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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탕자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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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두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앙으로 자녀들을 잘 키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와 재산에서 자신의 몫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아직은 어려서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무슨 생각에서 인지 아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습니다. 돈을 받아든 아들은 너무도 좋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돈이 생겼으니 이제 자신이 원하던 대로 멋있게 세상을 살아 보겠다고 소리 질렀을 것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자기가 사는 나라가 아닌 먼 나라로 가서 거기서 마음껏 즐기며 돈을 펑펑 쓰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 가지 못해 가지고 왔던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거기다가 그 나라에 흉년이 들면서 먹을 것이 부족하였고 돈이 없는 탕자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옥과 같았습니다. 결국 탕자는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는 돼지를 키우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일은 하지만, 주인집에서 주는 음식이란 것이 너무도 보잘것없었고 그의 허기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배가 너무도 고파서 돼지만 먹는 음식을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탕자는 아버지 집에 먹을 것이 풍족한데, 지금 자신에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탕자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잘못했음을 깨닫게 되었고 아버지께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낯선 땅에서 노예와 같이 살 바에는 차라리 아버지 집에서 노예로 일하면서 사는 것이 낮겠다고 생각하고 그는 즉시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이 다가오자 그의 마음에는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혹시, 아버지가 나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모든 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를 아버지께서 용서하실까’ 그러나 아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20절 말씀에 보면, “아직도 상거나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아버지가 얼마나 반갑고 기뻤으면 이토록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을 향해 뛰어와 불쌍히 여기면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겠습니까 그뿐입니까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뻐서 종들에게 명령하여 잔치를 베풀었고 아들에게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는 반지를 끼워주고, 좋은 신발을 신켜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많이 들었던 탕자의 이야기이며, 아버지로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교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3가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2.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라(11-19).
 첫째로 가정에서 가족은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가족은 서로에게 자신의 욕심을 지나칠 정도로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 구성원들에게 무관심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경우 자라면서 겪어야 될 시행착오도 하나의 중요한 과정인데, 이런 것들을 애초부터 걱정하여 모든 것을 간섭하고 자녀의 개성을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슬픔과 후회만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 교육 가운데 고쳐야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잘못이 부모가 물질로 모든 것을 다해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돈도 많고 사회적인 지위도 높고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을 때, 이러한 말들을 합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줬습니다. 고생은 우리 세대로 끝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은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다 해주었습니다. 더러운 길이 있으면 내가 가로막고 애들에겐 깨끗한 길만 보여주었습니다. 그만큼 지극정성으로 관심을 쏟는데도 빗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차라리 옛날에 못살던 시절이 그리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땐 그래도 부모님 말씀에 순종할 줄 알았고, 어떤게 옳은 일인지 어떤게 나쁜 일인지 분별은 했잖아요. ” 여기에 바로 부모의 자녀교육의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생각할 때, 이것하면 좋을 것이라 해서 돈도 아끼지 않고 원하는 것을 다 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배워가는 과정과 경험을 빼앗아 버리면 오히려 그것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앞에서 말한 사람들과 같이 “더러운 길은 가로막고 깨끗한 길만 제시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모든 길을 가로막았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거친 길을 체험하지 않고는 어떤 길이 좋은 길인지 실감할 수 없는 법입니다. 아이들은 특성상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보고 싶어 하고, 다시 터덜터덜 되돌아올지라도 험한 길을 걸어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기의 일시적인 방황은 삶의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배운 것 없고 사회적인 지위도 보잘 것 없지만, 저의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은 제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일을 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희 형제에게 무관심하셨던 것이 아니라, 아무리 당신들이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자식의 생각을 존중할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세상 경험이 없기에 시행착오를 겪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저에게 스스로 여러 가지를 체험하면서 인생의 바른 길을 찾도록 인내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도 둘째 아들의 가출에 방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결정한 인생이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거기에서 아들은 돈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 이전보다 더 성숙한 아들로 든든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야단칠 일이 있으면 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탕자의 아버지처럼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그 아이만의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터득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녀들은 바르게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단 이것은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경우는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의 욕심을 위해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나 자식을 자신의 욕심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고유의 특성이 있고 그들만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조화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를 존중하는 건강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3. 탕자가 돌아갈 가정을 만들라(20-24).
두 번째로, 가정은 탕자와 같은 사람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분배 받은 모든 재산을 다 잃었을 때, 죄송스러운 마음에서 낯선 땅에서 거지처럼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신이 살았던 따뜻한 가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신의 실패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어려움에 놓이게 되었을 때, 탕자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는 집이 그리웠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계신 집이 그 어디 보다 마음을 둘 수 있는 유일한 곳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렵고 힘들 때, 서로가 외면하는 가정이 아니라 돌아와서 편히 쉴 수 있고 마음을 둘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해리스라는 사람이 미국 사람들에게 “새해에 당신들의 최대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 중 96%가 행복한 가정생활을 원한다는 통계가 나왔고, 거기에 비해서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고 싶다는 사람들은 1. 8%밖에 안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행복한 가정은 전 인류가 바라는 소망인 것 같습니다. 삼중고(重苦)의 인생을 살았던 헬렌 켈러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눈을 가지고 있으되 제대로 볼 줄 모르고 귀를 가지고 있으되 제대로 들을 줄 모르며 입을 가지고 있으되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 무슨 말입니까 가정이 있으되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줄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왜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까 가정에서 사랑의 양식을 먹고 자라난 아이들은 좋은 성격으로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애정과 형제간의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고 자란 자녀들은 불건전한 인격자가 되기 쉽습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식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토요일 저녁이면 느낌표라는 프로가 방송됩니다. 거기에 보면, 가출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파트가 있는데, 어떤 아이들은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출하였지만, 도저히 가정에 마음을 둘 수 없고 오히려 지금의 생활이 그들에게는 더 좋기 때문에 가정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잠언15:17절에서 지혜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고 사는 것이 서로 미워하며 기름진 쇠고기를 먹고 사는 것보다 낫다. ”
4. 가정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앙교육이나 인성교육에 있어서 가정을 가장 중요한 교육현장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에게는 이러한 전통이 계속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들이 가정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정에서의 바람직한 모습들과 가르침이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가정교육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다고 하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부모님과 형제들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사람들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과 성품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위대한 인물들 배후에는 훌륭한 부모님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모들이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신앙을 토대로 가정을 세우기에 최선을 다했고 그 가정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자녀를 교육시켰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그랬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방탕한 아들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신앙을 토대로 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고 자녀의 장래를 위해 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아들을 훌륭한 주의 일꾼으로 키웠습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중요한 기관인 가정을 통해 서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가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부모님들은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자녀들의 신앙이 결정되고 그들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신앙의 좋은 유산이 상속되어 훌륭한 가문을 세워갈 수 있는 귀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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