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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가정과 교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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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월은 교육의 달입니다. 여름성경학교와 소년부, 중고등부, 청년부의 수련회가 있는 달입니다. 특히 오늘은 총회가 결정한 교회학교 교사주일입니다. 이 때는 온 교회가 막대한 예산, 온갖 정성을 부어가며 교육에 전념하는 기간입니다. 어느 기독교 교육학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년 내내 교육하는 양과 여름학교 동안 행한 교육의 양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더욱이나 여름의 교육은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단한 교육효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인재양육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바로 이 때에 전력 교육하느냐 못 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일년에 한번 지나가는 연중행사로 끝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동이나 청소년은 하루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지금의 교회학교 학생들은 그만큼 교육 기회를 잃게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교육을 시키기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시대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의미 깊은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지금 미국의 교육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1950년대 10대와 1990년대 10대를 비교함에서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1950년대는 미국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10대들에게 학교에 공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다면, 지금은 총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한답니다. 1950년대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10대들에게 단추를 풀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면, 지금은 임신하지 말라고 한답니다.
1950년대는 선생님들이 10대들에게 만화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면, 지금은 섹스 비디오를 보지 말라고 한답니다. 1950년대는 방학 때 어딜 가든지 과제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숙제해야 한다고 했다면, 1990년대는 방학 때 어딜 가든지 콘돔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40년 동안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인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이야기만 아니라 바로 오늘 한국사회 10대들이 당하고 있는 환경인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10대 소녀들이 원조교제를 통해서 용돈을 버는 정도가 지나쳐서 어느 소녀는 대대적으로 원조교제를 하다가 체포되었고, 어느 소녀는 지방까지 원정에 나선다고 합니다. 어느 소녀는 방을 얻어준 50대 남자와 살림까지 차렸다가 걸렸다고 합니다. 더 한심한 것은 엄마들 중에도 아이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유흥업소를 다니면서 몸을 파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해서 아이들 대학까지 보낸다고 과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처럼 도덕불감증에 빠지게 되었는지 너무나 답답합니다. 지금은 10대 교육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교육을 담당한 학교교육은 완전히 입시위주 교육에만 치우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학교가 아니라 학원으로 전락했으며, 그에 따라 10대들의 도덕적인 타락을 더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 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진정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곳은 교회뿐인 줄 아시고 교양과 사상, 영적인 교육에 전념하여야 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 가정과 교회, 우리 부모님과 교사들은 어떻게 영적인 교육을 시켜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한 말씀에서 세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가르치라"는 말씀을 잘 명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는 '트래인 업(train up)'으로 '훈련시킨다'는 뜻입니다. 말이나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훈련시킨다는 뜻입니다.
엡6:4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훈계라는 말도 리바이스 스탠더드(Revice Standard)번역에는 '디서프린(disciplin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훈계라는 말은 징계하는 것 이상의 뜻으로, 훈련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훈련을 시킵니까 '가르친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입안, 잇몸, 구개(口蓋)' 혹은 '입천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길들이기 위해서 말의 입 속에 자갈이나 말굴레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을 개갈 먹여 훈련시키는 이유는 주인의 지시에 절대 순종시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부모들과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영적 교육을 시키는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자녀들이 영적으로 노여워합니까 부모나 교사들 자기에게 절대 순종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인들이 노여워합니까 목회자들이 자기에게 절대 순종하라고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 순종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가 때로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과거 깡패 출신들이 회개한 다음, 부흥사나 능력자로 많이 쓰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보면 무식합니다. 말이 너무 거칠고 어느 때는 강대상에서 제멋대로 욕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왜 그런 거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깡패 사회에서는 자기 두목, 일본말로 오야붕에게 절대 순종합니다.
개처럼 순종합니다. 개는 너무 비굴할 정도로 주인에게 절대 순종합니다. 주인이 어느 때는 사정없이 배를 차고 때려도 캥캥거리면서라도 매를 맞습니다. 깡패들도 두목이 아무리 때려도 그 자리에서 맞습니다. 자기 애인을 뺏어도 순종합니다. 심지어 죽으라면 죽는 자리라도 갑니다. 깡패 사회에서는 가장 비겁한 것이 배신입니다. 이러한 깡패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때부터 예수님이 그의 두목이요, 보스요, 오야붕입니다. 절대 순종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때는 설교하다가 욕지거리를 해도, 거친 행동을 해도 여호와 하나님은 용납하시고 강하게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바리새인들처럼 예의 바르나 자기 이익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 자기 의에 빠지는 자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 오히려 깡패가 더 낫다는 말입니다. 부모와 교사 여러분이여, 자녀들과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하는 것이니, 그러한 훈련을 철저히 시키십시오. 아무리 성경공부를 열심히 시킨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그 교육은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 지식은 충분히 가르치지 못할지라도 절대 순종만 제대로 가르친다면 영적 교육은 큰 열매를 나타낼 것이 분명합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는 자녀가 19명이었는데 한결같이 훌륭한 자녀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누가 와서 묻기를 '당신의 교육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수잔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머리가 크기 전에, 좀 더 정확히는 다섯 살이 넘기 전에 그들의 의지를 꺾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교육의 잘못된 풍토는 '자녀들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이나 음식점, 백화점에서 아이들이 마구 뛰고 장난을 쳐도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그만 놓아둡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아이가 어렸을 때에 기를 꺾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부패성과 죄성이 있기 때문에 가만 놓아두면 죄성이 강하게 주장하는 기를 키워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죄성의 기를 꺾어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순종하도록 해야 나이가 들어도 잊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 살을 전후해서 몇 대의 매로 고칠 수 있는 것을, 그냥 방치하면 10대가 되어서 100대의 매를 때리고 교도소에 가두어도 고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교육은 어릴수록 강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언제도 말씀 드린 예화입니다. 합동측 총회장을 지낸 장성칠 목사님이 황해도에서 자랄 때, 한번은 어느 주일날 친구들과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어둑해서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 오늘 무슨 날이지' '주일날입니다. ' '너, 고기를 어서 잡았지' '저 새파동 연못에서요. ' '지금 가서 그 고기를 놓아주고 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나가거라. '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어둑어둑해지는 이 시간에 그 산 고개를 넘어서 간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나 엄격해서 감히 대답을 못하고 울면서 새파동 연못으로 달려갑니다. 짐승소리, 새소리, 벌레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연못에 당도하여 그릇에서 고기를 건져 연못에 던졌습니다. 이제 돌아갈 일이 난감합니다. 그 때 '성칠아'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머니가 뒤쫓아 뛰어오노라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꼭 끌어안고 '과연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건이 그에게는 가장 귀한 것으로 일생 신앙의 뼈를 세워주고 여호와 하나님이 크게 쓰는 일군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목적한 것은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하는 것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부모와 교사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자녀나 제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훈련을 시킴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귀한 인재가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아이에게'란 말에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아이'란 히브리 원어로는 자녀인데 구약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삼상4:21에서는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를 가르키고, 창21:14에서는 15세난 이스마엘을 가르키고, 창37:30에서는 17세난 요셉을 가르키고 창34:5에서는 결혼할 만한 나이였던 야곱을 가르키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이라는 말의 범위는 갓난아이로부터 결혼할 때까지의 나이를 말합니다. 즉, 우리가 일생 가르쳐야 하지만, 교육을 중점적으로 가르쳐야할 나이는 결혼 전까지입니다.
우리 나라 나이로 말하면 30살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기관은 30세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인간은 7년이라는 주기로 변화기가 옵니다. 0살-6살 유치기, 7살-13살 소년기, 14살-20 청소년기, 21-27살 청년기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인간은 7년을 주기로 하여 변화기가 옵니다. 7살 때쯤 미운 일곱 살, 13-14살 때쯤 사춘기, 20-21살 때쯤 성인기가 오게됩니다. 그러므로 7년마다 오는 변화기를 잘 이용하여 교육을 하면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0살-6살까지는 버릇과 습관을 철저히 가르쳐야 하는 시기로, 이 때 습관이 잘못되면 세 살 버릇이 80살까지 가게됩니다. 7살-13살까지는 인관 관계를 가르치는 시기로, 이 때에 인간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생 외톨이가 되기가 쉽습니다. 14-20살까지는 사상과 종교를 가르치는 시기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영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입니다. 21-27살까지는 인생관과 직업 확립, 배우자를 확립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육에는 그 시기를 적절히 맞추어서 해야 효과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30세 이전까지는 끝없는 변화기를 맞기에 방황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느 때는 모범생 같더니 어느 날 보니 탈선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어느 때는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더니 어느 날 보니 교회도 출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때라도 우리 부모들과 교사들은 용납의 큰 가슴으로 탕자의 아버지처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쓰신 가정행전이라는 책에서 보면 이러한 때에 우리 부모들은 '방황 끝에 돌아올 항구가 되어야 한다. '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자녀와의 관계를 단절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돌아올 때 영접해줄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을 믿는 자녀들은 결국 어느 날인가, 자녀들은 방황을 마치고 결국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명한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부흥사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큰아들 프랭클린은 22살까지 안 해본 짓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독한 위스키를 마시고 총 쏘는 것을 좋아하고 오토바이 폭주에다 별 것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그 부모님들은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또 얼마나 불붙게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그가 22세 되던 어느 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아들을 앉혀 놓고 '너 예수님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려고 하니'하고 다그치자, '아빠, 그 지겨운 얘기 이제 그만하세요. '하며 귀찮아했습니다. 그리고는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예루살렘의 한 호텔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호텔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살수는 없지. 아버지의 말을 거절하고 뛰쳐나왔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계속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다가 그 호텔 방에서 기드온 성경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무심코 성경을 펼쳤는데 바로 롬8:1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였습니다. 그것을 읽는 순간에 '아, 여호와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하시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면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했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후계자가 되어 전세계에 다니면서 청소년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부모와 교사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자녀들이나 제자들은 지금 어느 시기에 와 있는 것을 분석하시고 그 시기에 적절한 교육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청소년은 한 때 방황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라도 여러분은 방황 끝에 돌아올 항구가 됨으로 그들을 영접할 수 있는 십자가 마음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마땅히 행할 길'이란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설계하신 방법에 따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 부모나 교사들은 우리 인간의 소원이나 짧은 생각대로 자녀들이나 제자들에게 충고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 한번 해보지 않고 '너는 이 길을 가면 좋겠다. ' '너는 이 다음에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합니다. 어느 부모는 자기가 법관이 되고 싶었던 꿈을 자녀를 통해서 이루려고 합니다.
어느 부모는 너무 가난하게 살았기에 자녀를 통해서 가난의 한을 풀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땅히 행할 길'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목표와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것을 말씀과 기도 중에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는 길인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받는 무전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성경을 스스로 연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나침반과 같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땅히 행할 길'로 간 위대한 신앙가들은 하나같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글라스톤은 '나는 현대 세계 위인 95명을 알고 있는데 그 중에 87명은 성경을 신봉하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존 러스킨은 말하기를 '내가 많은 책을 저작한 어떠한 공적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가 매일같이 성경을 읽어주시고 그것을 나에게 암송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했고,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은 '내가 곤혹과 비참을 만날 때 성경은 항상 나에게 광명과 힘을 주심에 있어 실망한 적이 없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자녀들이나 제자들을 사랑하시거든,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재가 되는 원하시거든,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지 말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스스로 연구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을 훈련시키십시오. 그리하여 기도와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땅한 길로 가도록 가르치십시오.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김명배 집사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 귀국하여 장례식을 끝냈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며칠 후 어머니가 남긴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삼 형제와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큰형이 말하기를 '어머니가 남긴 재산은 공무원으로 제일 어려운 막내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 나는 의사요, 둘째는 사업가로써 부족함이 없기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둘째형도 '참 좋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내를 의외에 말을 하기를 '아닙니다. 어머니의 재산은 마땅히 큰 형이 물려받아야지요. 나는 딴 것을 원합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평생 보시던 성경책입니다. '라고 하자, 큰형도, 작은형도 '안 된다. 그것은 가져야 한다. '고 서로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막내가 '두 형님은 언제나 어머니가 묻힌 고국 땅에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언제나 해외로 떠도는 몸이니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듯 어머니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겠으니 제가 가지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할 때 두 형은 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온 가족이 울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훌륭한 형제들입니까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도 전에 유산 싸움이 생기기 일 수인데 이 형제들은 어머니의 재산에는 관심이 없고 어머니의 성경을 서로 가지려고 하니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는 어머니가 평소 늘 말씀대로 살고 가르친 결과요, 어머니가 늘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철저하게 말씀 중심으로 사셨던 거룩한 모습에 감동을 받은 줄 압니다. 부모님 여러분이여,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고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심으로 돌아가신 후에 자녀들 서로가 그 성경을 유산으로 갖고 싶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엔 기도의 눈물과 충성의 땀이 배어 있는 낡은 성경책을 유산으로 받도록 욕심을 내 보십시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어느 자녀들을 보면 부모님 장례식 때 '관에다가 성경을 넣어드리면 어떻습니까'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자세입니다. 우리 부모나 교사들이 자녀나 제자들에게 듣든지 말든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일생동안 그것을 떠나지 않도록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 하십니다. 사랑하시는 부모와 교사 여러분이여, 다시금 가장 교육하기 좋은 7월 8월이 왔습니다. 온 교회, 온 교인들이 이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교육에 힘쓰고 협력하심으로 많은 인재의 싹이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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