를 기다리는 복음의 농부가 되라!(6절). 지혜로운 일꾼이 되라!(7절)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라(1절)’고 말씀했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2:15). ”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2:22). ”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4:12, 5). ”
여러분, 스승의 보람이 무엇입니까 스승의 보람은 훌륭한 제자들을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기의 영역에서 힘 있게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스승은 힘이 솟습니다. 자기를 훌쩍 뛰어넘는 제자들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냥 흐뭇해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 한 번 상상해보세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노인입니다. 몸도 많이 약해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석방의 기회는 물 건너가고 대신에 죽음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디모데를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지고 맥박이 청년처럼 뛰고 미래가 희망차게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빨리 오라고 한 것이다. “어서 만나고 싶구나! 네 모습 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바울은 마가도 함께 데려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네가 올 때 마가도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4:11). 마가는 1차 선교여행에 데리고 갔다가 중도 하차하여 실망을 주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훌륭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를 키웠던 스승은 바나바와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이제 마가는 여러 교회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입니다. 이 당시 복음서의 집필을 끝냈든지 적어도 자료 수집은 거의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주로 베드로 사도로부터 들었던 얘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가를 부른 것 같습니다. 마가로부터 예수님 얘기를 듣기 위해서 말입니다.
4:11 전반 절에는 지금 바울 곁에 누가만 있다고 합니다. 누가는 바울 곁에서 간병하는 주치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그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하고 있던 중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희망했습니다. 복음서 기자 두 사람 마가와 누가, 그리고 에베소교회의 젊은 목사 디모데는 복음을 땅 끝으로 들고 갈 차세대 주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함께 만나 꿈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복음 1세대 주자 바울과 복음 2세대 주자 세 사람이 만나 앞으로 전개될 복음의 3세대를 구상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바통 터치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구상했던 제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임은 과거를 회상하고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꿈꾸는 모임이기를 바울은 바랐을 것입니다. 마가와 누가로부터 복음서 얘기를 들으며 마지막 날들을 다시 예수님께 집중하고자 했던 모임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탁과 비전을 다시 정리하는 자리이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비전을 붙잡고 기도하는 자리이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스승이 가장 행복한 스승이겠습니까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제자를 둔 스승일 것입니다. 오늘날 전쟁터와 같은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자리가 필요합니까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이 마련하기 어려우면 제자들이라도 이런 자리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자리, 스승과 제자와 제자의 자녀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일의 모임, 교회학교의 모임, 목장 모임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본문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깨끗한 바울의 마지막 모습, 제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므로 자기도 그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고 신뢰했듯이 바울도 자기의 제자들을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제자들을 남기고 가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예수님처럼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만나보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보고자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최후의 모습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가슴에 각인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1) 주의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이 바로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길임을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이 감옥일 수 있습니다. 외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을 다 소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길입니다. 복음의 사역자들이 가야 할 길이 바로 순교자의 길,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바울은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 그래도 그 길은 희망이 가득한 길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4:8을 보세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3) 그래서 바울은 제자들에게 힘 있게 권면합니다. ‘나처럼 믿음의 대장부가 되라! 한 번 사는 인생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라! 나의 뒤를 따라와 다오! 나를 본받으라! 내가 주님을 본 받고자 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나처럼 주님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기 위해 고난의 현장, 순교의 현장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행복한 스승이었습니다. 미래를 맡기고 갈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와 마가와 누가도 행복한 제자들이었습니다. 바울 같은 스승을 모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행복합니까 여러분이 좋은 스승이 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을 통해 열리게 될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제자가 될 때 행복합니다. 이유는 진리와 은총의 유산을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스승, 좋은 제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사제지간입니다. 사도가 무너지고 제자도가 우습게 여겨지는 시대에, 사제지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는 이 때에 교회 안에서부터 스승 모시기 운동, 제자 삼기 운동이 조용히 펼쳐져야 합니다.
오늘은 교사 주일입니다.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여러분들은 미래를 여는 분들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존경하십시오! 지난 주일에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학교선생님에게 하는 것 반만이라도 교회 선생님들께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교사 선생님들에게 잘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우리교회는 오늘 하루만 아니라 좋은 제자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행복해하고 좋은 선생님들 때문에 제자들이 행복해하는 공동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으신 선생님들 때문에 훌륭한 제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교회,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희망찬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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