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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나를 교사로 세우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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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burt Hights란 분이 쓴 ‘The Art of Teaching'(가르침의 기술)이란 책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15년 동안 교직에 있다가 은퇴한 후에 자신의 교육경험을 근거로 해서 쓴 책인데, 영국에서는 교육학의 기초도서로 인정될 만큼 아주 좋은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5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1 전공과목에 정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공과목에 대해서는 언제나 공부하는 교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교육을 하는 우리의 전공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번 강습회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말씀을 우리가 먼저 배웠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이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될 때까지 연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대충 준비해서 가르치면 아이들은 적당한 신자가 되어서 세상의 풍랑 앞에서 요동치는 갈대와 같은 신자 / 부평초와 같은 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철저하게 준비해서 가르치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양식이 되고 보약이 됩니다.
2 Gilburt Hights가 제시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랑을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고, 사랑하면 무언가 자꾸만 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되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막연한 사랑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다’ 그러면 아무도 그 사랑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사랑하셨다’ 그럴 때에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구나’ 그게 아니고,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3 세 번째로 가르치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는 일차적으로 가르치는 직임입니다. 가르치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은 교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또 그런 사람이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열정이 있으면 즐겁습니다. 마지못해 하면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4 네 번째로 자기 전공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해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교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 만화,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그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눈높이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잘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소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말씀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그리고 그들이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가르쳐야 합니다.
5 다섯 번째로 멋과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한번 만나는 또 만나기 싫어하면 안 됩니다. 한번 만나면 바닥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 ‘우리 선생님이 제일 멋있고 재미있는 선생님’이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고 만나도 자꾸만 만나고 싶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나오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선생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Gilburt Hights는 이렇게 다섯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신앙교육을 위해서 하나를 더 보탠다면 아이들의 need(필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사들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 그런 것들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같은 말씀이라도 어떻게 요리해서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교사로 세우신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온전케 한다”는 말은 ‘어그러진 뼈를 바로 맞춘다,’ ‘병들었거나 이상이 있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그러진 아이로 양육해서는 안 됩니다. 병든 아이들로 키워서는 안됩니다. 어그러지고 병든 아이들의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를 교사로 세우신 이유입니다.
②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무 빨리 어른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잘못된 어른들을 닮아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섬기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교사로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회를 교회되게 할 수 있습니까 충성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랬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우리의 충성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일에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① 충성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② 충성은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준 교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충성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랬습니다.
여기 13절에서 말한 ‘온전함’이라는 것은 12절에서 말한 ‘온전함’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12절에서 말한 ‘온전함’(καταρτισμον)은 병들었거나 이상이 있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데 반해, 13절의 ‘온전함’(τελειον)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이 - 그리고 교회가 - 성숙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까지 성숙해 가야 합니까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야 한다’(15절)고 말씀합니다.
교사들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야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 가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교사의 직분은 중요합니다. 나 자신이 믿음 위에서 자라 가는 것도 어려운데 귀중한 영혼들이 자라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에 무척이나 힘든 직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영혼과 생명을 담당한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교회의 모든 직분은 다 중요하지만 교사의 직분은 더욱 중요한 직분입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충성스런 봉사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이 영적으로 바르게 자라서, 이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람들로 자라 가게 될 것이고, 우리 교회는 보다 온전한 모습으로 성숙해 갈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한국 교회의 미래는 우리 교사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에게 맡겨준 아이들을 얼마만큼이나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키워 가느냐 하는 것에 우리 한국 교회와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 새롭게 우리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충성하겠다고 다짐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이신 교사 여러분에게 단 하나를 주문한다면 “여러분에게 맡겨준 귀한 생명을 위하여 여러분의 생명을 바치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라고 하는 것이 너무 엄청난 말로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준 귀한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지한 아이들로 키워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들을 위해서 드리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잉글릿 버그만이라는 미국의 배우를 아십니까 미국의 배우 잉글릿 버그만의 묘비 뒤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연극을 했다” - 죽음도 연극의 연속이었다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연극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고,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명을 묻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까지 생명을 바쳐 교사로서의 사명을 다 할 것이란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밤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틈만 나면 낚시 가방을 둘러메고 강가로 호수로 낚시를 떠납니다. 그러기에 자기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밤낚시에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이의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낚시대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이것도 물어 보고 저것도 물어 보고, 아버지를 귀찮게 하면서 밤을 지샜습니다. 낚시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해야 되는데, 아이가 옆에서 밤새도록 떠드는 바람에 아버지의 그날 밤낚시는 완전히 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날은 ‘완전히 망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다음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갔었는데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너무나도 좋은 날이었다. 우리 아빠 멋쟁이!” - 아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정성이 때로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하는 감동과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희생이 아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갖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과 정성과 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을 바친다고 생각하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일은 때때로 우리들에게 고통이기도 하고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영원한 내 제자들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전자제품에만 after service(A/S)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A/S가 필요합니다. A/S가 중요한 것은 제품을 만들 때 그만큼 정성을 들여 자신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만큼 아이들을 정성을 들여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목동아파트 종교부지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섬겼었는데, 목동아파트 8단지에 유치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유치원은 보육료가 얼마나 비싼지 모릅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처음 입학할 때 입학금하고, 또 3개월치 보육료를 미리 내야 되는데, 처음 아이를 그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는 거의 100원돈 가까이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싼 유치원입니다. 그런데도 입학 시기만 되면 그 유치원에 자기 아이를 넣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교육을 얼마나 잘 시키면 그렇게 모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제가 교회에 가면서 ‘그럴만도 하겠다’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유치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날이 초등학교 입학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입학식에 참석하는 아이들에게 꽃과 자그마한 선물을 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유치원의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비록 자기 유치원은 졸업했지만 졸업하고 떠나간 아이들이 이제는 남의 아이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들이 컸다고 하는 것에 자랑스러워하면서 아이들에게 축하 선물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자기가 다녔던 유치원, 그리고 자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나도 아이들이 자랑스러워야 하고, 아이들도 우리 교회와 우리 선생님이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그마만큼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죽어 가는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은 이 세상 어떤 힘의 원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에서 나온 힘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에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감동과 은혜가 되는 것은 그분이 당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신 그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이렇듯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생명이 쏟아 부어지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생명을 바쳐 아이들을 양육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에게서 자연스럽게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신사가 미국 뉴욕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한 남루하게 입은 초라한 청년 하나가 그 신사에게 다가와서는 ‘5달러만 도와주십시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신사가 그 청년에게 ‘당신은 아직도 젊고 사지도 말짱한데 왜 구걸을 합니까’ 그렇게 물었더니, 그 청년이 하는 말이 “나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당에서 내게 당을 위해서 일주일 내에 200달러를 벌어오라고 했는데 일주일 내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모든 돈이 195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제 시간은 다 되어 할당된 돈을 갖다 주어야 하는데 5달러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제발 5달러만 도와 주십시오”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신사가 그 말을 듣고 당을 위해서 이렇게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 충성을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공산당원들은 당을 위해서 - 공산당을 위해서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것과 공산당원들이 공산당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것 중에 누가 더 생명을 바쳐 충성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내게 맡겨준 일을 위해서 공산당원들이 당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보다 더 충성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현재 전세계 인구의 1/3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걸린 시간은 2,00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세계 1/3을 공산화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10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요즘에야 공산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있지만, 세계의 지도에 빨간색을 칠하도록 하는 데는 겨우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부끄럽지만 우리가 - 공산당원이 당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충성하고 봉사한 것처럼 충성하고 봉사했다면 아마 전 세계의 복음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봉사하고 헌신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생명을 바쳐 헌신하고 봉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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