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부요한 가정
본문
미래학자인 앨 빈 토플러가 여러 해 전에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써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또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물밀듯 밀려오는 정보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그 영향이 우리 가정에 제일 먼저 침투해 들어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정의 미래가 매우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가정이 와해될 지도 모른다. '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들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가정이 어떻게 병든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제도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를 무너뜨리려 여호와 하나님을 훼방하려고 합니다. 세계 도처에서 사탄은 승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상적인 가정은 10년 전쯤 해서 15%정도였으니 지금이야 더 얼마나 내려갔는지 알만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신앙의 뿌리가 깊이 내려서 든든하고 크고 푸르고 열매 많이 맺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세 가지 바른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첫째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예배하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물질적인 바른 관계로. 물질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대인관계인데 인간상호 간의 섬김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2장은 관계의 원리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축복을 창세기 2장에서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축복이 다 관계에서 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인데 이것은 안식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 예배하는 관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은 구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분으로 구별하여 모셔야 합니다.
물질은 다스릴 때만 나에게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이와 같이 물질을 다스리면 많은 도움을 받지만 매이면 자유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섬김의 관계입니다. 아담 흘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섬김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서로 섬기며 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는 세 가지를 인간에 대한 축복의 법으로. 행복의 질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원리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가정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부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물질적인 데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만이 행복한 것처럼 생각하고 물질의 부요만을 찾기에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공동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22:2에 "빈부를 섞여 살거니와 이를 지으신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불행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면 행복이 있고 삶이 부요해지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가난하게 살 때는 가정이 있고 행복하였는데. 부자가 되면서 가정을 잃고 불행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세 가지 부요가 있어야 합니다.
1 행복한 가정은 믿음으로 부요하여야 합니다.
16절"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솔로몬은 가정의 부요와 행복이 물질적인데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어느 농부가 농사를 짓고 풍년이 들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리고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물질을 얻는데는 지혜가 있었으나 사는 목적에서 어리석었습니다. 이사람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은 물질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자가 된다고 인생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수가 없습니다.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옷은 살 수 있으나 인격은 살수가 없습니다. 집은 돈으로 지을 수 있으나 가정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으로 마음의 평화를 못삽니다. 돈으로 천국을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없고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돈으로 존경이나 명예를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으며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양적인 것이 아니요 질적인 것입니다. 외적인 데 있지 않고 내적인 데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소유와 행복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적인 행복은 배불리 먹고 입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믿음으로 부요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부요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너희가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부자입니다. 인간이 부자가 되려는 것은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도 입고 잘 먹고 어려울 때 도움을 입으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집이 무슨 집입니까 이는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좋은 옷은 무슨 옷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어린 양의 옷입니다. 좋은 양식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 자입니까 눈에 보이는 물질이 있다고 부자입니까 가져도 가난한 자가 있고 가진 것이 적어도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영원히 통하는 부요는 곧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문 밖의 손님으로 대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가난이 있고 곤고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만이 심령을 부요하게 만들고 이 부요만이 인간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듭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는.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2. 행복한 가정은 사랑의 부요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부요만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17절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정의 보화 중에 가장 큰 보화는 사랑의 보화입니다. 사랑은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사랑은 기쁨을 생산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은혜 안에서 즐거운 존재로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또 이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거의가 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봉사하며 기쁨을 주려고 했을 때 얻는 보상입니다.
남을 슬프게 하면 내가 슬퍼집니다. 남에게 근심을 주면 내 마음에 근심이 뒤쫓아옵니다. 남에게 한 송이 꽃을 꺾어 주는 사람은 자기 손에 향기가 묻어 옵니다.
어머니들의 가장 즐거운 시간은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장성하고 성공하고 출세하면 아들에게서 얻는 즐거움은 적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사랑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티없는 얼굴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가장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섬김을 받고자 하면 마음이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심은 항상 행복을 억누르며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희생과 봉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행복의 샘을 열고 우리 마음에 기쁨의 생수를 붓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알고 즐거워하며 이 즐거움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회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0-11)
잠언 5장18절을 보십시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런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남편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내 아내가 제일이지 생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내 남편이 최고지 하여야 행복하여 집니다. 서로 어떻게 사랑하는 것입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헨리 드루몬드는 사랑은 이해를 하기 때문에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빌 고타드는 "정욕은 획득하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은 주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충청도 장항에서 목회할 때 거래하던 세탁소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 가면 평안합니다. 항상 기독교 방송을 조용하게 틀어놓고 남편과 아내가 일을 하는데 서로에게 얼마나 깍듯하든지 말도 조용조용하게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정중하게 대하는데 그 모습을 볼 때 참으로 행복하게 보입니다.
예절이라는 것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남을 이해하면서 예민한 관심을 가지고 불편이 없도록 신경을 쓰며 도와주는 것이 예절바른 것입니다.
내 남편과 내 아내를 무시하면 세상 사람이 내 남편과 아내를 무시합니다. 서로 위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나쁜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과거의 허물을 기억지 않고 용서하며 잊어버립니다.
구약을 보면 사랑의 예언자라고 하는 호세아가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호세아를 통하여 나타내 보입니다.
호세아의 아내인 고멜은 남편의 사랑을 저버리고 정부의 모든 허영을 따라서 도망갔습니다. 창녀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보리쌀과 은을 달아 주고 창녀가 되어 정부를 따라간 아내를 값을 주고 다시 찾아와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과거를 다 용서하여 준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서로 허물이 보이지 않도록 사랑하여야 합니다.
3. 행복한 가정은 감사의 부요에 있습니다.
딤전 6:6 "인간에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상실하고 신앙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툼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족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 신앙은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가정 생활을 행복하도록 부요케 하는 삶의 비결이 감사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삶은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감사할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뉴욕의 퍼머 부인은 빈민굴 아이를 모아 놓고 행복 클럽을 만들고 세 가지 규칙을 세웠습니다.
1)날마다 아름다운 것을 하나 이상 본다.
2)날마다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한다.
3)날마다 한 가지 이상 감사할 것을 찾는다.
결국 아이들이 놀랍게 행복하고 명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궁궐에 살면서도 인생이란 왜 이처럼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조그마한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감사가 부요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행복은 현재 받은 것을 은혜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다 잃어도 본전이요. 그 동안 누리고 산것은 그저 감사한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 가정에 있는 보화는 사랑스런 아내요. 귀여운 자녀요. 고맙고 감사한 부모님일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에게 많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사람은 모두 목마른 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즐거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만족을 얻을까 하여 참 양식도 아닌 것에 돈을 쓰고. 만족할 수 없는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합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바르게 되지 않고는 마음에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 최대의 가난은 감사의 빈곤입니다. 사랑의 빈곤입니다. 믿음의 빈곤입니다. 인생 최대의 저주는 마음속에 받은 은혜가 기억되지 않고 감사를 빼앗긴 인생이라고 우찌무라 간조는 말했습니다.
한량없는 은혜가운데 살면서도 항상 우울한 심정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찬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이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든지 어떤 형편에 있는지 모두 다 받은 은혜는 족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것 가운데도 남은 것이 있는 줄 알아야 하고 현재 주어진 은혜를 족한 줄로 알 때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다 부자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모두 감사할 것 뿐입니다. 원망하거나 탄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깨달을 때 그 속에 깊은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감사의 부요만이 나의 삶을 무한한 행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또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물밀듯 밀려오는 정보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그 영향이 우리 가정에 제일 먼저 침투해 들어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정의 미래가 매우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가정이 와해될 지도 모른다. '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정들이 병들었습니다. 가정이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결손 가정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가정이 어떻게 병든 가정을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제도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를 무너뜨리려 여호와 하나님을 훼방하려고 합니다. 세계 도처에서 사탄은 승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상적인 가정은 10년 전쯤 해서 15%정도였으니 지금이야 더 얼마나 내려갔는지 알만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신앙의 뿌리가 깊이 내려서 든든하고 크고 푸르고 열매 많이 맺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세 가지 바른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첫째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예배하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물질적인 바른 관계로. 물질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대인관계인데 인간상호 간의 섬김의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2장은 관계의 원리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축복을 창세기 2장에서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축복이 다 관계에서 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인데 이것은 안식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고 예배하는 관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은 구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분으로 구별하여 모셔야 합니다.
물질은 다스릴 때만 나에게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이와 같이 물질을 다스리면 많은 도움을 받지만 매이면 자유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섬김의 관계입니다. 아담 흘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섬김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서로 섬기며 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는 세 가지를 인간에 대한 축복의 법으로. 행복의 질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원리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가정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부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물질적인 데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만이 행복한 것처럼 생각하고 물질의 부요만을 찾기에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공동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22:2에 "빈부를 섞여 살거니와 이를 지으신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불행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면 행복이 있고 삶이 부요해지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가난하게 살 때는 가정이 있고 행복하였는데. 부자가 되면서 가정을 잃고 불행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세 가지 부요가 있어야 합니다.
1 행복한 가정은 믿음으로 부요하여야 합니다.
16절"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솔로몬은 가정의 부요와 행복이 물질적인데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어느 농부가 농사를 짓고 풍년이 들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리고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물질을 얻는데는 지혜가 있었으나 사는 목적에서 어리석었습니다. 이사람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은 물질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자가 된다고 인생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살수가 없습니다.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옷은 살 수 있으나 인격은 살수가 없습니다. 집은 돈으로 지을 수 있으나 가정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으로 마음의 평화를 못삽니다. 돈으로 천국을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없고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돈으로 존경이나 명예를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으며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양적인 것이 아니요 질적인 것입니다. 외적인 데 있지 않고 내적인 데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소유와 행복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적인 행복은 배불리 먹고 입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믿음으로 부요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부요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너희가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부자입니다. 인간이 부자가 되려는 것은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도 입고 잘 먹고 어려울 때 도움을 입으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집이 무슨 집입니까 이는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좋은 옷은 무슨 옷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어린 양의 옷입니다. 좋은 양식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 자입니까 눈에 보이는 물질이 있다고 부자입니까 가져도 가난한 자가 있고 가진 것이 적어도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영원히 통하는 부요는 곧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문 밖의 손님으로 대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가난이 있고 곤고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만이 심령을 부요하게 만들고 이 부요만이 인간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듭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는.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2. 행복한 가정은 사랑의 부요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부요만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17절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정의 보화 중에 가장 큰 보화는 사랑의 보화입니다. 사랑은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사랑은 기쁨을 생산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은혜 안에서 즐거운 존재로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또 이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거의가 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봉사하며 기쁨을 주려고 했을 때 얻는 보상입니다.
남을 슬프게 하면 내가 슬퍼집니다. 남에게 근심을 주면 내 마음에 근심이 뒤쫓아옵니다. 남에게 한 송이 꽃을 꺾어 주는 사람은 자기 손에 향기가 묻어 옵니다.
어머니들의 가장 즐거운 시간은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장성하고 성공하고 출세하면 아들에게서 얻는 즐거움은 적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사랑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티없는 얼굴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가장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섬김을 받고자 하면 마음이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심은 항상 행복을 억누르며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희생과 봉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행복의 샘을 열고 우리 마음에 기쁨의 생수를 붓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알고 즐거워하며 이 즐거움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회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0-11)
잠언 5장18절을 보십시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런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남편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내 아내가 제일이지 생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내 남편이 최고지 하여야 행복하여 집니다. 서로 어떻게 사랑하는 것입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헨리 드루몬드는 사랑은 이해를 하기 때문에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빌 고타드는 "정욕은 획득하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은 주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충청도 장항에서 목회할 때 거래하던 세탁소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 가면 평안합니다. 항상 기독교 방송을 조용하게 틀어놓고 남편과 아내가 일을 하는데 서로에게 얼마나 깍듯하든지 말도 조용조용하게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정중하게 대하는데 그 모습을 볼 때 참으로 행복하게 보입니다.
예절이라는 것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남을 이해하면서 예민한 관심을 가지고 불편이 없도록 신경을 쓰며 도와주는 것이 예절바른 것입니다.
내 남편과 내 아내를 무시하면 세상 사람이 내 남편과 아내를 무시합니다. 서로 위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나쁜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과거의 허물을 기억지 않고 용서하며 잊어버립니다.
구약을 보면 사랑의 예언자라고 하는 호세아가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호세아를 통하여 나타내 보입니다.
호세아의 아내인 고멜은 남편의 사랑을 저버리고 정부의 모든 허영을 따라서 도망갔습니다. 창녀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보리쌀과 은을 달아 주고 창녀가 되어 정부를 따라간 아내를 값을 주고 다시 찾아와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과거를 다 용서하여 준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서로 허물이 보이지 않도록 사랑하여야 합니다.
3. 행복한 가정은 감사의 부요에 있습니다.
딤전 6:6 "인간에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상실하고 신앙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툼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족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 신앙은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가정 생활을 행복하도록 부요케 하는 삶의 비결이 감사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삶은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감사할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뉴욕의 퍼머 부인은 빈민굴 아이를 모아 놓고 행복 클럽을 만들고 세 가지 규칙을 세웠습니다.
1)날마다 아름다운 것을 하나 이상 본다.
2)날마다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한다.
3)날마다 한 가지 이상 감사할 것을 찾는다.
결국 아이들이 놀랍게 행복하고 명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궁궐에 살면서도 인생이란 왜 이처럼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조그마한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감사가 부요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행복은 현재 받은 것을 은혜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다 잃어도 본전이요. 그 동안 누리고 산것은 그저 감사한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 가정에 있는 보화는 사랑스런 아내요. 귀여운 자녀요. 고맙고 감사한 부모님일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에게 많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하는 마음을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사람은 모두 목마른 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즐거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만족을 얻을까 하여 참 양식도 아닌 것에 돈을 쓰고. 만족할 수 없는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합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바르게 되지 않고는 마음에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 최대의 가난은 감사의 빈곤입니다. 사랑의 빈곤입니다. 믿음의 빈곤입니다. 인생 최대의 저주는 마음속에 받은 은혜가 기억되지 않고 감사를 빼앗긴 인생이라고 우찌무라 간조는 말했습니다.
한량없는 은혜가운데 살면서도 항상 우울한 심정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찬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이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든지 어떤 형편에 있는지 모두 다 받은 은혜는 족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것 가운데도 남은 것이 있는 줄 알아야 하고 현재 주어진 은혜를 족한 줄로 알 때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다 부자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모두 감사할 것 뿐입니다. 원망하거나 탄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깨달을 때 그 속에 깊은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감사의 부요만이 나의 삶을 무한한 행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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