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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거짓교사와 거짓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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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포스트모던 후 현대시대라고 합니다. 이성과 합리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많이 좋아졌고 편리해 졌습니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후 현대 사회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이성의 발달과 과학의 발달로 생활이 많이 편리해 졌지만 자기의 정체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생활은 많이 편리해 졌는데 사람들이 많이 무력해 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이 발달한 미국의 정신병자들을 상담하는 것을 보면 거의 65%이상이 우울증 환자입니다. 그렇게 사회가 편해졌고 살기 좋아졌지만 그들의 내적으로는 더욱 공허해 졌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채워질 수 없는 것 과학과 기술이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권을 추구합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하는 시대로 점점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후 현대사회의 특징입니다.
진리와 윤리의 상대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더 이상 절대진리가 존재하지 않고 절대 윤리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치관에 혼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윤리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이것이 윤리적이다 비윤리적이다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잣대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도덕성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이러한 영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뉴에이즈 운동입니다. 이름을 달리해가면서 사회 각 분야에 아주 무서운 속도로 퍼져갔고, 또 이미 퍼져가고 있는 것이 뉴에이즈 운동입니다. 그 안에 내용이 "너 안에 영성을 개발하라 너도 신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초월적인 명상을 하고 음악이나 미술이나 모든 분야에서 자기 안에 있는 잠재력과 통찰력을 개발하고 자극하기 위해서 너도 신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더 많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동기부여를 하는 강사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듣게 하는데요, 동기부여를 하는 그 사람들의 학문과 영성이 많은 경우에 뉴에이즈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당신도 신적인 능력으로 이런 것을 감당해 낼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영성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이런 영성에 관심을 갖게 됨으로 영성이나 직감이나 감성에 관심을 갖으면서 종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교회를 찾아 옵니다. 교회에 와서 그런 갈증 속에 주님을 만나고 그 영의 만족을 누리고 하는 축복의 길을 걷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종교집단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아주 전형적인 예가 한국에서 발생했던 천존회입니다. 7월 초에 이것이 사회문제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초에 현대직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이런 스트레스 해소나 또 무기력한 것을 회복하기 위한 기 훈련을 하면서 시작된 모임입니다. 이런 것이 점점 발달하면서 거기에 잘못된 영성이 끼어 들고 90년도에 들어가면서 시한부 종교회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기 단련을 하는것도 무언가 힘을 얻어서 능력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것 입니다. 그런 것이 드러난 내용을 보면 대출사기로 비롯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이제까지는 사회에 소외된 계층들이 어떤 돌파구를 찾다보니깐 이런 사이비 집단에 연루되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뚜껑을 열어보니깐 소히 말하는 화이트칼라 계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급 장교들, 변호사, 의사, 교사, 회계사, 기자, 은행원들이 거기에 연루되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통해서 가정이 파탄되고 개인이 파탄되고 하는 그런 경우를 겪게 됩니다. 지금 후 현대사회를 들어가면서 영적으로 더 혼탁해져 갑니다.
이런 시대가운데 교회역시 그런 사회적인 변화속에 거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의 좋지 않는 영향으로 교회도 타락해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풍조와 기독교의 교리와 교묘하게 혼합되어서 교회가운데 이상하게 몰고가는 그런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건전한 교회가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변해져 버리는 그런 일들도 자주 봅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앞으로 몇일동안 아침마다 우리교회가 고린도후서 10-13장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주요 하는 내용이 이야기가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변증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사도라고 하는 자신의 공명감 때문에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그런 개인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자신의 사도됨을 그렇게 주장하고 또 잘못된 가르침을 실날하게 비판하는 그런 이유가 사도 바울이 전했던 은혜의 복음과 건강하게 세워진 그 교회가 자칫하면 거짓교사와 거짓 가르침에 의해서 이단화 되어버릴 수 있는 그런 위험이 있기 때문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사도권이 인정되고 또 다시 인정되면서 사도 바울이 가르쳤던 그 복음이 올바르게 세워지고 교회를 세워야 했기에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한 사도 바울이 사도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거짓교사와 거짓가르침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거짓교사 거짓가르침이 어떤 모습을 띄는지 나누어 보고 우리가 이 시대가운데 거짓교사와 거짓가르침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지 그래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우리 가정을 보호하고 이 사회와 교회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인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올바른 교육과 올바른 영성은 교회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책임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거짓교사와 거짓 가르침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2-3절까지의 말씀을 참조해서 보면 거짓교사와 거짓 가르침은 예수그리스도를 교회로부터 떨어지게 만듭니다. 교회와 예수그리스도를 분리되겠끔 하고 그런 가르침을 하게 됩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어떤 곳에서 예수님은 모통이 돌이다. 교회는 그 모퉁이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그런 존재이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땅의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았을 때 교회와 예수그리스도는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며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또 교회의 주인이 예수그리스도이며. 교회의 창시자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완성자와 교회를 계속 세워 가시는 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에 나타난 베드로의 고백을 보고 기뻐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내가 그 반석위에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니" 이런 뜻입니다. 그런 것을 보았을 때 교회의 시작과 교회를 계속해서 세워나가게 하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라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기서 사도 바울이 썼던 것 처럼 예수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입니다. 또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만나야 합니다.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를 썼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안에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신부되어 있는 교회의 정결함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중매한다는 것은 에스코트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버지가 딸을 잘 키워서 정결하고 깨끗하게 잘 키워서 결혼을 시킬 때, 신랑에게 정결하게 키운 딸을 에스코트에서 넘겨주듯이 사도바울이 자기의 임무를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잘 양육하고 진리로 정결하게 잘 보존해서 신랑되신 예수그리스도께 잘 에스코트하고자 하는 그런 열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열심은 자세하게 말해서 질투입니다. 혹시라도 거짓된 것이 와서 교회를 더럽히고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뜻을 향해가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돌릴까봐 이끌어 가는 그런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진리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진실함과 깨끗함에 대한 단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여기서 "진실함" 이것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추적해 보면 "한 방향으로 행해서 배가 향해가다"라는 단어로 연유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방향을 향하서 온 정성과 온 마음과 뜻을 다해서 예수그리스도께 달려가는 그런 헌신을 방향을 흩으러 뜨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깨끗함"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여기에서의 거룩함은 우리의 생활에서의 거룩함을 말하지만 교리의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이 처녀가 마치 자기의 정조를 지키면서 신랑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교회가 교리적으로 정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결함에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런 교회이어야 하는데 거짓교사들이 들어와서 예수님께 가야할 헌신과 영광과 마음을 살짝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자리를 잘 잡은 미국에서도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칭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10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예수라고 재림주라고 하는 분이 10명이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자기가 교주이기 때문에 교회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흥황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앞에 말씀을 듣는자나 전하는 자가 다 굴복해야 하는데 교주는 자기가 하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입니다. 자기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절대적인 자신을 절대화 하고 신격화 하고 더 높이 신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성경을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이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마음껏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교리를 만들어 내서 그것을 집중적으로 교육을 합니다. 그런 것들은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단의 역사를 보면 아주 정통적인 역사가 있죠. 존 스미스 2세가 몰론교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제가 JMS 정명섭 모임에 한번 가 보았거든요. 거기에 따라 다니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저도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직장 다닐 때 가보자고 해서 한번 가보았어요. 정명섭이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중얼중얼거려요. 그러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저분이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않고, 말도 저렇게 어눌한데, 굴에 들어가서 성경을 100독인지 200독인지 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근거로 성경을 자신들의 견해대로 해석을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는 예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정명섭을 올려놓고 그들을 자신의 선생님이라고 추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안보입니다. 전형적인 이단의 특성입니다. 어느 교회를 갔는데 예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메시지에 예수가 없다라고 한다면 물음표를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멀어지게 하고 예수를 가리우고 교회를 교회답지 않게 하는 것이 이단적인 가르침이고 이단입니다. 그런것 들을 우리가 정말 교회가운데 경계 해야하고 예수그리스도가 교회가운데 가리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냐면, 목사의 권위가 교회 전체를 주관하는 교회는 위험한 교회입니다. 그 분이 올바르게 주님 앞에 서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잘못된다면 교회에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교회안에 분명한 영적인 질서와 권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권위주의는 교회안에 뽑혀 나가야 됩니다.
두 번째로 거짓교사들은 교회의 건강한 교리를 혼돈시키는 그런 일을 합니다. 중복되는 말씀이지만 자세하게 나누어 보길 원합니다. 4절 말씀에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여기에서는 조롱조로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참 잘도 받는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와서 사도 바울이 전하지 않는 예수에 관해서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하지 않는 성령과 복음을 전했습니다. 진리를 혼동하게 합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그런 방법가운데 자칫 자신이 예수의 위치에 올라가는 가 하면 다른 예수를 소개함으로 올바른 예수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예수, 본문에는 또 다른 예수라고 말하고 있는데 언어를 보면 사도바울이 전한 예수와 라이벌이 되는 다른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참된 예수님의 대한 교리를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리는 지금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양성론.
예수그리스도는 이땅에 있어서 특이한 분이셨습니다. 100%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 100%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수치를 이야기 하면 틀린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100%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100% 인간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이단적인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가르쳤던 예수가 어떤 예수인지 바울학자나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를 해서 발표를 하고 합니다. 바울 신학의 아주 권위자라고 할수 있는 F. S. 브루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브루스가 고린도교회가 거짓교사로서 배웠던 예수가 어떠한 예수인가 추정을 하면서 영지주의적 예수였을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영지주의라고 하면 그 당시에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이분화된 영적인 세계 이데아를 바탕으로 참된 것이고 거룩한 것이지만 메타나 물질의 세게는 추악한 것이고 포악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와 연합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했느냐면 영적인 것은 다 선하고 아름답고, 육적인 것은 천하고 더러운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영지주의자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했느냐면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어떻게 입을 수 있었겠는가 하며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육의 몸으로 존재한 것은 잠깐 나타났을 것이고 현현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육을 입고 30년 동안 존재했던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단입니다. 그런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쳤습니다.
또 왈프 마틴이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이 부분을 아주 자세하게 일곱가지의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하는 것을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예수그리스도는 걸어다니면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소개했을 거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 당시에 보면 돌아다니면서 예언을 이야기 하고 기적을 일으키며서 그들로부터 사례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다니면서 예언을 하고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일으키는 디바인맨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 디바인 맨이라고 하였을 때 100% 인간이며, 100% 신이다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사람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포지션을 취하던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와 다르게 이야기 했다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100% 여호와 하나님, 100% 인간, 200의 예수그리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그러합니다. 이것이 정통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난 것은 어떠한 아름다움과 어떠한 기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단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영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영이라고 할 때 왈프마틴의 말을 빌어보면 사도바울이 전한 성령,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일으키는 영을 가르쳤을거라고 그 사람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영, 우리가 영성을 추구할 때 잘못된 영을 추구할 때가 많습니다. 또 겉에 드러난 영을 쫓다가 패가 망신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 제가 봤습니다. 저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한 진리 밖에서 이러한 능력만 쫓아다니다가 사단의 영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영도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고 예언을 말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이단의 특징을 보면 새로운 가르침을 한 다음에 꼭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신유와 기적과 표시입니다. 그런 기적을 일으키면서 이상한 가르침을 하니깐 사람들이 현혹됩니다. 성경은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문제에 급급해서 그것을 쫓아 다닙니다. 다른 영을 받는지도 모르고서 말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과 악력의 차이는 생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은 능력을 주셔서 병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죄에 대해서, 의의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깨우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의 복음과 구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듣지만 이성적으로 다 받아들일 수 없기에 성령께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게 하고 믿게 하고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죄의 해결책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라는 것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런 다음에 복음에 견고한 역사 후에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신유도 허락해 주시고 성령의 은사들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건전한 성령의 역사가 빠져 있고 능력만 쫓아다니다가는 패가망신합니다. 조심하십시오. 때가 점점 악해져 가고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자기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급급해서 능력을 쫓아다닌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가 파괴되는 결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또 다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에 의해서 우리의 행위가 조금도 끼어서는 안되는 오히려 그것은 복음을 오염시키고 구원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내가 구원 받는데 내 행위가 첨가되어야 만이 속이 편하거든요. 내가 뭔가를 공헌을 해야만이 구원을 받는다라고 그래야만이 안도감을 위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으로 가능합니다. 사도바울이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몰래 들어온 사람이 이 구원의 뭔가의 행위를 첨가해야만 구원을 받는 것 처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단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구원 받고 우리가 진심으로 거듭났다면 우리가 현재 사는 모습이 좀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구원의 확신과 이러한 것이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행위를 자꾸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행위를 못할 때 구원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 생각합니다.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강박관념속에 박히게 됩니다. 헌금이라도 많이 해야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순수한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구원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행위의 문제는 구원 이후에 문제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사람들을 초청할 때 담배 끊고 오라고 하지 마세요. "피면서 오십시오, 교회 들어올 때만 잠깐 꺼 주시면 됩니다 . " 라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담배피고 술 먹는 것 때문에 자꾸 복음을 못 듣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 이후에 문제입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구원 받습니다.
C. S 루이스라고 하는 유명한 평신도신학자이자, 교수였던 그는 평생 꼴초였습니다. 그래도 다 구원 받고 하늘나라 갑니다. 청교도적인 우리의 신앙은 참 좋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신앙을 정경하게 하기 때문에 참 좋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런 모습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복음으로 나가는데 많은 경우에 방해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에게 강요할 문제이지 구원 받기 이전의 사람에게 강조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복음의 순수성을 우리가 잘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 네가지를 보면서 정통적으로 이단을 규명하는 기준과 잣대가 있습니다.
네가지의 잣대가 있습니다. 여기서 벌써 2가지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기독론에 있어서 벗어나면 이단입니다.
기독론은 이전에 말한 양성론입니다. 100% 여호와 하나님, 100% 인간. 종교혁명가로서 인성만 강조하던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신론만 강조하던지 하면 이단입니다. 동일하게 신성과 인성을 강조하는 것이 정통 기독론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상 나타났던 이단이 여기에서 넘어졌습니다.
두 번째가 삼위일체론입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안에 삼위일체에 대한 혼란이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한학기를 공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 아들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공동체로 함께 존재하는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세분이십니다. 삼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하시면서, 한 목적과 하나의 뜻과 한 목표대로 함께 활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입니다. 우리가 구약 창세기에 보면 벌써 그때 "우리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벌써 그때 함께 협력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도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표를 잡고 아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도와 성령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것을 믿게 하시고 깨달게 하신 공동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 동등한 위치로 일하십니다. 이것을 벗어나면 이단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 같은대서 유일신을 믿는 그들이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과 같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을 새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번역해 내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요한복음 일장에 예수그리스도가 나오는데 거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소문자 god로 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문자 GOD가 아닙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여호와 하나님,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이 있고 그 가운데 위치로서 예수그리스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이단입니다. 아주 미묘하지만 명백한 이단입니다.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을 사용할 때도 성령을 어떤 에너지 정도로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오는 어떤 능력으로 본다면 이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성령을 쓸 때 인격명사를 썼습니다. 성령이 감성을 가지고 통곡하는 여호와 하나님 성령입니다. 성령여호와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 골고루 동일한 위상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단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런 부분에서 분명하게 신학적으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 세 번째로 구원론입니다.
십자가 이외에 다른 구원을 이야기 하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하 아버지께로 올 수 있는 것은 나를 통해서만이라는 것을 말씀하셨고 또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준적이 없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다원주의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종교의 다원주의가 굉장히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잘 받아들여 집니다. 실제로 우리 생각에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종교생활을 잘하는 모든 분들을 다 구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무명의 익명의 예수그리스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익명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다라고 합니다. 얼마나 휴머니스트적이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지 모릅니다. 저도 그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 저도 인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사악하게 사는 사람들은 둘째치고 다른 어떤 종교에서 신실하고 착하게 이타적으로 사는 사람들, 다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고민을 했습니다. 저의 생각과 성경의 생각과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성경의 생각 중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성경의 생각을 취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들을 다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설교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한번도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은 다 지옥 갑니까"
그에 대한 정답은 "나는 모릅니다"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도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 너희에 알 바 아니다 "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할 자는 구원하고 멸할 자는 멸하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침묵하는데 자기는 끝까지 알려고 하니깐 이단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침묵하면 우리도 침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꾸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자기의 이성적인 호기심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않는 것을 계속해서 추정하다 보면 이단으로 빠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만큼만 믿으면 됩니다. 대단한 겸손이고 진리의 순결함을 유지하는 그런 방법입니다. 성경에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정경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는데 이 외에 다른 것을 성경의 권위와 함께 놓으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열어주고 성경보다 더 위대한 말을 받아서 기록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지 성경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고린도 전서 후서 중간에 잃어버린 성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썼던 잃어버린 편지가 있습니다. 지금 그것이 사해 사방에서 발견되었다고 합시다. 보니깐 이 고린도 전서 후서보다도 더 은혜로운 풍성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 같아요, 그러면 이것을 성경에 끼어 넣어야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이 이상으로 성경에 추가될 내용은 없다. 구원에 이르는데 충분하고 이땅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교육하기에 충분하다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이외에 다른 것을 경으로 인정하거나 성경의 말씀보다도 권위를 준다면 다 이단입니다. 교주의 말이 아무리 뛰어났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에서 아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이 네가지의 잣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가 타락한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거짓의 교사들은 마치 자신들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서 사단의 일을 합니다. 사단이 흉칙하게 "나는 사단이다"라고 절대 일하지 않습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납니다. 교회를 가장 좋아하고 교회를 가장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교회를 망가트리는 것이 사단의 일입니다.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단에 쓰임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단의 영향권 앞에 우리가 깨어서 사단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의 순수함과 정결함을 유지하고 신랑되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은 성도의 공동체입니다. 건강한 진리를 배우고 지키는 일에 힘쓰므로 이단 사설에서 우리 자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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