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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하나님이 붙들어 주실 때

본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의 형태,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이 바른 신앙일까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나 이 두 가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엄마와 어린 아이가 길을 건너려고 하고 있습니다. 파란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면서 있는데 엄마와 어린아이가 다투고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하고 아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엄마는 야단을 치면서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왜 엄마는 잡기 싫다는 아이의 손을 굳이 붙잡으려고 할까요 엄마의 품위를 위해서 입니까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입니다. 길을 건너는 곳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그 위험을 엄마가 감당해 주겠다는 의지입니다. 이처럼 엄마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을 때는 아이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라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약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강합니다.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엄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으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는 것이 마치 자유로운 것 처럼 생각합니다.
눅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의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중 아홉 사람은 고침을 받고 그냥 갔고 한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갔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이 한명에게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늘 이 구절을 읽을 때 마다 이 곳이 걸렸습니다. 감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감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9명의 문둥병자들은 문둥병 때문에 험악한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 고침 받았으니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자신의 의지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둥병만 고침 받으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필요할 때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내가 생각해서 필요 없으면 내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는 자신이 필요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잡고 필요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놓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명은 자신의 병이 낫게 된 것을 감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능력이 자신으로 하여금 살게 해 주실 줄을 믿은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는가 하면 건강할 때에도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감사했던 이 사람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언제나 주인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붙드느냐는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정성을 쏟았고 얼만큼 기도했느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셔야 산다는 고백과 행동,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자신을 구원하는 역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형태는 내가 주인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움직이고 붙드는 신앙이었기 때문에 늘 어려웠습니다.
환경을 변하게 해 달라고, 가정의 평안을 위해 남편이, 자식들이,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뿐 자신의 변화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 남을 변화 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왜 여호와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는지에 대해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나를 움직일 때에는 내 삶이 변화가 되어 내가 어떻게 하면 가정에 좋은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고, 자식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될까를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로 봅니다. 즉 자신의 변화를 요구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얘기해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미신입니다.
여러분 점쟁이나 무당에게 가서 점을 보면 그들이 조그마한 것이라도 알아 맞추면 그것이 신기해서 거기에 매달려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또 그들이 써준 부적을 집에 붙이기도 하고 자신의 몸 깊은 곳에 지니고 다닙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성경보다 더 귀하게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헌금 또한 엄청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신앙이 좋다고 얘기합니까 아닙니다. 미신을 좇는다고 합니다.
일본 요코하마 중앙사원에는'로봇스님'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밀려오는 사람들의 복을 미처 다 빌어주지 못하니 로봇스님에게 자신의 생일과 이름을 넣으면 그를 위해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 했다고 하지만 로봇스님 위로와 소망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위해 복을 빌어주기를 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미신을 좇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진 분이시기에 내가 순종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꼭 이루어 지기 때문에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내 경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표준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산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실 때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1. 약한자의 신앙입니다.
주님 앞에 나는 약한자이니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사람들에게도 나는 약하지만 우리 주님은 당하신 분이라고 주님을 증거하는 신앙입니다.
창32장에 야곱이 금의환향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에는 맨손이었지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많은 처자식과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과거의 원한을 가지고, 즉 아버지와 자신을 속이고 야곱이 복을 가로챈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닐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지고 형을 달래보지만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또 처 자식을 내세워 동정심을 유발시키려고 하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얍복강에 어쩔 수 없이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겠다고 그에게 찾아오셨지만 그의 환도뼈를 부러뜨렸습니다.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하고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때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에게 복을 달라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는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이스라엘'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건강한 몸이 아니라 불구자로 만들어 놓고는'이스라엘'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33장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붙들어 주시는자의 믿음을 가지고 형 에서를 만나러 갑니다.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환도뼈가 부러진 이스라엘은 절뚝거리면 형을 만나러 갑니다.
에서의 눈에 비치는 동생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에서의 생각에는 얼굴은 번지르하고 많은 재산을 거느리고 목에는 힘을 주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형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리고는 그 불구자의 몸으로 야곱은 형에게 간절히 절을 일곱 번이나 합니다. 그때 형의 마음에는 적개심이 사라지고 동정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를 끌어 안고 목놓아 울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생각에는 내가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때로는 낮추시고 약하게 만드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이스라엘'이라 불러 주시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야곱은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약한자로 만드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불러 주시면서 승리하게 하시고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약할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능한 팔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창4:26에 보면 셋이 에노스를 낳았고 그리고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죽을 수 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얼마나 위대한 사람입니까 고향과 친척과 본토를 떠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단지 하나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믿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남방으로 내려갔다가 자신의 부인을 팔아버렸습니다. 자신의 목숨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인도 이런 실패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한마디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간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된 의도이다"
창12장에서는 아브라함이 기근이 들때 살기 위해 애굽땅으로 간 것은 아브라함의 의지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이 자리로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셨을까요 이것은 아브라함을 약하게 만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의 신앙의 경력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기도도 많이 했고, 과거에는 봉사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신앙 관계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때요 구원의 날이로다"그러므로 기도를 해도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직분이나 신앙의 경력이 나를 지켜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능력도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엄마나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속상할 뿐입니다. 자식이 어떻게 되어도 남의 자식을 얘기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한계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 것 같아도 우리는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가 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너무 젊어 보여서 나이를 물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너무 젊게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뒤돌아 가실 때 그분이 80세 노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해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약해져야 합니다. 교만하면 안됩니다. 내 힘으로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광야 40년의 길을 걷게 하시는 것일까요 낮아지고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다 드러내 놓고 죄인임을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민14장에 보면 12명의 정탐꾼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는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떠납니다. 그리고 보고하기를 그 땅에 너무 좋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2명 가운데 10명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큰 성을 보니 못한다고 하고, 그들의 많은 군대를 보니 이길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 가운데도 많은 분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실패의 프로그램을 짜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고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못한다고 정해 놓고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근심하고 걱정하고 원망불평하다가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의 프로그램은 빨리 없애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공의 프로그램을 빨리 넣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할 수 있슴을 믿습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실패를 자초하도록 아브라함처럼 사전에 이런 길로 인도해 가실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약함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영혼 평안하다고 하면서도 평안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는 천국백성이며 내 삶을 책임지실 줄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일 일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어리석음도 버려야 합니다. 장지 코앞에 닥쳐진 일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 나머지 무슨 일이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극복하게 해 주신다고 믿는 이 신앙을 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영생을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하루의 삶을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그냥 내버려 두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아브라함처럼 기복이 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약해지고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게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나온 자식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는 사라가 이방인 아비멜렉과 관계하여 자식을 낳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사라의 몸이 이방인에 의해 더러워 지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무의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몸을 보호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까지도 망쳐 버릴 것을 불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은 끊임 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손을 드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안된다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아브라함이 보호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자신이 꾀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구해주시려고 아비멜렉에게 말씀하시기를"너를 속인 사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너를 속인 사람, 그 사람은 선지자다 그러니 그에게 가서 기도해 달라고 하라 그래야 네가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지키시고 믿으시고 인정하시며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긍지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됨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선지자 다운 행동을 못했음에도 그를 선지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뭐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거짓말쟁이, 자기 목숨을 위해 남을 죽게 하는 이기주의자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경이 바로 그 사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창 20:17-18"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매 여호와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여러분 이러한 아브라함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상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옅어 져서 육신의 방법을 의지하게 되고 그러므로서 꼼짝없이 문제에 봉착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어떤 자격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해결해 달라고 무슨 염치로 얘기하며 오히려 나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지은 죄 보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며 종임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의 손길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위험에서 구출하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땅히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의 모든 일이 잘 안될 때는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기도하지 않았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민족을 향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이 가정에 태를 여시는데 아브라함의 기도로 인해 열어주시는 것 처럼 여러분의 기도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의 문을 열어주시고 민족의 문을 열어 주시고 우리 앞날의 문을 마땅히 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자식을 볼 때 우리는 뭐라고 얘기합니까 우리는 이 나라와 위정자들을 보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습니까"저래서 안되, 그렇기 때문에 안되는 거야!"라고 말하시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안된다는 말 때문에 이 나라가 안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 하시기를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영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이 안되기를 바라는 그런 말을 토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말대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식을 보고"싹이 노랗다, 너 그래서 뭐가 될래… "라는 말은 축복의 말입니까 저주의 말입니까 그런 말은 축복의 말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 아이가 지금은 저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쓰시면 여호와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승리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한 말처럼 기도의 자식, 눈물의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 아이의 장래가 내 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우리 신앙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이 땅의 문이 열려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죄에 잡혀서 남을 욕하고 저주하고 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때문이라도 이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손은 강하다라고 고백하며 그분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지 모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태산입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누이라고 해서 팔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비멜렉 보다 더 크신 분이시기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한마디만 하시니 역사의 흐름이 확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비멜렉이 그렇게 약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앞에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채워주고 빨리 떠나기를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도 이와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간단히 바꾸어 놓으실 수 있는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문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쉽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복 주심과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고 우리에게 닥친 저 시련을 감수해야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고, 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잘못과 실패를 굽어보시면서 그 얼굴에 따스한 미소를 띄우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실족하여 넘어진 우리를 사랑의 손길로 붙잡아 일으시키고는 먼지를 툭툭 털어 주시고 나서 슬며시 등을 밀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보호하고 너로 하여금 승리케 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종종 우리를 실족시키는 약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시험과 어려움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장애물이 목표가 아닙니다. 장애물을 치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에 우리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 더 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죄악들을 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았음을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심에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또한 남편도, 아내도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나라에 임하옵시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기만 한다면 일용할 양식에도 감사하겠습니다,
나를 저주하고 못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로 해석합니다.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여호와 하나님의 날을 지키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부모에게도 잘 합니다. 간음이나 도적질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외우는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하므로 나는 약해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죄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해방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는 진정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직까지도 죄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실 때,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실 때 나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약한자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고 승리할 줄 믿습니다.
부탁합니다. 말조심 합시다. 저주의 말을 하지 말고 언제나 축복의 말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는 원망이나 불평의 기도는 하지 말고 언제나 소망의 기도를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날마다 승리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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