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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수님을 모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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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계신 가정이요 하나는 주님이 없는 가정입니다. 이 중에 어느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엠마오에 사는 두 제자의 집에 가셨습니다. (눅 24:28-29)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면서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제자들이 자초지종(自初至終)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예수님은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을에 가까이 이르자 예수님은 계속해서 가려고 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 함께 가자고 강권하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눅 24:29)
예수님은 두 제자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주님을 간곡하게 붙들어서 여러분의 집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갔을 때 마침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손을 만지자 열병은 떠나가고 여인은 일어나 예수께 수종을 들었습니다. (마 8:14-15)
3) 예수님은 세리장인 삭개오의 집에 가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 있는 나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눅 19:5)
삭개오는 즉시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눅 19: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보좌를 버리고 죄와 허물이 많은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요한복음 1장 9-13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
 첫째,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집을 세 번 방문하였습니다.
1) 예수님은 뜻하지 않게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베다니에 살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께서 그 곳을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 앞으로 달려가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집에 갈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간곡히 요청했는지 예수께서 승낙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마르다의 일을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속이 상한 마르다는 예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예수님은 오히려 마르다를 꾸짖었습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1-42)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경청하는 것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의 목적은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서 이와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요 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방문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오라비를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슨 일로 인해서 가지 못하고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서야 방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마중 나간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애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하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커다란 슬픔을 당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큰 희망과 기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나사로의 혼인날에 방문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세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세 번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이상 여러 번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가정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방문하시면 슬픈 가정이 기쁨을, 병든 가정이 건강을 얻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13-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둘째, 예수님을 모신 가정은 여러 가지 역사가 일어납니다.
1)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불러 구원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되어서 남편과 자식을 비롯한 온 가족이 구원받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위로를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의 위로와 격려는 우리에게 대단히 큰 희망을 줍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우리를 권고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고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방문해서 충고하셨다는 뜻입니다.
3) 병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갔을 때 한 백부장이 나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하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이와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4) 천국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천국을 보여주고 이 곳에서 믿음을 갖고 천국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5) 은혜가 충만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은혜가 충만한 가정은 기쁨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② 은혜가 충만한 가정은 평안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셋째, 예수님을 모신 가정은 주님에게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불행한 청년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청년은 유대교에 충성을 다하는 아주 큰 부자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모세가 명한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이것을 다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막 10:21)
이 청년은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왜냐하면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
제자들이 매우 놀라면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여호와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여호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되어서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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