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주의 큰 인물이 나는 가정
본문
어느 교회에서나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킬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을 겹쳐서 지킵니다. 그러나 가정 안에는 어린이와 어버이가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매해마다 5월 첫째 주일을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정에 대한 말씀을 본문에 의지해서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주 앞에 큰 인물이 나는 것은 곧 광성교회에서 큰 인물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세상에서의 큰 인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앞에 큰 인물이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인공이 되는 가정은 세례요한의 가정입니다. 그 가정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납니다. (5-7)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부부 금실이 좋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에게는 아내가 넷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 여자 중에서 라헬이라고 하는 아내를 각별히 사랑합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였는데 그때 외삼촌의 딸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을 위해서 7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는데 야곱이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7년을 하루같이 지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7년을 하루같이 지내고 또 7년을 하루같이 지내겠습니까 그러니까 라헬만 옆에 있으면 7년이 아닌 14년도 하루 같았다는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생각만 해도 황홀할 정도로 서로 사랑했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애굽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요셉입니다. 요셉은 세상적인 출세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로 해서 세운 큰 일꾼입니다. 금실이 좋은 부부에게서 주 앞에 큰 인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녀를 많이 낳아서 남편의 사랑을 받고 독차지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는 브닌나보다 무자한 한나를 갑절이나 더 사랑했습니다. 한나에게는 아들, 딸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후에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사무엘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났습니다.
저는 제 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다윗과 같은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무엘과 같은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윗은 그저 왕일 뿐이지만 사무엘은 왕정이전의 사사입니다. 그것은 왕과 같은 존재요, 또한 그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렇게 큰 인물이 금실이 좋은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났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그 주위에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여자만 사랑하는데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남의 아내인데 다윗이 너무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밧세바의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아내를 삼았습니다. 다윗을 얘기하고 다윗의 아내를 얘기할 때에는 항상 밧세바가 등장합니다. 그만큼 밧세바를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솔로몬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초를 다져놓은 왕이 바로 솔로몬이 아닙니까 또한 솔로몬은 지혜롭기로 유명합니다. 금실이 좋은 부부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들이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주 앞에 큰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부부사이에 금실이 좋아야 합니다. 술 먹고 밤낮 싸우는 부부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쓰실 좋은 일꾼을 보내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에서 7절을 보면, “유대왕 헤롯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6절을 보면,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중에 사가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가를 들었는데 그 여자가 엘리사벳입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성을 다 바쳤는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기록합니다. 물론 율법적인 의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이가 많을 때까지 아들이나 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벳이 본래 수태하지 못하는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시에는 첩을 얻어도 별로 흠이 안 되는 시대였습니다. 사가랴가 다른 여자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엘리사벳이 아닌 다른 여자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고 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이기에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이지만 사랑에는 절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가정에 세례요한을 보냈는데 그 세례요한은 말라기서 4장 5절을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처럼 이미 400년전에 예고된 일꾼입니다. 이 말씀은 쉽게 말씀드리면 메시아 예수님이 나시기 전에 엘리야라고 선지자가 먼저 와서 길잡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오셨고 말라기의 예언한 엘리야 출현에 대하여 제자들도 궁금했는데 바로 그 먼저 온다는 엘리야가 누구인가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엘리야가 곧 세례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 말라기가 이런 예언을 하고 난 후 누가복음을 쓰기까지는 400년이 걸렸습니다. 400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의 길잡이가 될 일꾼, 예수님이 친히 증거 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실 정도로 귀한 일꾼을 어느 가정에 보낼 것입니까 박씨 가정에 보낼 수도 있고, 김씨 가정에 보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고르고 골라서 부부사이에 금실이 좋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은 사가랴의 가정을 통해서 크신 일꾼 요한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들이 주 앞에 큰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까 사가랴 부부처럼 금실이 좋은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밤낮 술 마시고 싸우는 부부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은 일꾼을 보내주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 많이 하는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납니다. (8-13)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예고된 큰 일꾼은 세례요한 한 사람인데 믿음의 가정 중에 금실이 좋은 부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더 보셨는데 바로 기도 많이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가 금실이 좋고 교회도 열심히 다닙니다. 그런데 절대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정은 다 제쳐놓고 두 번째로 부부가 함께 기도 많이 하는 가정에 세례요한과 같은 큰 일꾼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부터 13절까지 보면,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요약해 드리면 제사장 사가랴가 기도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할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기도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분향하는 시간에 사가랴에게 향단 우편에 천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네 기도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태하지 못한다 하는 네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서 아들을 줄텐데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가랴는 다른 여자가 아닌 오직 자신의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서만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수태하지 못한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려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다고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늙기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400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로 통해서 예언한 엘리야, 즉 세례요한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가정을 통해서 큰 일꾼을 키우셨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이 주 앞에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부부 금실이 좋은 것은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도 부부 금실이 좋은 것으로 끝나는 가정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열심히 기도하는 가정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귀한 일꾼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신학자는 카톨릭에서도 존경하고 프로테스탄트, 즉 신교에서도 존경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신학자들에 대한 평가는 다릅니다. 카톨릭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면,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또 신교에서 훌륭하다고 하면, 구교에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 함께 존경하고 추앙하는 신학자는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는 어거스틴이 어려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였음에도 아들이 탈선을 하고 나쁜 길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여자들을 잘못 사귀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하고 마니교라고 하는 이단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조그만 동네에서 살았던 그는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하여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도망을 갑니다. 어머니가 밀라노까지 따라가서 교회에 나아가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 교회의 감독, 즉 목사인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가 상담을 합니다. 그때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기도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얘기해 주었고 그 말에 힘을 얻어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아들이 회개하고 나중에는 기독교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는 신학자가 됩니다. 어거스틴과 같은 큰 인물은 기도하는 가정에 보내주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일꾼은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앞에 큰 일꾼은 다릅니다. 기도 많이 하십시오. 기도하는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주 앞에 큰 자가 일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은혜가 충만한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납니다. (14-17)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부 금실이 좋아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골라보시니 제법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다가 기도 많이 하는 가정을 골라보시니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보낼 엘리야, 즉 세례요한은 한 사람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더 보셨는데 “은혜가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부부가 기도생활 하면서 부부가 함께 은혜가 충만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아내는 기도 많이 하고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있는데 남편에게는 은혜가 메마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가랴의 가정은 아내도 은혜 충만한가 하면 남편도 은혜 충만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장 41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 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67절을 보면,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15절을 보면,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말씀을 보면 세례요한이 아직 태어나기 전입니다.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기록되었고, 또 그의 남편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태어날 세례요한에 대해서도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세 식구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즉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 기도하고 또는 말씀 상고하는 중에 받는 은혜인데 어떻게 모태에 있을 때 성령이 충만합니까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가 성령이 충만하니까 태중에 있는 아기까지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잡이가 되고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일꾼이 되려면 성령 충만, 은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함께 성령 충만한 가정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건성으로 신앙생활하는 부모에게 보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부부처럼 성령 충만한 부부가 되면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도 분명히 성령 충만함 받아 주 앞에 큰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교인들을 자랑하라고 하면 항상 한 가정을 자랑합니다. 목사가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복됩니까 바로 이신일 집사님의 가정입니다. 그 집과는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숨쉬는 소리도 서로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테니스를 하지 않았을 때였기에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꼭 잠을 자야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 일찍 찬송을 벼락같이 부르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깨어 일어나게 됩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찬송을 부른다고 목사가 짜증을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찬송을 부르는 것은 가정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로 맡아놓고 부르는 찬송이 있는데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아들, 딸들을 밥 먹여서 학교에 보내곤 합니다. 여러 해를 살면서 부부가 큰 소리가 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집사님 집에서는 아침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우리 집에서는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렸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사님의 가정예배부터 받으시지 않았겠습니까 목사의 가정보다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집사님의 아들, 딸들이 지금 아주 잘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교수로 있었는데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온갖 좋은 조건으로 초빙을 하였습니다. 둘째아들은 우리 교회 장로입니다. 나이 40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모두 정리가 되고 은행들이 서로 합병할 때에도 끝까지 남아 지금 지점장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또 딸은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부부가 금실이 좋고 기도 많이 하고 가정에 은혜가 충만하다 보니 크고 좋은 인물들을 보내셨습니다. 이신일 집사님을 자세히 뜯어보면 별 다른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사람이 보기에 그런 것이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이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이 세례요한과 같이 주 앞에 큰 자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짓습니다. 인물나는 사가랴의 가정은 첫째로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두 부부가 나이 많고 또 아기를 못 낳는 아내였지만 서로가 남편밖에 모르고 아내밖에 모르는 금실 좋은 부부였습니다. 그런 부부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세례요한과 같은 천하 제일가는 인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즉 큰 인물이 나는 가정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 많이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수태치 못하는 여자, 나이가 많은 부부라는 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여호와 하나님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엘리사벳을 통해서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정에 세례요한같은 큰 인물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셋째는 은혜가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이 성령 충만하였고 아내가 성령 충만하였고 태어날 아들은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잡이가 되고 예수님께서 천하제일이라고 증거할 만한 주 앞에서 큰 자는 성령 충만한 가정에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술주정꾼의 집에 주 앞에 큰 일꾼을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사가랴의 가정처럼 되어서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큰 인물이 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이런 축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주 앞에 큰 인물이 나는 것은 곧 광성교회에서 큰 인물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세상에서의 큰 인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앞에 큰 인물이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인공이 되는 가정은 세례요한의 가정입니다. 그 가정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납니다. (5-7)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부부 금실이 좋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에게는 아내가 넷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 여자 중에서 라헬이라고 하는 아내를 각별히 사랑합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하였는데 그때 외삼촌의 딸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라헬을 위해서 7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는데 야곱이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7년을 하루같이 지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7년을 하루같이 지내고 또 7년을 하루같이 지내겠습니까 그러니까 라헬만 옆에 있으면 7년이 아닌 14년도 하루 같았다는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생각만 해도 황홀할 정도로 서로 사랑했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애굽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요셉입니다. 요셉은 세상적인 출세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로 해서 세운 큰 일꾼입니다. 금실이 좋은 부부에게서 주 앞에 큰 인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녀를 많이 낳아서 남편의 사랑을 받고 독차지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는 브닌나보다 무자한 한나를 갑절이나 더 사랑했습니다. 한나에게는 아들, 딸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후에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사무엘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났습니다.
저는 제 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다윗과 같은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무엘과 같은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윗은 그저 왕일 뿐이지만 사무엘은 왕정이전의 사사입니다. 그것은 왕과 같은 존재요, 또한 그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렇게 큰 인물이 금실이 좋은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났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그 주위에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여자만 사랑하는데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남의 아내인데 다윗이 너무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밧세바의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아내를 삼았습니다. 다윗을 얘기하고 다윗의 아내를 얘기할 때에는 항상 밧세바가 등장합니다. 그만큼 밧세바를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솔로몬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초를 다져놓은 왕이 바로 솔로몬이 아닙니까 또한 솔로몬은 지혜롭기로 유명합니다. 금실이 좋은 부부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들이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주 앞에 큰 자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부부사이에 금실이 좋아야 합니다. 술 먹고 밤낮 싸우는 부부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쓰실 좋은 일꾼을 보내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에서 7절을 보면, “유대왕 헤롯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6절을 보면,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중에 사가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가를 들었는데 그 여자가 엘리사벳입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성을 다 바쳤는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기록합니다. 물론 율법적인 의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이가 많을 때까지 아들이나 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벳이 본래 수태하지 못하는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시에는 첩을 얻어도 별로 흠이 안 되는 시대였습니다. 사가랴가 다른 여자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엘리사벳이 아닌 다른 여자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고 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이기에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이지만 사랑에는 절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가정에 세례요한을 보냈는데 그 세례요한은 말라기서 4장 5절을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처럼 이미 400년전에 예고된 일꾼입니다. 이 말씀은 쉽게 말씀드리면 메시아 예수님이 나시기 전에 엘리야라고 선지자가 먼저 와서 길잡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오셨고 말라기의 예언한 엘리야 출현에 대하여 제자들도 궁금했는데 바로 그 먼저 온다는 엘리야가 누구인가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엘리야가 곧 세례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 말라기가 이런 예언을 하고 난 후 누가복음을 쓰기까지는 400년이 걸렸습니다. 400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의 길잡이가 될 일꾼, 예수님이 친히 증거 하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실 정도로 귀한 일꾼을 어느 가정에 보낼 것입니까 박씨 가정에 보낼 수도 있고, 김씨 가정에 보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고르고 골라서 부부사이에 금실이 좋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은 사가랴의 가정을 통해서 크신 일꾼 요한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들이 주 앞에 큰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까 사가랴 부부처럼 금실이 좋은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밤낮 술 마시고 싸우는 부부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은 일꾼을 보내주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 많이 하는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납니다. (8-13)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예고된 큰 일꾼은 세례요한 한 사람인데 믿음의 가정 중에 금실이 좋은 부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더 보셨는데 바로 기도 많이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가 금실이 좋고 교회도 열심히 다닙니다. 그런데 절대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정은 다 제쳐놓고 두 번째로 부부가 함께 기도 많이 하는 가정에 세례요한과 같은 큰 일꾼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부터 13절까지 보면,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요약해 드리면 제사장 사가랴가 기도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기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할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기도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또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분향하는 시간에 사가랴에게 향단 우편에 천사가 나타나 하는 말이 네 기도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태하지 못한다 하는 네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서 아들을 줄텐데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가랴는 다른 여자가 아닌 오직 자신의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서만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수태하지 못한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려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다고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늙기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400년 전에 말라기 선지자로 통해서 예언한 엘리야, 즉 세례요한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가정을 통해서 큰 일꾼을 키우셨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이 주 앞에 큰 인물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기도하십시오. 부부 금실이 좋은 것은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도 부부 금실이 좋은 것으로 끝나는 가정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열심히 기도하는 가정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귀한 일꾼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신학자는 카톨릭에서도 존경하고 프로테스탄트, 즉 신교에서도 존경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신학자들에 대한 평가는 다릅니다. 카톨릭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면,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또 신교에서 훌륭하다고 하면, 구교에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 함께 존경하고 추앙하는 신학자는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 아버지는 어거스틴이 어려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였음에도 아들이 탈선을 하고 나쁜 길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여자들을 잘못 사귀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하고 마니교라고 하는 이단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조그만 동네에서 살았던 그는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하여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도망을 갑니다. 어머니가 밀라노까지 따라가서 교회에 나아가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 교회의 감독, 즉 목사인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가 상담을 합니다. 그때 암브로시우스 감독이 ‘기도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얘기해 주었고 그 말에 힘을 얻어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아들이 회개하고 나중에는 기독교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는 신학자가 됩니다. 어거스틴과 같은 큰 인물은 기도하는 가정에 보내주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일꾼은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앞에 큰 일꾼은 다릅니다. 기도 많이 하십시오. 기도하는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주 앞에 큰 자가 일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은혜가 충만한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납니다. (14-17)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부 금실이 좋아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골라보시니 제법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다가 기도 많이 하는 가정을 골라보시니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보낼 엘리야, 즉 세례요한은 한 사람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더 보셨는데 “은혜가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부부가 기도생활 하면서 부부가 함께 은혜가 충만하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아내는 기도 많이 하고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있는데 남편에게는 은혜가 메마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가랴의 가정은 아내도 은혜 충만한가 하면 남편도 은혜 충만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장 41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 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67절을 보면,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15절을 보면,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말씀을 보면 세례요한이 아직 태어나기 전입니다.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기록되었고, 또 그의 남편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태어날 세례요한에 대해서도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세 식구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즉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 기도하고 또는 말씀 상고하는 중에 받는 은혜인데 어떻게 모태에 있을 때 성령이 충만합니까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가 성령이 충만하니까 태중에 있는 아기까지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잡이가 되고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일꾼이 되려면 성령 충만, 은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함께 성령 충만한 가정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건성으로 신앙생활하는 부모에게 보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부부처럼 성령 충만한 부부가 되면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도 분명히 성령 충만함 받아 주 앞에 큰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교인들을 자랑하라고 하면 항상 한 가정을 자랑합니다. 목사가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복됩니까 바로 이신일 집사님의 가정입니다. 그 집과는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숨쉬는 소리도 서로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테니스를 하지 않았을 때였기에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꼭 잠을 자야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 일찍 찬송을 벼락같이 부르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깨어 일어나게 됩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찬송을 부른다고 목사가 짜증을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찬송을 부르는 것은 가정예배에서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로 맡아놓고 부르는 찬송이 있는데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아들, 딸들을 밥 먹여서 학교에 보내곤 합니다. 여러 해를 살면서 부부가 큰 소리가 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집사님 집에서는 아침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우리 집에서는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렸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사님의 가정예배부터 받으시지 않았겠습니까 목사의 가정보다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집사님의 아들, 딸들이 지금 아주 잘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교수로 있었는데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온갖 좋은 조건으로 초빙을 하였습니다. 둘째아들은 우리 교회 장로입니다. 나이 40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모두 정리가 되고 은행들이 서로 합병할 때에도 끝까지 남아 지금 지점장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또 딸은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부부가 금실이 좋고 기도 많이 하고 가정에 은혜가 충만하다 보니 크고 좋은 인물들을 보내셨습니다. 이신일 집사님을 자세히 뜯어보면 별 다른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사람이 보기에 그런 것이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이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이 세례요한과 같이 주 앞에 큰 자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짓습니다. 인물나는 사가랴의 가정은 첫째로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두 부부가 나이 많고 또 아기를 못 낳는 아내였지만 서로가 남편밖에 모르고 아내밖에 모르는 금실 좋은 부부였습니다. 그런 부부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세례요한과 같은 천하 제일가는 인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즉 큰 인물이 나는 가정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 많이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수태치 못하는 여자, 나이가 많은 부부라는 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여호와 하나님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엘리사벳을 통해서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정에 세례요한같은 큰 인물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셋째는 은혜가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이 성령 충만하였고 아내가 성령 충만하였고 태어날 아들은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잡이가 되고 예수님께서 천하제일이라고 증거할 만한 주 앞에서 큰 자는 성령 충만한 가정에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술주정꾼의 집에 주 앞에 큰 일꾼을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사가랴의 가정처럼 되어서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큰 인물이 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서 큰 인물이 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이런 축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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