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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잠잠하지말자(에 4:12-17)

본문

여전히 무더위는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가을을 준비하는 농부들의 땀방울이 고귀하듯이 고통과 고난의 세월 동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입니다.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도 농부들은 가을의 수확을 위해서 인내하며 열심히 농작물을 돌보는 것입니다. 농부들 뿐만 아니라 미래의 꿈과 소망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현재의 고난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몰아치는 비바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나무처럼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126: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고 기록된 의 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천 번에 가까운 외적의 침입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근세에 와서 겪었던 일제 36년의 압제는 치욕의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성과 이름을 빼앗겨야 했고, 우리가 한 민족임을 나타내는 말과 문자를 사용할 수 없었던 비참한 시대였습니다. 그 아름답던 미풍양속과 찬란한 문화가 군국주의의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혔었습니다.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같이 민족적인 고난을 당했던 나라들이 많습니다. 어떤 민족은 이런 고난을 견디다 못해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경우가 있고, 반면에 어떤 민족은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오히려 민족이 단합되고 더욱 독창적인 문화와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남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선택된 이스라엘 역시 고난과 시련의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수많은 강대국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엄연한 독립국가로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중에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신앙의 애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달은 1945년 해방받은 8·15광복절이 있는 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에스더의 신앙을 통해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에스더가 살고 있는 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 상태에 있던 때입니다. (1:1-2)그 때의 바벨론 왕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도를 치리하는 아하수에로 왕이었고, 그의 왕후는 와스디였습니다.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은 나라의 부강함과 자기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1:4 이하 180일 간의 왕궁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날이 다하자 왕은 도성 수산의 백성들을 위하여 왕국 후원에서 칠일 동안의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제 칠일에 왕은 주홍이 일어나서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뭇백성과 방백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이 왕명을 거역하였습니다. 고대국가에서의 왕권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왕명을 거역한 와스디 왕후는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왕후를 간택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에스더는 바벨론 사람이 아니고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입니다. 만일 에스더가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들통났다면 왕후로 간택되는 것은 고사하고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에스더를 왕후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크신 섭리인 것입니다. 죄 많은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된 것도 이와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감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에 유다 백성들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3:1 이하 바벨론 대신 중 큰 권세를 가진 하만이라는 자가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무릎꿇지 아니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허락을 받아서 바벨론 전역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조서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만은 영적으로 마귀를 상징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왕후가 간택되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을 통해서 역사한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혀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결국 마귀의 무서운 궤계로 인하여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민족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닥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통하여 이렇게 엄청난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면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때를 알아야 합니다


4:1이하 민족적으로 큰 위기가 닥친 것을 깨달은 모르드개는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성 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동족들과 함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사촌 동생이며 아하수에로 왕후인 에스더에게 부탁하기를 왕에게 나아가서 동족들의 구원을 간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비록 왕후라고 할지라도 왕 앞에 나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왕의 부름없이 왕에게 나아가면 죽임을 면키 어려웠습니다. 단지 왕이 자기 손에 있는 금홀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자기 동족들이 다 죽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에스더가 왕에게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안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3-14절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 때는 동족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의 때를 말합니다. 온 민족이 전멸당하게 될 긴박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같은 동족이라 하면서도 왕후라는 면책 신분 때문에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가 왕후가 된 것은 바로 이렇게 민족적으로 엄청난 위기가 닥쳤을 때 민족을 구해 내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위기의 때를 잘 알알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위기의 시대입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나는 편하다고 해서 외면한다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과거 일제 36년의 압제 하에 있을 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담대한 신앙과 용기로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결연히 일어났던 것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앞장 서서 독립운동을 했고, 물산 장려운동으로 나라의 빚을 갚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만 편하다고 해서 이웃과 동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함께 밤을 밝히며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위기감이 팽배한 시대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붕괴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계층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반목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때를 잘 파악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롬13: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위기의 시대를 당하여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위기가 닥친다고 하더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평안하다고 해서 고통 중에 있는 동족이나 가족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며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를 축원 합니다.


               2. 하나님이 잠잠하시면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위기가 닥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잠잠하지 아니하시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면 우리는 위기를 견딜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에 마귀의 세력인 바로에 의하여 갓 태어난 남자 아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계속 잠잠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씨가 말라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앞에 두고 애굽 군대의 추격받았을 때 하나님이 잠잠하셨다면 다 몰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대적할 때 하나님이 잠잠하셨다면 엘리야가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잠잠하셨다면 다니엘은 사자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잠하시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잠잠하지 아니하시고 늘 동행하시면서 보호해주십니다. 잠잠하지 아니하고 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며 도와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가 잠잠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드개의 권면을 들은 에스더는 심각했습니다. 지금 눈 앞에는 마귀의 무서운 음모로 동족들이 다 죽기 직전에 있습니다. 이 위기에서 동족들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왕후인 자신이 잠잠해서는 안됩니다.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서 동족의 문제를 탄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왕이 부르지도 않했는데 안될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바로 자기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로 삼은 것이 위기에 닥친 동족을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은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비장의 각오를 말합니다. 본문 16절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수산 도성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다 모으고 자기와 함께 사흘 밤낮을 금식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친 후 나라의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기적을 낳게 했습니다. 

5:1 이하 에스더가 제 삼일에 어전에 나아가자 왕이 그녀를 보고 심히 사랑스럽게 여겨 손에 있는 금홀을 내어 밀었던 것입니다. 에스더는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족을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는 이 때 우리는 잠잠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잠잠하면 하나님도 잠잠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닥치는 위기와 어려움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신앙처럼 결사의 각오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잠잠한다면 결국 문둥병자가 죽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죽고 자기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자기 몸이 썩어가도 감각이없기 때문에 그 위기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문둥병이 결국 생명까지도 삼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위기에 대해서 무감각하면 바로 이러한 불행이 닥치는 것입니다. 잠잠하지 말고 외칩시다. 그래야 민족이 살고 결국 나도 살게 됩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다른 사람이 말려도 잠잠하지 않고 외쳤기에 눈을 뜨고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랑을 만나서 죽게 된 제자들이 부르짖을 때 예수님이 깨셨습니다. 

사42:13-16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잠잠하지 않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도 잠잠하지 않고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그 대적을 크게 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참았으나 이제 해산하는 여인처럼 부르짖으며 생명을 창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흑암을 광명이 되게 하고, 굽은 데를 곧게 해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위기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사의 각오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세력인 하만을 물리치고 동족을 구원하여 해방을 맞게 하였습니다. 에스더의 믿음으로 하만의 궤계를 물리치고 죽음 직전에 구원을 얻은 모든 유대인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민족적인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에9:21"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이 달 이 날에 유대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절기는 부림절이라고 하여 지금도 유대인들은 매년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부림절과 같은 기념일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 하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군국주의의 군화발 밑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독립운동을 했던 에스더와 같은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이러한 믿음을 본받아 나라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데 앞장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민족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알고,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부르짖는 성도가 됩시다. 이것이 바로 민족이 살 길이요, 곧 나와 내 가족이 살 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시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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