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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한가정- 바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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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어버이주일과 어린이 주일을 함께 지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바른 관계의 가정'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공평하시지 못하신 것 같아서 불평도 하고 원망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별로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데도 부자로 만들어 주시고, 나는 죽어라 하고 일을 하는데도 어째서 이렇게 가난하게 만들어 주십니까
저 사람은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데도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데 나는 왜 이모양입니까
저 사람에게는 저런 재주를 주셨는데 어째서 내겐 재주를 하나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에게도 남이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을 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것을 모릅니다.
지금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도 다 예뻐보이고, 코메디언들도 잘 생겨 보입디다만 mrrjt도 다 화장 발이고 뜯어 고쳤다고들 합디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소리가 고우면 틀림없이 얼굴은 못생겼었습니다. 흘러간 가수입니다만, 그 여자 가수의 노래는 참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녹였습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고운지, 흔히 그런 목소리는 100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얼굴은 정말 못생겼습니다.
그렇게 못생기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얼굴이 그렇게 못생겼으니까 아주 고운 목소리를 주셨습니다. 지금은 탤런트나 배우들이 다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만 한 30년 전 만해도 성우들의 목 소리롤 더빙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 시대에는 방송국에 성우실이 있었습니다. 어찌나 목소리들이 예쁜지. 어이소리, 할머니 소리-, 그런데 그 얼굴들은 거의 다 못 생겼습니다. 고은정이라는 성우가 참 날렸었는데 죄송한 말입니다만 얼굴은 참 못생겼어요. 영화 배우 신성일, 얼마나 잘 생겼습니까 그런데 목소리가 안 좋아요 그래서 성우의 목소리로 더빙을 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가정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신 복을 찾지 못해서 고달프게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기쁨을 어디서 찾으시겠습니까 가정의 행복을 어디서 찾으시렵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그 기쁨과 행복을 먼저 마음에서 찾으라고 하십니다.
 13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단순한 마음이 아닙니다. 여기의 마음은 전인격의 중심입니다. 인격이 얼굴로 나타납니다. 마음이 밝으면 얼굴도 밝습니다. 마음이 밝다는 말은 내 인격의 중심에 빛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내 인격의 중심에 계시면 인생이 기쁘고 즐거워지지만 그 빛이 없으면 마음이 어둡고 근심하게 되고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15절에서는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잔치 집에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항상 잔치를 베푸는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언제나 잔치 집이 되기를 원합니다!

2. 본론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님이 내 마음 중심에 계시면 마음이 기뻐지고 그래서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믿습니까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면 항상 마음을 즐겁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려면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면 되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본질인 희락입니다. 기쁨의 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면 마음이 즐겁게 되고 그래서 잔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복락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무지적 신앙생활입니다. 무엇을 믿는지, 왜 믿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는다고 하고 열심히 헌신한다고 하는데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핵심이 없으니까 목표가 없고 맹신이 되고 맙니다. 또 하나는 철학적으로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고 추상적이고, 사변적입니다. 성경지식은 많은데 믿음이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관계회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을 서로 관계되게 만드셨고 그 관계를 통해 서로 서로 섬기며 생존하도록 하셨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보세요. 풀과 같은 초식은 동물을 섬깁니다. 초식 동물들은 그 풀을 뜯으면서 생존합니다. 그런 초식 동물들은 또 미생물을 섬깁니다. 동물이 죽으면 썩지 않습니까 썩는다는 말은 미생물이 먹는 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미생물은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시 초식이 풍성해집니다. 바른 관계가 이어질 때에는 이렇게 상 생의 윈칙이 나타나서 서로 섬김이 이루어지고
, 그 섬김은 믿음을 통해서 활발해집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깨지면 섬김이 없어지고 믿음도 사라지고 맙니다. 관계가 깨지면 바로 불신이 됩니다. 믿지 못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탄탄할 때에는 서로 무엇이든지 맡깁니다. 월급봉투도 뜯지도 않고 아내에게 갖다 줍니다. 믿으니까 무엇이든지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맡길 수 없습니다. 이혼장에 도장을 찍으려고 하는데 인감 도장인들 맡길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관계가 바로 될 때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원하십니까 그럼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첫째, 가정의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따라서 다른 모든 관계도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흔히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윤리도덕적, 또는 법률적 개념으로 죄를 고백합니다. '간음했습니다. 훔쳤습니다. 거짓말했습니다. 속였습니다. 미워했습니다. 탐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다 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죄들은 사람을 통해서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가서 용서받으면 됩니다.
 훔쳤으면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용서해달라고 해서 용서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굴 속였으면 가서 고백하고 용서받으면 됩니다. 법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자수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개념을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는 다 죄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라고 하면 내가 무슨 죄를 졌는데-나보고 용서받으라고 하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는 그냥 무조건 '주여 죄인입니다.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소리만 칩니다. 무슨 죄를 졌는지도 모르면서 소리만치는 사람에게 회개가 일어나겠습니까 눈물이 쏟아지겠습니까
여러분, 죄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드리는 것이 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이것을 깜빡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 인생의 고삐를 쥐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단 하루의 생활에서도 우리는 수없이 내 마음대로 합니다. 어떤 때는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한 번도 물어보지도 않고 내 멋대로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꾸 깨집니다. 불신이 됩니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주일 날 교회는 열심히 오지만, 감사헌금 십일조 헌금을 열심히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꾸 깨진다면 그것은 불신앙이 됩니다. 오늘의 내 생활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는 생활이 되도록 하자, 이것이 신앙이요 이것이 믿음인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세 가지의 관계성을 맺어주셨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물질에 대한 바른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바른 관계, 이 가운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만 맺어지면 다른 관계는 저절로 유지됩니다. 그래서 나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태초에 인간 스스로 이 관계가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관계도 같이 깨지면서 인생이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로 그 관계를 다시 이어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것을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연약합니까 얼마나 무능합니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십자가를 보지 않고 자꾸 세상만 보려고 합니다. 세상을 보다가도 다시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데 하루 종일 십자가는 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면서 삽니다. 하루 종일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고 바쁘게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을 근심되게 하고 얼굴을 상하게 만듭니다.
세상만 바라보면 세상적으로 부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땅만 바라보면 떨어진 돈도 줏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 십자가만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적으로 가난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16절에서 처럼 '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세상적으로는 부할 수도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짐으로써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가정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맙니다. 여러분, 가정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한 복판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서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가정에는 믿음이 풍성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할 줄 믿습니다.
 둘째, 가정의 행복은 바른 물질관계에서 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그 안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에덴동산을 주시면서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고 다른 것은 네가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표시입니다. 사람이 모든 물질을 다스리되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선악과나무는 여호와 하나님이 쥐고 계시는 인생의 고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게도 참 자유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고삐에서 풀려나는 것이 자유인 줄 착각하고 뛰쳐나왔지만 뛰쳐나오고 보니 사탄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을 때에는 물질을 다스렸습니다.
 서로 필요한 것만을 가졌습니다. 물질은 남아돌았습니다. 풍성했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평이 없고 불만이 없고 오직 화평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올무에 걸리니까 물질에 매이게 됐습니다. 물질에 끌려 다닙니다. 물질의 노예가 됐습니다. 필요해서 물질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쌓아두기 위해서 물질을 탐합니다. 다른 사람 것을 빼앗습니다. 한 쪽에서는 남아서 썩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없어서 고통을 겪습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원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돈, 돈 하다보니 가정을 돌볼 틈이 없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제 멋대로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원하십니까 일용할 재물에 만족하게 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일용할 재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일용할 재물에 기뻐하는 가정에 감사가 풍성할 줄 믿습니다!
 셋째, 가정의 행복은 바른 인간관계에서 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바로 만남입니다. 만남을 통해서 살기도하고 죽기도 합니다. 만남을 통해서 잘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이 만남의 기본은 가정입니다. 모든 인간은 가정에서 만남을 시작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남편과 아내로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부모와 자식이 만나고 형제 자매가 만납니다. 그러므로 이 만남의 관계가 정상적일 때에는 가정이 낙원이 되지만 그 관계가 삐딱할 때에는 지옥이 됩니다. 남편과 아내 관계가 정상이 돼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정상이 돼야 합니다.
 형제 자매의 관계가 정상이 돼야 합니다. 가정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마음이 빛나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눈동자가 빛납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쁨을 솟아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3. 맺는 말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재물이 풍성하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다 되는 것을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돈은 오히려 마음을 더 어지럽게 만듭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를 살수는 있지만 평안하게 잠을 자게 할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무엇이든지 다 살 수 있다고 할지라도 천국은 돈으로 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가정이 믿음이 부요한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감사 찬양이 쏟아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사랑이 넘쳐흘러 언제나 잔치 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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