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해방과 예수님의 권세
본문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야 되나, 여자와 여자가 남자와 남자가 결혼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구약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에 관해서 말씀하시면서 어떤 죄를 범하면 어떤 벌을 주어야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구약에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엄하게 다스리기 위한 중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해서 엄한 벌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부모를 때린다든지, 그것은 무조건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고 사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연애나 수간을 하는 사람들도 엄밀히 따져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미국 같은 데서는 ‘동성애를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하면 돌로 쳐 죽이는 중벌을 받습니다. ’ 이렇게 설교를 하면 경찰이 당장 와서 그렇게 설교한 목사를 체포해 갑니다.
악해 그린 목사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동성애자가 고발을 한 것입니다.
경찰이 조사하고 그 조사한 검사는 그린 목사의 설교는 ‘동성애자에 대해 전면적인 도전이었다.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해서 동성애를 비판하는 것은 법에 위반 된다. ’ 무슨 법인가 하니까
2003년도 스웨덴 국회가 법을 재정했는데 ‘증오심을 부추기는 말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설교에 대해서 적용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도 죄가 되지만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해서 법을 재정했는데 이것이 오늘 날 설교에 적용이 되어 그린 목사가 동성애자를 증오하고 비판한 내용으로 인해 한 달을 감옥에서 지내야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 땅에서 동성애가 어떤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섬기고 돕기를 원하며 다른 차원에서 이해는 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그 행위 자체는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어떻게 끌고 가느냐하면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심하게 이야기 하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좁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죽었다가 부할 했느니 이런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좀 포용력을 가져야한다 다 받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동성애자들도 꼭 남자와 여자만 결혼한다는 법을 인정하고 받아 드려야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을 소수 권익보호단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우리 언론들이 그런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점점 확산이 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절대 진리 절대 규범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했지만 그러나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고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떠냐 자기들 좋아서 하는 것을 누가 말리겠느냐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국회가 말도 안 되는 법을 계류 중인 것이 많지 않습니까 엄청난 사유재산을 투자해서 사립학교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법이 지금 그렇게 제정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입법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저가 설교할 때 동성애에대한 잘못된 설교를 하면 잡혀 갈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세상권세와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얼마나 놀랍게 그리고 여러 곳에서 교묘하게 충돌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주시하셔야합니다. ‘살기 바빠서 동성애 그런 것 신경 쓰기도 싫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게 골치 아프게 생각해야 될 문제야’ 이런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시작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자가 되고 결국 그러다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곳곳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이웃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 세상 권세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 충돌 속에서 우리가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나하나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면 되겠지, 나하나 주일날 꼬박꼬박 교회가면 되겠지,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신앙생활에 주님이 개입한 영적인 전투는 단순한 전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세상권세와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충돌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록해서 2000년 동안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까 왜 이 사건을 기록했으며 오늘날도 계속 읽게 하십니까 오늘 본문말씀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내어 쫓고 마음대로 설교를 하고 누가 당신더러 이렇게 하라고 했느냐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 제사장 율법학자 장로 이것이 종교적인 용어 같지만 이 시대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있던 그런 국가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도 가지고 있었고 경제 권력까지 함께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경제가 성전을 향해서 움직였습니다. 유월절 한 절기를 지키는데 도축되는 양이 20만 마리 30만 마리가 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양 한 마리를 계산해 보세요. 어마어마한 물량이 유월절 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중요한 절기 때 마다 엄청난 물량이 거기로 들어옵니다. 양뿐만 아니라 염소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에 제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들어오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숙박을 해야 되고, 밥을 사 먹어야 되고, 성전을 중심으로 중요한 경제행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세상관점에서는 볼 때 돈이 있습니까 어떤 이름이 있습니까 저 갈릴리 북쪽에서 목수를 한 30여년 하다가 해성같이 나타나서 설교는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인물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제격도 좋은 사람이 아니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다니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 예수님을 향해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는지 잘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는지 잘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보고 말하라고 그러면 나도 한번 물어보자 너희들이 먼저 답한 번 해 보아라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으로 온 것이냐’ 이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침례요한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어쩌면 그 시대에 예수님 못지않은 인기 절정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이미 죽은 분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굉장히 존경하는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가문에서 제사장 훈련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 같지는 안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광야에 있었다는 배경으로 보면 그 당시 수도사와 같은 삶을 살았던 무리 중에 에센파 무리들과 함께 자라고 훈련 받은 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신학자고 많습니다. 이 분은 비주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설교를 시작하고 이 분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분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자신들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례를 받지 시작하고 이스라엘 안에 큰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설교로 끝내지 않고 사악한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한 엄청난 부도덕의 권력가를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고 외치다가 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자리에 앉아서 헤롯이 자기 기분 좋다고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여자 아내로 억지로 뺏은 그 여자의 딸 헤로디아가 춤을 추는 것에 빠져 ‘너는 무엇을 갖고 싶냐 내가 무엇이든지 주마’ 그랬더니 이 딸이 의붓아버지와 자기 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는 다시 말하면 왕과 자기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는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요한이 돈을 바라거나 명예를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말씀 때문에 살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자기 목을 내 놓는 헌신된 분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증거 하는 사명을 다하다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술자리에 안주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한 의도가 계실 것입니다. 사실 요한이 이렇게 죽고 난 다음에 모든 백성들 가슴속에 요한이야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다 이렇게 다들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을 했다가 죽었는데 누가 그 사람에 대해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은 요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이 사람들은 요한이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고 내려온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엉뚱한 설교를 하다가 비명에 간 사람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침례요한이 월급 받은 것으로 살아라, 그리고 뇌물을 받지 말라 그러는데 그렇게 살면 이 사람들은 수입이 다 끊어집니다. 요한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서 뇌물이 안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이라는 작자가 어디에서 굴러먹다 와서 자기 마음대로 지껄이고 방자하게 행동하느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가는 백성들이 듣고 가만히 있지 않지요. 돌로 쳐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침례요한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있는 대로 말을 못합니다. 그러면 봅시다. 요한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이야기해, 백성들이 원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그러면 왜 요한을 따르지 않았느냐 왜 요한의 말을 믿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할 것 아닙니까 고민이 되지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모른다. ’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모른다는 이 답이 무엇을 따라서 답하는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진리에 따라 대답한 것이 아니고 자기 편한 데로 자기에게 어떻게 답하면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고 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에 관심이 있으면 주님께서 진리로 말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돈에 대한 탐욕이 강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로마와 결탁해서 자기의 권력을 좀 더 누릴까 여기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관심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섬기는 일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일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저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데 그 사람을 만나서 말씀을 들어보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라면 이 사람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되지 않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진리냐 아니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이 나에게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대로 세상이 변화가 되면 돈 줄이 끊어지겠고 자기 권력의 줄이 끊어지겠고 그러니까 진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예수는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향해서 이런 질문을 마땅히 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주님께 던져진 질문입니다 만은 우리자신에 지난 한 주간 동안도 나름대로 열심이 일도 하시고 가족들도 돌보고 하셨는데 ‘열심히 일한 당신 생각해 보아라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습니까’ 안락한 삶을 위해서입니까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입니까 이것도 작은 일은 아니겠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런 삶을 축복으로 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정도에 머물고 말면 우리는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 일 수 없습니다. 진리는 고작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편해도 그리고 지금은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평강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이여도 우리의 환경을 바꾸기 전에 우리자신을 바꾸어서 우리 속에 평강을 누리는 자로 축복을 주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만약 그저 육신에 평안한 정도를 우리의 목표로 생각하고 산다면 우리는 이미 진리를 따라 사는 존재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편안함을 갖다 주는 돈이나 물질의 권세를 가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를 보고 공부하라고 닦달을 하는 우리, 무슨 권세로 그렇게 하십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학교를 갈 것이 아니냐 좋은 학교를 나와야 취직도 잘 되고 돈도 잘 벌 수 있고 그래야 집도 남보다 빨리 살 것이고 차도 좋은 차 몰고 다닐 것이고 , 여러분 겨우 돈의 권세를 업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눈을 부알 이면 아이들이 그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아이들은 그런데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햄버거 값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은 1000원짜리 햄버거에 콜라 하나면 대 만족입니다.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차는 무슨 차 집은 무슨 집 그들은 관심 없습니다. 이이들은 지금 그런 것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돈의 권세를 덧입고 눈을 불알이면 아이들은 자기 편안함의 권세를 가지고 맞설 것입니다. 지금 편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미래에 그것도 확실치 않는 것을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해 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한다 이런 논리가 아이들의 논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진리의 권세를 가지고 ‘네가 네 삶을 위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 아니냐 여호와 하나님이 너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고 너희 생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권세로 아이들 앞에 서지 않으면 무슨 권세로 부모 노릇을 할 것입니까 우리가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진리를 따라 말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의 권세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배에 앉아 있는 다고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네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권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그 권세가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야합니다. 내가 교통경찰인데 사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이 혼잡하고 차가 밀렸습니다. 그 때 호각이 있어서 확 불고 손짓을 해 보십시오 차 한 대라도 서는가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신호등보다 교통경찰의 수신호가 우선입니다. 자기는 분명히 경찰인데 대전 시경 교통과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마치 비번이라 시내 나갔다가 교통이 혼잡하다고 해서 호루라기로 아무리 수신호 해 봤자 미친 사람 취급밖에 너 받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권세가 있다고 해서 그 권세가 활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경찰복을 입고 나가면 어떻겠습니까 호루라기를 휙 불면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저리지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지만은 이 권세가 우리의 삶에 적용되지 않으면 이 권세는 그림에 떡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배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서 행하는 자들을 향해 나도 무슨 권세로 너희에게 말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말해봐야 소용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말씀 해 봐야 그들은 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자기 자리를 보존하고자하는 욕망이 꽉 차있기에 저들에게 진리를 말해봐야 개에게 던지는 진주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그 기회는 무산되고 맙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 있는 분들과 사마리아인들은 굉장히 차이가 납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멸시와 천대를 했겠습니까 우리나라도 혼혈만큼은 얼마나 푸대접하는지 모릅니다. 노래 잘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순이 정도가 있습니다만은 우리가 워낙 단일민족을 주장하는지 혈통을 중요시 하는 문화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유대인들은 혼혈을 얼마나 무시하고 천시 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여자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그러면 알만 하지요. 요즘 여자들은 잘 태어났습니다만은 2000년 전에는 여자가 영혼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성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죄에 눌리고 남자에게 눌리고 참 살기 어려웠습니다. 이 사마리아여인은 결혼도 실패하고 사실 아무 가치 없는 존재인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진리를 갈급해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마음 문을 연 것입니다. 예수님이 볼 때 이 여인에게 말하면 듣겠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에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말하시는데 ‘네가 메시야다’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런 놀라운 변신이 성경의 어디에 기록되어있습니까 진리를 발견하고 그 감격을 견딜 수 없어서 수가성 동네에 들어가 이 여인을 천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을 향해 메시야를 증거합니다.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있던 이 남자들, 성경박사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진리를 거부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습니다. 교회는 우리 모두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가정이고 가정이 큰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 몸을 건강한 몸 아름다운 몸으로 세우기 위해서 헌신한 자들이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보냄을 받았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진리를 알고 받아들인 자들을 세우기위해서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자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엘비슨 선교사라고 계셨습니다. 알렌선교사는 의료선교사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이 분보다 9년 후에 오신분이 올리브 엘비슨 선교사입니다. 이 분은 7살 때 영국에서 캐나다로 갔다가 캐나다와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대학교수직까지 맡으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토론토에 있으면서 한국에 선교사로 계신 언더우드선교사님의 강의를 듣고 자기 집에까지 모시고 옵니다. 그리고 언더우드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 년 후배 중에 하디라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을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 뒷바라지는 합니다. 이러다가 자기가 조선 땅에 부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893년 조선 땅이 어떤 땅입니까 엉망진창이의 땅이었습니다. 이 분이 오자마자 그해 11월부터 알렌선교사가 만들어놓은 제주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원은 처음으로 서양식 병원을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인데 수준은 형편없었습니다. 이 분이 그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병이 나서 안식년을 맞이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해 동안 쉬면서 많은 곳을 다니며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천 삼백만, 천 사백만이 사는 조선 땅에 변변한 병원이 하나 없습니다. 이 백성들을 위해서 좀 도와주십시오. ’ 나보고 도와달라는 것도 아닌데 돈 모아보면 속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엘비슨 선교사님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나는 사업가입니다. 내가 살아생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면서 병원하나 세우기 위해 기도 해 왔는데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까 당신 이야기하고 내 기도하고 탁 맞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하겠다. ’해서 만 불을 주었습니다. 110년 전에 만 불이면 요즘 돈으로 환산해서 백만 불정도 안 되겠나 싶습니다. 엘비슨 선교사가 이 돈을 가지고 와서 한국의 최초의 신식병원을 세웠습니다. 돈 낸 그 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그 병원이 바로 세브란스병원입니다. 미국에서는 루이 세브란스 그러면 아무도 기억 못할 것입니다. 이 분이 강철 사업을 했는데 강철 하면 카네기정도 알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한민국사람이라면 세브란스를 잊지 못하지요. 1907년에 이 분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요즘처럼 교통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몇 달을 배를 타고 와야 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권세로 이런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권세가 세워지므로 이 나라가 부강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8. 15해방을 맞는 광복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권세의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이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여호와 하나님백성들이 이 땅에 복음을 위해 희생한 대가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런 사살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땅의 권세나 이 땅의 유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천국의 삶을 위해 이 땅을 주님의 권세로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나타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진리를 심고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권세가 지배하는 땅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에 관해서 말씀하시면서 어떤 죄를 범하면 어떤 벌을 주어야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구약에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엄하게 다스리기 위한 중벌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해서 엄한 벌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부모를 때린다든지, 그것은 무조건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고 사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연애나 수간을 하는 사람들도 엄밀히 따져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미국 같은 데서는 ‘동성애를 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하면 돌로 쳐 죽이는 중벌을 받습니다. ’ 이렇게 설교를 하면 경찰이 당장 와서 그렇게 설교한 목사를 체포해 갑니다.
악해 그린 목사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동성애자가 고발을 한 것입니다.
경찰이 조사하고 그 조사한 검사는 그린 목사의 설교는 ‘동성애자에 대해 전면적인 도전이었다.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해서 동성애를 비판하는 것은 법에 위반 된다. ’ 무슨 법인가 하니까
2003년도 스웨덴 국회가 법을 재정했는데 ‘증오심을 부추기는 말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이것이 설교에 대해서 적용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도 죄가 되지만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해서 법을 재정했는데 이것이 오늘 날 설교에 적용이 되어 그린 목사가 동성애자를 증오하고 비판한 내용으로 인해 한 달을 감옥에서 지내야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 땅에서 동성애가 어떤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자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섬기고 돕기를 원하며 다른 차원에서 이해는 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그 행위 자체는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어떻게 끌고 가느냐하면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심하게 이야기 하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좁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죽었다가 부할 했느니 이런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좀 포용력을 가져야한다 다 받아드려야 한다. 그리고 동성애자들도 꼭 남자와 여자만 결혼한다는 법을 인정하고 받아 드려야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을 소수 권익보호단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우리 언론들이 그런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점점 확산이 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절대 진리 절대 규범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했지만 그러나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고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떠냐 자기들 좋아서 하는 것을 누가 말리겠느냐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국회가 말도 안 되는 법을 계류 중인 것이 많지 않습니까 엄청난 사유재산을 투자해서 사립학교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법이 지금 그렇게 제정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입법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저가 설교할 때 동성애에대한 잘못된 설교를 하면 잡혀 갈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세상권세와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얼마나 놀랍게 그리고 여러 곳에서 교묘하게 충돌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주시하셔야합니다. ‘살기 바빠서 동성애 그런 것 신경 쓰기도 싫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게 골치 아프게 생각해야 될 문제야’ 이런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시작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자가 되고 결국 그러다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곳곳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이웃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 세상 권세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 충돌 속에서 우리가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나하나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면 되겠지, 나하나 주일날 꼬박꼬박 교회가면 되겠지,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신앙생활에 주님이 개입한 영적인 전투는 단순한 전투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세상권세와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충돌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록해서 2000년 동안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까 왜 이 사건을 기록했으며 오늘날도 계속 읽게 하십니까 오늘 본문말씀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내어 쫓고 마음대로 설교를 하고 누가 당신더러 이렇게 하라고 했느냐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 제사장 율법학자 장로 이것이 종교적인 용어 같지만 이 시대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있던 그런 국가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도 가지고 있었고 경제 권력까지 함께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경제가 성전을 향해서 움직였습니다. 유월절 한 절기를 지키는데 도축되는 양이 20만 마리 30만 마리가 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양 한 마리를 계산해 보세요. 어마어마한 물량이 유월절 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중요한 절기 때 마다 엄청난 물량이 거기로 들어옵니다. 양뿐만 아니라 염소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에 제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들어오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숙박을 해야 되고, 밥을 사 먹어야 되고, 성전을 중심으로 중요한 경제행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세상관점에서는 볼 때 돈이 있습니까 어떤 이름이 있습니까 저 갈릴리 북쪽에서 목수를 한 30여년 하다가 해성같이 나타나서 설교는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인물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제격도 좋은 사람이 아니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다니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 예수님을 향해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는지 잘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는지 잘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보고 말하라고 그러면 나도 한번 물어보자 너희들이 먼저 답한 번 해 보아라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으로 온 것이냐’ 이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침례요한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어쩌면 그 시대에 예수님 못지않은 인기 절정의 슈퍼스타였습니다. 이미 죽은 분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굉장히 존경하는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가문에서 제사장 훈련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 같지는 안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광야에 있었다는 배경으로 보면 그 당시 수도사와 같은 삶을 살았던 무리 중에 에센파 무리들과 함께 자라고 훈련 받은 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신학자고 많습니다. 이 분은 비주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설교를 시작하고 이 분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분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자신들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례를 받지 시작하고 이스라엘 안에 큰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설교로 끝내지 않고 사악한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한 엄청난 부도덕의 권력가를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고 외치다가 체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자리에 앉아서 헤롯이 자기 기분 좋다고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여자 아내로 억지로 뺏은 그 여자의 딸 헤로디아가 춤을 추는 것에 빠져 ‘너는 무엇을 갖고 싶냐 내가 무엇이든지 주마’ 그랬더니 이 딸이 의붓아버지와 자기 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는 다시 말하면 왕과 자기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하는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요한이 돈을 바라거나 명예를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말씀 때문에 살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자기 목을 내 놓는 헌신된 분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증거 하는 사명을 다하다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술자리에 안주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한 의도가 계실 것입니다. 사실 요한이 이렇게 죽고 난 다음에 모든 백성들 가슴속에 요한이야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다 이렇게 다들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을 했다가 죽었는데 누가 그 사람에 대해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은 요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이 사람들은 요한이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고 내려온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엉뚱한 설교를 하다가 비명에 간 사람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침례요한이 월급 받은 것으로 살아라, 그리고 뇌물을 받지 말라 그러는데 그렇게 살면 이 사람들은 수입이 다 끊어집니다. 요한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서 뇌물이 안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이라는 작자가 어디에서 굴러먹다 와서 자기 마음대로 지껄이고 방자하게 행동하느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가는 백성들이 듣고 가만히 있지 않지요. 돌로 쳐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침례요한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있는 대로 말을 못합니다. 그러면 봅시다. 요한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이야기해, 백성들이 원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그러면 왜 요한을 따르지 않았느냐 왜 요한의 말을 믿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할 것 아닙니까 고민이 되지요. 그래서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모른다. ’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모른다는 이 답이 무엇을 따라서 답하는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진리에 따라 대답한 것이 아니고 자기 편한 데로 자기에게 어떻게 답하면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고 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진리에 관심이 있으면 주님께서 진리로 말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돈에 대한 탐욕이 강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로마와 결탁해서 자기의 권력을 좀 더 누릴까 여기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관심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섬기는 일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일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저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데 그 사람을 만나서 말씀을 들어보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라면 이 사람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되지 않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진리냐 아니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이 나에게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대로 세상이 변화가 되면 돈 줄이 끊어지겠고 자기 권력의 줄이 끊어지겠고 그러니까 진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예수는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향해서 이런 질문을 마땅히 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주님께 던져진 질문입니다 만은 우리자신에 지난 한 주간 동안도 나름대로 열심이 일도 하시고 가족들도 돌보고 하셨는데 ‘열심히 일한 당신 생각해 보아라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습니까’ 안락한 삶을 위해서입니까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입니까 이것도 작은 일은 아니겠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런 삶을 축복으로 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정도에 머물고 말면 우리는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 일 수 없습니다. 진리는 고작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편해도 그리고 지금은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평강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이여도 우리의 환경을 바꾸기 전에 우리자신을 바꾸어서 우리 속에 평강을 누리는 자로 축복을 주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만약 그저 육신에 평안한 정도를 우리의 목표로 생각하고 산다면 우리는 이미 진리를 따라 사는 존재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편안함을 갖다 주는 돈이나 물질의 권세를 가지고 살려고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를 보고 공부하라고 닦달을 하는 우리, 무슨 권세로 그렇게 하십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학교를 갈 것이 아니냐 좋은 학교를 나와야 취직도 잘 되고 돈도 잘 벌 수 있고 그래야 집도 남보다 빨리 살 것이고 차도 좋은 차 몰고 다닐 것이고 , 여러분 겨우 돈의 권세를 업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눈을 부알 이면 아이들이 그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아이들은 그런데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햄버거 값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은 1000원짜리 햄버거에 콜라 하나면 대 만족입니다.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차는 무슨 차 집은 무슨 집 그들은 관심 없습니다. 이이들은 지금 그런 것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돈의 권세를 덧입고 눈을 불알이면 아이들은 자기 편안함의 권세를 가지고 맞설 것입니다. 지금 편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미래에 그것도 확실치 않는 것을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해 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한다 이런 논리가 아이들의 논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진리의 권세를 가지고 ‘네가 네 삶을 위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 아니냐 여호와 하나님이 너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고 너희 생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권세로 아이들 앞에 서지 않으면 무슨 권세로 부모 노릇을 할 것입니까 우리가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진리를 따라 말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의 권세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배에 앉아 있는 다고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가 네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권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그 권세가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야합니다. 내가 교통경찰인데 사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이 혼잡하고 차가 밀렸습니다. 그 때 호각이 있어서 확 불고 손짓을 해 보십시오 차 한 대라도 서는가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신호등보다 교통경찰의 수신호가 우선입니다. 자기는 분명히 경찰인데 대전 시경 교통과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마치 비번이라 시내 나갔다가 교통이 혼잡하다고 해서 호루라기로 아무리 수신호 해 봤자 미친 사람 취급밖에 너 받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권세가 있다고 해서 그 권세가 활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경찰복을 입고 나가면 어떻겠습니까 호루라기를 휙 불면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저리지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지만은 이 권세가 우리의 삶에 적용되지 않으면 이 권세는 그림에 떡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따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배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서 행하는 자들을 향해 나도 무슨 권세로 너희에게 말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말해봐야 소용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말씀 해 봐야 그들은 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자기 자리를 보존하고자하는 욕망이 꽉 차있기에 저들에게 진리를 말해봐야 개에게 던지는 진주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그 기회는 무산되고 맙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 있는 분들과 사마리아인들은 굉장히 차이가 납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멸시와 천대를 했겠습니까 우리나라도 혼혈만큼은 얼마나 푸대접하는지 모릅니다. 노래 잘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순이 정도가 있습니다만은 우리가 워낙 단일민족을 주장하는지 혈통을 중요시 하는 문화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유대인들은 혼혈을 얼마나 무시하고 천시 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여자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그러면 알만 하지요. 요즘 여자들은 잘 태어났습니다만은 2000년 전에는 여자가 영혼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성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죄에 눌리고 남자에게 눌리고 참 살기 어려웠습니다. 이 사마리아여인은 결혼도 실패하고 사실 아무 가치 없는 존재인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진리를 갈급해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마음 문을 연 것입니다. 예수님이 볼 때 이 여인에게 말하면 듣겠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에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말하시는데 ‘네가 메시야다’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런 놀라운 변신이 성경의 어디에 기록되어있습니까 진리를 발견하고 그 감격을 견딜 수 없어서 수가성 동네에 들어가 이 여인을 천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을 향해 메시야를 증거합니다.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있던 이 남자들, 성경박사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진리를 거부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못 박아 죽였습니다. 교회는 우리 모두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가정이고 가정이 큰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 몸을 건강한 몸 아름다운 몸으로 세우기 위해서 헌신한 자들이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보냄을 받았는데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진리를 알고 받아들인 자들을 세우기위해서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자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엘비슨 선교사라고 계셨습니다. 알렌선교사는 의료선교사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이 분보다 9년 후에 오신분이 올리브 엘비슨 선교사입니다. 이 분은 7살 때 영국에서 캐나다로 갔다가 캐나다와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대학교수직까지 맡으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토론토에 있으면서 한국에 선교사로 계신 언더우드선교사님의 강의를 듣고 자기 집에까지 모시고 옵니다. 그리고 언더우드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 년 후배 중에 하디라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을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 뒷바라지는 합니다. 이러다가 자기가 조선 땅에 부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893년 조선 땅이 어떤 땅입니까 엉망진창이의 땅이었습니다. 이 분이 오자마자 그해 11월부터 알렌선교사가 만들어놓은 제주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원은 처음으로 서양식 병원을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인데 수준은 형편없었습니다. 이 분이 그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병이 나서 안식년을 맞이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해 동안 쉬면서 많은 곳을 다니며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천 삼백만, 천 사백만이 사는 조선 땅에 변변한 병원이 하나 없습니다. 이 백성들을 위해서 좀 도와주십시오. ’ 나보고 도와달라는 것도 아닌데 돈 모아보면 속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엘비슨 선교사님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나는 사업가입니다. 내가 살아생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면서 병원하나 세우기 위해 기도 해 왔는데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까 당신 이야기하고 내 기도하고 탁 맞아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하겠다. ’해서 만 불을 주었습니다. 110년 전에 만 불이면 요즘 돈으로 환산해서 백만 불정도 안 되겠나 싶습니다. 엘비슨 선교사가 이 돈을 가지고 와서 한국의 최초의 신식병원을 세웠습니다. 돈 낸 그 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그 병원이 바로 세브란스병원입니다. 미국에서는 루이 세브란스 그러면 아무도 기억 못할 것입니다. 이 분이 강철 사업을 했는데 강철 하면 카네기정도 알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한민국사람이라면 세브란스를 잊지 못하지요. 1907년에 이 분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요즘처럼 교통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몇 달을 배를 타고 와야 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권세로 이런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권세가 세워지므로 이 나라가 부강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8. 15해방을 맞는 광복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권세의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이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여호와 하나님백성들이 이 땅에 복음을 위해 희생한 대가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런 사살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땅의 권세나 이 땅의 유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천국의 삶을 위해 이 땅을 주님의 권세로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나타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진리를 심고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권세가 지배하는 땅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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