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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무너진 단을 수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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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후면 이 땅에 해방을 주었던 8. 15 광복절입니다. 21세기에 맞이해서 찾아온 56주년 광복절을 우리는 뜻 깊게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 은 36년 동안 이 민족을 억압해 오면서 이 땅에 여호와 하나님 제단까지 비참하게 무너뜨렸습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는 기독교에 대한 지도 대책을 마련하고 기독교 신앙을 본격적으 로 위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 가정에 가미다나를 설치케 하여 신사 참배를 하도록 하였는데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성도들이 복종하고 따랐습니다. 이 땅에 주의 종들은 "신사 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니며 국가 의식으로서 받아 들여도 된다" 고 성도들을 설득했습니다. 물론 주기철 목사를 위주로 해서 끝까지 신사 참배 거부한 2천여 명이 투옥 되었고 2백여 교회가 폐쇄됐으며 50여명이 순교했습니다.8. 15 해방 이후에도 기독교는 끓임 없는 분열과 싸움이 계속 되었고 그 후 이 땅에는 피비린내 나는 6. 25 전쟁을 가져왔고 그런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부흥을 가져 왔지만 오늘날 까지 기독교는 끓임 없는 분열과 분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오늘날 교회의 현실 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고 세계에서 제일 큰 감리 교회가 있고 세계 에서 제일 큰 침례 교회가 있고 세계 50대 교회 중 23개 교회가 있고 세계 20대 교회 중 6개의 교회가 있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기독교인 수도 일본은 기독교 인이 1%에 이고 필리핀이 4%로 대만이 5% 인도네시아 9%에 비한다면 우리 나라는 25%라는 놀라운 부흥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무너진 여호와 하나님 제단을 봅 니다. 엘리야가 그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 니까 육적으로 영적으로 해방된 이 민족 위에 세워진 오늘날 교회들의 제단과 성도들의 마음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졌다면…... 무너져 가고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 제단을 수축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 제단을 수축해야 합니까
세 가지로 살펴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 : 열 두 돌로 단을 수축하라
(왕상18:30-32)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하신 자더라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 "
당시에 이스라엘은 3년 반 동안 가뭄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때 엘리야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겠다"고 하고 갈멜산에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누가 믿는 신이 참 신인지 알아보자 "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 고 하였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리 자기들이 섬기는 신께 제사를 드리며 부르짖었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어떻게 수축했습니까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대로 열 두 돌을 취하여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단을 쌓았습니다.
32절에 보면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라고 하였습니다. 즉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의지 하고 단을 쌓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단이 무너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적으로 무섭게 타락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아합 왕이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시대의 타락이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이 가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비가 안와서 가뭄이 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단순한 땅에 가뭄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엘리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여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시고 야곱의 열 두명의 아들 을 택하여 가나안 땅을 택하게 하시고 축복된 민족으로 삼아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엘리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창35:10-12)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니 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 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민족이 지금 그러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땅에 8. 15 해방이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 민족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민족에게 축복을 주셨고 교회들을 부흥시켜주었고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게하시고 강한 국가로 만들어 주었던 것처럼 이 민족도 그러한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왜 가뭄이라는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저들이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민족이 이 땅에 교회들이 성도들이 진실로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않는 다면 어려움은 우리에게 계속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은 경제적 가뭄이 아닙니다. 영적 가뭄 현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영적 가뭄이 느껴지고 있습니까 나 자신을 먼저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가뭄을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영적 가뭄을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이 시대 말씀의 홍수 시대입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T. V와 방송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날마다 무수하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수 때에 먹을 물이 없다는 것 아시죠 왜 이처럼 홍수처럼 말씀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우리의 영혼은 갈급할까요 엘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무너진 제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무엇이 제일 시급한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무너진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새로 만든게 아닙니다. 전에 만들어졌던 여호와 하나님 제단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 제단을 다시 보수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성도들에게 임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단이 무너져있다고 생각 되지 않습니까 부족한 종의 눈에는 거의 모두 무너진 제단의 모습입니다. 무너진 곳에 아무리 귀한 말씀이 임한다고 한들 무슨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또 무너진 곳에서 무슨 거룩한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씨를 말씀이라고 하시면서 네 가지 밭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13:19-23)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 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 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 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 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
길가 밭, 돌 밭, 가시떨기 밭은 밭은 밭인데 밭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밭입니다. (고전3:16-17)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순간 우리의 몸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길가 밭, 돌 밭, 가시떨기 밭은 무너진 성전을 가진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밭은 말씀이 임해도 말씀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습니다. 더욱 무섭고 큰일 인 것은 교회의 제단이 무너진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주의 종들이 계속 말씀을 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너지는 역사만 나타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언제부터인지 물량주의, 숫자주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크냐 성도가 얼마나 많느냐 헌금을 얼마 나오느냐 그러다 보니깐 성도들도 똑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 교회를 택하고 있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세요. 무너진 진 자들의 숫자가 더 많았습니까 무너지지 않는 자의 숫자가 더 많았습니까 인간의 머리는 숫자의 개념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 생각부터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숫자적인 개념을 가지고 우리를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신앙 생활 몇 년 했는지 따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기도를 몇 시간 했는지 따지십니까 헌금을 얼마나 많이 냈는지 액수를 따지십니까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따지십니까
왜 모르십니까 천국은 찾는 자들이 적고 좁은 길이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성도 여러분 ! 무너진 곳에는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떨어져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아무리 씨앗을 뿌려보십시오. 무슨 싹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 제단을 다시 반듯하게 수축하는 일입니다. 엘리야의 모습을 다시 봅시다. 엘리야가 무엇으로 제단을 수축했습니까 열두 돌로 제단을 다시 수축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돌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돌을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하는 것이 많습니다. (벧전2:6)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 산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모퉁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제단을 단단히 다시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그 마음 밭에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떨어질 때 삼 십배 육 십배, 백 배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두 번째 : 제단과 제물 위에 물이 흐르게 하라
(왕상18:33-35)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 리하니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
열 두 돌로 제단을 수축한 엘리야는 제단에 번제물을 드리고 번제물과 나무 위에 열 두 통의 물을 갖다 부었습니다. 그 물은 제단에 번제물을 적시고 제단에 만들어 놓은 도랑에 물이 가득하게 고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제의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똑같이 송아지를 제물로 드리고 그 제물에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라는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 엘리야의 제의였습니다 제단에 불이 임한다고 할지라도 물 때문에 불은 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불과 물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흥건한 물 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임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은 곧 말씀을 뜻합니다. (엡5:26) 말씀이 강한 곳에 성령의 불의 역사가 임한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 두 통의 물을 부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송아지로 번제 제사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의 각을 떠서 불로써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이 불은 사람의 인위적인 힘으로 일으키는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로 제물을 태워야만 합니다. 무엇을 의미힙니까 온전한 순종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제물을 송아지였지만 각을 떠서는 드리지 아니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번제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또한 순종하고 희생하는 번제 제물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러므로 오직 예수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 제단이 수축되고 그 위에 온전히 순종 하고 희생하는 신앙 가운데서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불의 역사는 반드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 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의 제단이 있었고 그리고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십자가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흘리시고 인류를 위해 희생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에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충만히 임하셨고 그러하였기에 예수님은 불같이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을 보세요. 제자들이 처음에는 그들 마음에 제단이 수축되지 못해서 예수님 말씀을 수없이 들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으로 거듭나고 마음의 제단들이 수축 되고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제물되기로 작정하고 순종하고 희생할 때 그들에게 임한 말씀들이 불 같이 역사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 제단이 수축되었다면 이제 내 자신이 온전히 예수를 위해 순종하고 희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에 주님의 성전이 자리했다면 주님을 위해서 순종하고 희생하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롬12:1)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구약에 모든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만이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제물이 없는 제단에 물만 흐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죽어야 한다" 고 생각지 말고 "내가 먼저 죽어야 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먼저 죽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먼저 죽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 제단에 물만 흐르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평신도들도 말씀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설교를 못합니까 모든 목사님들이 참으로 설교들을 잘 합니다. 나 자신이 먼저 제단에 제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어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요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이 땅에 해방이 오고 6. 25 전쟁이 터진 어려운 가운데서도 목사와 그리스도 인들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습니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들려진대로 순종하고 복종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교회는 부흥되었고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먼데 보지 말고 나 자신부터 한 번 보세요 우리의 마음에 제단은 수축되었다 할지라도 그 단 위에 올려진 제물이 있습니까 다시 강조합니다. 그 제물은 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제물이 있습니까 그러한 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도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불로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주님 제자들이 모두 교회를 위해 죽었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불로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나 한사람이 불로 역사될 때 이 민족 위에 영적 가뭄이 물러가고 성령의 단 비가 내리게 될 것입니다.
전라남도에 있는 용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전쟁 때 공산당의 만행 으로 교회는 불이 나서 없어졌고 성도들은 많이 피살당했습니다. 수복되자 피난 갔던 성도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시 건축하려고 해도 도무지 가망이 없었습니다. 이때 온 성도들이 힘을 모아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예산을 세웠습니다. 시멘트, 목재, 자갈 등 건축 자재의 예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예산이라 는 것도 실재 필요 액에는 못 미쳐 막막한 실정이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부모가 순교하고 혼자 살고 있는 15살 된 성옥이가 있었습니다. 교회 건축자재 중 돌에 대한 예산이 나오자 성옥이는 이 돌을 내가 산에서 머리에 이어서 날라 놓으리라고 결심을 하고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 습니다. 성옥이는 남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 11시가 지나서야만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한 밤 중에 산에 가서 돌을 예배당 건축터에 매일 날랐습니다. 아 무도 모르게 이 일을 행하면서 순교 당하신 부모님을 생각하 고 "아버지! 어머니! 제가 부모님 대신 예배당 건축을 하는데 참여하고 있습 니다......... " 하고 울었습니다. 돌이 세 트럭에 실을 만큼 되었습니다. 아무도 누가 돌을 날랐는지 몰랐습니다. 성옥이는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교회의 건축은 성옥이의 희생이 함께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직 예수를 위해 살려고 하는 자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하고 불같은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왜 아무런 변화도 없는지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변화됩시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세 번째 : 올바른 기도 제단이 되자.
(왕상18:36-38)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
엘리야의 기도가 응답되는 장면입니다. 무너진 제단에 불이 임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가 이 시대 우리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민족의 모든 교회 제단 위에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임해야 할 기도 응답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깨닫기 를 바랍니다. 첫째. 약속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기도드려야 올바른 기도입니다. 엘리야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이라고 기도한 것은 약속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진실로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왜 우리가 기도할 때 의심하면서 기도하십니까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의심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약속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고 자신을 제물로 드렸고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 하였기 때문에 응답이 떨어질 줄 믿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기도해 놓고 왜 마음에 의심이 들어오고 흔들거립니까 생각해 보세요.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행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내 마음의 성전을 수축을 했습니까 아니면 내 자신이 제물이 되고자 했습니까 아니면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친 적이 있습니까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힘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지금 얼마나 힘이 있습니까 반드시 기도 응답이 떨어질 줄 믿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 우리의 기도가 마음의 성전도 수축하지 않고 제물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도 없는 가운데 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정욕을 위해서 구한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의 믿음을 보이고 구하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런 기도에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되심을 내가 주의 종이 됨을 알게 하옵소서" 기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기를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기도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나를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응답해주실 것이라 생각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저의 행함을 통해서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기도가 올바른 기도이고 그 기도 위에 여호와 하나님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토레이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쪽지를 써서 올렸습니다. 쪽지에는 "존경하는 토레이 목사님 나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응답을 해 주지 않습니다. 나는 30년 동안 장로교회에 다니며 꾸준히 신앙 생활해 왔고 20년간 장로로 봉직하고 25년간 주일학교 부장을 맡아왔는데 내 기도에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 라고 물어 왔습니다. 그때 토레이 목사님은 "당신은 기도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무언가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고 했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무언가 얻기 위해 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기도입니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 뜻에 맡기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엘리야는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도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말씀대로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기도를 응답 해달라고 하지 아니했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2-3)
일을 행하시고 뜻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기도를 드리는 일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 바른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에서 기도 소리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성도들에게서 기도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단을 쌓고 제물이 되기를 원하고 말씀에 순종한다고 할지라도 기도가 없는 제단에는 불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로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가 왜 능력 있는 선지자였습니까 그는 무너진 제단을 발견했고 그 무너진 제단을 어떻게 수축해야 하는지 알았고 수축된 제단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아는 자였고 제단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제단들이 무너졌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의 제단들이 무너진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 있다해도 수축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제는 내가 섬기는 교회 제단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내 마음의 성전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어느 한 쪽이 무너져 가고 있는 자가 있다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신속하게 수축해야 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목회하신 후안 카롤로스 오르티즈 목사님 말씀이 생각 납니다. 그는 2년 동안 정신없이 전도한 결과 600명의 성도로 교회를 성장 시켰습니다. 하루는 그가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이 들었는데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가 잡지와 책을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술수를 쓰고 있다. 도데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느냐 " 주님은 말씀하셨답니다. 오르티즈 목사는 할 말을 잃고 있는데 주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자라고 있질 않다. 네 생각에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가는 모습이다 "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일본 억압 속에서도 믿음 하나로 신앙을 지키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며 죽어갔기 때문에 우리의 조국은 해방을 얻었고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어려운 가운데서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위해서 살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에 교회들이 세계에 소문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이 시대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들이 성도들의 마음에 있는 제단들이 무너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 자신부터 무너진 단을 수축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수축하지 못하면 내일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존재하지도 않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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