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사의 영성(딤후 3:13-17)
본문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사가 된 디모데에게 권고한 말씀입니다. 교사가 된 디모데에게 영성 훈련의 지침을 준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동사가 세 개 나옵니다. 먼저 ‘배우라’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제대로 지도하려면 먼저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가르치기에 앞서 배우라는 겁니다. 교사라는 이름만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가 먼저 성경에 관해, 주님에 관해, 신앙에 관해 배워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개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사가 영성을 쌓기 위해 성경을 배운다는 것은 필수입니다. 1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결국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줌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를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얘기가 나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같은 날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간 부자가 지옥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아브라함에게 호소를 합니다. 나는 어차피 예수 안 믿고 못 되게 살다가 여기 왔으니 어쩔 수 없으나, 아직 세상에 있는 형제들만큼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당신 품에 있는 나사로를 좀 보내달라고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왔다고 하면 아마 그의 말을 믿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저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자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모세와 선지자로는 안 되고, 죽은 자가 살아가야 합니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 말을 안 믿으면 죽었다가 살아 난 자가 가도 안 된다고 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때만 해도 구약만 있을 때였는데, 구약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성경이 있는데, 성경을 못 믿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 가서 얘기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교사의 소임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교사는 모세와 선지자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을 지도해서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지옥이 아니라 천국 가도록 인도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니 허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소명감과 함께 제대로 교사 역할을 하기 위해 먼저 모세와 선지자를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 선생님들께 제가 늘 우려하고 걱정하는 부분이 그것입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기대는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고 준비해서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학생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것이 결국 학생들로 천국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천국 가이드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공부를 하는 데 태만하면 안 됩니다. 우리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막중한 소임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의 소임에 소홀함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점을 바울은 디모데에게 먼저 충실하게 성경을 공부하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확신하라’고 합니다. 어떻게든 학생들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해야 하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확신이 없는데 어찌 학생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교사들이 먼저 확신을 할 때 그 말씀에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게 학생들에게 전달됩니다. 이것 하나는 믿어 주십시오. 제가 설교할 때 열을 올리는 것은 적어도 제가 선포하는 말씀에 관한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힘이 들어가는 겁니다. 제가 믿지도 못하고 확신이 서지 않는 말씀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전달됩니다. 그래야만 그 말씀을 듣는 학생이 확신에 차게 됩니다. 회의에 차서 전하면 학생도 회의에 차서 고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말씀을 배워야 할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확신 있게 증거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확신 없이 신앙생활하면 얼마나 고단한지 모릅니다. 교사들은 말씀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서 좀 더 힘 있고 당당하게 학생들을 지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배운 학생들이 말씀에 대한 태산 같은 신뢰를 갖고서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세 번째는 ‘거하라’고 합니다. 거하라는 것은 말씀 안에서 살라는 겁니다. 말씀 따로 삶 따로는 아닙니다. 교사들은 말씀을 배우고 신뢰하며 그 말씀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입체적으로 구현해야 합니다. 자기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너희는 이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교사이신 주님은 말씀의 화신이셨습니다. 말씀 가운데 거하신 분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육화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피와 살이 되고,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따로 삶 따로는 분열입니다. 어떻게든 학생들 앞에서 자기가 지도하는 말씀대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했습니다. 말씀을 친히 살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관한 상식을 쌓기 위해 말씀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 퀴즈대회 내 보내려고 말씀을 교육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살게 하려고, 육화시키려고 말씀을 지도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떻게든 내가 가르치는 말씀을 학생들이 실천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말씀과 삶의 괴리를 좁혀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내가 얼마나 가르치는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말씀 따로 삶 따로, 이중인격자, 회칠한 무덤, 이율배반의 삶을 살지는 않은가 살펴야 합니다. 말씀의 생활화를 다시 한 번 다짐 하십시다. 그래서 교사들은 책임이 큽니다. 교사 노릇하기가 힘듭니다. 일반 교사들도 가르침과 삶이 일치해야 합니다만, 사실 사회에서 교육은 그게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급이요 구속력 없는 교회학교 교사들은 반드시 가르치는 내용과 삶이 일치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학생들이 모르는 성경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오산입니다.
전반기는 다 지났습니다. 남은 하반기를 좀 더 뜨거운 소명감과 사명감으로 주어진 생명들을 충실히 지도하십시다. 가장 모범적으로 이끄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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