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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11절). ”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가 무엇입니까 작은 상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돌비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보관하는 성물 중의 성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궤를 통해 당신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갔을 때 강물이 멈추었고,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언약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았을 때 여리고성은 평지와 같이 무너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 위에는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이 임재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했습니다.
우리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의 가정입니까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나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찬송가 305장). ”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어리다가 정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정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찐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여호와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144:12-15). ”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못하고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2:3-8). ”
왜 다윗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까 베들레헴의 목동으로 태어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입니다. 왕이 된 후에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나라가 조금 안정되자,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셨습니다. 그 동안 언약궤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블레셋과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언약궤를 탈취당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에게 재앙을 내림으로 언약궤를 돌려받았지만, 아비나답이 집에 보관된 언약궤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모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새로운 열심을 품기 원합니다. 처음에는 천막에 모시지만, 앞으로는 성전을 지어서 모시려 합니다. 다윗이 마음이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답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값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고난 받고 죽으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믿는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받은 가정입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임할 때,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놓은 믿음의 가정에는 재앙이 하나도 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정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까 십자가가 있습니까 신앙고백이 있습니까 예배가 있습니까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까 충성으로 섬기는 직분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가정
다윗은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중에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새 수레를 준비해서 언약궤를 운반했습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다윗이 왜 이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모릅니다. 새 수레를 사용한 것을 보면 최선을 다한 것이 분명하지만, 성경의 방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언약궤를 운반할 때에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합니다. 손을 대면 안 되고, 언약궤 안을 들어다보아도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구별된 점이 있습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뜻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존재는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 질적인 차이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이유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웃사가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릅니다. 언약궤를 실은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를 때에 소가 뛰었습니다. 웃사는 급하게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을 손으로 잡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웃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동기가 순수하도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을 범한 것은 범한 것입니다. 상황 윤리는 안 됩니다. 웃사의 죽음으로 언액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국가적인 축제는 비극으로 끝나도 말았습니다. 언약궤를 모시는 일은 행사에 전국 각 지파에서 3만 명이 참여 했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너무 무서운 분 아닙니까 다윗이나 백성의 성의를 보아서 그 정도의 잘못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은 절대로, 무슨 이우로 혼동될 수 없습니다. 윤리적인 죄만 죄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큰 죄입니다. “나는 나만 믿습니다. ” 인간적으로 얼마나 확실한 자기 고백입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들으실 때 얼마나 듣기 거북한 이야기입니까 인간은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세우고 여호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하고 싶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욥이 왜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까 자식이 다 죽고, 재산을 잃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일너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0-21). ” 여호와 하나님과 내가 같지 않다고 고백한 것이 믿음 중의 믿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인간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열심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내는 열심을 기뻐하십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서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과 기도의 대결에서 이겼습니다. 엘리야가 기도 응답 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알의 선지자들은 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몸을 자해해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혼자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에게 그 언약을 응답해 달라고 기도할 때 그의 기도에 하늘로부터 불이 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열심을 냅시다. 범사에 종교성이 많은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순한 믿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령에게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빛을 보고, 진리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 기준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128:1-2). ”
교회와 공동체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삼겹줄의 역사는 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덕을 세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전5:12). ”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믿음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우상은 실제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어도, 혹시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시킬까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먹는 것으로 실족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에게 염려를 끼친다면 차리라 내가 불편한 것이 낫습니다. 내가 없음으로 다른 사람을 충족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감당할 것입니다.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 차라리 자기가 저주를 받아서 끊어져도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임을 믿고 고백하십니까” “예” “여러분은 교회의 지도와 치리에 복종하며 몸과 마음과 물질로 힘써 봉사하여 교인된 의무를 다하겠습니까” “예” 분명히 예라고 고백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인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셀 식구들과 약속을 지키고, 교회와 약속, 여호와 하나님과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대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17). ” 여호와 하나님은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지혜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정통치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혼돈과 무질서로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세워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여호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벧전5:5-6). ”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때 고라의 일당이 일어나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민16:13-14). ” 여호와 하나님이 레위 자손으로 선택해서,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는 직분을 주신 것으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땅이 입을 벌려서 고라의 일당 250명을 다 삼켰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왕을 만나서 죽일 수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부은 종을 내 손으로 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가정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궤를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십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번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번에는 성경대로 조심하여 언약궤를 모십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며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6:13-15). ”
역시 다윗입니다.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큰 죄였지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침상이 젖을 정도로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언약궤를 잘못 운반하다가 웃사가 죽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을 가다듬어서 다시 언약궤를 모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같으면 한번도 하지 않을 일을 두 번이나 합니다. 믿음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다시 안 할 것이라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혹시 다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불안해서 언약궤를 모시는 일을 미루거나 주저주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준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윗이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야곱의 가정은 세겜에서 큰 낭패를 당했습니다. 딸 디나가 추장의 아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이에 격분한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칼로 쳐 죽입니다. 세겜 사람들이 칼을 들고 보복하로 오면 온 가족이 다 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야곱에게 임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20년 동안 밧단아람에서 모은 재산을 다 남겨 두고 야간도주하듯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오래 지체하면 안 됩니다.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 즉시 벧엘로 올라가서 지난날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아야 했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벧엘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지켜서 무사히 돌아오면 벧엘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 있으면 속히 이행하기 바랍니다. 주일성수나 십일조나 맡은 직분이나,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이행하십니다. 이행이 불가능한 것이면 회개하고 용서를 빌기 바랍니다. 서원한 것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 서원이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회개하고 용서받기 바랍니다. 다시 서원하지 맙시다. 여호와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를 더 이상 방치하거나 미루지 말고 고칩시다. 어두운 밤은 지나고 밝은 새벽이 임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다 세상이 더 좋아서 세상으로 나간 가정은 돌아오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요단들을 바라보고 소돔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돔성이 불탈 때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돌아보던 그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나오미는 모압으로 이주해서 10년 만에 남편과 결혼한 두 아들이 자녀도 얻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베들레헴에 양식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과부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슬픈 마음으로, 빈손으로 돌아갔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룻을 크게 축복하셔서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정이 세상을 좋아하는지, 여호와 하나님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질과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송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가정입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마음속에 주님만 생각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입니다.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할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선한 일에 힘씁시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딤후1:16-17). ”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자주 그를 면회하고 위로하였습니다. 면회하는 것은 위대한 업적은 아니라도 선한 일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위로하고,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크고 위대한 일은 못해도 작은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우리의 생명도 그의 것입니다. 우리는 맡은 동안만 일하는 청지기입니다. 다섯 달란트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한 달란트라도 땅에 묻지 말고 열심히 일합시다. 소자 아이에게 준 물 한 그릇이라도 상급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아름답고 화사하고 포근합니다. 꽃은 만발하고, 그 매혹적인 향기에 취합니다. 산과 숲은 초록바다를 이룹니다. 바람은 피부를 감싸고, 태양은 힘을 북돋웁니다. 5월은 축복의 계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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