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우리가 나라를 새롭게 하자
본문
우리 사회는 지난 8월15일을 기점으로 해방된지 60년이라는 많은 세월을 보내고도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역사적 청산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작년에야 비로소 국회에서 창산을 위한 법이 제정되어 통과되었지만, 여러가지 미비한 조항들을 수정 보완하여 개정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은듯 합니다.
그동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정통성 문제로 인하여 이런저런 약점들을 가지고 대통령직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러한 부분이 족쇄가 되어 바른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여론에 끌려다니거나 혹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습니다.
최근 여야의 대표가 되는 분들이 부친들의 친일행각으로 인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여당의 대표는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여당 대표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으로 재직하면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던 많은 애국지사들을 물고문, 거꾸로 매달기 등 악랄한 고문을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여당의 대표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려 하였으나 오히려 인격적 손상만 가중되는 불행을 겪고 말았습니다.
사실 냉정하게 과거를 뒤돌아본다면, 구조적으로 일본 경찰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수립 당시 경찰 행정과 치안 업무를 맡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할 당시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대화된 군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결국 일본군 장교출신들이 중요한 보직에 발탁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경찰서장을 하고, 군대 내의 주요 지휘관을 두루 거치면서 훈장도 타고 공로도 세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생략되었던 국민적 합의가 오늘날 심각한 문제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친일을 했던 사람이 애국자로 둔갑하고 국가 유공자로 버젓이 행세하는 모습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여론인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처럼 건드릴수록 복잡하고 힘든 상황을 안겨다 줄것이 분명합니다. 그냥 두자니 찜찜하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것이 국민적 요청인듯 보입니다. 냉철한 역사 의식을 가지고 과거를 뒤돌아 보면서 반성할 것과 정리해야 할 부분들을 과감히 처결하는 일이야 말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염려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다분히 어떤 정치적 목적 속에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기에 좀 더 순수한 열정으로 되돌아 가기를 촉구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나니까 일부 사람들이 사무엘 에게 와서 하는 말이 "사울이 어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비난하고 모욕을 준 사람들을 찾아내서 죽여버립시다"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왕권의 강력한 리더쉽을 가지게 되자 주변에 아첨하는 무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대답하기를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날이니 살인하지 말라"며 복수를 금지시겼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사울 왕이 얼마나 도량이 넓고 그릇이 큰 사람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해꼬지 하거나 모욕을 준 사람들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가 언제가 기회만 오면 "넌 나한테 죽어"라며 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 16:32)
그러나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울왕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것은 분노하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무슨 내용이냐면, 암몬이라는 이웃의 나라가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의 한 지역 길르앗 야베스 지역을 침략하는 그러한 장면입니다. 당시는 야베스의 지도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군대도 없고, 우리는 아직 싸울만한 상황도 아닌데, 우리를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래서 얼른 사신을 보내서 화해합시다. 화평합시다.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우리가 잘 형제애로 섬기겠습니다. 과거에 한국의 역사를 보면 중국이 우리를 침략했을때, 우리가 항복을 하고 나서, 형제의 예로, 중국은 형의 나라고, 한국은 동생의 나라로 그렇게 중국을 섬겼는데, 한 때는 군신의 관계로, 왕과 신하의 관계로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힘이 없으면 그러한 불평등 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지금 야베스 지도자들은 그런 불평등 조약을 맺어서라도 피해를 줄이고, 살상을 죽이려고 노력했지만, 암몬 지도자가 사사들을 돌려보내면서 하는 말이, 내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 눈을 다 빼버리기 전에는 내가 전쟁을 멈출 수가 없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결국 길르앗 야베스 장로들이 어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지파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근데 그 소식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지도자들이 너무 상심을 해서 통곡을 하고, 눈물로 밤을 지샙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면 놀랍게도 5절에서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지파 대표로 투표가 되어져서 선택이 되어진 왕인데, 그 왕으로 뽑혀지고, 선택되어진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있다고 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왕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 그래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나 어떤 제도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 되어서 왕으로 선택되었지만, 집에서 밭에서 소로 밭을 가는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소린가 하고 물어봤더니 암몬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는데 그들의 오른눈을 다 뽑기 전에는 화친 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우리는 군대도 없고, 힘이 없는데, 어찌하면 좋을꼬 한탄하고 눈물 흘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6절입니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서 분노했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사울의 이 분노는 제목을 붙인다면 ‘거룩한 분노’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때에 분노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느 때에 화를 내십니까 자신이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될 때, 내가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 될 때, 여러분은 분노하지 않습니까
사울은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당신 같은 사람이 왕으로써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모욕을 면전에서 당했지만 개인적인 모욕은 참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 일 때문에 화를 내고, 우리 일 때문에 분노하지만, 이제 여러분의 분노를 바꾸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일이라면 작은 일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조차도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 잘못된 삶의 순서를 가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바뀌어져야 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우리에게 절실한 때이기에 사울의 미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분노할 것을 분노하도록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울 왕은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한 겨리 곡 두 마리의 소를 취하여 각을 냈습니다. 토막을 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파별로 보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쫓지 아니하면 너희의 소들도 이와 같이 되리라"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울에게 이렇게 강력한 리더쉽이 있었는가 사실 지도자는 평상시에는 지도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수록 좋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더 드러날 수록 좋습니다. 누가 찾아와 "목사님 계십니까" 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제게 묻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담임목사님 좀 만나뵈러 왔는데... ’ ‘접니다만..... " 그러면 대개는 위 아래 쳐다보면서 화장실 청소나 하고 있는 사람이 담임목사라니.... 하고 놀라기 일 수 입니다. 하지만 이것이랴말로 진짜 멋있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평상시에는 지도자들일수록 섬기는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줄 믿습니다. 우리 교역자들, 우리 장로님들 명심하세요. 평상시에는 섬김의 자리에 깊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위기가 처하거나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강력한 리더쉽이 나타나야 할줄로 믿습니다.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울은 놀라운 리더쉽이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단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7절 후반을 보니까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백성들에게 생겼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한 지도자, 성령충만한 지도자의 리더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감동시키고, 주장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사울과 사무엘 앞에 모였다고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10지파에서 30만명, 유다 2지파에서 3만명, 도합 33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전쟁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사울과 사무엘의 권면을 듣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사람 모이듯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는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어느 단체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해외여행을 가 보면 30명만 넘어도 일치된 행동을 하기 어려워 돌아올 때는 티격티격 하다가 공항에서는 서로 보지도 않고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한 분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성령, 한 믿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사람 수가 많아도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한 목표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비전 때문입니다. 33만명이 모였지만 한 사람 같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사울의 리더쉽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나서 사울은 작전을 짭니다. 사울이 사람만 좋은 줄 알았더니 지혜도 있었고 전략도 있습니다.
백성을 삼대로 나누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적진 중에 돌격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새벽에 돌격을 했다고 하는 것은 군사 전략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울은 전쟁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본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혜를 갖춘 전략적 지도자라고 할 지라도 전쟁에서의 승패는 칼과 창의 수효가 아니라 곧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두 사람이 모여서 도망간 자가 없을 만큼 암몬은 풍지박산이 났습니다. 대 승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이 흔히 말하기를 산정상을 오르는 것보다 하산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 놓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놓는 시기를 놓쳐서 불행한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사울이 전쟁에서 대승하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왕권이 강력한 리더쉽으로 모여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언젠가 왕으로 선출되던 날, 당신의 면전에서 모욕하던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잡아다가 죽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치는 한풀이를 하는 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불행했던 것은 권력만 잡으면 한풀이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잡아 넣고, 잡아 넣고, 그거 뒤집어서 잡아 넣느라고 절반 보내고, 좀 할 려고 그러면 끝나요.
또 다음 사람 그 동안에 마음 속에 두었던 거 품고 있다가 내가 권력만 잡아봐라. 잡고 나면 또 2- 3년 뒤집어 놓다가 세월 다 보내고, 또 알만하면 임기가 끝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그러한 일을 반복하고, 지금도 반복 중에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 줄 모릅니다. 정치는 한풀이 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장 상식적인 정치에 대한 정의는 제가 보니까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정의가 내려 있더라구요. 우리는 대통령이 뽑고나서 한 시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어요.
언젠가 광주 시민들이 큰 대로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옵소서" 그들에게 그 분은 신적인 존재였어요. 민주사회에서 95% 가 넘는 지지를 받느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대한민국에서 그 동안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분도 그런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국 5년 후에 호남시민들은 그 분을 버렸습니다. 기대했지만 아니었다는 거지요. 최근 또 다른 사람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벌써 민심은 떠나고 있는듯 들리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우리 백성들은 정치인들에게 늘 속고 살다가 세월을 다 보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진정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지도자 주변에 사람들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힘을 가지거나 권력을 가지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모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의 지도자가 중요한줄로 믿습니다.
당신을 모욕한, 당신에게 어려움을 주었던, 당신을 돕지 않았던 그 사람들 솎아내서 , 소위 살생부를 만들어서 정리해 버리세요. 그래서 후원금 내지 않은 기업은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망하게 만들고, 자기를 돕지 않던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듭니다. 임기제가 중요하다고 외치던 사람도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임기 끝나기 전에 자기 사람으로 다 갈아버려요.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이 시간에 사울이었다면, 당신을 모욕한 사람을 죽이자고 했던 그 주변에 사람들의 제안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래, 이 때가 그 때다. 한 번 더 맛 좀 봐라. 한풀이를 하겠느냐 사울은 놀라운 지도자였습니다. 13절입니다. 사울이 가로되 이날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이 날은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어떠한 일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승리 후에 절제된 지도자의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때 상대방 진영에서 자신을 가장 비방을 한 사람을 당선후 국방장관에 기용하는 너그러움에 국민들은 열광했다고 합니다. 수염이 많은 모습을 빗대가지고 원숭이 같이 생긴 인간이라고 까지 모욕했으나 링컨은 그것까지 용서하고 덮어 준 것입니다. 무릇 지도자는 그릇이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 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릇이 큰 지도자,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이 무얼까 모욕을 당하고, 아픔을 당했다고, 원수를 갚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주님은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러한 아름답고 은혜로운 분위기를 보면서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14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지금까지 나라는 원수 갚는 나라, 한풀이 하는 나라, 지금까지 나라는 내게 잘못만 했으면, 내게 손해만 끼쳤으면 끝까지 가서 해꼬지 하는 나라,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나라는 그러한 나라, 그러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이 주장하시는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크게 기뻐하니라. ’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여호와 앞에서.....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제단을 쌓을 줄 아는 지도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지도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음을 감사할 줄 아는 지도자일 때 진정한 지도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끌어가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요 평안이 넘치는 나라인줄로 믿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 경제 지도자, 사회 지도자,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까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다시 한 번 귀하게 쓰임 받는 이 나라 이 민족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동안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정통성 문제로 인하여 이런저런 약점들을 가지고 대통령직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러한 부분이 족쇄가 되어 바른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여론에 끌려다니거나 혹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습니다.
최근 여야의 대표가 되는 분들이 부친들의 친일행각으로 인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여당의 대표는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여당 대표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으로 재직하면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던 많은 애국지사들을 물고문, 거꾸로 매달기 등 악랄한 고문을 자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여당의 대표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려 하였으나 오히려 인격적 손상만 가중되는 불행을 겪고 말았습니다.
사실 냉정하게 과거를 뒤돌아본다면, 구조적으로 일본 경찰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수립 당시 경찰 행정과 치안 업무를 맡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할 당시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대화된 군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결국 일본군 장교출신들이 중요한 보직에 발탁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경찰서장을 하고, 군대 내의 주요 지휘관을 두루 거치면서 훈장도 타고 공로도 세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생략되었던 국민적 합의가 오늘날 심각한 문제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친일을 했던 사람이 애국자로 둔갑하고 국가 유공자로 버젓이 행세하는 모습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최근의 여론인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처럼 건드릴수록 복잡하고 힘든 상황을 안겨다 줄것이 분명합니다. 그냥 두자니 찜찜하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것이 국민적 요청인듯 보입니다. 냉철한 역사 의식을 가지고 과거를 뒤돌아 보면서 반성할 것과 정리해야 할 부분들을 과감히 처결하는 일이야 말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염려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다분히 어떤 정치적 목적 속에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기에 좀 더 순수한 열정으로 되돌아 가기를 촉구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나니까 일부 사람들이 사무엘 에게 와서 하는 말이 "사울이 어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비난하고 모욕을 준 사람들을 찾아내서 죽여버립시다"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왕권의 강력한 리더쉽을 가지게 되자 주변에 아첨하는 무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대답하기를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날이니 살인하지 말라"며 복수를 금지시겼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사울 왕이 얼마나 도량이 넓고 그릇이 큰 사람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해꼬지 하거나 모욕을 준 사람들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가 언제가 기회만 오면 "넌 나한테 죽어"라며 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잠 16:32)
그러나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울왕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것은 분노하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무슨 내용이냐면, 암몬이라는 이웃의 나라가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의 한 지역 길르앗 야베스 지역을 침략하는 그러한 장면입니다. 당시는 야베스의 지도자들이 그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군대도 없고, 우리는 아직 싸울만한 상황도 아닌데, 우리를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래서 얼른 사신을 보내서 화해합시다. 화평합시다.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우리가 잘 형제애로 섬기겠습니다. 과거에 한국의 역사를 보면 중국이 우리를 침략했을때, 우리가 항복을 하고 나서, 형제의 예로, 중국은 형의 나라고, 한국은 동생의 나라로 그렇게 중국을 섬겼는데, 한 때는 군신의 관계로, 왕과 신하의 관계로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힘이 없으면 그러한 불평등 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지금 야베스 지도자들은 그런 불평등 조약을 맺어서라도 피해를 줄이고, 살상을 죽이려고 노력했지만, 암몬 지도자가 사사들을 돌려보내면서 하는 말이, 내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 눈을 다 빼버리기 전에는 내가 전쟁을 멈출 수가 없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결국 길르앗 야베스 장로들이 어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지파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근데 그 소식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지도자들이 너무 상심을 해서 통곡을 하고, 눈물로 밤을 지샙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면 놀랍게도 5절에서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백성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지파 대표로 투표가 되어져서 선택이 되어진 왕인데, 그 왕으로 뽑혀지고, 선택되어진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있다고 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왕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 그래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나 어떤 제도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 되어서 왕으로 선택되었지만, 집에서 밭에서 소로 밭을 가는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소린가 하고 물어봤더니 암몬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는데 그들의 오른눈을 다 뽑기 전에는 화친 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우리는 군대도 없고, 힘이 없는데, 어찌하면 좋을꼬 한탄하고 눈물 흘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6절입니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듣고서 분노했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사울의 이 분노는 제목을 붙인다면 ‘거룩한 분노’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때에 분노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느 때에 화를 내십니까 자신이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될 때, 내가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 될 때, 여러분은 분노하지 않습니까
사울은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당신 같은 사람이 왕으로써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모욕을 면전에서 당했지만 개인적인 모욕은 참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 일 때문에 화를 내고, 우리 일 때문에 분노하지만, 이제 여러분의 분노를 바꾸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일이라면 작은 일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조차도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 잘못된 삶의 순서를 가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바뀌어져야 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우리에게 절실한 때이기에 사울의 미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분노할 것을 분노하도록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울 왕은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한 겨리 곡 두 마리의 소를 취하여 각을 냈습니다. 토막을 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파별로 보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쫓지 아니하면 너희의 소들도 이와 같이 되리라"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울에게 이렇게 강력한 리더쉽이 있었는가 사실 지도자는 평상시에는 지도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수록 좋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더 드러날 수록 좋습니다. 누가 찾아와 "목사님 계십니까" 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제게 묻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담임목사님 좀 만나뵈러 왔는데... ’ ‘접니다만..... " 그러면 대개는 위 아래 쳐다보면서 화장실 청소나 하고 있는 사람이 담임목사라니.... 하고 놀라기 일 수 입니다. 하지만 이것이랴말로 진짜 멋있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평상시에는 지도자들일수록 섬기는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줄 믿습니다. 우리 교역자들, 우리 장로님들 명심하세요. 평상시에는 섬김의 자리에 깊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위기가 처하거나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강력한 리더쉽이 나타나야 할줄로 믿습니다.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울은 놀라운 리더쉽이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단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7절 후반을 보니까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백성들에게 생겼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한 지도자, 성령충만한 지도자의 리더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감동시키고, 주장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사울과 사무엘 앞에 모였다고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10지파에서 30만명, 유다 2지파에서 3만명, 도합 33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전쟁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사울과 사무엘의 권면을 듣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사람 모이듯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는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어느 단체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해외여행을 가 보면 30명만 넘어도 일치된 행동을 하기 어려워 돌아올 때는 티격티격 하다가 공항에서는 서로 보지도 않고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한 분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성령, 한 믿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사람 수가 많아도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한 목표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비전 때문입니다. 33만명이 모였지만 한 사람 같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사울의 리더쉽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나서 사울은 작전을 짭니다. 사울이 사람만 좋은 줄 알았더니 지혜도 있었고 전략도 있습니다.
백성을 삼대로 나누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적진 중에 돌격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새벽에 돌격을 했다고 하는 것은 군사 전략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울은 전쟁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본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혜를 갖춘 전략적 지도자라고 할 지라도 전쟁에서의 승패는 칼과 창의 수효가 아니라 곧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두 사람이 모여서 도망간 자가 없을 만큼 암몬은 풍지박산이 났습니다. 대 승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이 흔히 말하기를 산정상을 오르는 것보다 하산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 놓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놓는 시기를 놓쳐서 불행한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사울이 전쟁에서 대승하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왕권이 강력한 리더쉽으로 모여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언젠가 왕으로 선출되던 날, 당신의 면전에서 모욕하던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잡아다가 죽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치는 한풀이를 하는 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불행했던 것은 권력만 잡으면 한풀이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잡아 넣고, 잡아 넣고, 그거 뒤집어서 잡아 넣느라고 절반 보내고, 좀 할 려고 그러면 끝나요.
또 다음 사람 그 동안에 마음 속에 두었던 거 품고 있다가 내가 권력만 잡아봐라. 잡고 나면 또 2- 3년 뒤집어 놓다가 세월 다 보내고, 또 알만하면 임기가 끝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그러한 일을 반복하고, 지금도 반복 중에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 줄 모릅니다. 정치는 한풀이 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장 상식적인 정치에 대한 정의는 제가 보니까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정의가 내려 있더라구요. 우리는 대통령이 뽑고나서 한 시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어요.
언젠가 광주 시민들이 큰 대로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옵소서" 그들에게 그 분은 신적인 존재였어요. 민주사회에서 95% 가 넘는 지지를 받느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대한민국에서 그 동안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분도 그런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국 5년 후에 호남시민들은 그 분을 버렸습니다. 기대했지만 아니었다는 거지요. 최근 또 다른 사람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지만 벌써 민심은 떠나고 있는듯 들리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우리 백성들은 정치인들에게 늘 속고 살다가 세월을 다 보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진정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지도자 주변에 사람들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힘을 가지거나 권력을 가지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모이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의 지도자가 중요한줄로 믿습니다.
당신을 모욕한, 당신에게 어려움을 주었던, 당신을 돕지 않았던 그 사람들 솎아내서 , 소위 살생부를 만들어서 정리해 버리세요. 그래서 후원금 내지 않은 기업은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망하게 만들고, 자기를 돕지 않던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듭니다. 임기제가 중요하다고 외치던 사람도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임기 끝나기 전에 자기 사람으로 다 갈아버려요.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이 시간에 사울이었다면, 당신을 모욕한 사람을 죽이자고 했던 그 주변에 사람들의 제안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래, 이 때가 그 때다. 한 번 더 맛 좀 봐라. 한풀이를 하겠느냐 사울은 놀라운 지도자였습니다. 13절입니다. 사울이 가로되 이날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이 날은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어떠한 일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사울의 모습입니다. 승리 후에 절제된 지도자의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때 상대방 진영에서 자신을 가장 비방을 한 사람을 당선후 국방장관에 기용하는 너그러움에 국민들은 열광했다고 합니다. 수염이 많은 모습을 빗대가지고 원숭이 같이 생긴 인간이라고 까지 모욕했으나 링컨은 그것까지 용서하고 덮어 준 것입니다. 무릇 지도자는 그릇이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 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릇이 큰 지도자,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이 무얼까 모욕을 당하고, 아픔을 당했다고, 원수를 갚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주님은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러한 아름답고 은혜로운 분위기를 보면서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14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지금까지 나라는 원수 갚는 나라, 한풀이 하는 나라, 지금까지 나라는 내게 잘못만 했으면, 내게 손해만 끼쳤으면 끝까지 가서 해꼬지 하는 나라,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나라는 그러한 나라, 그러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이 주장하시는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크게 기뻐하니라. ’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여호와 앞에서.....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제단을 쌓을 줄 아는 지도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지도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음을 감사할 줄 아는 지도자일 때 진정한 지도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끌어가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요 평안이 넘치는 나라인줄로 믿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 경제 지도자, 사회 지도자,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까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다시 한 번 귀하게 쓰임 받는 이 나라 이 민족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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