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천국, 한 가정 운동
본문
오늘 말씀은 우리의 상식을 깨는 말씀이고, 나와 너의 관계의 막힌 담을 허는 말씀이고, 나라와 나라의 경계도 없이하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주가 열리고 하늘이 열리고 온 세상이 열려서 하나가 되게 하는 놀라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마리아와 그 가족은 예수님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참 일하시는(교육) 예수님의 사역을 멈춰야 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 안에 무슨 사고가 있어서 급보를 알리려고 찾아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앞의 말씀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이 바알세불, 즉 귀신이 붙었다는 등의 시비가 있었고 이러한 정황에 대한 판단이 미숙했던 가족들이 예수님이 잘못될까봐 걱정을 하였다. 21절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정상이셨으며 오늘은 오히려 정상 이상의 명쾌한 진리와 우리 인간의 새로운 관계의 개념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무리들이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몹시 불쾌하신 반응을 보이시면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은 여기에서 통상적인 가족의 개념을 확 바꾸셨습니다. 그동안의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전 이해를 획기적으로 갱신해 주셨습니다. 35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할렐루야!
1. 기독자의 영원한 과제
우리 기독교인의 영원한 과제이며 핵심적인 과제가 있다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치료될 수 없습니다. 회복될 수 없습니다.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떨어지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는 것이 그 마지막입니다. 소망이 없는 끝입니다. 허무한 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둘로 요약을 하면 그것은 위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은 가정에서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사랑을 보려면 가정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가정이 천국의 모형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정에서 사랑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정도 가정 나름이겠지만 그러나 사랑을 보려면 가정이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 사랑을 밖으로 확대시켜나갑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실현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잘 오지 않습니다. 이 사랑이 잘 실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음은 곧 우리 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뜻합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유무상통이었습니다. 내 것 네 것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자기 소유의 개념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땅을 팔고, 소유의 상당 부분을 여호와 하나님께 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도 더불어 풍성한 식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진 형벌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화를 초래한 것입니다. 서로간의 관계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못할 때 그들은 이 생명의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내 것에 너무 집착한 결과 사망과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가정도 너무 내 것에 너무 집착하면 그 사람은 그 가족에게서 소외됩니다. 오늘 날 왕따의 기본적인 정서는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왕따가 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참 가정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아껴주고 보호해 줍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가족에 대한 신 개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은 무리들이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당신의 모친, 당신의 형제, 당신의 누이라고 하는 말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의 가족과 같이 여기에, 지금 함께하는 무리들도 똑같은 하나의 가족임을 알고 느끼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주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릅니다.
2. 천국은 하나의 가정입니다.
천국에는 씨족의 개념이 없습니다. 종족과 국가의 개념도 없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가정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과 사두개인들의 부활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대결혼의 전통을 문제 삼았습니다. (마 22: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따라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국은 사랑이 완성된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운동은 곧 천국운동입니다. 천국은 교회를 통하여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천국은 먼저 여러분들의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이 천국은 사랑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주님이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는 이루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음은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심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계산을 초월하고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사랑이 있으면 이것은 그 심령 속에 초월자이며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이 계심을 뜻합니다.
그 심령 속에 초월자가 없이는 우리가 초월하는 이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초월을 줍니다. 이해관계를, 계산을 초월하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초월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에서 초월이 잘 훈련된 사람의 기업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운동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계산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의 원리에서 떨어지고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압니다.
여러분!
천국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구원과 영생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정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 가정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니 온전한 한 가정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가정으로서의 교회, 가정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이 하나의 가정운동에 실패하면 천국은 없습니다.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도 상실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우리들의 삶의 의미는 없습니다. 지금 나의 행복의 의미는 없습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없는 삶은 그 것 자체가 불행이고 저주입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새벽이 언제 오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먼동이 틀 때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니다”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나서 “새가 울 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진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그러면 새벽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그 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모르는 이들이 너희의 형제와 자매로 보일 때, 그 때 새벽은 오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제자교회는 이제 그동안 소홀히 했던 이 “하나의 가정운동, 진정한 천국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제자교회는 하나의 가정이며 천국의 모형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누리고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날 마리아와 그 가족은 예수님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참 일하시는(교육) 예수님의 사역을 멈춰야 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 안에 무슨 사고가 있어서 급보를 알리려고 찾아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앞의 말씀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이 바알세불, 즉 귀신이 붙었다는 등의 시비가 있었고 이러한 정황에 대한 판단이 미숙했던 가족들이 예수님이 잘못될까봐 걱정을 하였다. 21절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정상이셨으며 오늘은 오히려 정상 이상의 명쾌한 진리와 우리 인간의 새로운 관계의 개념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무리들이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몹시 불쾌하신 반응을 보이시면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은 여기에서 통상적인 가족의 개념을 확 바꾸셨습니다. 그동안의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전 이해를 획기적으로 갱신해 주셨습니다. 35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할렐루야!
1. 기독자의 영원한 과제
우리 기독교인의 영원한 과제이며 핵심적인 과제가 있다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치료될 수 없습니다. 회복될 수 없습니다.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떨어지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는 것이 그 마지막입니다. 소망이 없는 끝입니다. 허무한 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둘로 요약을 하면 그것은 위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은 가정에서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사랑을 보려면 가정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가정이 천국의 모형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정에서 사랑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정도 가정 나름이겠지만 그러나 사랑을 보려면 가정이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 사랑을 밖으로 확대시켜나갑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 나라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실현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잘 오지 않습니다. 이 사랑이 잘 실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음은 곧 우리 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뜻합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유무상통이었습니다. 내 것 네 것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자기 소유의 개념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땅을 팔고, 소유의 상당 부분을 여호와 하나님께 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도 더불어 풍성한 식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깨진 형벌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화를 초래한 것입니다. 서로간의 관계에서 어떤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못할 때 그들은 이 생명의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내 것에 너무 집착한 결과 사망과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가정도 너무 내 것에 너무 집착하면 그 사람은 그 가족에게서 소외됩니다. 오늘 날 왕따의 기본적인 정서는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왕따가 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참 가정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아껴주고 보호해 줍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가족에 대한 신 개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예수님은 무리들이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당신의 모친, 당신의 형제, 당신의 누이라고 하는 말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의 가족과 같이 여기에, 지금 함께하는 무리들도 똑같은 하나의 가족임을 알고 느끼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주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릅니다.
2. 천국은 하나의 가정입니다.
천국에는 씨족의 개념이 없습니다. 종족과 국가의 개념도 없습니다. 전체가 하나의 가정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과 사두개인들의 부활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대결혼의 전통을 문제 삼았습니다. (마 22: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마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따라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국은 사랑이 완성된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운동은 곧 천국운동입니다. 천국은 교회를 통하여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천국은 먼저 여러분들의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이 천국은 사랑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주님이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는 이루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음은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심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계산을 초월하고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사랑이 있으면 이것은 그 심령 속에 초월자이며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이 계심을 뜻합니다.
그 심령 속에 초월자가 없이는 우리가 초월하는 이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초월을 줍니다. 이해관계를, 계산을 초월하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초월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에서 초월이 잘 훈련된 사람의 기업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운동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계산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의 원리에서 떨어지고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압니다.
여러분!
천국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구원과 영생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정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 가정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니 온전한 한 가정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가정으로서의 교회, 가정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이 하나의 가정운동에 실패하면 천국은 없습니다.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도 상실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늘 우리들의 삶의 의미는 없습니다. 지금 나의 행복의 의미는 없습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없는 삶은 그 것 자체가 불행이고 저주입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새벽이 언제 오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먼동이 틀 때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니다”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른 제자가 나서 “새가 울 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진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그러면 새벽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그 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모르는 이들이 너희의 형제와 자매로 보일 때, 그 때 새벽은 오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제자교회는 이제 그동안 소홀히 했던 이 “하나의 가정운동, 진정한 천국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제자교회는 하나의 가정이며 천국의 모형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누리고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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