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에 복을 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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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주일이면서 저희교회가 10주년을 맞이한 기념예배로 드려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어버이주일과 10주년예배를 동시에 드리는 방법으로 오늘 설교를 가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건강한 가정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교회의 목표요, 교회가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분명히 일조를 해야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경우이든,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가정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을 새롭게 한다면 사업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먼저 가정을 위해서 하게되는 자세를 가질 것입니다. 자기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세로 변화된다면 가정을 행복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교회와의 관계로 형성될 때 은혜의 가정으로 건강하고 축복된 가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까 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이론은 잘 압니다. 자녀를 사랑해야되고 칭찬해야되고 잘 돌봐 주어야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천이 잘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집에 가면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지 그렇게 결심을 하고 갔는데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마음이 싹 가십니다.
아내도 우리 남편 바깥에서 가족을 위해 고생을 하는데 오면 잘 해주어야지 그렇게 작심을 하고 있는데 밤12시 넘어서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싹 가시지요. 이것은 부모에게도 마찬가지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으로는 잘 알겠는데 그렇게 해야된다는 마음은 재대로 먹고 있는데 사실 안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느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서입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면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사랑을 할 줄 모릅니다. 칭찬받아 본 경험도 없고 같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그렇게 하려면 마음은 있지만 잘 되지 않는 법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가장 우선된 교회존재 목적은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받은 사람이 누리는 혜택이 있는데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굉장한 분량의 복이지요. 그 중에 기독교의 근본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은혜로 받지요. 우리가 받지 못한 사랑을 교회에서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다면 그 사랑을 이제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오면 은혜를 받아야되고 그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되고 그 사랑을 행할 때 위대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가정은 첫째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누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누구는 안들어 갑니까 똑 같은 조건에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합니까 누구는 침해에 걸리고 누구는 안 걸립니까 어떤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고 살고 어떤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까 그 해답 중에 큰 이유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없으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정신병원에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앙생활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느냐가 신앙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를 결정합니다. 교회 성도들이 환자가 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고 건강한 교인이 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성령으로 아름다운 체험을 만들어 내었느냐 못 내었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추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역기능의 가정이 되기도 하고 순기능의 가정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려움을 못 참아 냅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자살을 합니다. 자살을 쉽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자살 사이트를 운영하고 또 그 자살 사이트를 보고 동반 자살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군대를 예를 들어 본다면 옛날에는 많이 맞고 생활을 했습니다. 3일에 한번은 맞았는데 안 맞으면 엉덩이가 가려울 정도로 주기적으로 맞았습니다 만은 탈영하는 사람이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구타를 하지 않는답니다. 구타를 하면 미치고, 의식을 잃고 거품을 내고 그러니까 겁이 나서 못 때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타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만큼 정신적으로 나약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체력은 좋은데 많이 배웠는데 잘 먹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느냐 좋은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한 이불에 온 식구가 다 잠을 잡니다. 서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잠을 자는 온 집 식구의 공동체적 추억이 어려움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꼭 함께 이불 속으로 다 들어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라는 말입니다. 좋은 추억이 있는 아이는 절대로 빚나가지 않습니다.
문제의 성격, 건강하지 못한 생각,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빌어먹어라!, 그렇게 하려면 나가죽어라, 너가 뭐 하는 것이 있냐'이런 기억만 있으면 결혼생활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합니다. 짜증밖에 없습니다. 이유 없이 짜증을 낸다든지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아름다운 추억을 갖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무서운 기억만 있으면 그것을 대물림한다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추억이 없을 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좋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필요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게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만 회복하면 사랑 때문에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용서 아닙니까 여러분 부모가 여러분에게 준 상처가 있으면 조용한 시간을 택해서 '저는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하는 고백을 해 보십시오. 이것을 신앙으로만 가능합니다.
내가 무조건적 은혜를 받았다는 그 은혜를 발견할 때 가능합니다. 정말 부모를 용서하세요 그러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느냐하면 부모님이 사랑한다는 것을 다른 쪽으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때리면서 욕하면서 그렇게 부모가 자랐으니까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쌍하신 부모님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추억이 생각날 것입니다.
정태기교수님의 간증을 좀 할까합니다. 이 분이 치유라는 단어를 가정 먼저 사용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6살 때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는데 맛있는 조기가 있길래 먼저 수저를 잡고 고기를 떼어 먹으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이 못된 놈을 보았나'그러면서 수저를 손으로 쳐내는데 얼마나 세게 쳤으면 손이 부었을 까요 손이 부어 수저를 잡지 못하고 움켜지고있는데 무서워서 울지도 못했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와 밥을 먹으면 맛있는 반찬은 손도 못되고 간장과 밥만 먹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자기보다 16세 어린 첩을 두고 왔다갔다했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겁이 나서 밖으로만 맴돌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걸기나 하나 함께 놀아주기를 하나 그렇다고 칭찬을 하나, 정태기교수가 고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든지 해방된 기분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눅이 들어서 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잘 때 오줌을 쌀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그랬는데 36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한 순간에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초등학교운동회 때 당연히 부모는 나타나지 않고 주위에서는 음식 파티가 열리는데 형과 정교수는 집에 가서 찬밥을 먹고 와야되는데 아버지가 나타나서 참외 5개를 주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섬에서 참외를 사려면 왔다갔다20리 거리랍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밑에서 커다가 자수성가한 사람인데 그도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아버지가 20리 길을 걸어가서 참외를 사온 그 사건을 기억하고는 나머지 나쁜 기억들이 사라지더랍니다.
상처가 많으면 아름다운 추억을 못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날마다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믿는 자의 복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사랑을 회복하고 좋은 추억을 되살리는 분명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과 개인의 삶을 주장하고 치유하며 복된 삶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삭게오를 보십시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마음이 공허한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토색한 것 있으면 네 배나 갚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자를 위해 내어 놓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것은 예수님이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난 후 그가 가난한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잘 못한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체워진다면 세상을 사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납하시고 천국을 예비해 놓으시고 지금도 함께 하셔서 돌보시는 그 은혜를 말씀가운데 발견한다면 체험가운데 발견한다면 상처받은 과거를 수용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잘못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됨의 축복이 대단한 것입니다.
미국에 J. C 펜 이라는 사람은 옷감 파는 백화점이 전국에 수천 개나 됩니다. 그는 어릴 때 말썽꾸러기였답니다. 그가 15세 때 아버지가 죽게되는데 아버지가 이런 유언을 펜에게 했습니다. '너는 무엇인가를 하고 말거야!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 말 한마디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일평생을 살면서 이 말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미국을 흔드는 278군데의 백화점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68살 때 부도가 나서 모든 재산을 다 날립니다. 그러나 그는 70세 때 400군데의 백화점을 거느리는 제왕이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말 한마디 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가정은 혼적인 부분입니다.
성경은 이분법이 아니라 삼분법입니다. 영, 육, 혼 이렇게 나눕니다. 데살로니가 전서5장에서는 영, 육, 혼이 한 인격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3가지를 먹어야합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셨는가 주 기능이 무엇일까요. 가정의 기능은 사람이 사는 공동체이기에 영적 기능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혼적인 부분인 애정의 기능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건강도 삶 속에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런데 교회가 대신할 수 없고 어떤 기관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가정의 주기능이라고 합니다. 건강하고 돈도 많은데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혼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혼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가정을 두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정에 왜 들어옵니까 밥 먹으려고 온다 자려고 온다 이렇게 이해합니다. 경상도 남자가 집에 들어와서는 세 마디만 한다고 그러지요. '아는, 밥도, 자자' 이런 것은 가정이 아니더라도 공급이 됩니다. 가정의 유일한 공급은 애정입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강아지는 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강아지는 영만 없을 뿐이지 혼은 있습니다. 그 예로 강아지도 우울증에 걸립니다. 자기 좋아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봅니다. 강아지는 시계 볼 줄도 압니다. 주인이 들어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 애정이란 관심, 사랑, 피부접촉, 돌봄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애정이 없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청소년범죄가 이런 애정결핍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아이가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밤을 새더라도 기다리지요. 아이가 아픕니다. 그러면 밤을 새더라도 간호를 합니다. 이것이 가정에서만 공급되는 애정입니다. 그러면 이 애정이 어디서 오느냐하는 부분이 중요하지요. 애정 전선이 필요합니다. 발전소 전력이 전선으로 공급이 됩니다. 댐의 물이 수도관을 통해서 공급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애정의 공급은 교회에서 가정으로 공급이 됩니다. 말씀과 성령이 전선이 되고 수도관이 되어 가정에 공급되면 가정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가정에 은혜가 넘쳐야됩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말도 안 되는 것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마태복음20장 포도원의 비유도 우리가 금방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빨리 와서 많이 일을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 위한 방법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포도원품꾼의 비유를 읽으면 은혜가 넘쳐나리라 믿습니다. 기독교는 착하게 살고, 고행을 하고, 적선도 잘 하고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감동해서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작정하고 우리를 불러서 여호와 하나님이 다 이루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가정에서 문제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칭찬을 하되 조건부 칭찬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집에 가서 한번 물어 보십시오. '아빠가 아니면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 그럴 때 '네' 그러면 상당히 건강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는데 '왜'라고 말을 하면 여러분들은 조건부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왜 엄마가 칭찬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내가 공부를 잘해서 아니면 착한 일을 해서, 무엇 때문에 칭찬을 하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는 말을 잘 들으면 '아이구 내 새끼 예쁘기도 하지,
공부를 좀 잘 해오면 아이 예뻐라' 무엇인가 자격이 맞아야 부모에게 칭찬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아이들은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주체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사랑이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사랑도 자격이 맞고 내 필요에 맞아서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도무지 사랑할 만한 자격이 없는데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호적 파가라, 의절하겠다' 이런 말이 아이들에게 상당히 상처가 되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 가정에서 열매는 맺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아이가 성적이 올라서 왔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기쁘지요 그러나 성적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너는 내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는 기쁨이 있어야합니다. 성적이 떨어져도 너는 내 자녀이기에 너를 사랑한다 하는 반응을 부모가 보여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느냐 입니다. 일단 열을 받는데요. 왜 안 되는 줄 아십니까 부부관계가 왜 회복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를 말씀과 사랑으로 먼저 치유할 수 있어야 여러분들이 생각한 대로 실천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50이 조금 넘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아내와도 늘 싸웁니다. 자녀와도 별 관계가 좋지 못하고 가정이 항상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이분이 부인에게 '여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인지 잘 알 것입니다. 이 부부가 어느 날 가정치유사역세미나에 참석을 해서 자기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 오징어가 먹고싶어서 동네 아이 오징어를 빼앗아 먹었든 것이 화근이 되어 아버지에게 모진 매를 맞고 기가 죽기 시작해서 늘 아버지에게 ' 너는 무엇하는 인간이냐 그렇게 하려면 다 때려치워' 이런 말을 계속 듣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무슨 일을 할 것 같으면 아버지가 뒤에서 '너 뭐하는 짓이냐 그렇게 하려면 다 때려치워'하는 소리가 들린답니다. 이런 아픔이 있는 사람은 아내나 자식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80이 넘은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은혜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왜 저를 이렇게 매질을 하고 사랑한다고 한마디하시지 않으시고 늘 못났다 말만했습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들을 꼭 앉으면서 '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네가 이렇게 힘들어 할 줄 몰랐다 나를 용서해라' 그 아버지고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부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는 소리들 들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주님이 베드로를 향해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 말씀대로 그는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때 성전 뜰에서 베드로를 지켜보신 예수님이 '그래 너 그럴줄 알았다. 내가 무엇이라고 하든, 내가 이 말을 할 때 네가 믿었어야지 멍청하기는' 이런 모습으로 보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래도 '베드로 너를 사랑한다. 나를 부인했지만 그 부인한 그 모습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든 것이지요.
교회가 가정을 살리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아 누리시길 원합니다. 저희교회성도들은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심령이 되기시를 원합니다. 주 안에서 여러분들이 용서와 용납을 배우십시오 온유와 겸손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연결고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 연결고리가 저는 소그룹이라 여기며 소그룹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교회가 10년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한 영혼 한 영혼 구원을 이루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 10년으로 인해 가정이 든든히 서며 그 든든히 선 가정을 통해 이웃이 변화를 이루는 그런 교회와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끊임없이 계획하고 이루어야할 것은 교회를 통해서 가정이 변화고 이웃이 변화는 역사를 이루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원 드립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경우이든,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가정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을 새롭게 한다면 사업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먼저 가정을 위해서 하게되는 자세를 가질 것입니다. 자기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세로 변화된다면 가정을 행복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교회와의 관계로 형성될 때 은혜의 가정으로 건강하고 축복된 가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까 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이론은 잘 압니다. 자녀를 사랑해야되고 칭찬해야되고 잘 돌봐 주어야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천이 잘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집에 가면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지 그렇게 결심을 하고 갔는데 아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마음이 싹 가십니다.
아내도 우리 남편 바깥에서 가족을 위해 고생을 하는데 오면 잘 해주어야지 그렇게 작심을 하고 있는데 밤12시 넘어서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싹 가시지요. 이것은 부모에게도 마찬가지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으로는 잘 알겠는데 그렇게 해야된다는 마음은 재대로 먹고 있는데 사실 안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느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서입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면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사랑을 할 줄 모릅니다. 칭찬받아 본 경험도 없고 같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그렇게 하려면 마음은 있지만 잘 되지 않는 법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가장 우선된 교회존재 목적은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받은 사람이 누리는 혜택이 있는데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굉장한 분량의 복이지요. 그 중에 기독교의 근본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은혜로 받지요. 우리가 받지 못한 사랑을 교회에서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다면 그 사랑을 이제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오면 은혜를 받아야되고 그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되고 그 사랑을 행할 때 위대한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가정은 첫째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누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누구는 안들어 갑니까 똑 같은 조건에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합니까 누구는 침해에 걸리고 누구는 안 걸립니까 어떤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고 살고 어떤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까 그 해답 중에 큰 이유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없으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정신병원에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아름다운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앙생활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느냐가 신앙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를 결정합니다. 교회 성도들이 환자가 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고 건강한 교인이 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성령으로 아름다운 체험을 만들어 내었느냐 못 내었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추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역기능의 가정이 되기도 하고 순기능의 가정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려움을 못 참아 냅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자살을 합니다. 자살을 쉽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자살 사이트를 운영하고 또 그 자살 사이트를 보고 동반 자살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군대를 예를 들어 본다면 옛날에는 많이 맞고 생활을 했습니다. 3일에 한번은 맞았는데 안 맞으면 엉덩이가 가려울 정도로 주기적으로 맞았습니다 만은 탈영하는 사람이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구타를 하지 않는답니다. 구타를 하면 미치고, 의식을 잃고 거품을 내고 그러니까 겁이 나서 못 때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타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만큼 정신적으로 나약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체력은 좋은데 많이 배웠는데 잘 먹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느냐 좋은 추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한 이불에 온 식구가 다 잠을 잡니다. 서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잠을 자는 온 집 식구의 공동체적 추억이 어려움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꼭 함께 이불 속으로 다 들어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라는 말입니다. 좋은 추억이 있는 아이는 절대로 빚나가지 않습니다.
문제의 성격, 건강하지 못한 생각,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빌어먹어라!, 그렇게 하려면 나가죽어라, 너가 뭐 하는 것이 있냐'이런 기억만 있으면 결혼생활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합니다. 짜증밖에 없습니다. 이유 없이 짜증을 낸다든지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아름다운 추억을 갖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무서운 기억만 있으면 그것을 대물림한다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추억이 없을 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좋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필요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게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만 회복하면 사랑 때문에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용서 아닙니까 여러분 부모가 여러분에게 준 상처가 있으면 조용한 시간을 택해서 '저는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하는 고백을 해 보십시오. 이것을 신앙으로만 가능합니다.
내가 무조건적 은혜를 받았다는 그 은혜를 발견할 때 가능합니다. 정말 부모를 용서하세요 그러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느냐하면 부모님이 사랑한다는 것을 다른 쪽으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때리면서 욕하면서 그렇게 부모가 자랐으니까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쌍하신 부모님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추억이 생각날 것입니다.
정태기교수님의 간증을 좀 할까합니다. 이 분이 치유라는 단어를 가정 먼저 사용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6살 때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는데 맛있는 조기가 있길래 먼저 수저를 잡고 고기를 떼어 먹으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이 못된 놈을 보았나'그러면서 수저를 손으로 쳐내는데 얼마나 세게 쳤으면 손이 부었을 까요 손이 부어 수저를 잡지 못하고 움켜지고있는데 무서워서 울지도 못했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와 밥을 먹으면 맛있는 반찬은 손도 못되고 간장과 밥만 먹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자기보다 16세 어린 첩을 두고 왔다갔다했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겁이 나서 밖으로만 맴돌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걸기나 하나 함께 놀아주기를 하나 그렇다고 칭찬을 하나, 정태기교수가 고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든지 해방된 기분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눅이 들어서 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잘 때 오줌을 쌀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그랬는데 36세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한 순간에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초등학교운동회 때 당연히 부모는 나타나지 않고 주위에서는 음식 파티가 열리는데 형과 정교수는 집에 가서 찬밥을 먹고 와야되는데 아버지가 나타나서 참외 5개를 주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섬에서 참외를 사려면 왔다갔다20리 거리랍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밑에서 커다가 자수성가한 사람인데 그도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아버지가 20리 길을 걸어가서 참외를 사온 그 사건을 기억하고는 나머지 나쁜 기억들이 사라지더랍니다.
상처가 많으면 아름다운 추억을 못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날마다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믿는 자의 복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사랑을 회복하고 좋은 추억을 되살리는 분명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과 개인의 삶을 주장하고 치유하며 복된 삶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삭게오를 보십시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왜 마음이 공허한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토색한 것 있으면 네 배나 갚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자를 위해 내어 놓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것은 예수님이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난 후 그가 가난한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잘 못한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체워진다면 세상을 사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납하시고 천국을 예비해 놓으시고 지금도 함께 하셔서 돌보시는 그 은혜를 말씀가운데 발견한다면 체험가운데 발견한다면 상처받은 과거를 수용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잘못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됨의 축복이 대단한 것입니다.
미국에 J. C 펜 이라는 사람은 옷감 파는 백화점이 전국에 수천 개나 됩니다. 그는 어릴 때 말썽꾸러기였답니다. 그가 15세 때 아버지가 죽게되는데 아버지가 이런 유언을 펜에게 했습니다. '너는 무엇인가를 하고 말거야!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 말 한마디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일평생을 살면서 이 말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미국을 흔드는 278군데의 백화점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68살 때 부도가 나서 모든 재산을 다 날립니다. 그러나 그는 70세 때 400군데의 백화점을 거느리는 제왕이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말 한마디 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가정은 혼적인 부분입니다.
성경은 이분법이 아니라 삼분법입니다. 영, 육, 혼 이렇게 나눕니다. 데살로니가 전서5장에서는 영, 육, 혼이 한 인격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3가지를 먹어야합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셨는가 주 기능이 무엇일까요. 가정의 기능은 사람이 사는 공동체이기에 영적 기능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혼적인 부분인 애정의 기능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건강도 삶 속에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런데 교회가 대신할 수 없고 어떤 기관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가정의 주기능이라고 합니다. 건강하고 돈도 많은데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혼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혼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가정을 두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정에 왜 들어옵니까 밥 먹으려고 온다 자려고 온다 이렇게 이해합니다. 경상도 남자가 집에 들어와서는 세 마디만 한다고 그러지요. '아는, 밥도, 자자' 이런 것은 가정이 아니더라도 공급이 됩니다. 가정의 유일한 공급은 애정입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강아지는 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강아지는 영만 없을 뿐이지 혼은 있습니다. 그 예로 강아지도 우울증에 걸립니다. 자기 좋아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봅니다. 강아지는 시계 볼 줄도 압니다. 주인이 들어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 애정이란 관심, 사랑, 피부접촉, 돌봄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애정이 없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청소년범죄가 이런 애정결핍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아이가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밤을 새더라도 기다리지요. 아이가 아픕니다. 그러면 밤을 새더라도 간호를 합니다. 이것이 가정에서만 공급되는 애정입니다. 그러면 이 애정이 어디서 오느냐하는 부분이 중요하지요. 애정 전선이 필요합니다. 발전소 전력이 전선으로 공급이 됩니다. 댐의 물이 수도관을 통해서 공급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애정의 공급은 교회에서 가정으로 공급이 됩니다. 말씀과 성령이 전선이 되고 수도관이 되어 가정에 공급되면 가정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가정에 은혜가 넘쳐야됩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말도 안 되는 것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마태복음20장 포도원의 비유도 우리가 금방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빨리 와서 많이 일을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 위한 방법이지요. 이런 차원에서 포도원품꾼의 비유를 읽으면 은혜가 넘쳐나리라 믿습니다. 기독교는 착하게 살고, 고행을 하고, 적선도 잘 하고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감동해서 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작정하고 우리를 불러서 여호와 하나님이 다 이루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가정에서 문제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칭찬을 하되 조건부 칭찬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집에 가서 한번 물어 보십시오. '아빠가 아니면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 그럴 때 '네' 그러면 상당히 건강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는데 '왜'라고 말을 하면 여러분들은 조건부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왜 엄마가 칭찬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내가 공부를 잘해서 아니면 착한 일을 해서, 무엇 때문에 칭찬을 하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는 말을 잘 들으면 '아이구 내 새끼 예쁘기도 하지,
공부를 좀 잘 해오면 아이 예뻐라' 무엇인가 자격이 맞아야 부모에게 칭찬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아이들은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주체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사랑이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사랑도 자격이 맞고 내 필요에 맞아서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도무지 사랑할 만한 자격이 없는데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호적 파가라, 의절하겠다' 이런 말이 아이들에게 상당히 상처가 되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 가정에서 열매는 맺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아이가 성적이 올라서 왔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기쁘지요 그러나 성적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너는 내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는 기쁨이 있어야합니다. 성적이 떨어져도 너는 내 자녀이기에 너를 사랑한다 하는 반응을 부모가 보여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느냐 입니다. 일단 열을 받는데요. 왜 안 되는 줄 아십니까 부부관계가 왜 회복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들이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를 말씀과 사랑으로 먼저 치유할 수 있어야 여러분들이 생각한 대로 실천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50이 조금 넘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아내와도 늘 싸웁니다. 자녀와도 별 관계가 좋지 못하고 가정이 항상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이분이 부인에게 '여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인지 잘 알 것입니다. 이 부부가 어느 날 가정치유사역세미나에 참석을 해서 자기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 오징어가 먹고싶어서 동네 아이 오징어를 빼앗아 먹었든 것이 화근이 되어 아버지에게 모진 매를 맞고 기가 죽기 시작해서 늘 아버지에게 ' 너는 무엇하는 인간이냐 그렇게 하려면 다 때려치워' 이런 말을 계속 듣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무슨 일을 할 것 같으면 아버지가 뒤에서 '너 뭐하는 짓이냐 그렇게 하려면 다 때려치워'하는 소리가 들린답니다. 이런 아픔이 있는 사람은 아내나 자식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80이 넘은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은혜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왜 저를 이렇게 매질을 하고 사랑한다고 한마디하시지 않으시고 늘 못났다 말만했습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들을 꼭 앉으면서 '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네가 이렇게 힘들어 할 줄 몰랐다 나를 용서해라' 그 아버지고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부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는 소리들 들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주님이 베드로를 향해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 말씀대로 그는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때 성전 뜰에서 베드로를 지켜보신 예수님이 '그래 너 그럴줄 알았다. 내가 무엇이라고 하든, 내가 이 말을 할 때 네가 믿었어야지 멍청하기는' 이런 모습으로 보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래도 '베드로 너를 사랑한다. 나를 부인했지만 그 부인한 그 모습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든 것이지요.
교회가 가정을 살리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아 누리시길 원합니다. 저희교회성도들은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심령이 되기시를 원합니다. 주 안에서 여러분들이 용서와 용납을 배우십시오 온유와 겸손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연결고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 연결고리가 저는 소그룹이라 여기며 소그룹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교회가 10년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한 영혼 한 영혼 구원을 이루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 10년으로 인해 가정이 든든히 서며 그 든든히 선 가정을 통해 이웃이 변화를 이루는 그런 교회와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끊임없이 계획하고 이루어야할 것은 교회를 통해서 가정이 변화고 이웃이 변화는 역사를 이루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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