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제3의 출애굽
본문
오늘은 해방기념주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식민지로 36년을 살다가 해방된지 59년이 되었으니 식민지 치하에 있었던 기간보다
1. 5배 이상이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아픔들이 많이 가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지만 직접 경험했던 분들보다 그렇지 않은 세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고, 더욱이 요즘은 한류 열풍이 불어서 ‘겨울 연가’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겨울 연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국빈급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서 일본사람들의 의식 속에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특히 지난번에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가 월드컵 공동주최국으로서 그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어 대한민국 태극전사들이 4강 신화를 만들어 내는 등 이제 옛날처럼 국민들의 마음속에 36년 동안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대일 감정이나 강한 역사의식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들을 바라 볼 때 역사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과의 고구려사 때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크고 강대한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의 역사 세우기에 힘을 쏟고 수십년 수백년 앞을 내다 보면서 역사 세우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장차 주변 나라의 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데 그때가서 지금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은 과거에 중국의 한 변방이었다 그러니 대동강 이남은 한국이지만 그 이후는 중국이니 내 놓아라... 그러면서 시비를 걸고 영토분쟁일 일으키고 급기야는 전쟁을 치루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는 학교에서 국사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를 않아요!~ 대학 가는데 국사 공부가 필수도 아니에요... 암기하기도 힘들고 점수도 잘 안나오는 재미 없는 국사 공부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어요!~ 이제야 중국에서 역사 문제를 들고 나오니깐 이제야 국사과목을 필수로 하겠다.. 야단 법석을 하고 있잖아요.... 먼 미래를 바라 보지 못하는 나라의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는 항상 동네 북처럼 얻어 맞고 사는 것입니다.
일본과의 관계에도 역사 세우기를 분명하게 하고 그리고 충분한 교육을 시키고 우리나라의 국민적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을 때 개방을 하고 서로간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될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겪은 서러움이나 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 민족끼리 6. 25전쟁을 치르고 분단된 상황 속에 아직 풀지 못한 통일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라는 수치 뿐 아니라 분단 때문에 국제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며 살아야 했는지 모릅니다. 외세에 의한 침입이 있을 때는 독립운동도 하면서 우리끼리는 나름대로 뭉칠 수 있었는데, 우리 민족끼리 분열된 상처는 쉽게 치유되고 아물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마 한 식구이기에 거는 기대가 큰 것만큼 더욱 힘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59주년 광복절, 8. 15해방, 해방 기념주일을 맞이했지만 아직 남북이 두 쪽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서는 진정한 해방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북쪽은 자기들이 주체적으로 산다고 하지만 해방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살고 있고, 우리 남쪽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산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의 생각 속에는 식민지적인 노예 근성이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역사 의식을 바로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관을 심어주었습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일본은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면서 일본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일 등 우리가 일본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감춘 채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고 자기들이 보호하고 통치해 주었기 때문에 식민치하에서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후대에 역사적으로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될줄로 압니다.
2.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신명기 6:20-21에 의하면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노예에서의 탈출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후손들이 "계명"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다. "옛적에 자기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인도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셨고, 여기서 삶을 잘 유지하고 다시는 노예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신 법을 지키면서 규모 있게 살라고 하셨다는 것을 일러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땅을 넓혀가던 다윗 시대나 화려했던 솔로몬 시대의 역사보다는 수치스러웠던 애굽의 노예로 있었던 그 역사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노예로 부렸다는 역사를 지우려고 하고 있듯이 애굽에는 이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렸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애굽의 바로 왕이 히브리 노예들을 도시건설에 투입시켜 강제 노동을 하게 했고, 사내아이들을 강제로 나일강에 던져 넣어 죽여버린 끔찍한 인구박멸 정책을 시행하게 했음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은 우리 나라의 광복절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10가지 재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10번째 재앙은 맏아들 죽는 재앙이었고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에는 맏아들을 죽이는 천사가 넘어갔기 때문에 유월절이 되었습니다. 고문에 가까운 노동을 강요당했고, 자기 태를 찢고 나온 사내자식이 애굽 군인의 손에 잡혀 나일강 속에 버려지는 것을 넋을 잃고 보고만 있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를 한 단계 한 단계 때려눕히실 때마다 그들이 받았던 상처를 다소나마 치료할 수 있었고, 기쁨으로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목청껏 소리지르며 외치고 싶은 해방의 함성으로 터져 나온 것이 유월절 잔치입니다.
우리 민족은 36년간의 노예살이를 끝낸지 59년이 지났습니다. 다시금 이땅위에 우리의 후손들이 또다른 피지배국의 삶을 살지 아니하도록... 이 땅에서 겪었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당했던 수치와 고난과 아픔을 더 이상 당하지 아니하도록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죄 가운데서 죄의 지배를 받고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의 소욕이 시키는대로 행해야만 했던 우리의 삶이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맛보고 죄의 억압의 줄을 다 끊어 버렸던 것처럼... 정치적인 자유! 문화적인 자유! 사상적인 자유를 맛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감격과 기쁨인지를 모든 사람들로 깨달아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생활 했습니다.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광야에 나와서 그들은 지금 까지 경험하지 못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홍해를 건너고 도처에 숨겨진 많은 아멜렉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고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430년 동안의 애굽의 종놀이 하는 것을 40년 이라는 짤막한 1/10로 압축된 세월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라는 출중한 지도자를 주시어서 애굽의 의식과 타성에 젖은 그들을 아무런 문제없이 가나안땅까지 주인의식을 회복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돌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민족들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다시금 옛날을 그리워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 갈려는 그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과 더 좋은 가치와 행복을 알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미래 지향적이고 인간의 가치와 존재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애굽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그들은 독립국가로서 분명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3. 사가랴의 노래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언제 한 번 마음 편하게 살아보지 못한 백성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 속에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로마의 정복 전쟁 때문에 군대에 끌려가야 했고, 예루살렘 성전에 비축되어 있는 금을 모두 빼앗겼고, 건축 노역으로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던 것처럼 로마는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의 황제에게 절하고 섬길 것을 강요했고, 퇴폐적인 헬라 문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세례요한의 탄생이 예고된 것입니다. 이런 때 아기를 가진 어버이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아기의 탄생이 곧 자유가 있고 평화로운 세상의 탄생이기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세례요한의 탄생을 앞에 놓고 역사 속에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70-71)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제2의 출애굽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해방시키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제2의 출애굽할 내용은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74-75) 욕심과 거짓, 타협과 비겁함으로 연명해 오던 이전의 노예적인 삶의 형태로부터 돌이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대열에 동참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78-79) -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어둠을 뚫고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에게 임하셔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과 같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셔서 자유와 희망의 새 세상, 평화로운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 메시아가 오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의 오심을 선포하며 그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사가랴는 바로 그의 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의 오심을 위해 그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태어나서 할 일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77) 하는 일입니다. 시계를 되돌려 놓을 수 없는 것처럼 죄의 결과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는 없지만 끊어지고 멀어졌던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를 받아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죄의 세력으로부터도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4. 신앙인의 뿌리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잃어 버렸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역사의식은 없어지지 않고 끝내 살아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 아브라함의 이야기, 출애굽의 이야기로부터 대부분의 성경의 이야기는 해방의 이야기입니다. 탈출의 이야기입니다. 자유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묶인 것, 눌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 막힌 것이 뚫리는 이야기, 온갖 문제들, 쌓인 한, 얽매인 것들을 푸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든지 낡은 것에서 계속 탈출하면서 새것을 향해서 앞을 향해서 지향하는 진지한 자세 속에서만이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뿌리부터 살펴야 지금의 내 모습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의 뿌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에도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애굽의 노예생활이 뿌리 중의 뿌리입니다. 거기서부터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쓴 뿌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조상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뿌리는 교만의 뿌리, 탐욕의 뿌리, 비판의 뿌리, 시기의 뿌리, 질투의 뿌리, 미움의 뿌리, 음란의 뿌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많이 거두어졌지만 아직도 잔뿌리로 우리 생각 속에, 삶 속에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더 이상 이런 잔뿌리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고난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를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뿌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독자 이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잔뿌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성숙하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 ! 우리가 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법을 허락하심으로 다시는 노예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셨듯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전혀 필요치 않는 쓴 뿌리들로부터 끊임없는 제3의 출애굽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가질 때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출애굽을 위하여 하늘 보좌에서 이 땅으로 역출애굽 하셨고, 십자가 못 박히셔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여러분 !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 마음 문을 열지 못했던 것 있으면 마음 문을 여심으로 출애굽 하시기 바랍니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있으면 받아들임으로 해방하시기 바랍니다. 끊어버리지 못한 것 있으면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없던 부분이 있습니까 한 번 시도해 보심으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낡은 옛 습관과 질서로부터 자유롭고 새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와 값어치를 향하여 끊임없이 출애굽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뽑혀 버릴 것 같은 위기와 고통과 아픔이 있더라도 출애굽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삶을 다시는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집시다. 세상의 허황된 명분을 위해 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진실한 삶, 행복한 삶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5배 이상이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아픔들이 많이 가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지만 직접 경험했던 분들보다 그렇지 않은 세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고, 더욱이 요즘은 한류 열풍이 불어서 ‘겨울 연가’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겨울 연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국빈급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서 일본사람들의 의식 속에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특히 지난번에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가 월드컵 공동주최국으로서 그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어 대한민국 태극전사들이 4강 신화를 만들어 내는 등 이제 옛날처럼 국민들의 마음속에 36년 동안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대일 감정이나 강한 역사의식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들을 바라 볼 때 역사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과의 고구려사 때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크고 강대한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의 역사 세우기에 힘을 쏟고 수십년 수백년 앞을 내다 보면서 역사 세우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장차 주변 나라의 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데 그때가서 지금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은 과거에 중국의 한 변방이었다 그러니 대동강 이남은 한국이지만 그 이후는 중국이니 내 놓아라... 그러면서 시비를 걸고 영토분쟁일 일으키고 급기야는 전쟁을 치루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는 학교에서 국사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를 않아요!~ 대학 가는데 국사 공부가 필수도 아니에요... 암기하기도 힘들고 점수도 잘 안나오는 재미 없는 국사 공부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어요!~ 이제야 중국에서 역사 문제를 들고 나오니깐 이제야 국사과목을 필수로 하겠다.. 야단 법석을 하고 있잖아요.... 먼 미래를 바라 보지 못하는 나라의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는 항상 동네 북처럼 얻어 맞고 사는 것입니다.
일본과의 관계에도 역사 세우기를 분명하게 하고 그리고 충분한 교육을 시키고 우리나라의 국민적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을 때 개방을 하고 서로간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될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겪은 서러움이나 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 민족끼리 6. 25전쟁을 치르고 분단된 상황 속에 아직 풀지 못한 통일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라는 수치 뿐 아니라 분단 때문에 국제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며 살아야 했는지 모릅니다. 외세에 의한 침입이 있을 때는 독립운동도 하면서 우리끼리는 나름대로 뭉칠 수 있었는데, 우리 민족끼리 분열된 상처는 쉽게 치유되고 아물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마 한 식구이기에 거는 기대가 큰 것만큼 더욱 힘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59주년 광복절, 8. 15해방, 해방 기념주일을 맞이했지만 아직 남북이 두 쪽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서는 진정한 해방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북쪽은 자기들이 주체적으로 산다고 하지만 해방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살고 있고, 우리 남쪽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산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의 생각 속에는 식민지적인 노예 근성이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역사 의식을 바로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관을 심어주었습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일본은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면서 일본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일 등 우리가 일본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감춘 채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고 자기들이 보호하고 통치해 주었기 때문에 식민치하에서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후대에 역사적으로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될줄로 압니다.
2.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신명기 6:20-21에 의하면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노예에서의 탈출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후손들이 "계명"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 주라는 것입니다. "옛적에 자기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인도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셨고, 여기서 삶을 잘 유지하고 다시는 노예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신 법을 지키면서 규모 있게 살라고 하셨다는 것을 일러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땅을 넓혀가던 다윗 시대나 화려했던 솔로몬 시대의 역사보다는 수치스러웠던 애굽의 노예로 있었던 그 역사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노예로 부렸다는 역사를 지우려고 하고 있듯이 애굽에는 이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렸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애굽의 바로 왕이 히브리 노예들을 도시건설에 투입시켜 강제 노동을 하게 했고, 사내아이들을 강제로 나일강에 던져 넣어 죽여버린 끔찍한 인구박멸 정책을 시행하게 했음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은 우리 나라의 광복절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10가지 재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10번째 재앙은 맏아들 죽는 재앙이었고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에는 맏아들을 죽이는 천사가 넘어갔기 때문에 유월절이 되었습니다. 고문에 가까운 노동을 강요당했고, 자기 태를 찢고 나온 사내자식이 애굽 군인의 손에 잡혀 나일강 속에 버려지는 것을 넋을 잃고 보고만 있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를 한 단계 한 단계 때려눕히실 때마다 그들이 받았던 상처를 다소나마 치료할 수 있었고, 기쁨으로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목청껏 소리지르며 외치고 싶은 해방의 함성으로 터져 나온 것이 유월절 잔치입니다.
우리 민족은 36년간의 노예살이를 끝낸지 59년이 지났습니다. 다시금 이땅위에 우리의 후손들이 또다른 피지배국의 삶을 살지 아니하도록... 이 땅에서 겪었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당했던 수치와 고난과 아픔을 더 이상 당하지 아니하도록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죄 가운데서 죄의 지배를 받고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의 소욕이 시키는대로 행해야만 했던 우리의 삶이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맛보고 죄의 억압의 줄을 다 끊어 버렸던 것처럼... 정치적인 자유! 문화적인 자유! 사상적인 자유를 맛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감격과 기쁨인지를 모든 사람들로 깨달아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생활 했습니다.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광야에 나와서 그들은 지금 까지 경험하지 못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홍해를 건너고 도처에 숨겨진 많은 아멜렉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고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430년 동안의 애굽의 종놀이 하는 것을 40년 이라는 짤막한 1/10로 압축된 세월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라는 출중한 지도자를 주시어서 애굽의 의식과 타성에 젖은 그들을 아무런 문제없이 가나안땅까지 주인의식을 회복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돌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민족들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다시금 옛날을 그리워 하면서 애굽으로 돌아 갈려는 그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과 더 좋은 가치와 행복을 알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미래 지향적이고 인간의 가치와 존재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애굽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그들은 독립국가로서 분명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3. 사가랴의 노래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언제 한 번 마음 편하게 살아보지 못한 백성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당시의 이스라엘 상황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 속에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로마의 정복 전쟁 때문에 군대에 끌려가야 했고, 예루살렘 성전에 비축되어 있는 금을 모두 빼앗겼고, 건축 노역으로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던 것처럼 로마는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의 황제에게 절하고 섬길 것을 강요했고, 퇴폐적인 헬라 문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세례요한의 탄생이 예고된 것입니다. 이런 때 아기를 가진 어버이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아기의 탄생이 곧 자유가 있고 평화로운 세상의 탄생이기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세례요한의 탄생을 앞에 놓고 역사 속에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70-71)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제2의 출애굽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해방시키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제2의 출애굽할 내용은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74-75) 욕심과 거짓, 타협과 비겁함으로 연명해 오던 이전의 노예적인 삶의 형태로부터 돌이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대열에 동참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78-79) -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어둠을 뚫고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에게 임하셔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과 같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셔서 자유와 희망의 새 세상, 평화로운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 메시아가 오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의 오심을 선포하며 그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사가랴는 바로 그의 아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왕의 오심을 위해 그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태어나서 할 일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77) 하는 일입니다. 시계를 되돌려 놓을 수 없는 것처럼 죄의 결과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는 없지만 끊어지고 멀어졌던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 넉넉한 가슴으로 우리를 받아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죄의 세력으로부터도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4. 신앙인의 뿌리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잃어 버렸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역사의식은 없어지지 않고 끝내 살아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 아브라함의 이야기, 출애굽의 이야기로부터 대부분의 성경의 이야기는 해방의 이야기입니다. 탈출의 이야기입니다. 자유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묶인 것, 눌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 막힌 것이 뚫리는 이야기, 온갖 문제들, 쌓인 한, 얽매인 것들을 푸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든지 낡은 것에서 계속 탈출하면서 새것을 향해서 앞을 향해서 지향하는 진지한 자세 속에서만이 승리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뿌리부터 살펴야 지금의 내 모습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의 뿌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에도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애굽의 노예생활이 뿌리 중의 뿌리입니다. 거기서부터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쓴 뿌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조상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뿌리는 교만의 뿌리, 탐욕의 뿌리, 비판의 뿌리, 시기의 뿌리, 질투의 뿌리, 미움의 뿌리, 음란의 뿌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많이 거두어졌지만 아직도 잔뿌리로 우리 생각 속에, 삶 속에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더 이상 이런 잔뿌리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고난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를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뿌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독자 이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잔뿌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성숙하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 ! 우리가 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법을 허락하심으로 다시는 노예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셨듯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전혀 필요치 않는 쓴 뿌리들로부터 끊임없는 제3의 출애굽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가질 때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출애굽을 위하여 하늘 보좌에서 이 땅으로 역출애굽 하셨고, 십자가 못 박히셔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여러분 !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 마음 문을 열지 못했던 것 있으면 마음 문을 여심으로 출애굽 하시기 바랍니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있으면 받아들임으로 해방하시기 바랍니다. 끊어버리지 못한 것 있으면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없던 부분이 있습니까 한 번 시도해 보심으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낡은 옛 습관과 질서로부터 자유롭고 새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와 값어치를 향하여 끊임없이 출애굽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뽑혀 버릴 것 같은 위기와 고통과 아픔이 있더라도 출애굽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삶을 다시는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집시다. 세상의 허황된 명분을 위해 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진실한 삶, 행복한 삶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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