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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어떤 가정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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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들들은 비교적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에게 잘 말하는 편입니다.
물론 제 아내가 수시로 '학교에서, 밖에서 친구들이랑 별일 없었니 잘 지내고 있니'하고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밖에서 있었던 일들 중 몇 가지를 생각해 내야 한다는 면도 있습니다.
얼마 전 막내 녀석이 친구의 말을 전하는데, "걔네 엄마 아빠는 또 엄청 싸웠대~"하였습니다.
'누가 그러든 그 친구가 직접 말하든'하고 되물으니 '응, 걔네 자기 엄마 아빠가 싸울 때가 제일 가슴이 아프대'
싸우면 자기 동생더러 "우린 들어가 있자.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는대.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며 참으로 아들 친구의 힘들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밖에 가서 우리 집안 얘기를 뭐라고 하고 다니고 있는지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가정 문제로 드러난 위기와 상처를 안고 있는 가정들도 있지만, 사실은 남 보기에는 잘 살고 잇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들 가운데 적지 않은 가정들이 남모르는 고통과 갈등을 안은 채 그저 참고, 말 안하고,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정마다, 부부마다, 가기 다른 사연들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적 노력과 결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저는 오늘 다윗과 미갈 부부의 사연을 묵상하면서 참 행복이 있는 가정은 어떻게 이루어 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보면, 지금 다윗은 오랜 숙원이었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가지고 들어와 자리 잡게 하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듯 저들에게 있어서 언약궤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언약궤를 모셔 들이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커다란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언약궤는 레위지파가 직접 가져와야 하는데, 그들은 소가 끄는 수레에 얹어 옮기다가 소들이 놀라 뛰는 바람에 언약궤를 떨어뜨릴 뻔 하였습니다.
이때 '웃사'라는 사람이 언약궤가 떨어질까 봐 손을 대었다가 거기서 즉사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은 감격스런 언약궤의 입성을 연기하게 됩니다.
그 후 다윗은 '웃사'가 죽은 것이,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직접 메고 옮겨야 한다는 민수기 4장 15절의 말씀을 준행치 못했기 때문임을 알고 다시 율법 데로 언약궤 이송을 감행합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언약궤가 들어올 때, 다윗은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절로 춤을 추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의 아내 미갈이 전혀 다윗의 마음에 공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갈은 남편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음으로 경멸하고 무시하였습니다.
미갈이 누구입니까
한때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여 아버지 사울까지 속여 가며 다윗을 구해낸 사울왕의 막내딸이 아닙니까
그 미갈이 오늘 본문에서 사랑했던 남자를 향하여 멸시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여인의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일까요
언약궤가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는 남편 다윗을 조롱한 것은 물로 잘못이지만, 사실 미갈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성경 사무엘상 18장 20, 27절을 보면,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였다는 구절은 여러 번 나오지만 다윗이 미갈을 사랑하였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윗이 미갈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사울왕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용감히 블레셋 군사 200명을 죽이고, 미갈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 후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할 때, 미갈은 남편을 살리고자 아버지를 속이고 헌신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미갈을 찾지 않습니다.
미갈은 다른 사람, 발디엘 이라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새 가정을 꾸미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 나라의 왕권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왕이라는 정치적 기반이 필요하였고, 그때 다윗은 미갈을 찾아오게 합니다.
다윗의 명을 받은 아브넬이 미갈을 찾아올 때 미갈을 사랑하고 돌보던 바디엘은 울며 뒤쫓아 오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미갈을 아내로 데려다 두었지만 진정한 애정과 사랑은 없었습니다.
미갈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춤추는 다윗을 보며 경멸하는 마음을 갖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 잘 살고 있으면서 다윗의 무관심에 대한 상처를 씻고 있었는데 또다시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려니 미갈은 마치 자신이 액세서리나 허수아비쪽으로 여겨졌습니다.
자기 아내에게는 남편으로서의 책임과 헌신을 다하지 않는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감격하여 춤추는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였을 런지 모르지만 미갈은 그 모습이 경멸스럽게 여겨졌다는 얘기입니다. 부부사이에는 남다른 책임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향한 책임과 헌신을 다하지 않으면서 일방적 사랑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조롱과 냉소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완성은 열정과 친밀감과 헌신 이 세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위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 결혼에는 열정과 친밀감은 있지만 헌신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헌신은 사랑의 열정과 친밀감이 있다면 저절로 따라오는 줄 알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나 행복한 가정은 노력하는 헌신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나를 위하여 희생하지 않는 배우자 부모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무리 은혜 받고 열정적이라 하여도 그것이 전면 달갑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교회 가자 예수님 믿자고 윽박지르거나 설득하기보다 예수님 믿는 아내가 예수님 예수 믿는 남편이 예수 믿는 부모가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는 법입니다.
또 하나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은 상대방의 실수나 단점 잘못을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면전에서 구박하건 멸시와 조롱 을 주저 없이 쏟아내는 남편과 아내가 의외로 너무 많습니다.
자신은 오죽하면 내가 그러겠느냐 고하지만 지적하고 구박하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하는 요인이 될 뿐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앖습니다.
다윗이 왕의 체통도 생각하지 않고 벗은 채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객관적으로 생각하여도 납득이 안가는 부분입니다.
21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고 묘사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일 뿐 가족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민망하게 여기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미갈은 자기 남편이자 이 나라의 왕인 다윗이 하는 일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미갈 에게 헌신하지 못했고 미갈은 다윗의 행동을 납득 할 수가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부부간의 문제 부모자녀간의 문제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의 근본자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을 향하여 계속 불만의 말 비난의 말만 쏟아내게 됩니다.
이것이 가족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자신의 존중받고 싶고 위험에서 보호받고 싶고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합니다
또 입장을 이해하여 줄 사람이 가족이나 배우자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관계가 되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책임과 헌신을 다하여야 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하며 마지막 세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동일하게 말씀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가정안에서의 사랑은 쉽게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볼 때 실수가 많은 사람이고 그 가정도 살인과 배신으로 더럽혀 졌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마음에 명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라고 하는 인물 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증거하기를 소원하는 순전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때로는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본문에서 미갈을 아내로 대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만 여기고 미갈이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조롱할 때 즉흥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도 결코 잘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희망적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가 하는 것이 다 잘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선하는 마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마음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체통도 못 지키고 어린아이 같이 굴었다고 말하는 미갈의 조롱의 말에 대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다윗의 입장, 다윗의 진심을 미갈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일찍이 사울 왕을 버리시고 평생을 시골에서 양떼나 몰고 다니는 목동으로 살다가 죽어갈 수도 있었을 자기 자신 다윗을 들어 왕으로 세우신 이 일을 다우시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섭리하심에 다윗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경배하며 춤을 출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간증, 가족간증이 있고 그 간증을 온 가족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간증과 네 간증이 다르고 내 은혜가 내 가족들에게 공감되지 않는 다면 그것도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다윗이 뛰놀며 춤출 때 미갈도 거기 그렇게 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가정에는 "공감"이 있는가.
우리 가정에는 "희생"과"섬김"이 있는가.
우리 가정에는 "책임"과 "헌신"이 있는가.
내가, 내 아내가, 내 자녀가 우선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리하여 우리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데 이견이 없다면 그 가정이 건강한 가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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