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영적 해방의 전진
본문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었는데 해방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한문을 잘 아는 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해방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풀 해(解), 놓을 방(放), 다시 말해서 풀어놓는 것이 해방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일제 36년간 압박을 받다가 자유를 찾았기 때문에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도 해방시키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해방의 행진”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죽은 자는 구속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어떤 것에 의해서 구속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① 허물과 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왜냐하면 육신적으로는 호흡하면서 살아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는 이처럼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② 행악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이사야서 1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2) 죽은 자는 무덤에 넣고 돌로 막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도하며 다니시다가 자주 들린 곳이 나사로의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의 총애를 받던 나사로도 일단 죽게 되자 무덤에 넣고 돌로 막아버렸습니다.
3) 죽은 자는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시체가 썩는 냄새는 그 어떤 짐승이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합니다.
4) 죽은 자는 묶습니다.
죽은 사람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수족은 꽁꽁 묶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죽어서 구속되어 손발이 꽁꽁 묶이고 썩어 냄새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여호와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고 뱀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단순한 활자로만 읽으면 졸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믿음을 갖고 읽으면 힘이 솟구치고 능력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가깝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과 뜻을 알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2) 성전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가깝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제사를 드리던 성막 안에는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는 법궤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의 의복에 방울을 달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재빨리 죽은 제사장의 시신을 내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 가운데 제비를 뽑아 거기서 선출된 한 명의 제사장을 지성소에 들여보냈습니다.
시편 122편 1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성전에서는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려야지 장사를 하거나 오락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을 전부 내쫓았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마 21:12~13)
3)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악보와 음정이 틀릴지라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찬양하는 심령 속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게 됩니다.
처음 은혜를 받고 삼각산 통일봉에 올라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하는 찬송을 8시간 30분 동안 불렀습니다. 찬송 속에서 기도가 나왔으며 설교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찬송과 기도와 설교가 어울려졌을 때 영안이 밝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내려오는 길에 어느 꼽추처녀를 만났는데 왜 그렇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찬송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가깝게 되자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그녀의 척추가 펴져서 고침 받는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둘째, 옮겨 놓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렀을 때 그의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을 옮겨 놓으라”(요 11:39)하고 말씀하시자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사로의 시신이 썩는 냄새였습니다. 이것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셋째, 큰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사망을 당한 곳, 절망을 당한 곳에서는 묵상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목청을 높여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요 11:44)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요 11:44)
기분이 나쁘거나 남을 정죄할 때에는 음성을 낮출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긴급을 요구할 때는 음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음성과 음성, 마음과 마음을 모아서 힘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마귀의 권세는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으로 묶였던 나사로가 예수님의 외침을 듣고 살아난 것처럼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다시 살아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되어야 모든 것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요3 1:2)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3장 6~7절과 로마서 8장 5~6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6~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요 8:5~6)
에스겔 골짜기에 아무 소망도 없는 뼈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예언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하고 묻자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겔 37:4~6)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뼈들에게 대언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 37:7~8)
에스겔이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하고 대언하자 그들의 영이 소생되어 큰 군대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겔 37:9~11)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는데 날마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은 앉은뱅이 거지는 걷기도 뛰기도 하면서 성전에 들어가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행 3:1~8)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경제적으로 묶여서 생활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이 살아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안 다시 말해서 신령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안이 열려서 하늘가는 밝은 길을 보게 될 때 이 세상에서 어떤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만나더라도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사는 형통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해방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풀 해(解), 놓을 방(放), 다시 말해서 풀어놓는 것이 해방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일제 36년간 압박을 받다가 자유를 찾았기 때문에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도 해방시키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해방의 행진”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죽은 자는 구속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어떤 것에 의해서 구속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① 허물과 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왜냐하면 육신적으로는 호흡하면서 살아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는 이처럼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② 행악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이사야서 1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2) 죽은 자는 무덤에 넣고 돌로 막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도하며 다니시다가 자주 들린 곳이 나사로의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의 총애를 받던 나사로도 일단 죽게 되자 무덤에 넣고 돌로 막아버렸습니다.
3) 죽은 자는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시체가 썩는 냄새는 그 어떤 짐승이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합니다.
4) 죽은 자는 묶습니다.
죽은 사람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수족은 꽁꽁 묶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죽어서 구속되어 손발이 꽁꽁 묶이고 썩어 냄새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첫째,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여호와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고 뱀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1)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단순한 활자로만 읽으면 졸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믿음을 갖고 읽으면 힘이 솟구치고 능력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가깝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과 뜻을 알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2) 성전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가깝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제사를 드리던 성막 안에는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는 법궤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의 의복에 방울을 달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재빨리 죽은 제사장의 시신을 내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 가운데 제비를 뽑아 거기서 선출된 한 명의 제사장을 지성소에 들여보냈습니다.
시편 122편 1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성전에서는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려야지 장사를 하거나 오락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을 전부 내쫓았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마 21:12~13)
3)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악보와 음정이 틀릴지라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찬양하는 심령 속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게 됩니다.
처음 은혜를 받고 삼각산 통일봉에 올라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하는 찬송을 8시간 30분 동안 불렀습니다. 찬송 속에서 기도가 나왔으며 설교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찬송과 기도와 설교가 어울려졌을 때 영안이 밝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내려오는 길에 어느 꼽추처녀를 만났는데 왜 그렇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찬송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가깝게 되자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그녀의 척추가 펴져서 고침 받는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둘째, 옮겨 놓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렀을 때 그의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을 옮겨 놓으라”(요 11:39)하고 말씀하시자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사로의 시신이 썩는 냄새였습니다. 이것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셋째, 큰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사망을 당한 곳, 절망을 당한 곳에서는 묵상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목청을 높여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요 11:44)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요 11:44)
기분이 나쁘거나 남을 정죄할 때에는 음성을 낮출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긴급을 요구할 때는 음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음성과 음성, 마음과 마음을 모아서 힘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마귀의 권세는 떠나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으로 묶였던 나사로가 예수님의 외침을 듣고 살아난 것처럼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다시 살아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되어야 모든 것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요3 1:2)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3장 6~7절과 로마서 8장 5~6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6~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요 8:5~6)
에스겔 골짜기에 아무 소망도 없는 뼈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예언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하고 묻자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겔 37:4~6)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뼈들에게 대언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 37:7~8)
에스겔이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하고 대언하자 그들의 영이 소생되어 큰 군대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겔 37:9~11)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는데 날마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은 앉은뱅이 거지는 걷기도 뛰기도 하면서 성전에 들어가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행 3:1~8)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경제적으로 묶여서 생활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이 살아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안 다시 말해서 신령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안이 열려서 하늘가는 밝은 길을 보게 될 때 이 세상에서 어떤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만나더라도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사는 형통한 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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