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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종노릇하라!

본문

오늘 '남편초청주일'은 사실 '부부가 함께 예배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얼마 전 신문에서 "부부사랑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부부지간의 "하나 됨"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것을 "자기 권리를 상대방의 주권에 복종시키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 방식은 부부지간에는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내가 바로 당신의 주인이요. "라고 하는 말을 할 권한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보면 행복한 가정, 성공적인 가정의 시작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에서 시작한 부부만이 "섬김의 사랑", "상호복종의 사랑"을 완성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복종"이라는 단어는 "노예"가 주인에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듯 성경은 전반적으로 "크리스천들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그 '사랑'을 "종"의 개념으로 구체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사망에서 율법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자유를 상대방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결단한 것이 사랑입니다.
자유인으로서의 권리가 기꺼이 포기가 되고,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복종"은 '종의 복종' 이지만, 상명하달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억지복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말을 하고, "사랑의 섬김"이라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자발적 복종이고, 자진하여 이루어지는 자기 포기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바로 이 '사랑으로 말미암은 자기포기'가 일어날 때, 그 교회가 살고, 그 가정이 살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본문은 부부지간에 이 "사랑으로 인한 자기포기"가 일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의 신문기사에서도, 현대사회의 이혼 사유 1위가 "성격차이"라고 전제하고, 사실상 이 성격차이는 '서로의 다른 면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성경적 기준으로 볼 때 부부간 성격차이문제는 아직도 '진정한 자기포기' 즉 '나는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는 자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구조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시길 바랍니다.
무턱대고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하는 것은 본문을 오해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서 '지혜 없는 자'되지 말고 '어리석은 자'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시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는 말씀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과 피차복종이라는 대전제가 "주의 뜻"이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나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서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때 사회상으로 보면, 남편에서 대한 아내의 복종은 너무나 당연시 여기던 일이었기에 '복종하라'는 강한 표현조차도 전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오히려 남편에게도 '피차 복종'이라는 말로 아내사랑, 아내에게 복종하라는 뉘앙스가 전달되고 있는 것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아내의 남편에게의 복종'은 뜻밖의 남편의 사랑과 섬김을 앞에 두고, 마치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발적이고도 진실 된 사랑을 하는 것과 같은 차원의 자발적 복종의 의미로 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사실은 남편이 자기에게 자발적 복종을 하는 아내를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남편들 쪽이 더 손해 보는 장사를 한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의 문화풍토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사회나 고대 그리스 사회는 여성을 심하게 비하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아내들에게 요구하는 복종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라, 자신을 내어 주어라, 제 몸같이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가히 충격이었다는 예기입니다.
여기 전혀 들어 본적이 없는 남편의 아내사랑의 방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사랑하시고 자기를 주신 것 같이 그렇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자기 생명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어준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과 욕망을 포기한 사랑 이었습니다.
5장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예수님이 하신 사랑을 아내의 복종에 대하여 남편이 주어야 한다면 남편은 결코 아내를 자기 소유물이나 육체적 쾌락의 대상으로 알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자기희생과 섬김과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몸을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아낍니다.
피곤한 것도 알고, 쉬고 싶은 것도 알고, 괴로운 것도 알고,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자기 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남편은 머리이고 아내는 그 머리의 몸이다'
몸이 느끼는 것은 고스란히 머리로 전달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을 우리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고스란히 느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몸을 살리시며 친히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은 남편 쪽에서 사랑하고, 보살피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어야 할 자기 몸이 곧 자기 아내라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성경은 누가 누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누가 누구에게 복종하라고 하는 서열 확립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주도적 개념은 지배가 아니고 섬김이며 다스림이 아니고 돌봄 입니다.
사실상 현대가정의 현실은 섬김과 돌봄은 사라지고 자기권리 찾기만 점점 팽배하여 가는 느낌입니다.
남편의 자기권리 찾기, 아내의 자기권리 찾기, 자녀의 자기권리 찾기.
이것이 강하여지다보니 가족들은 자기 몫 챙기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는 가장으로 합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사는가'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우리 부모에게서 그런 희생과 뒷바라지를 받고 사는가'
이것이 채워지질 않는다고 여기면서 가정이 힘겨루기, 권력투쟁의 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 섬기고 돌보라고 세우신 가족들이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라고 나서기 시작할 때 가정이 비신앙적인 방향으로 변질되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조상이나 우리나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여성은 피해자요, 억압당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정회복은 '여성의 자기 권리 찾기'라는 투쟁방식으로 접근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오히려 사랑과 섬김과 돌봄으로 가정, 특히 '부부관계'가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본문에서 '아내들에게 남편들에 복종하라'는 말은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하길 예수님께서 교회 사랑하듯 하라'는 말 보다는 훨씬 부담이 덜합니다.
남편이 보여야 할 아내 사랑은 아내를 위하여 죽으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모래시계에서 이정재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듯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예기 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도 이 '죽음은 복종의 극치'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 놓았는데 이처럼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는 사랑으로 주님께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부부같이 하나 됨'을 어떻게 풀어 설명하는가 하면 '자기가 갖고 있는 권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갖고 있는 권리를 상대방의 주권에 복속시키는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서로 종노릇 잘하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비결 이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고, 남편의 주인은 아내입니다. 그리고 부부의 주인은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할 것은 부부지간에 '내가 당신 주인이니 까불지 마시오'하고 살면 시끄러워 질 것이고 '내가 당신의 종이니 당신에게 복종하지요 당신에게 제 생명을 드리지요'하고 살면 축복된 가정의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교회 일군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주인 노릇 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직분자 세우는 일이 교회시험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 주셨듯이 우리가 직분 받을 때 '종노릇 잘하겠습니다'하고 실제 종노릇할 때 교회가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종노릇 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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