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아들 압살롬아!
본문
어느 마을에 자식이 없는 부자와 아들만 네 명을 둔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흉년이 들어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모두가 굶어 죽어야하는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걱정 근심을 하던 농부에게 자식이 없는 부자가 찾아와서 솔깃한 제안을 내어놓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많은 곡식을 줄 테니 네 명의 아들중 하나를 자신의 양아들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농부 부부는 승낙을 하고 그 날 밤에 잠자고 있는 아들들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첫 째 아들을 보는 순간 이 아이는 집안의 장남이기에 줄 수 없다고 남편이 말합니다. 둘째를 보는 순간 이번에는 아내가 “이 아이는 당신을 닮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를 보는 순간 부부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늘 울기만하는 연약한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들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차마 양자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막내뿐이었습니다. 막내를 주려고 하니까 막내는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였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이 아이 때문에 지친 피로를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네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선택할 수 없어 그 날 밤을 꼬박세운 후 그 다음 날 일찍 부자에게로 달려가서 계약을 파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5월처럼 우리의 가정도 영혼과 육체가 포근하기를 원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은 포근한 5월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풍의 겨울과도 같습니다.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뉴스는 무너져가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 남편이 아내와 딸에게 마약을 투약하여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 외에는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가정파탄이 우리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다윗가의 불행의 한 면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이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왕으로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떠나지 않는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전투에서도 패하는 일이 없는 백전백승을 거두는 용맹과 전술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정문제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여섯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중 자신의 충실한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도 있습니다. 건전하지 못했던 아내들 문제로 그들에게서 출생되는 자녀들에게 불똥이 번지게 된 것입니다. 첫째 아들인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게 되고 다말의 오빠였던 압살롬이 이년 후에 암논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일은 결국 아버지였던 다윗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압살롬은 배다른 형 암논에 대한 미움이 이번에는 아버지로 번지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아버지 다윗을 배반하여 쿠테타를 일으키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비록 자신을 배반하였지만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죽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출전하는 장수들에게 압살롬만은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부하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주검 앞에 다윗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다윗의 이 통곡은 부모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가정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받기를 소원합니다.
1. 부부관계가 소중합니다.
성경적인 부부관계는 일부일처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 다윗이 일부다처로 살았다고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인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한 언약의 아들인줄 착각하여 그 아들문제로 당시에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부인간의 경쟁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들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의 노예로 팔고는 짐승에게 찢기어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다윗 역시 가족문제로 많은 시간동안 고통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지지 않아도 될 짐들을 졌습니다. 사울에게서 받은 고통은 다윗을 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훈련의 시간이었다면, 아들들의 문제로 받은 고통은 치욕이었습니다. 다윗의 명성에 먹칠한 것과 같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 처음에는 일천번제를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았지만, 솔로몬이 무너진 것은 아버지와 같이 많은 부인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우상과 그들의 신을 용납하다보니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에서 멀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담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은 암수가 있는데 사람만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그의 배필을 만들어 아담에게 보냈습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합된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가정을 말할 때 핵심적인 요소는 자녀이기 전에 부부라는 것입니다. 자녀도 소중하지만 부부관계는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는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남편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면 부부관계를 정리해도 죄가 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교사회가 그랬고, 예수님 당시 로마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부부공동체는 서로를 돕는 배필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1의 관계를 말합니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둔다는 것은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이나 가정의 평화는 부부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자녀교육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심각한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청소년 문제의 출발도 부부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부부가 다투고, 이혼하게 되면 자녀들이 정서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그것이 비행을 저지르는 동기가 됩니다.
원만한 부부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원리대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나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한 부분을 채워 주고, 남편은 아내의 부족한 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22-33에 부부관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권면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고,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부부관계는 어느 한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둘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은 완성된 하나가 아니라 완성된 하나를 위한 출발입니다.
야곱이나 다윗은 이미 예견된 불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부부가 완성된 하나를 위해 나아가는 부부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불씨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부 아닌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부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부부관계는 결코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온전한 가정, 온전한 사회는 희생이 있는 부부관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고 했습니다.
2. 자녀교육이 소중합니다.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으로 유명합니다. 유대인들이 가르치는 자녀교육의 핵심은 성경입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까이 하게 하고 읽고 외우게 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어릴 때 가르치는 교육이 그들의 인격이 되고 장성한 사람이 되었어도 어릴 때의 습관에서 자유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모세를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어릴 때 어머니 요게벳에게 신앙교육을 받고 이집트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집트의 최고의 학문을 배웠지만 모세의 신앙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배운 신앙교육이 결국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의 왕자를 포기하게 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치명적인 것이 아내 문제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동생을 겁탈했을 때 야단을 치던지 따끔한 징계나 훈계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암논에게 야단을 치거나 따끔한 훈계가 있었다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우유부단이 가정을 혼란케 만들었습니다. 암논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죽이려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압살롬 때문에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까
행복한 가정은 온전한 부부관계에서 시작하여 올바른 자녀교육으로 완성됩니다. 구약 사사시대 때 엘리는 백성들에게 존경받았던 사사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자녀들 때문입니다.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는데 이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지만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불량자였습니다.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겁탈하고,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강탈하는 망나니였습니다. 백성들이 엘리에게 자녀들의 문제를 말해도 심하게 야단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이들의 비행을 지적하지 않았거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잘못된 신앙과 행위가 결국 가정을 무너뜨리고, 한 나라에 위기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장년신자 70%이상이 어릴 때부터 신앙을 가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사회가 타락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때 공립학교에서 성경교육을 폐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 행복의 뿌리가 부부관계라면 가정 행복의 꽃과 열매는 자녀교육에 있습니다. 자녀교육의 핵심적인 교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부부관계입니다.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을 통해 신앙을 가르치고 부부관계로 이들에게 신앙적인 삶의 모델이 될 때 어떤 교육보다 귀하고 생명력이 있는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압살롬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다윗처럼 자녀들의 불행 앞에 통곡하기 전에 성경적인 신앙교육과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그들에게 보여줌으로 가정이란 동산에서 튼튼하게 자란 나무가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우리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농부 부부는 승낙을 하고 그 날 밤에 잠자고 있는 아들들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첫 째 아들을 보는 순간 이 아이는 집안의 장남이기에 줄 수 없다고 남편이 말합니다. 둘째를 보는 순간 이번에는 아내가 “이 아이는 당신을 닮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를 보는 순간 부부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늘 울기만하는 연약한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들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차마 양자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막내뿐이었습니다. 막내를 주려고 하니까 막내는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아이였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이 아이 때문에 지친 피로를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네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선택할 수 없어 그 날 밤을 꼬박세운 후 그 다음 날 일찍 부자에게로 달려가서 계약을 파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5월처럼 우리의 가정도 영혼과 육체가 포근하기를 원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은 포근한 5월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풍의 겨울과도 같습니다.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뉴스는 무너져가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 남편이 아내와 딸에게 마약을 투약하여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 외에는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가정파탄이 우리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다윗가의 불행의 한 면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이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왕으로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떠나지 않는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전투에서도 패하는 일이 없는 백전백승을 거두는 용맹과 전술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정문제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여섯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중 자신의 충실한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도 있습니다. 건전하지 못했던 아내들 문제로 그들에게서 출생되는 자녀들에게 불똥이 번지게 된 것입니다. 첫째 아들인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게 되고 다말의 오빠였던 압살롬이 이년 후에 암논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일은 결국 아버지였던 다윗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압살롬은 배다른 형 암논에 대한 미움이 이번에는 아버지로 번지게 됩니다. 결국 그는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아버지 다윗을 배반하여 쿠테타를 일으키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비록 자신을 배반하였지만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죽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출전하는 장수들에게 압살롬만은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부하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주검 앞에 다윗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다윗의 이 통곡은 부모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가정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받기를 소원합니다.
1. 부부관계가 소중합니다.
성경적인 부부관계는 일부일처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 다윗이 일부다처로 살았다고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인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한 언약의 아들인줄 착각하여 그 아들문제로 당시에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부인간의 경쟁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들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의 노예로 팔고는 짐승에게 찢기어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다윗 역시 가족문제로 많은 시간동안 고통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지지 않아도 될 짐들을 졌습니다. 사울에게서 받은 고통은 다윗을 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훈련의 시간이었다면, 아들들의 문제로 받은 고통은 치욕이었습니다. 다윗의 명성에 먹칠한 것과 같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 처음에는 일천번제를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았지만, 솔로몬이 무너진 것은 아버지와 같이 많은 부인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우상과 그들의 신을 용납하다보니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에서 멀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담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은 암수가 있는데 사람만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그의 배필을 만들어 아담에게 보냈습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합된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가정을 말할 때 핵심적인 요소는 자녀이기 전에 부부라는 것입니다. 자녀도 소중하지만 부부관계는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는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남편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면 부부관계를 정리해도 죄가 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교사회가 그랬고, 예수님 당시 로마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부부공동체는 서로를 돕는 배필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1의 관계를 말합니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둔다는 것은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이나 가정의 평화는 부부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자녀교육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심각한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청소년 문제의 출발도 부부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부부가 다투고, 이혼하게 되면 자녀들이 정서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그것이 비행을 저지르는 동기가 됩니다.
원만한 부부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원리대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나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한 부분을 채워 주고, 남편은 아내의 부족한 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22-33에 부부관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권면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고,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부부관계는 어느 한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둘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은 완성된 하나가 아니라 완성된 하나를 위한 출발입니다.
야곱이나 다윗은 이미 예견된 불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부부가 완성된 하나를 위해 나아가는 부부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불씨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부 아닌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부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부부관계는 결코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온전한 가정, 온전한 사회는 희생이 있는 부부관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고 했습니다.
2. 자녀교육이 소중합니다.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으로 유명합니다. 유대인들이 가르치는 자녀교육의 핵심은 성경입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까이 하게 하고 읽고 외우게 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어릴 때 가르치는 교육이 그들의 인격이 되고 장성한 사람이 되었어도 어릴 때의 습관에서 자유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모세를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어릴 때 어머니 요게벳에게 신앙교육을 받고 이집트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집트의 최고의 학문을 배웠지만 모세의 신앙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배운 신앙교육이 결국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의 왕자를 포기하게 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치명적인 것이 아내 문제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동생을 겁탈했을 때 야단을 치던지 따끔한 징계나 훈계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암논에게 야단을 치거나 따끔한 훈계가 있었다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우유부단이 가정을 혼란케 만들었습니다. 암논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죽이려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압살롬 때문에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까
행복한 가정은 온전한 부부관계에서 시작하여 올바른 자녀교육으로 완성됩니다. 구약 사사시대 때 엘리는 백성들에게 존경받았던 사사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자녀들 때문입니다.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는데 이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지만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불량자였습니다.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겁탈하고,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강탈하는 망나니였습니다. 백성들이 엘리에게 자녀들의 문제를 말해도 심하게 야단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이들의 비행을 지적하지 않았거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잘못된 신앙과 행위가 결국 가정을 무너뜨리고, 한 나라에 위기를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장년신자 70%이상이 어릴 때부터 신앙을 가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사회가 타락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때 공립학교에서 성경교육을 폐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 행복의 뿌리가 부부관계라면 가정 행복의 꽃과 열매는 자녀교육에 있습니다. 자녀교육의 핵심적인 교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부부관계입니다.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을 통해 신앙을 가르치고 부부관계로 이들에게 신앙적인 삶의 모델이 될 때 어떤 교육보다 귀하고 생명력이 있는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압살롬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다윗처럼 자녀들의 불행 앞에 통곡하기 전에 성경적인 신앙교육과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그들에게 보여줌으로 가정이란 동산에서 튼튼하게 자란 나무가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우리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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