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하나님이 하셨다
본문
오늘 이 시간에는 "눈물과 기쁨",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눈물과 기쁨". 여러분 다 기쁘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쁘게 살기를 원치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기쁨은 누가 맛볼 수 있느냐 진정한 기쁨은 누가 가질 수 있느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그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은 원하면서도 눈물은 싫어합니다. 눈물과 기쁨은 정비례합니다. 눈물 없이는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눈에 눈물이 없어요. 죄를 짓고 회개하는 눈물이 없어요.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하고 또 자식들을 과외도 많이 시키고 공부도 많이 시키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가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걱정은 하지만 그러나 정말로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애국자가, 애국의 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제자를 위해서 우는 스승의 눈물도 없고, 남편을 위해서 우는 아내의 눈물이 많지 않고, 그뿐이 아닙니다. 영혼을 위해서 우는 전도자의 눈물이 너무나 많이 식어졌다 그 말이에요.
시편 126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됨을 감격해서 노래한 시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도 8 15 이전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청년이나, 또 만주나 일본 땅에서 8 15 해방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었던가 가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저도 그때 5살이었습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만세! 만세!", 기뻐하고 감격하고 울면서 "만세! 만세!". 왜 그렇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 만세!" 기쁨의 소리를 외쳤을까 35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너무나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 후에 오는 그 해방의 기쁨과 해방의 감격을 크게 느끼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감동이 오늘 본문 시편 126편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우리 나라가 일본 사람들에게 35년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난 후에도 그렇게 기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자그마치 70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으니, 70년 동안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그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가 되어서 고통을 당하는 눈물을 흘리다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 그 노래가 시편 126편인 것입니다. 이런 감격과 기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는 수고와 아픔이 있어야 더 기쁨은 더 큰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IMF라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눈물과 땀을 흘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감격적인 기쁨은 절대로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IMF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더 좋은 일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 기쁨과 감격이 올 수가 없다고요. 우리가 지금 어려운 때에 우리가 눈물 흘리고 땀 흘리고 이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애를 쓰고 나가는 사람, 그때는 우리가 정말로 고통과 아픔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 그때는 진짜 감격할 것입니다. 진짜 기쁨이 오고, 진짜 눈물이 있는 그런 삶을 우리가 맛보고 살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감격의 기쁨을 맞이할 날은 그렇게 눈물 흘리고 정말로 땀흘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눈물 흘리며 시를 뿌려야 될 것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눈물의 때를 어떻게 지혜롭게 보내야 할까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까 그리고 어떤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가야 할까 함께 생각해보면서 힘을 얻는 우리 모두 되십시다.
첫째로,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행운과 행복을 착각합니다. 그러나 행운과 행복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행운은 아무런 수고함이 없이 우연히 거져 얻어질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행운이 절대로 행복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행운처 럼 오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많이 애쓰고 또 많이 수고하고 때로는 눈물도 많이 흘리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에게 행복이 오는 거예요. 마태 복음 5장 4절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일하는 수고가 있어야 됩니다. 날마다 수고의 땀을 흘리는, 수고의 눈물 흘리는 그런 삶이 있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찾지 아니한다면, 신세타령만 한다면, 그는 결코 내일의 기쁨을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직할 수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일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애쓰고 수고하는 땀흘릴 때 그의 삶이 지금 물질은 혹 부족할지라도, 그의 삶 자체는 건강한 삶이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할 때도 필요합니다. 좋은 직장 다닐 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중요한 것은 뭐냐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세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뭐냐 그의 삶 자체가 건강해야 된다 그 말이에요. 건강하게 살아가야 된다 그 말이에요.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땀을 흘려야지요. 수고의 땀을 흘려야지요.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지요. 그것이 대가가 오던 안 오던 건강한 일, 정직한 일, 선한 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위해서 우리가 땀흘리고 애쓴다면, 그 자체가 건강한 삶인 것입니다.
행복한 변화를 바라며 또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은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용서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20살 전까지는 망나니였어요. 술주정뱅이였어요. 방탕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어요. 방탕한 아들을 보지 아니하고 이제 변화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끊임없이 기도했어요. 수고의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성 어거스틴을 바꾸어 주셨어요. 어거스틴을 변화시켰어요. 구원받게 했어요. 변화된 삶을 살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성자 어거스틴으로 바꾸어 질 수가 있었어요.
이 사회는 지금 청소년이 잘못되었다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학교가 잘못되었다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꾸어서 스승은 제자를 위해서 얼마만큼 눈물을 흘렸는지, 그뿐이 아닙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돼요. 부자가 된 사람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봐 줄줄 알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릴 줄 알고, 지나가다가 장애자가, 불구자가 어렵게 구하고 있으면, 돈 한푼 던져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위해서 울 수 있는 눈물이 있다면, 누가 유익하냐 돈을 주고 우는 사람이 돈 몇 푼 받는 사람보다 유익할 줄 믿습니다.
메마른 심령이 울 수 있었다. 메마른 심령에 눈물이 날 수 있었다. 눈물은 치료 에요. 마음의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눈물은 육신의 병도 치료받을 수 있어요. 눈물은 생활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도와주는 마음. 또 눈물을 흘리며 수고한 사람만이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수고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시편 65편 9-10절입니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울면서도 새 방안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는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땀의 수고가 있을 때만이 풍성한 추수의 결실을 기대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땀흘려 수고하고 일하면서 될수록 많은 씨앗을 뿌려야 됩니다. 그 하나하나를 믿음으로 심을 때, 장차 기쁨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직한 삶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라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분명히 자연을 통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다고요. 성경 속에서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납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고, 안 심으면 안 나고, 그렇잖아요.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고, 안 심으면 안 나고,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기쁨으로 거두기 위해서는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어도, 우리가 고통을 당할지라도, 우리는 씨를 심어야 돼요. 씨를 심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그래도 참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우리 나라에 뭐 지하자원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에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들이 잡수실 것 못 잡수시면서 허리 졸라매고, 못 입으시면서 못 생활하시면서 쓰실 것 못 쓰시면서 눈물 흘리면서 자식을 위해서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 그래서 얼마나 얼마나 눈물 흘렸는지 몰라요.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들이 그 어려운 때에 그렇게 자식을 위해서,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심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줄 믿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땀흘려 일하는 것을 행인들이 보고 칭찬했습니다. "야, 저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어. " 그것을 가만히 나무 위에서 보고 있던 원숭이가 "아, 저렇게 땀흘리고 일하면 칭찬하는구나. " 그래서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다가 다 던졌어요. 다 던지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원숭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쳐다보면서 원숭이를 다 욕하고 가더라는 거예요.
땀흘린다고 다 칭찬 받는 게 아니에요. 누구를 위해서 땀흘렸느냐 무엇을 위해서 땀흘렸느냐 이것이 너무나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땀흘려 일하되 무익한 수고를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뢰와 정직의 씨앗을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정직한 일에는 정직한 보상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고 한탕주의로 벌이는 일은 위험과 낭패와 실망과 불명예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그것이 소득이 적을지라도, 정직한 사람이 오래 갈 수 있으며, 또 신뢰의 바탕 위에 살아가는 사람이, 그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복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11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 내가 하는 일은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거짓으로 속여서 만든 상품은 나도 망하게 하고 남도 망하게 하지만, 믿음의 상품은 모두를 살리는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점점 번창할 수 있습니다. 정직한 것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물로 전도의 씨를 뿌리면, 영광과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시편 37편 26절에 말씀하십니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주님 말씀했어요.
열심히 전도하면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고 그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고, 그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 그뿐만 아니라 하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얻게 하시고 땅에서 그 자손이 잘 되는 축복을 받게 만들어 주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길은 때로는 힘들고 종종 막히는 일도 있지만, 그 눈물의 수고는 영원한 보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믿음의 씨앗을 우리가 더 많이 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코 거두게 하시되 30배, 60배, 100배, 하늘의 면류관으로, 이 땅에서 행복하고 형통한 것으로, 더더군다나 자녀가 잘 되는 것으로 거두게 만들어 주셔서 날마다 기쁨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로, 희망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눈물로 뿌린 씨앗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거름을 충분히 주어야 됩니다. 또 잡초를 제거해야 됩니다. 또 날마다 애써 가꾸어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은 후에는 그것이 악의 침해받지 않고 잘 자라도록 잘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초와 잡초를 다 뽑아 주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곡식을 심으면 이어서 많은 잡초가 나서 어우러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러한 잡초나 독초를 부지런히 제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요. 왜요 그 잡초가 더 잘 자라니까 그 잡초에 기운이 눌려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믿음과 시기와 열등감의 독초가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잡초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부지런히 뽑아야 돼요. 이런 것들을 뽑아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 마귀가 자꾸 우리를 억눌러요. 좌절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낭패하고 이삭을 포기하게 하고, 다 뽑아주어야 돼요. 그렇게 뽑아 주었으면 그 다음에 다시 거름을 주어야 돼요.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그랬잖아요. 농사지을 때 풀이 막 잡초가 우거져 있는데 거기에다가 거름을 주는 사람, 비료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것을 다 뽑아야지. 그래서 곡식만 있을 때 거기에다가 거름을 주는 거예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속에서 내 마음에 이 잘못된 것을 다 뽑아 버렸다면, 잡초를 다 뽑아버렸다면 뭘 해야 됩니까 이제 희망의 거름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식물도 주인이 얼마나 사랑하며 정성으로 가꾸어 가느냐에 따라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고 더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시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일은 마치 다람쥐의 쳇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모두가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의 거름을 주어야 돼요. 우리는 날마다 희망의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잘 된다. 나도 잘 살 수 있다. 나도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건강하다. 우리 집은 정말로 행복하다. 내가 하는 말이 형통하게 된다. 잘 된다. 우리 나라는 정말로 경제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이 IMF 극복할 수가 있다. 이제는 세계의 모든 경제대국들과 어깨를 겨루어서 당당하게 이길 수가 있다. " 이런 언어들 모두가 다 희망의 거름인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희망의 거름을 자기가 막 주어야 돼요. 자기 가정에도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자기 기업에도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자기 나라에도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우리 교회에도 모든 성도가, 모든 제직이, 한 마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모아서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20대 초반이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이제 민정 이양하는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가지고 취임사에서 나는 다른 말은 다 잊어버렸지만, 이 두 말은 안 잊어버렸어요. "우리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한번 잘 살아 봅시다. " 직장 생활하면서 야간대학 다니는 그 가난하고 못 먹고 찌들고 고생할 때 저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라디오에서 중계방송을 듣는 순간 나는 일손을 딱 놓았어요. 가슴이 막 떨려서, 감격한 거예요. 두 손을 들었어요. 말을 못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너무 감격하니까 눈물이 팍 쏟아지더라구요. 그리고 얼마나 얼마나 제가 소리를 질렀는데요. "그래, 나도 잘 살 수 있다고,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나는 여지껏 그때까지 우리 부모님이나, 우리 주위의 친척들이나, 선배들이나, 초등학교에서나, 중학교에서나, 고등학교에서나, 야간대학에서나 누구도 우리 나라가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어떠한 정치인들도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렇게 말씀했어요. "우리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봅시다. "
이것이 그때 당시에 최성규 청년에게 부어진 희망의 거름입니다. 희망의 거름. 그 말 한 마디가 나에게 희망의 거름이 되었다고요. 인생을 바라볼 때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눈이 더 넓어졌어요. 커졌어요. 희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이 많은 간증이라도 하는 지 몰라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는 우 리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인생에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은, 모든 약속은 우리 모두가 다 영혼이 잘 되게 하고 범사가 형통하게 하고 강건하게 하는 희망의 거름이라구요. 성경은 들고 다니는 책이 아니라고 요. 각자에게 부어주는 거예요. 들려주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넷째로, 기쁨의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수필가 찰스 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 한번의 웃음은 수백 가지의 신음과 거래할 만한 가치가 있다. " 한 번의 웃음, 우리가 수고하며 흘린 눈물은 단 한번의 기쁨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35년 동안 일본 나라에게 나라를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리고 나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만났을 때 그 날의 그 기쁨은, 그날의 감격은 35년 동안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고통을 다 일시에 잊어버렸다 그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70년 포로 생활할 때에 얼마나 고통 당했냐 그 말입니다.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켜서 다시 이스라엘로 회복시켜줄 때 그들이 기뻐하며 불렀던 노래가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기쁨은 눈물에 비례해서 커지는 법인 것입니다. 시편 126편 5-6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더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땀을 더 많이 흘릴 뿐만 아니라, 정상에 오른 기쁨도 그만큼 더 크게, 더 많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최종의 결실을 바라보며 내내 인내하며 수고한 사람은 그것을 얻었을 때, 최후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땀흘린 농부가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수고한 결과와 잘 된 것을 볼 때의 기쁨은 단순한 구경꾼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직장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가정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교회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구경꾼은 기쁨이 없습니다. 참여한 사람, 땀흘린 사람, 눈물 흘린 사람, 수고한 사람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기쁨이 넘치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눈물 뒤의 기쁨은 우리의 행복의 원천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노동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모든 수고를 잊고도 남을 만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인이 자식을 해산하면서 흘리는 고통의 눈물은 해산 직후에 그 자기가 낳은 새 생명을 보는 순간 수고와 아픔은 일시에 끝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용서와 은혜를 얻은 뒤에 감사와 기쁨으로 변할 수가 있습니다. 제자가 잘 되기 위해서 애타하며 흘리는 스승의 눈물은 졸업과 함께 그 잘 성장한 제자를 바라보면서 감격과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65편 11-13절입니다.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 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우리는 날마다 수고의 눈물을 흘리고,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희망의 거름을 주고, 더 큰 결실을 얻는, 더 큰 기쁨을 얻는 행복의 참 맛을 아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기쁘게 살기를 원치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기쁨은 누가 맛볼 수 있느냐 진정한 기쁨은 누가 가질 수 있느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그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은 원하면서도 눈물은 싫어합니다. 눈물과 기쁨은 정비례합니다. 눈물 없이는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눈에 눈물이 없어요. 죄를 짓고 회개하는 눈물이 없어요.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하고 또 자식들을 과외도 많이 시키고 공부도 많이 시키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가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걱정은 하지만 그러나 정말로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애국자가, 애국의 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제자를 위해서 우는 스승의 눈물도 없고, 남편을 위해서 우는 아내의 눈물이 많지 않고, 그뿐이 아닙니다. 영혼을 위해서 우는 전도자의 눈물이 너무나 많이 식어졌다 그 말이에요.
시편 126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됨을 감격해서 노래한 시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도 8 15 이전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청년이나, 또 만주나 일본 땅에서 8 15 해방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었던가 가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저도 그때 5살이었습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만세! 만세!", 기뻐하고 감격하고 울면서 "만세! 만세!". 왜 그렇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 만세!" 기쁨의 소리를 외쳤을까 35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너무나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 후에 오는 그 해방의 기쁨과 해방의 감격을 크게 느끼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감동이 오늘 본문 시편 126편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우리 나라가 일본 사람들에게 35년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난 후에도 그렇게 기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자그마치 70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으니, 70년 동안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그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가 되어서 고통을 당하는 눈물을 흘리다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 그 노래가 시편 126편인 것입니다. 이런 감격과 기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는 수고와 아픔이 있어야 더 기쁨은 더 큰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IMF라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눈물과 땀을 흘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감격적인 기쁨은 절대로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IMF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더 좋은 일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 기쁨과 감격이 올 수가 없다고요. 우리가 지금 어려운 때에 우리가 눈물 흘리고 땀 흘리고 이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애를 쓰고 나가는 사람, 그때는 우리가 정말로 고통과 아픔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 그때는 진짜 감격할 것입니다. 진짜 기쁨이 오고, 진짜 눈물이 있는 그런 삶을 우리가 맛보고 살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감격의 기쁨을 맞이할 날은 그렇게 눈물 흘리고 정말로 땀흘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눈물 흘리며 시를 뿌려야 될 것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눈물의 때를 어떻게 지혜롭게 보내야 할까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까 그리고 어떤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가야 할까 함께 생각해보면서 힘을 얻는 우리 모두 되십시다.
첫째로,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행운과 행복을 착각합니다. 그러나 행운과 행복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행운은 아무런 수고함이 없이 우연히 거져 얻어질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행운이 절대로 행복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행운처 럼 오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많이 애쓰고 또 많이 수고하고 때로는 눈물도 많이 흘리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에게 행복이 오는 거예요. 마태 복음 5장 4절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일하는 수고가 있어야 됩니다. 날마다 수고의 땀을 흘리는, 수고의 눈물 흘리는 그런 삶이 있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찾지 아니한다면, 신세타령만 한다면, 그는 결코 내일의 기쁨을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직할 수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일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애쓰고 수고하는 땀흘릴 때 그의 삶이 지금 물질은 혹 부족할지라도, 그의 삶 자체는 건강한 삶이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할 때도 필요합니다. 좋은 직장 다닐 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중요한 것은 뭐냐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명예와 권세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뭐냐 그의 삶 자체가 건강해야 된다 그 말이에요. 건강하게 살아가야 된다 그 말이에요.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땀을 흘려야지요. 수고의 땀을 흘려야지요. 수고의 눈물을 흘려야지요. 그것이 대가가 오던 안 오던 건강한 일, 정직한 일, 선한 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위해서 우리가 땀흘리고 애쓴다면, 그 자체가 건강한 삶인 것입니다.
행복한 변화를 바라며 또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은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용서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20살 전까지는 망나니였어요. 술주정뱅이였어요. 방탕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어요. 방탕한 아들을 보지 아니하고 이제 변화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끊임없이 기도했어요. 수고의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성 어거스틴을 바꾸어 주셨어요. 어거스틴을 변화시켰어요. 구원받게 했어요. 변화된 삶을 살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성자 어거스틴으로 바꾸어 질 수가 있었어요.
이 사회는 지금 청소년이 잘못되었다 말들을 많이 합니다. 학교가 잘못되었다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꾸어서 스승은 제자를 위해서 얼마만큼 눈물을 흘렸는지, 그뿐이 아닙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돼요. 부자가 된 사람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봐 줄줄 알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릴 줄 알고, 지나가다가 장애자가, 불구자가 어렵게 구하고 있으면, 돈 한푼 던져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위해서 울 수 있는 눈물이 있다면, 누가 유익하냐 돈을 주고 우는 사람이 돈 몇 푼 받는 사람보다 유익할 줄 믿습니다.
메마른 심령이 울 수 있었다. 메마른 심령에 눈물이 날 수 있었다. 눈물은 치료 에요. 마음의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눈물은 육신의 병도 치료받을 수 있어요. 눈물은 생활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도와주는 마음. 또 눈물을 흘리며 수고한 사람만이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수고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시편 65편 9-10절입니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울면서도 새 방안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는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땀의 수고가 있을 때만이 풍성한 추수의 결실을 기대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땀흘려 수고하고 일하면서 될수록 많은 씨앗을 뿌려야 됩니다. 그 하나하나를 믿음으로 심을 때, 장차 기쁨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직한 삶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라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분명히 자연을 통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다고요. 성경 속에서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납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고, 안 심으면 안 나고, 그렇잖아요.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고, 안 심으면 안 나고,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기쁨으로 거두기 위해서는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어도, 우리가 고통을 당할지라도, 우리는 씨를 심어야 돼요. 씨를 심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그래도 참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우리 나라에 뭐 지하자원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에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들이 잡수실 것 못 잡수시면서 허리 졸라매고, 못 입으시면서 못 생활하시면서 쓰실 것 못 쓰시면서 눈물 흘리면서 자식을 위해서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 그래서 얼마나 얼마나 눈물 흘렸는지 몰라요.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들이 그 어려운 때에 그렇게 자식을 위해서,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심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줄 믿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땀흘려 일하는 것을 행인들이 보고 칭찬했습니다. "야, 저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어. " 그것을 가만히 나무 위에서 보고 있던 원숭이가 "아, 저렇게 땀흘리고 일하면 칭찬하는구나. " 그래서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다가 다 던졌어요. 다 던지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원숭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쳐다보면서 원숭이를 다 욕하고 가더라는 거예요.
땀흘린다고 다 칭찬 받는 게 아니에요. 누구를 위해서 땀흘렸느냐 무엇을 위해서 땀흘렸느냐 이것이 너무나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땀흘려 일하되 무익한 수고를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뢰와 정직의 씨앗을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정직한 일에는 정직한 보상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고 한탕주의로 벌이는 일은 위험과 낭패와 실망과 불명예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그것이 소득이 적을지라도, 정직한 사람이 오래 갈 수 있으며, 또 신뢰의 바탕 위에 살아가는 사람이, 그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복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11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 내가 하는 일은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거짓으로 속여서 만든 상품은 나도 망하게 하고 남도 망하게 하지만, 믿음의 상품은 모두를 살리는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점점 번창할 수 있습니다. 정직한 것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물로 전도의 씨를 뿌리면, 영광과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시편 37편 26절에 말씀하십니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주님 말씀했어요.
열심히 전도하면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고 그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고, 그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 그뿐만 아니라 하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얻게 하시고 땅에서 그 자손이 잘 되는 축복을 받게 만들어 주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길은 때로는 힘들고 종종 막히는 일도 있지만, 그 눈물의 수고는 영원한 보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믿음의 씨앗을 우리가 더 많이 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코 거두게 하시되 30배, 60배, 100배, 하늘의 면류관으로, 이 땅에서 행복하고 형통한 것으로, 더더군다나 자녀가 잘 되는 것으로 거두게 만들어 주셔서 날마다 기쁨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로, 희망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눈물로 뿌린 씨앗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거름을 충분히 주어야 됩니다. 또 잡초를 제거해야 됩니다. 또 날마다 애써 가꾸어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은 후에는 그것이 악의 침해받지 않고 잘 자라도록 잘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초와 잡초를 다 뽑아 주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곡식을 심으면 이어서 많은 잡초가 나서 어우러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러한 잡초나 독초를 부지런히 제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요. 왜요 그 잡초가 더 잘 자라니까 그 잡초에 기운이 눌려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믿음과 시기와 열등감의 독초가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잡초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부지런히 뽑아야 돼요. 이런 것들을 뽑아내지 아니하면 우리는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 마귀가 자꾸 우리를 억눌러요. 좌절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낭패하고 이삭을 포기하게 하고, 다 뽑아주어야 돼요. 그렇게 뽑아 주었으면 그 다음에 다시 거름을 주어야 돼요.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그랬잖아요. 농사지을 때 풀이 막 잡초가 우거져 있는데 거기에다가 거름을 주는 사람, 비료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것을 다 뽑아야지. 그래서 곡식만 있을 때 거기에다가 거름을 주는 거예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속에서 내 마음에 이 잘못된 것을 다 뽑아 버렸다면, 잡초를 다 뽑아버렸다면 뭘 해야 됩니까 이제 희망의 거름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식물도 주인이 얼마나 사랑하며 정성으로 가꾸어 가느냐에 따라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고 더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시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일은 마치 다람쥐의 쳇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모두가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의 거름을 주어야 돼요. 우리는 날마다 희망의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잘 된다. 나도 잘 살 수 있다. 나도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건강하다. 우리 집은 정말로 행복하다. 내가 하는 말이 형통하게 된다. 잘 된다. 우리 나라는 정말로 경제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이 IMF 극복할 수가 있다. 이제는 세계의 모든 경제대국들과 어깨를 겨루어서 당당하게 이길 수가 있다. " 이런 언어들 모두가 다 희망의 거름인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희망의 거름을 자기가 막 주어야 돼요. 자기 가정에도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자기 기업에도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자기 나라에도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우리 교회에도 모든 성도가, 모든 제직이, 한 마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모아서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20대 초반이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이제 민정 이양하는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가지고 취임사에서 나는 다른 말은 다 잊어버렸지만, 이 두 말은 안 잊어버렸어요. "우리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한번 잘 살아 봅시다. " 직장 생활하면서 야간대학 다니는 그 가난하고 못 먹고 찌들고 고생할 때 저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라디오에서 중계방송을 듣는 순간 나는 일손을 딱 놓았어요. 가슴이 막 떨려서, 감격한 거예요. 두 손을 들었어요. 말을 못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너무 감격하니까 눈물이 팍 쏟아지더라구요. 그리고 얼마나 얼마나 제가 소리를 질렀는데요. "그래, 나도 잘 살 수 있다고,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나는 여지껏 그때까지 우리 부모님이나, 우리 주위의 친척들이나, 선배들이나, 초등학교에서나, 중학교에서나, 고등학교에서나, 야간대학에서나 누구도 우리 나라가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어떠한 정치인들도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렇게 말씀했어요. "우리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봅시다. "
이것이 그때 당시에 최성규 청년에게 부어진 희망의 거름입니다. 희망의 거름. 그 말 한 마디가 나에게 희망의 거름이 되었다고요. 인생을 바라볼 때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눈이 더 넓어졌어요. 커졌어요. 희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이 많은 간증이라도 하는 지 몰라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는 우 리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인생에 희망의 거름을 막 주어야 돼요.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은, 모든 약속은 우리 모두가 다 영혼이 잘 되게 하고 범사가 형통하게 하고 강건하게 하는 희망의 거름이라구요. 성경은 들고 다니는 책이 아니라고 요. 각자에게 부어주는 거예요. 들려주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넷째로, 기쁨의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수필가 찰스 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 한번의 웃음은 수백 가지의 신음과 거래할 만한 가치가 있다. " 한 번의 웃음, 우리가 수고하며 흘린 눈물은 단 한번의 기쁨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35년 동안 일본 나라에게 나라를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리고 나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만났을 때 그 날의 그 기쁨은, 그날의 감격은 35년 동안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고통을 다 일시에 잊어버렸다 그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70년 포로 생활할 때에 얼마나 고통 당했냐 그 말입니다.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켜서 다시 이스라엘로 회복시켜줄 때 그들이 기뻐하며 불렀던 노래가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기쁨은 눈물에 비례해서 커지는 법인 것입니다. 시편 126편 5-6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더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땀을 더 많이 흘릴 뿐만 아니라, 정상에 오른 기쁨도 그만큼 더 크게, 더 많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최종의 결실을 바라보며 내내 인내하며 수고한 사람은 그것을 얻었을 때, 최후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땀흘린 농부가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수고한 결과와 잘 된 것을 볼 때의 기쁨은 단순한 구경꾼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직장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가정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교회에도 구경꾼이 많아요. 구경꾼은 기쁨이 없습니다. 참여한 사람, 땀흘린 사람, 눈물 흘린 사람, 수고한 사람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기쁨이 넘치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눈물 뒤의 기쁨은 우리의 행복의 원천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노동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모든 수고를 잊고도 남을 만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인이 자식을 해산하면서 흘리는 고통의 눈물은 해산 직후에 그 자기가 낳은 새 생명을 보는 순간 수고와 아픔은 일시에 끝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용서와 은혜를 얻은 뒤에 감사와 기쁨으로 변할 수가 있습니다. 제자가 잘 되기 위해서 애타하며 흘리는 스승의 눈물은 졸업과 함께 그 잘 성장한 제자를 바라보면서 감격과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65편 11-13절입니다.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 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우리는 날마다 수고의 눈물을 흘리고,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희망의 거름을 주고, 더 큰 결실을 얻는, 더 큰 기쁨을 얻는 행복의 참 맛을 아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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