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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15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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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광복 5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6년 전의 조국 광복의 그 감격을 우리 민족은 지금 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8. 15의 의미가 퇴색되어지는 것 같아서 이 시간에는 8. 15가 주는 교훈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8. 15는 우리 민족에게 일제의 36년간의 노예 생활에서 풀려난 해방의 날이면서 세계 제2차 대전을 종결시킨 연합군의 승리의 날로 인식되어 집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 성에게도 8. 15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원래 유다 왕조는 통일 왕조였으나 솔로몬 이후 르 호보암의 실정으로 나라가 32도를 중심 하여 남쪽은 유대나라, 북쪽은 이스라엘로 분열되었 습니다. 그러니까 8. 15는 이스라엘의 건국일이면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는 날이며 죄악의 날이고 저주받는 날이었습니다. 이날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의 눈물로 땅을 치며 앙천 대곡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8. 15가 해방의 날인 동시에 자유의 날이며 남북 분열의 날로 이날부터 38 도 이북에는 여호와 하나님 대신 유물주의로 팽창해 왔고 고통의 삶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렇다 면 8. 15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⑴,민족 분열을 막아야 합니다. 북왕국 여로보암은 갑자기 얻어진 주권이 마치 자기의 것인양 자기의 왕국을 구축하고자 하 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정권을 잡기는 했지만 북쪽에 있는 사람들이 신앙의 중심지를 찾아 남쪽으로 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반역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 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북쪽의 백성들이 남쪽 유다로 못 가게 가로막았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가로 먹고 못 가게 한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함으로 남북이 분열되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8. 15일이 건국의 기쁜 날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같은 민족이 그때로부터 남북이 분열되는 상처의 날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간 에는 요단강을 건너서 살던 지파들과 건너지 않고 살던 지파들 간에 오랜 세월을 지나서 32 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분열되어 300년간을 분쟁하게 되었습니다.
한 민족은 한데 뭉쳐서 살아야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는 일찍이 우 리 나라를 건지려고 애쓰던 애국 선열들의 표어였으며 생의 지표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갈라지기 쉬운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갈파하시고서 "항상 기도하라, 하나가 되라"고(엡 4:1-8)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도 8. 15가 일제의 36년 압박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날이면서 그 날이 바로 남북이 분열되는 비극의 날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기쁨 과 감격은 잠시뿐이고 외세에 의해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으며, 그후로 한 민족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남북으로 나눠져 살고 있으며, 지금은 또 동서로 나눠져서 매사에 대립 을 하며 사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는 기쁨이면 만족할 것인데 정권 싸 움으로 분열의 추태를 보였으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죄에서 해방 받은 그것 하나면 될 터인 데 교회가 분열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8. 15는 민족 분 열의 날이었던 것처럼 우리 민족도 8. 15는 민족 분열의 뼈아픈 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해방 된 지 56주년을 맞으면서 어떻든지 민족 분열을 막는 지혜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⑵,배금주의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건국한 후 8. 15를 건국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민심을 수습하고 국론을 통일시키기 위해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경배하게 했습니다. 그 런데 여로보암의 이런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려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우리 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적인 분입시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거룩 하시며, 전지 전능하시며, 무소 부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 분을 오늘날도 말씀을 통해서 만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으며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행위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물의 형상 곧 비인격적인 형상으로 바꾸 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이 금 신상을 만든 것은 일종의 배금주의 행동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는 곧 배금주의를 상징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최근 들어 배금주의 사상으로 팽배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가치판단을 인격 여하에 두지 않고 월급 봉투가 얼마나 두틈 하느냐에 따르며,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얼마나 수입이 많으냐에 따라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진정한 사람되 게 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졸업 후 어떻게 해야 좋은 학교에 가느냐에 두고 있으며, 좋은 학교에 갈려고 하는 것은 그래야 졸업 후 취직이 잘되고 그래서 돈을 잘 벌어들 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인명은 돈보다 더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돈이 생기는 일이면 사람을 죽 이면서 까지라도 목적을 달성하는 세상이니 오늘의 세상이야말로 배금주의가 팽배한 세상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북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없고 유물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며 남한에는 하나 님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금송아지 사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의 현상을 보면 돈 때문에 신앙을 팔고 돈 때문에 형제간의 의리도 끊고 부자간에도 원 수가 되고 교우간에도 원수를 맺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금송아지를 하나 님으로 섬기던 여로보암 시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온 천하보다 사람 의 생명이 귀중한 것이니 우리는 8. 15 56주년을 맞으면서 배금주의 사상의 팽창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⑶,신앙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절기 제도는 이스라엘의 신앙에 중요한 규례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 권과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이 바꿔지자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준염하신 명령이 인간의 명령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 물질 중심,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인들 도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의 명령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서게 된 것이며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은 피차간에 피를 흘리는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어쩌든지 전쟁을 하지 말아 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제2차 대전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군국주의에게 정복당한 약소민족들에게 자 유와 해방과 평화를 주기 위하여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들이 전쟁을 한 것입니다. 1945년 초 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패하고 동년 8,9월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로 36여만 명의 희 생을 치른 후 일본이 항복했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자유와 평화를 얻은 줄로 알았는데 세게는 다시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휩 싸이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지식의 발달은 인간에게 평안과 행복을 주기도 했으나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더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역사 해설 가인 피즈 교수는 "인간은 결국 자 기를 파멸시키는 괴물을 만들고 그 앞에서 떨고 있다"고 했습니다. 8. 15의 기쁨을 만끽하던 우리 민족에게는 시대의 절망적인 고뇌와 쓴잔이 계속 찾아 왔습니다. 6. 25를 통해서 조국은 초토화되었고 천만 이산가족이 생겨서 망향의 설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치가나 역사가 들은 오늘의 현실을 불안으로 보고 있으며, 종교가들은 말세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우리 이간이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와 평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참 평화를 누리며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14:27 " 내가 너희에게 참 평안을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안함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 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즉 세상 방법으로는 평안이나 자유 를 누릴 수 없으나 주님이 주신 신앙을 가질 때만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참된 신앙을 통하여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썩어질 금신으로 대치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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