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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해방과 민족의 과제

본문

오늘은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신지 55년이 되는 해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일제의 압제 하에서 해방이 된지 55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민족은 분단상태로 있는 것을 몹시도 마음이 아픕니다. 금년은 이 광복절을 맞아서 우리는 아주 뜻깊은 광복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서 남북의 문제를 주변 4강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또 이번 광복절을 기하여 남북의 이산 가족이 200가족이 남과 북에서 서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뜻깊은 광복절 5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방의 의미를 단순히 세속적인 역사적 의미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지 70년만에 해방을 맞아서 고국에 돌아와서 성전을 짓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게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부패한 통치자들과 관리들, 그리고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습니다. 그들은 온갖 죄악을 다 저지르면서도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 멸망해도 예루살렘 성전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명하여 지은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은 멸망했습니다. 멸망하되 아주 비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된 후에 성전은 훼파되고 포악한 이교도들은 성전의 모든 기명들을 다 탈취해 갔습니다. 그들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짓밟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고 한탄할 정도로 그 성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은 이제는 완전히 바벨론 나라에서 희망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바벨론의 앞잡이가 되어서 편안하게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지조를 지키면서 해방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예배를 박탈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1. 해방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해방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정말 해방의 소망을 전혀 가질 수 없는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해방을 선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제 완전히 해방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포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해방은 유다 민족에게 엄청난 환희를 안겨 주었습니다. 해방을 맞은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환희를 1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될 때에 정말로 "꿈꾸는 것 같았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꼬집어 보기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기쁨과 환희에 젖어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2절에서는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해방을 페르시아 나라가 선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해방을 주셨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열방을 통치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해방을 선언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그들은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그 기쁨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해방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번이나 이 해방의 사건을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해방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해방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분명히 우리에게 엄청난 환희를 가져다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강점을 당한지 35년만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한 국가가 다른 한 국가의 식민지가 된다는 것은 치욕입니다. 국권이 상실된다는 것은 그 나라 모든 사람들이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그토록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몸을 바쳐서 투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기쁨이었습니다. 아직도 조국의 반을 우리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통일이 될 때에 이제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의 기쁨보다 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의 회복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우리의 구원의 환희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죄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은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는 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를 억누르던 사탄의 세력은 물러가고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이 기쁨이야말로 그 어떠한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해서 이렇게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그 죄로 인하여 영원한 사망으로 달려가는 우리들을 건져내어 살리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우리들이 누구보다 조금 나은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오늘 광복절에 느끼시고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러한 기쁨이 완성될 날은 언제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이 오시는 그날의 환희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모든 사람들은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계21:3-4에서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여호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민족의 해방보다 통일보다 더 중요하고 큰 기쁨은 바로 죄악에서의 구원이요 해방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있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미 우리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구원이 완성될 날을 기다리며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해방을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 국민들은 70년이라는 한시적인 포로생활을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습니다. 역대하 36:21에서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를 내리게 됩니다. 그는 조서에서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는 해방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은 정해지지 않은 기간동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동안만 포로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해방을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바벨론에 정착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재산을 많이 쌓고 이방인의 아내를 얻어서 완전히 바벨론화 되었습니다. 그들은 머나먼 길을 돌아오자니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이루어 놓은 너무나 많은 것들 때문에 도저히 해방령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바벨론의 앞잡이가 되어서 민족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거대한 바벨론이 결코 무너지리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쩌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무너지고 해방령이 내리자 오히려 고민과 갈등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행한 일로 인하여 조국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국민들은 꿈을 꾸는 듯한 엄청난 기쁨에 싸여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제시대를 회상해 봅니다. 민족의 슬픔이요 민족의 아픔을 오히려 자신의 영달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고 매국노 노릇을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비난하면서 세상을 왜 그렇게 바보스럽게 살아가느냐고 했던 것입니다. 적당히 일본과 타협하기만 하면 생활과 출세를 보장해 준다고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매국노로서 살아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해방되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매국노 노릇을 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국노들과 친일파들은 그 거대한 일본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 천년만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우리 민족은 이제 말살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일본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일제의 압잡이 노릇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친일파가 절대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해방이 되자 그들은 정말 기가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믿던 일본은 속수무책으로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고민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해방을 결코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이 세상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성을 쌓아 올라가다가 때가 되어 그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모든 것을 손을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자들이 현명한 자들입니다. 인간은 마치 소꿉장난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소꿉장난을 하다가 엄마가 부르면 모든 것을 놓고 손을 털고서 엄마에게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 세상이 완전히 멸망해 버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이 올 때에 우리는 과연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해방을 비탄으로 맞이한 바벨론의 앞잡이나 일본의 앞잡이와 같지는 않을른지요. 해방을 심각한 고민과 갈등 속에서 맞이한 친바벨론파나 친일파와 같지는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절대로 무너지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고서 세상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세상과 친한 사람은 아마도 주님의 그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너무 많은 것을 쌓아두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라 하실 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69장 3절에서 우리는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 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아직도 반도 쓰지 못했는데 벌써 주님이 오시다니 안될 말이지"라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올라간 자리인데 벌써 주님이 오시다니 안될 말이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1994년 7월에 슈메이커 레비 혜성이 목성을 충돌했습니다. 과학자들이 관측하기는 지구에 만일 그 혜성이 떨어진다면 지구는 완전히 없어지게 될 정도의 위력이라고 했습니다. 지구의 모든 것은 순식간에 완전히 불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발견한 혜성이 있는데 폭이 1Km라고 합니다. 그것이 지구로 떨어지면 지구는 가루가 난다고 합니다. 사실 폭이 100미터 짜리만 떨어져도 엄청난 해일에 지구는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하고 언제까지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고 세상을 즐기면서 세상과 타협하면서 지내시겠습니까 오늘 광복 희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 자신들의 위치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과연 주님이 오실 그때가 진정한 해방이요 의의 희년인데 나는 기쁨으로 꿈을 꾸는 것과 같은 환희에 젖어 들 수 있겠습니까
이 해방의 기쁨을 육신의 기쁨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그때에 아멘 할렐루야로 감격하여 맞이 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일파적인 행각을 한 자들과 같이 우리들이 세상과 짝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4:4)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해방이 주어졌으나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같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바라보고 인내로서 주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해방을 맞이하기 위하여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쁨과 환희에 젖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는 말씀은 농사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바로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해방을 기다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심고 기다린 사람에게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서 가지고 오리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준비한 사람만이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압제 하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죽어갔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은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눈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해방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눈물로서 뿌렸다는 것입니다. 눈물로서 뿌렸기 때문에 그들은 이 해방을 감격으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물을 뿌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방은 그렇게 감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눈물로 뿌릴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에 기쁨으로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역시 일제의 압제 하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죽어갔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항거하여 싸우다가 수많은 목사님들이 순교하였습니다. 일제의 예배 방해를 믿음으로 이기기 위하여 노력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고통의 피와 땀과 눈물이 교회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눈물은 해방의 씨앗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눈물은 구원의 씨앗입니다. 눈물은 천국에 직행하는 티켓인 것입니다.
또 다른 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해방은 우리에게 눈물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이하여 눈물이 없이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과 회개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회개와 반성과 눈물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나라가 바로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어지럽고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정부의 정통성이 항상 문제가 되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친일파가 오히려 득세하고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총독부 건물은 정부의 청사가 되었고 경성부 건물은 서울시청 청사가 되었습니다. 애국지사들을 고문하고 괴롭히던 고등계 형사들은 어느새 독립된 나라의 경찰의 간부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제의 앞잡이들은 국가의 기관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가 과거의 청산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된 나라가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민족 앞에 자결을 해도 시원치 않을 사람들이 다시금 관리가 되어 백성들을 수탈하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친일파를 생명을 걸고 추적하여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만 하면 과거를 청산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청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회개의 눈물이 없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론몰이를 해서 여론재판을 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눈물을 뿌려야 합니다.
최근에 독일은 나찌에 의해서 당한 모든 만행을 국가가 배상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도 그러한 모든 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서 저질러진 만행을 고스란히 역사에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 55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국의 분단이라는 아픔입니다. 이 조국 분단의 일차적인 책임은 일본에게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직후 한국이 통일이 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서 계속하여 나왔던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우리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국이 아직까지도 두동강으로 되어 있는데도 서로의 제 밥그릇만 차지하려하고 남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통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통일에 장애물이 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탈을 벗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눈물로서 민족 앞에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을 주실 때에 기쁨으로 맞이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위하여서도 눈물의 씨앗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정말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죄악됨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아서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눈물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두실 때에 알곡으로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이 완전히 멸망해 버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이 올 때에 우리는 과연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 할 수 있겠습니까 해방이 비탄으로 맞이한 바벨론의 앞잡이나 일본의 앞잡이와 같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절대로 무너지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고서 세상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세상과 친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의 그 재림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주님이 오실 날을 준비하는 우리들로서는 철저하게 눈물로서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의 눈물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애통하는 자는 눈물을 좋아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그 눈물을 좋아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위로가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조국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지옥으로 달려가는 이웃과 내 가족들을 위하여 눈물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세계선교를 위하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눈물을 뿌리는 자들이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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