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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기독교인과 애국방법(롬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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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화요일은 해방된 지 55주년이 되는 광복절입니다. 그 동안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해방이 된지 55년이 되었음에도 우리 나라의 반쪽인 북한은 해방은커녕,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정권으로 굳어져 갈 뿐 아니라 사교집단으로 변질되는 모습 만 보일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북한의 수백만의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비참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같은 동족임에도 도울 수 없다는 점이 우리의 양심을 더욱 괴롭혀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된 지 55년, 육이오 사변이 발발된 지 50년만에 남북의 정상이 만나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게된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입니다. 우선 8월 15일 남북의 이산가족들의 일부가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잠깐 피난 갔다가 온다고 어머니와 인사하면서 헤어진 다음 50년의 세월이 흘러가 이제는 60대 후반이나 70대의 노인이 되었으니 그 한 많은 세월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와 그런 식으로 헤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의 수가 천만이나 된다니 상상할 수나 있는 노릇입니까? 그런데 어느 가정은 50년을 기다려온 아들이 서울에 온다는 데도 치매(癡 ) 때문에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고, 평양에서 109살 된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던 어느 이산가족은 그 사이에 노모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기도 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육이오 사변시 15세 때 중학생으로, 멋모르고 의용군으로 끌려가 북한으로 넘어갔던 오영제라는 시인은 40년만에 어머니가 남쪽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모시(思慕詩)를 쓰기를 <생존해 계시다니 /생존해 계시다니 /팔순이 다 된 그 나이까지 /오늘도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다니 /그것은 캄캄한 밤중에 /문득 솟아오른 해님입니다 /한꺼번에 가슴에 차고 넘치며 /쏟아지는 기쁨의 소나기입니다 /그 기쁨 천근으로 몸에 실려/ 그만 쓰러져 웁니다 /목놓아 이 아들은 울고 웁니다 /땅에 엎드려 넋을 잃고 /자꾸만 큰절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어머니가 아들을 너무 그리워하다가 95년 동안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형 승재(68세, 한남대 교수), 동생 형재(63세, 서울시립대 교수), 근재(60세, 홍익대 교수), 창재(57세, 사업가) 등을 만난다고 합니다. 이는 너무나 큰 비극입니다. 아니, 천만 이산가족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두고 50년이나 못 만나게 했다는 것과, 만난다 할지라도 서로가 도울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범죄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 50년 만에라도 조그마한 물꼬가 열리게 된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 줄 알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 열심히 기도하여야 할 줄 압니다. 남북의 문은 하나님이 여셔야 가능합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열려고 노력할지라도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수 없고 아무리 인간들이 닫으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여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적으로 아주 중대사를 앞두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때일수록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나라에 대해서 더욱 애국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이 더 활짝 남북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애국해야 하는가?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천국시민이라는 믿음과 세상을 분토같이 여기는 생각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나라에 대해서 무관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다 자기 조국을 사랑하고 봉사한 애국자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민족이 죄악으로 멸망할 것을 예견하시고 안타까워 하시며 우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핍박한 자기 민족이었지만, 그처럼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은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세계의 기독교 국가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기에 이스라엘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고, 엄청난 성지순례 객들이 관광을 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먹고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애통하기를 렘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기도해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딤전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내촌감삼은 말하기를 '우리는 일찍이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다. 또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있음을 알지 못한다. 사람의 애국은 그 신앙으로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제 시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했으며, 조선일보 사장, YMCA 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이상재 선생이 3·1운동 당시 일본 순사로부터 심문을 받을 때,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가?'고 하자, '하나님이 시켰소'라고 했고 '3·1운동의 본부가 어디 있는가?'라고 하자, '하늘에 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신앙과 애국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있다하면서 자기 조국을 외면하거나 모른 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앙이 있다면 마땅히 애국심도 있어야 합니다. 3·1운동 때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에 16명이 그리스도인과 목사들이었던 것은 어느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신앙인으로서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1. 애국의 방법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막12에 보면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자들이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질문하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만 바치면 되지, 자기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로마에게 무슨 세금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질문이었습니다. 깊은 함정이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만일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 황제에게 반역한다고 하면서 고발할 것이요, 바치라고 하면 비애국자라고 책잡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내 나라, 내 정부가 어느 때는 내 마음에 안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라도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어느 의미에서는 불신자들보다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롬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사는 내 나라에 대해서 해야될 의무를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2. 애국의 방법은 의로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진리대로 사는 것도 애국하는 길입니다.


잠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의롭게 사는 백성이 많으면 그 나라는 영화롭게 되고 복 받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10명이 없어서 유황불에 불타고 만 것입니다. 음란하고 패역한 도시 폼페이는 화산이 터져서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의로운 자입니다.


렘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에 공의를 행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진멸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의롭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 아니라 우리 가정, 우리 도시, 우리 나라까지도 복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애국적인 일입니까?


사실, 우리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 보십시오. 남한은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불타는 나라요, 북한은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부정하는 나라입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 결과, 남한은 50년 전에는 완전히 잿더미가 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수출로는 세계 상위권에 속한 잘 사는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에 비해서 북한은 계속 가뭄, 흉년이 되므로 백성들이 대부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알거지 나라가 되었습니다.


「월간조선」지 8월호에는 북한 연구의 대가(大家)라는 서강대 이상설 교수가 쓴 글이 나오는데, 소개하면 <지난 5년간 김정일은 북한 사회를 '구조개혁'했습니다. 불순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함경북도로, 양강도로 이주시켰습니다. 거기서 굶어죽든지 탈출하든지 상관 안 하겠다는 겁니다. 대신 평양에 거주하는 250만, 나머지 각 지역에 골수분자 약 50만 해서 300만 명으로 북한 체제를 끌고 갈 자신이 생긴 겁니다. 이들이 단결하니 우리보다 강하게 보일 수 밖에요>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남북정상 때보니 평양은 얼마나 살기 좋은 것처럼 보입니까? 건물이나 도로, 시민들의 옷도 나름대로 제법 괜찮은 것같지요? 그러나 평양은 완전히 북한의 상류층이요, 골수 당원들만 사는 곳입니다. 나머지 거의 1,700만 백성은 버려진 채 비참하게 굶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굶다 못해 탈북하여 여인들은 몸을 파는 신세가 되었고 아이들은 거지꼴로 헤메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난번 서울노회 사회부가 북한에 밀가루를 180톤을 전달한 것은 바로 북한이 포기한 백성들입니다.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처럼 북한은 하나님을 부인한 결과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중국이나 미국처럼 광대한 땅이라면 한쪽은 풍년이 계속 들고 한쪽은 계속 흉년이 드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끝에서 끝까지 자동차로 하루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땅덩어리입니다. 같은 기후대입니다. 그런데 10여년 이상동안 남쪽은 풍년이 들고 북쪽은 흉년이 드는 것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의롭게 사는 것의 결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누가 보든지 말든지,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요즈음 의사들을 보면서 너무나 한심한 생각이 납니다.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죽어 가는 환자들을 담보로 해서 파업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아니, 전쟁터에서도 의사들은 부상한 적군들까지 치료하는 법인데 죽어 가는 환자들을 보고도 외면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살인행위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의사들을 중심한 한국 누가회와 글로벌케어, 기독 약사회에서는 긴급진료센터를 개설하고 무료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본다고 하니 너무나 감동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는 희망이 있고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각자는 더욱 하나님 앞에 빛과 소금으로 바르게 사십시다. 그 때 우리 가정, 우리 도시, 우리 나라를 하나님이 강하게 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애국하는 방법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어느 정권이 보기 싫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다음에 한국을 향해서 오줌도 안 누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졸장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안 하는 것을 어느 정권 때문에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때로 우리 부모님에게서 실망을 느낄 때도 있을 때라도 우리의 부모님이기에 사랑해야 되는 것처럼, 때로 우리 나라 백성들이나 정치가들이나 너무나 한심한 것같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나라요, 백성이기에 끝까지 사랑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덴마크가 전쟁에 패한 후, 경제가 피폐하여 걸인이 거리에 쓰레기처럼 딩굴고, 여자들이 매춘부가 되어 거리를 헤메일 정도로 도덕이 땅에 떨어질 정도가 되었을 때에 그룬트비히 목사님은 애국운동과 신앙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세 가지 사랑운동을 일으켰습니다. '


①땅을 사랑하자


②국민을 사랑하자


③하나님을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운동이 미약했으나 점점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오늘의 덴마크의 부강(富强)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조국을 사랑하되 세 가지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1)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가장 큰 애국의 길입니다.


딤전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한심해 보이는 위정자들이나 기업가들을 위해서도, 심지어 파업하는 의사들까지도 욕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기 위에 선 나라는 망하는 날이 있을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할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민족을 조속히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 전력해야 합니다.


민족이 빨리 복음화하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임과 동시에 우리 나라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전도하는 것도 애국의 하나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빨리 내 가정, 내 이웃, 내 직장을 복음화시키기 위해서 힘써야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불탔는지 차라리 자기 한 몸 저주를 받더라도 내 민족이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본문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들은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시급한 것은 북한복음화입니다.


이제는 남한 어느 지역에 교회를 세울 곳이 없도록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교역자들도 남아돌아 갑니다. 하나님이 육이오 사변이 일어난 지 50년만에 북한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시는 것은 북한복음화의 큰 뜻이 계신 줄 믿어지는 것입니다. 해방 전에는 남한 교회는 북한 교회의 반도 못될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육이오 사변이 터지면서 북한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월남하여 도시 골목마다, 시골 골자기마다 교회를 세움으로 50년 동안 남한 복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사랑의 빚을 진 남한교회가 빚을 갚는 심정으로 북한복음화에 전력하여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자족들이 만나게 되고 경의선 철도가 연내 착공할 예정이고 끊겼던 전화선도 활발하게 연결될 예정입니다. 또한 남북한의 교향악단이 서로를 방문하여 연주하고 여러 종류의 운동과 예술공연도 상호간에 이루어질 예정이고 기독교 목회자들도 평양의 봉수대교회에서 연합예배를 드릴 예정 등,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북한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정몽헌 현대 아산이사회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에 넘어가 김정일을 만나고 온 다음에 발표하기를 '올해 안에 육로(陸路)로 개성 관광을 실시하기로 했다는 것과 서해안 공단을 그 지역에서 설치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빚더미 위에 않는 현대가 무슨 돈으로 그렇게 자꾸 일을 벌리는지 모르겠다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이 드는 것은 현대도 무엇엔가 붙들린 것같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장삿속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북한과 거래한다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개성 지역에 서해안 공단부지도 1200만평 규모로 공장을 세우는 데만 10조원이 든다고 합니다. 지금 빚더미 있는 현대가 그 자금을 어디서 충당할지 미지수입니다. 만의 하나 현대가 대우처럼 침몰한다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안길 것같아 불안합니다.


여하튼 현대가 돈끼호테식으로 북한의 문을 두드리므로 금강산 가는 길이나 정상회담의 길도 열리고 이번에는 고려 500년 도읍지의 유적과 명승지가 많은 개성 관광이 열리게 된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라는 생각과,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북한을 개방의 장(場)으로 끌어내어 북한을 복음화 시키시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여시면 열리지 않을 문을 없는 것입니다.


(3)조국을 위해서 무엇인가 한 가지씩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은 큰 일을 하는 것만 애국인 줄 압니다. 아닙니다. 건물에도 큰 재목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작은 재목이나 건자재들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안창호 선생은 평양 칠성 문에서 강연하기를 '여러분, 어떤 사람은 대포와 총검으로 나라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문필과 연설로 나라 일을 하지만, 어떤 이는 적은 일로 나라 일을 합니다. 나라 일은 여러 가지 있소. 시장에서 장사하는 이도 나라 일이요, 호미로 김을 매는 자도, 저 솔밭에서 나무하는 자도 나라 일을 하고 있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나름대로 조국을 위해서 크던지 작든지 무엇인가 한가지 이상씩 찾아서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불우한 고학생이나 노인들을 돕는지, 호루라기 불면서 교통정리를 하든지, 앞길을 청소하든지,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돕든 것 등, 찾으면 얼마든지 애국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여름에 휴가를 가서 산이나 강,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나 남이 버린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것도 애국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인들만이라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빛과 소금으로 의롭게 살려고 애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한다면 21세기에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놀라는 날들을 허락하실 줄 믿는 것입니다.


통일환경연구원 원장 되시는 조동진 목사님은 「월간목회」8월호에서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 쓰기를 우리의 땅은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과 메대와 파사 등 강대국에 끼어 있는 이스라엘 가나안 땅과도 같습니다. 우리 민족의 작은 강토는 세계 대륙의 4분지 3이 되는 유로-아시아 대륙의 징검다리와 같아서 해양국가들과 아시아권밖에 대륙국가들을 위한 출입문과 같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이 정신만 차리면 세계 역사 위에 귀중한 보배로 나타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북이 하나만 된다면 우리 민족은 세계의 출입문이라는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서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분명 마지막 때 선교국가로 만드시기 위해서 남북의 문을 활짝 여실 것이요, 북한지역에 복음의 물결이 거세게 흘러들게 하심으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세계선교의 센터로 만드시사, 새로 열린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지방을 향해 힘차게 선교하는 나라로 만드실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합니다.


총신대 선교대학원장되시는 강승삼 교수님은 '한국교회의 선교전망은 밝다'고 말합니다. 그 교수님은 한국교회의 선교사는 1974년에 24명에 불과했으나 2천년도에는 무려 8,208명이나 됨으로 26년 동안 무려 342배나 증가했다고 하면서 매년 53.5%가 증가하고 있음으로 앞으로 10년 후인 2010년도에는 2만 내지 2만 8천명의 선교사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제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 하는 한국교회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어떠한 불황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급성장시켜 주신 것처럼 앞으로 마지막 때 선교중심국가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그러한 위대한 비전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 남북한문제와 세계선교를 위해 열심을 다하는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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