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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본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성도들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기원 드린다. 모든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곳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가정에 행복을 주시는 분이시며, 가정을 인하여 기뻐하신다.
선린교회의 모든 가정은 바로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본론:
1. 자녀들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가정(11)
성경에는 여러가정들이 등장하는데, 안타깝게도 본받을만한 가정이 많지 않다는 것이 큰 충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가정에 대해서 더 없이 관심을 기울이는 성경이 정작 가정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면 형편없는 가정이 많다는 것이 적잖은 실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한국식 관점에서 가정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바람직하지 않으면 일단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조금이라도 원칙에서 어긋났다 하면 감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가족 전체 구성원에게 부끄러움이 되면 안된다. 그런 자들은 가족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한다. 심지어 심한 부모들은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한다.
자녀들도 보면 부끄러운 자식이 있고 자랑스러운 자식이 있다. 자랑스러운 자식이란,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대학에 잘 들어가고 취직 잘하고, 돈 잘벌고 효도 잘하는 자식이다.
일단 이런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자식은 부모의 근심거리요,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자식들을 감추려 하고 없는셈 치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가정사를 폭로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이야기, 유다가정에 부정한 다말이야기, 야곱 가정의 외동딸이 강간당한 이야기, 엘리 제사장 가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불경한 이야기, 룻 이야기, 다윗 가문의 추문, 다윗의 아들들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참으로 기가막힌 가정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건방진 둘째 아들 이야기이다.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둘째아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대단히 온화하며 부드럽다. 그리고 우리가 짐작하기에 너무 버릇없이 키웠지 않나 여겨지기도 한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 가정에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유산 상속을 요구해 오는 그 순간부터 그는 엄청나게 두들겨 맞을 것이 뻔하다. 도무지 상식에 없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유산 상속이라니 그러나 아들은 상속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들이 이 상속으로 허랑방탕했다는 데 있다. 다 허비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 한국적 관점이다. 우리는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성경은 자녀교육을 중요시하고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양육하며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가르친다.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신11:19)
4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잠4:4)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심지어는 엄히 가르쳐서 아이가 악한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도록 경고한다.
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13:24)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22:15)
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잠23:13)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자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잠26:3)
그런데 우리는 잘 깨달아야 한다. 아이의 마음에 미련이 얽혀 있기 때문에 회초리로 그 미련함을 멀리 붸아내는 것과,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것과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서 미련을 물리치기 위해서 심지어는 매를 사용하는 것도 권장하는 바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아이의 인격에 손상을 입히거나 그 자존심을 꺽거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않된다.
한국 부모들은 부모의 권위와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건방지게 대드는 것을 못참아 한다. 부모가 먼저 아이를 윽박지르고 의견을 듣기 보다는 부모의 틀을 강요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반항하며 건방지게 대들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자녀를 아랫사람 다루듯 하지 말아야 한다. 그도 엄연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으며 부끄러움을 알고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가정은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작은 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면서 너무 쉽게 자녀들을 무시하고 억압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려서부터 말씀을 가르치고 여호와 경외함을 가르치라. 그리고 부모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리고 그 말씀에 복종하라. 그러면 자연히 자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미련에 얽혀 있으면 조용하고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이러 이러 한데,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부모의 가슴이 매우 슬프고 아프다고 이야기 한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깨닫고 죄에서 돌아선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최종권위자로 자녀앞에 나서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최종 권위를 갖게 하라는 것이다. 말씀이 살아있는 가정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가정은 결코 부모의 의견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녀의 의견도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 가정에 부모의 말씀은 현재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종종 자녀들의 의견은 무참하게 짖밟히고 그로 인해서 자녀들은 고통을 느끼며 그들의 영혼은 방황하게 된다.
여러분 가정은 자녀들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명랑하고 활기차게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한다. 자유를 배우기 전에 억압을 배우게 해서는 않된다. 날개가 펴기도 전에 접는 연습부터 시켜서는 않된다. 자녀가 소중하다면 강인하게 키워야 한다. 제목소리를 내는 연습부터 시켜야 한다.
자녀의 목소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부모와 자식간에 흉금없은 이야기가 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문제를 뛰어넘어, 심지어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있다고 해도 반드시 말은 통해야 한다. 이해는 되지 않아도 사랑은 해야 하며, 말은 통해야 한다.
2.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가정(17-18)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가정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잊어서는 않된다. 부모의 사랑을 일찍 깨닫는 사람일수록 효도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곁길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자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큰 기도제목이 된다. 흔히 방치된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깨닫기 힘들다. 자녀도 사랑을 받아 봐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귀를 알아 들을 때쯤 되어서는 부모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다.
다윗은 성군이었지만, 여러 아내를 두는 바람에, 각기 배다른 자녀를 많이 낳았다. 모두 사랑하는 자녀들이었지만, 딱히 누구를 지명해서 사랑할 수는 없었다. 다윗은 모든 자녀들을 사랑했지만, 자녀들은 아비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그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다. 흔히 관계가 어글어져서 부모는 분명히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누구와 비교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곁길로 빠지기 시작하며, 성격은 비뚤어진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가정에 일어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면 나중에 그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탕자도 결국에 고난에 처하자 부모의 사랑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돌아오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원초적인 욕망 가운데 부모에게 잘 해드리고 부모에게 기쁨 드리고픈 욕망이 있다. 자기도 원치 않게 부모에게 실망을 드렸지만, 결코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대화는 자꾸 어그러지고 일치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부모는 부모대로 가슴에 한을 남기게 되고 자녀는 자녀대로 가슴에 멍이 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야 한다. 비록 부모님이 나와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가치기준이 다르지만, 분명히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나를 기뻐하고 계시며, 내가 무엇을 이룩하는 것 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품기 원하시는 분인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진리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인것도 믿어야 한다.
3. 사랑과 용서가 있는 가정(22)
마지막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용서가 있는 가정이다. 가정은 끊임없이 죄악에 노출되며, 욕심과 이기심에 얼룩진다. 자녀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부모에게 입히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입히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골육이 끼친 상처는 깊게 파이고, 아물지 않고 오래도록 사람을 괴롭힌다. 다름아닌, 식구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은 사람을 괴롭힌다.
사랑과 용서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 그러므로 가정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제외하고 가정이란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가 무한대로 베풀어지는 유일한 곳이다.
가정에 용서와 사랑이 없다면 그 가정은 더 이상 가정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가 있을 때 자녀는 그것을 믿고 회개한다.
여러분 가정에 용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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