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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해방의 은혜

본문

오늘 우리는 사 9:1-7의 본문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해방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멸시 받던 땅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큰 빛을 주셨습니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에게 추수의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광복 60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어느덧 60년이 되었습니다. 해방이라고 하는 말은 압박을 당하거나, 매였던 상태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liberation). 광복이라는 말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복이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광명의 세계에 복귀하다!”입니다. 한자로 빛 광(光)에 거듭 복(復)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았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방이라는 말보다는 광복이라는 말을 더 강조해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멸시 받던 땅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변경의 갈릴리는 그 개방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유달리 외세의 침입과 압제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이방 세계의 정신과 문명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본토인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압제자들의 멸시와 동족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궁핍과 무기력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땅에 사는 사람들을 기억하셨습니다. 4절에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개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게 하셨음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해변 갈릴리의 멸시 받던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 임할 해방과 자유와 영광스러움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36년 동안(1910~1945) 일본 사람들로부터 압제를 받으면서 살아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민족은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일본 사람들에게 주권(主權)을 완전히 빼앗겼었습니다.
남자는 징용으로, 젊은 여자는 정신대로 끌려가고 농사를 지어 놓으면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 갔습니다. 창씨개명이라 해서 성(性)도 이름(名)도 다 일본식으로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말(언어)도 글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조선 말을 못쓰게 하였습니다. 한글도 못쓰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 사람이면서도 한글을 모르는 학교 선생님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애국 인사들은 잡아다가 고문하고 처형했습니다. 아편을 재배하게 해서 전매청을 통해서 조선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화투를 보급하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일본 귀신 섬기는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유곽이라고 해서 여기저기 창녀촌을 만들었습니다.
평북 선천은 주일과 장날이 겹치면 장(場)이 서지 못하던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들 교회에 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총독부가 바로 이 곳에 교회 수보다 더 많은 유곽을 세웠습니다. 52만불이라고 하는 막대한 돈을 들여서 선천을 비롯해서 전국 각지에 사창가를 만들어 놓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몰락시키려 들었습니다.
아편 판매도 그렇고, 사창가 설치도 그렇고, 이런 것들은 모두 조선인 말살 정책의 일환 이었습니다.
그들은 유기 그릇도 빼앗아 갔습니다. 숟가락도 뺏어 가고, 젓가락도 뺏어 갔습니다. 심지어 예배당의 종까지 떼어 갔습니다. 뺏어 가면 그냥 뺏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억울하고 불쌍한 것에 대해서는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이었습니다. 멸시 받고 천대 받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기억해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일본을 이길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힘은 참으로 막강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일본으로 하여금 세계 2차 대전에서 패전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삼상 17:47). 그 때는 우리가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 때문인지 잘 몰랐습니다.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해방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 때문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하고 목이 터져라 만세만 불러 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성경 말씀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그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운행자이십니다. 국가, 민족, 개인의 운명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 41:10에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던 일본인들을 아무 것도 아닌 자들로 만드신 이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결국 망해서 이 땅에서 물러가지 않을 수 없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 불의가 정의보다 강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무신론의 연막에 여호와 하나님의 실존이 희미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날 뛰는 자들을 반드시 패망 시키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젊은 세대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나라 백성들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오늘을 살아드릴 수 있기를 바립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에게 큰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흑암에 행하던 백성은 (1) 어둡고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던 백성, (2) 절망으로 가득찬 백성, (3) 소망 없는 백성을 가리킵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소망 없는 백성,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사람입니까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살았으나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망 없는 사람에게 주께서 빛을 주셨습니다. 여기 2절에서 말씀하는 큰 빛은 곧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을 가진 참 빛이신 예수그리스도 강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 1:4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요 1:7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곧 그리스도시라(요 1:10-14)”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주님은 흑암에 행하는 백성을 위하여 빛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빛이 되어 세상에 오심으로 소망 없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밤 같은 세상을 낮 되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밤중 중에서도 제일 어두운 시간이 언제입니까 그것은 밤 12시경도 아니고, 새벽 1시~2시 사이도 아니고, 새벽이 되기 직전이 제일 어둡습니다. 동트기 직전이 제일 어둡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두운 밤중이라도 불을 밝히면 환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밤중의 불은 겨우 주위 만을 비췰 수 밖에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이 크고 아침이 밝아야만 넓은 세계를 환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멀리 들판도 내다 보이고, 저 멀리 산도 바라다 보입니다. 그래서 순례자로 하여금 바르고 확실한 길을 찾아서 걸어갈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의 빛을 가지고는 여전히 죄악의 밤길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빛, 양심의 빛을 가지고는 여전히 죄악의 밤길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장래가 여전히 어두움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망의 그늘진 당에 거하던 백성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엡 2:1), 긍휼에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엡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려 내셨습니다(엡 2:5).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권속입니다(엡 2:19). ”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입니다.
롬 8: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성경의 노른자 위 중에 노른 자위입니다. 롬 5장에서 롬 8장 사이에 나와 있는 세가지 해방 선언이 성경의 핵심이요 성경의 노른자위입니다. 그것은 ①죄에서의 해방 ②율법에서의 해방 ③사망에서의 해방 “선언”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소망이 넘칩니다. 전에는 우리의 장래가 어두움이었지만 이제는 얼마나 밝은지 모릅니다. 엡 5:8에 “전에는 너희가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빛의 자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엡 5:9). 이것으로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가꿔나가야 합니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들에게 추수의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본문 3-4절에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즐거워 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같이 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스불론과 납달리와 해변 갈릴리 사람들과 이스라엘 거민들이 농사를 지어 놓으면 미디안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서 곡식을 탈취해 갔습니다(삿 6:1-5).
그러자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기드온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미디안을 이기게 해주셔습니다(삿 6:6-40, 7-8장). 그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 놓고 밭에 나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애쓰고 수고한 만큼 모두 자기의 것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추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 일본 사람들이 이 땅을 강점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가 아무리 애써서 농사를 지어 놓아도 우리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다 뺏어 갔습니다. 심지어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송진까지 가져 다 바치게 하였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서 마라톤에 우승을 하고도 그 우승의 영광을 조국에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우승의 영광을 일본이 뺏어 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수고하면 수고한 만큼 그 대가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옵니다. 세계 어디에서고 떳떳하게 한국인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딸 때마다 당당히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신 분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4절).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즐거움을 다시는 뺏겨서는 안됩니다. 나라를 잃어 버린 백성은 비참합니다. 나라가 있어야 자유롭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잘 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드려야 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서 8. 15 해방의 감격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과거 이 나라 독립을 위해 애썼던 분들도 거의 다 떠나가고 8. 15 해방의 감격을 맛 본 사람들도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8. 15 해방을 통해 멸시 받던 이 당 백성들을 영화롭게 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언제나 이 여호와 하나님 모시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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