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 나라가 사는 길
본문
요즘 우리는 한 나라의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한 지도자의 자리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자리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합집산과 이전투구로 대변되는 구태의연한 이 나라의 정치인들로 인하여 실망하고 또 낙심하면서도 여전히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기대하고 또 기대를 해봅니다. 여러분, 이 나라 이 민족에 하늘의 광명이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는 즉위식 이야기입니다. 아비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된 사울은, 이제 백성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선지자 사무엘, 왕으로 뽑히는 사울,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따라야할 백성들이 제 위치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이 민족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이 교훈을 따라야 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1. 사무엘(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교회와 종들)
사무엘은 제사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으며, 예언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또는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여러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움으로 신정과 왕정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왕정이 시작되면서 사무엘의 역할은 이제 본격적으로 예언자 또는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예언자 또는 선지자란 온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지상의 왕을 견제하고, 그 왕과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언자들은 두 가지 중요한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우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대변자로 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자는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재자, 혹은 중보기도자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지속적인 위협에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권고에 따라 미스바에 모여 참회의 예배를 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되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침략을 감행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국가적인 위기에 처하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을 위해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셨고, 블레셋의 공격을 무력화시켜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노년에 이르렀을 때, 최고의 지도자 자리를 왕에게 내어주고 은퇴하면서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날,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손가락질 하기는 쉽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이 시대는 문제가 있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 소리가 멈추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기도보다 운동과 취미 생활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의 즐거움과 안일함에 빠져 기도를 쉬고 있을 때, 나라의 운명은 점점 나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위기는 기도의 위기에서부터 왔습니다. 기도가 실종되면서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늘 사닥다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삽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이런 사명을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라와 민족,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언자의 두 번째 사명은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변자로 서는 것입니다. 즉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을 알리는 메신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한 상황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예언자들을 찾아가 물었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함으로 승리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예언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순종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 시대에도 백성들이 사무엘이 선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나라들처럼 신적인 왕이 아니라 인간적인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빗나간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일이라고 하실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대신에 인간적인 왕권 제도가 가져올 폐해들을 소상히 알려 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에게 왕권 제도의 폐해를 하나하나 소상하게 지적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또 들을 마음도 없습니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8:19-20)"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17-19절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여호와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앞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는 배신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왕을 세우기는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았고 이제는 백성들의 공인절차만 남은 상태에서 한 이 말은 대세를 거스르는 말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입니다.
예언자는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청중들이 들어야 할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할 말씀이기에 전해야 합니다. 예언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예언자의 사명은 청중이 들을 수 있는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해야 합니다. 듣고 회개하고 돌아오든지, 그렇지 않고 거부하든지,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예언자의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예언자는 청중의 반응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올바로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향해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세상을 향해 할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우리들의 완악함과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귀만 즐겁게 하는 목회자들의 안일함 때문입니다. 인간의 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예언자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인간이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듣기 원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할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여호와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갈1-7-10)"고 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말씀 앞에서 정직하지 못했음을 회개하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부담스러운 말씀을 거부하고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설교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들의 영적 어두움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이든지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여 그 뜻에 순종하고 삶아감으로 이 시대를 거룩하게 만드는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2. 사울(통치권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겸손해야 할 국가의 지도자들)
사울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직에 임명될 때에는 네 가지 특별한 과정을 거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선지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으며, 그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권능의 이적을 베풉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라는 것을 백성들 앞에서 명확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제비를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제비뽑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제비뽑기는 우연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 후에, 왕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왕을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시킵니다. 각 지파별로 1,000명씩 뽑혀온 사람들이 제비를 뽑은 결과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의 각 가족대로 나오게 하여 뽑으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힘을 받은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사무엘은 이미 사울을 왕으로 정해놓고 기름을 부어 성별시켜 두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12지파의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 어떻게 정확하게 사울이 뽑힘을 받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계획과 생각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그 일을 성사시키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생각과 뜻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합한 것이 되기를 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비뽑기를 통해서 사울이 선택되었다고 할 때, 우리가 더욱 중점적으로 생각해야할 주제는 사울의 왕권이 절대로 사울 개인의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기름 부음을 받을 때까지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징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비뽑기를 통해서 사울이 선택됨으로써 사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오묘하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숨었습니다.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그 일을 진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앞에 사울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짐짝 사이에 숨어버렸던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권력자들이 넘어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모를 때, 사람들은 넘어지게 됩니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면 여지없이 개혁을 전제로 사정을 시작합니다. 물론 보복성의 사정도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이 있을 때, 권력이 있을 때, 그 힘과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하고 축재를 하였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 힘과 권력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잊어버리고, 또한 그것이 영원한 것인 줄 착각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그 최후는 비참하며 그 말로는 허무합니다.
진정한 힘이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위탁되는 것입니다. 원래 힘은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그 힘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란 일정한 시간에 절대 힘의 소유자로부터 빌려 오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통치권이라는 것도 국민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통치권은 국민의 것이고, 국민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가진 힘으로 힘의 근원인 국민을 탄압하고 억압한다면 반드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고, 그 후에 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 한결같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은 바로 힘을 소유하는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힘이 절대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언젠가는 그 힘의 주인에게 되돌려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그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힘의 근본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모든 나라와 족속, 세계 열방의 통치권과 그 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것을 바르게 깨닫는 민족과 지도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잊어버리고 경거망동하게 된다면 그 자리는 절대로 축복의 자리가 아니라 저주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사실을 왕으로 뽑히는 사울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제비뽑기라고 하는 기적적인 과정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 또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내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이나 지혜, 가정과 사업, 그리고 자녀들…. 심지어는 내가 누리는 모든 이 환경들도 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자세를 철저하게 견지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힘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힘이 있을 때, 권력이 있을 때, 그 힘과 권력의 중심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엎드릴 때, 그 나라가 왕성하며 영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백성들(여호와 하나님의 세우신 권세 앞에 복종해야 하는 국민)
여호와 하나님과 사무엘은 이미 사무엘을 왕으로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사람들을 모으고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왕이라고 선언만 해도 무리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제비뽑기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 불평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사울을 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하신 일에 모두가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26절과 27절에 보면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동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지만 어떤 비류들은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고 공적인 절차를 밟아서 왕으로 확인되었지만 백성들 사이에 그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사람들은 사울을 따르지만, 불량배들은 그를 멸시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잘못이 없어도 비난을 당하고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일이라면 비난과 멸시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지도자를 따르는 백성의 입장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고 임명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었지만,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왕이 된 사울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더욱이 왕의 제도에 대해서 사무엘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왕을 구한 것은 그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선택한 왕에 대해서 순종할 의무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시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비록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금세기 우리 나라엔 여러 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한분 한분을 돌이켜보면 흐믓한 일보다는 가슴 아픈 기억들이 더 많이 기억납니다.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뻔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경은 그들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베드로전서 2장 13절과 14절에도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받들어 섬기려면 교회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의 여호와 하나님도 되시며,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이 되시는 것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의 주인도 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어떤 사람도 권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어떤 통치자이든지 그를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나라의 통치자를 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동안 저 자신이 이 나라 대한 민국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였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국가 지도자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정죄하기 전에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세우고 나가는 정책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그들이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서 법을 만들고 법을 시행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세상 구석구석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원리에 따라 바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세상의 권력자들이 도전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좋은 지도자들이 나오도록 각 교회에서 훈련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말하기 전에 그 정치 구조를 바꿀만한 가치관과 사상을 가진 그리스도인 정치가를 배출해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밖의 모든 세상의 영역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의 영이 흐르도록 우리 성도들이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사울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비류들 속에 거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 지도자를 따르는 모습으로 바뀌어져 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 떨어뜨리는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잘 바쳐주고 붙들어주는 좋은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총체적인 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언제 위기가 아닌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나라는 위기 속에서 성장해온 저력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 힘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다스려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르게 섬겨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단을 다시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과 권력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과 국민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 앞에 겸손히 복종하면서, 성실히 백성 된 의무를 잘 감당하여서 이 민족이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여! 이 나라가 주의 것 되게 하옵소서. 아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로 대변되는 구태의연한 이 나라의 정치인들로 인하여 실망하고 또 낙심하면서도 여전히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기대하고 또 기대를 해봅니다. 여러분, 이 나라 이 민족에 하늘의 광명이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는 즉위식 이야기입니다. 아비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된 사울은, 이제 백성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선지자 사무엘, 왕으로 뽑히는 사울,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따라야할 백성들이 제 위치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이 민족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이 교훈을 따라야 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1. 사무엘(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교회와 종들)
사무엘은 제사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으며, 예언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또는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여러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움으로 신정과 왕정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왕정이 시작되면서 사무엘의 역할은 이제 본격적으로 예언자 또는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예언자 또는 선지자란 온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지상의 왕을 견제하고, 그 왕과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언자들은 두 가지 중요한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우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대변자로 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자는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재자, 혹은 중보기도자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지속적인 위협에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권고에 따라 미스바에 모여 참회의 예배를 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되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침략을 감행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국가적인 위기에 처하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을 위해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셨고, 블레셋의 공격을 무력화시켜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노년에 이르렀을 때, 최고의 지도자 자리를 왕에게 내어주고 은퇴하면서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날,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손가락질 하기는 쉽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이 시대는 문제가 있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않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 소리가 멈추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기도보다 운동과 취미 생활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의 즐거움과 안일함에 빠져 기도를 쉬고 있을 때, 나라의 운명은 점점 나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위기는 기도의 위기에서부터 왔습니다. 기도가 실종되면서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늘 사닥다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삽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이런 사명을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라와 민족,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언자의 두 번째 사명은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대변자로 서는 것입니다. 즉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을 알리는 메신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한 상황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예언자들을 찾아가 물었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함으로 승리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예언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순종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 시대에도 백성들이 사무엘이 선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방 나라들처럼 신적인 왕이 아니라 인간적인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빗나간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일이라고 하실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대신에 인간적인 왕권 제도가 가져올 폐해들을 소상히 알려 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에게 왕권 제도의 폐해를 하나하나 소상하게 지적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또 들을 마음도 없습니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8:19-20)"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17-19절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여호와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앞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는 배신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왕을 세우기는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았고 이제는 백성들의 공인절차만 남은 상태에서 한 이 말은 대세를 거스르는 말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입니다.
예언자는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청중들이 들어야 할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할 말씀이기에 전해야 합니다. 예언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예언자의 사명은 청중이 들을 수 있는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해야 합니다. 듣고 회개하고 돌아오든지, 그렇지 않고 거부하든지,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예언자의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예언자는 청중의 반응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올바로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향해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세상을 향해 할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우리들의 완악함과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귀만 즐겁게 하는 목회자들의 안일함 때문입니다. 인간의 말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예언자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인간이 말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듣기 원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할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여호와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갈1-7-10)"고 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말씀 앞에서 정직하지 못했음을 회개하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부담스러운 말씀을 거부하고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설교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들의 영적 어두움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이든지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여 그 뜻에 순종하고 삶아감으로 이 시대를 거룩하게 만드는 예언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2. 사울(통치권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겸손해야 할 국가의 지도자들)
사울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직에 임명될 때에는 네 가지 특별한 과정을 거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선지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으며, 그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권능의 이적을 베풉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라는 것을 백성들 앞에서 명확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제비를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제비뽑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제비뽑기는 우연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 후에, 왕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왕을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시킵니다. 각 지파별로 1,000명씩 뽑혀온 사람들이 제비를 뽑은 결과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의 각 가족대로 나오게 하여 뽑으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힘을 받은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사무엘은 이미 사울을 왕으로 정해놓고 기름을 부어 성별시켜 두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12지파의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 어떻게 정확하게 사울이 뽑힘을 받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계획과 생각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그 일을 성사시키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생각과 뜻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합한 것이 되기를 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비뽑기를 통해서 사울이 선택되었다고 할 때, 우리가 더욱 중점적으로 생각해야할 주제는 사울의 왕권이 절대로 사울 개인의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기름 부음을 받을 때까지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징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비뽑기를 통해서 사울이 선택됨으로써 사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오묘하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숨었습니다.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그 일을 진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앞에 사울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짐짝 사이에 숨어버렸던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권력자들이 넘어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모를 때, 사람들은 넘어지게 됩니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면 여지없이 개혁을 전제로 사정을 시작합니다. 물론 보복성의 사정도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이 있을 때, 권력이 있을 때, 그 힘과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하고 축재를 하였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그 힘과 권력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잊어버리고, 또한 그것이 영원한 것인 줄 착각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그 최후는 비참하며 그 말로는 허무합니다.
진정한 힘이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위탁되는 것입니다. 원래 힘은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그 힘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란 일정한 시간에 절대 힘의 소유자로부터 빌려 오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통치권이라는 것도 국민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통치권은 국민의 것이고, 국민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가진 힘으로 힘의 근원인 국민을 탄압하고 억압한다면 반드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고, 그 후에 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 한결같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은 바로 힘을 소유하는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힘이 절대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언젠가는 그 힘의 주인에게 되돌려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그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힘의 근본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모든 나라와 족속, 세계 열방의 통치권과 그 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것을 바르게 깨닫는 민족과 지도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잊어버리고 경거망동하게 된다면 그 자리는 절대로 축복의 자리가 아니라 저주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사실을 왕으로 뽑히는 사울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제비뽑기라고 하는 기적적인 과정을 통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 또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내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이나 지혜, 가정과 사업, 그리고 자녀들…. 심지어는 내가 누리는 모든 이 환경들도 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자세를 철저하게 견지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힘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힘이 있을 때, 권력이 있을 때, 그 힘과 권력의 중심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엎드릴 때, 그 나라가 왕성하며 영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백성들(여호와 하나님의 세우신 권세 앞에 복종해야 하는 국민)
여호와 하나님과 사무엘은 이미 사무엘을 왕으로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사람들을 모으고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왕이라고 선언만 해도 무리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제비뽑기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 불평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사울을 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하신 일에 모두가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26절과 27절에 보면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 감동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지만 어떤 비류들은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고 공적인 절차를 밟아서 왕으로 확인되었지만 백성들 사이에 그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사람들은 사울을 따르지만, 불량배들은 그를 멸시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잘못이 없어도 비난을 당하고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일이라면 비난과 멸시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지도자를 따르는 백성의 입장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고 임명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었지만,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왕이 된 사울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더욱이 왕의 제도에 대해서 사무엘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왕을 구한 것은 그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선택한 왕에 대해서 순종할 의무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시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비록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금세기 우리 나라엔 여러 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한분 한분을 돌이켜보면 흐믓한 일보다는 가슴 아픈 기억들이 더 많이 기억납니다.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뻔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경은 그들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베드로전서 2장 13절과 14절에도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받들어 섬기려면 교회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의 여호와 하나님도 되시며,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이 되시는 것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의 주인도 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어떤 사람도 권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어떤 통치자이든지 그를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나라의 통치자를 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동안 저 자신이 이 나라 대한 민국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였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국가 지도자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정죄하기 전에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세우고 나가는 정책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그들이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서 법을 만들고 법을 시행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세상 구석구석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원리에 따라 바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세상의 권력자들이 도전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좋은 지도자들이 나오도록 각 교회에서 훈련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말하기 전에 그 정치 구조를 바꿀만한 가치관과 사상을 가진 그리스도인 정치가를 배출해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밖의 모든 세상의 영역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의 영이 흐르도록 우리 성도들이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사울을 멸시하고 비난하는 비류들 속에 거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 지도자를 따르는 모습으로 바뀌어져 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 떨어뜨리는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잘 바쳐주고 붙들어주는 좋은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총체적인 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언제 위기가 아닌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나라는 위기 속에서 성장해온 저력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그 힘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다스려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르게 섬겨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단을 다시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과 권력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겸손히 여호와 하나님과 국민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 앞에 겸손히 복종하면서, 성실히 백성 된 의무를 잘 감당하여서 이 민족이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여! 이 나라가 주의 것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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