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부부생활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사이가 좋지 않던 이 집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남편 혼자 저녁 예배를 갔다 오더니 그 날 밤 늦도록 아내를 열렬히 사랑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기분이 흡족해진 부인은 대견한 눈초리로 남편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당신 오늘 웬일이유" "...... !" 다음 날 아침에 어젯밤 일이 필시 목사님의 설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한 아내는 비싼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고마워요. 그리고 어제 저녁 설교 참 좋았다죠 '아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설교였는가요" 그러자 목사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아닌데요. '원수를 사랑하라' 는 설교였는데요. " 요즘 가정의 부부생활의 실태의 반영으로 나온 이야기 같습니다.
인생이 행복하려면 가정생활이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행복하려면 부부생활이 행복해야 합니다. 자녀교육을 잘하고 싶어도 부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면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라'는 가정상담에서 나오는 말이 있듯이 부부관계가 좋아야 자녀가 인성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지적으로 결단력과 집중력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도 부부가 불화하면 그것을 보는 부모는 마음이 편안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시부모나 처부모를 잘 공경할 수 없습니다. 시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남편 때문이고 처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아내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부부관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3:1-7에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렇게 해야 혹 믿지 않는 남편도 아내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고,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렇게 해야 기도가 막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디도서2:5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말씀에 훼방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부부생활이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부부가 불화하게 되면 믿지 않는 배우자는 믿는 배우자를 핍박하게 되고 신앙생활을 공격합니다. 믿는 배우자는 기도가 막히고 말씀생활이 어려워집니다. 인생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부부관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本論
1. 아내는 남편을 존중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24절에는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3:18에도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3:1-6에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이 다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복종하고 순복하라는 것은 종족의 개념으로 한 말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마음으로 우러나온 존중과 순종의 개념으로 한 말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존중이며 행동 자세는 순종입니다. 그래서 부부윤리에서 아내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남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아내들이 많습니다. 쇼핑을 나갔던 부부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집 앞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덤프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고, 두 부부와 운전기사는 동시에 깜짝 놀랐는데… 트럭 운전사가 창문을 열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머저리 병신, 얼간이, 쪼다야! 똑바로 서지 못해!"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저 사람, 당신을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은데요! 드라이브를 즐기던 부부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서로 말도 않고 썰렁하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얼쩡거리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빈정대며 말했습니다. "당신 친척이잖아, 반가울텐데 인사나 하시지. "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가 그 개에게 소리쳤다. "안녕하셨어요! 시아버님~!" 남편을 범사에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기 바랍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이 남편을 가정의 리더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1:3, 8-10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의 질서를 세울 때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두셨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위해 남자를 지은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여자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권세 아래 있는 표로 머리를 길게 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체 조건과 심리적 기질과 영적 특성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남자를 도와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조건과 기질과 특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을 세운 것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을 세운 원리와 질서와 제도를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에서 세운 위치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남편을 순복해야 합니다.
②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3:2-4에 보면 남편들은 아내의 정결한 행위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머리, 의복, 장식품 등으로 꾸미려 하지 말고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다투다가 남편의 마음이 떠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내의 행복이고 가정의 행복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사려면 남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남성들은 또 다른 남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진 여성을 원합니다. 남성에게서 찾아보기 힘들고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특성은 온유함과 안정됨입니다. 남성의 매력이 관영과 포용과 용서와 배려에 있다면 여성의 매력은 온유함과 부드러움에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온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갈수록 남성은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반면 여성은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남성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초기에는 남성이 고분고분하게 대해주는 아내가 사랑스럽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내가 억세게 나오니까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남성은 마음이 더 여려져서 아내의 태도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③신앙적인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3:1-2에 보면 아내가 남편을 순복할 때 믿지 않는 남편도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져 구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두려워 하는 마음과 정결한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자기가 믿지 않은 경우에라도 아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호응합니다. 또 디도서2:5에는 아내가 집안 일을 잘 하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믿는 자라 해도 남편은 아내가 현숙하기를 원합니다. 안정된 심령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믿는 남편이라도 믿음이 더욱 좋아집니다.
2.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28절에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3:19에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몸처럼 여겨야 합니다 (본문28절). 부부윤리에서 남편이 아내에 대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요구에 완전히 부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야기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우울한 모습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곤 하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담은 혼자여서 항상 외롭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자'라는 동반자를 준비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이 창조물은 너를 위해 요리를 해 줄 것이며 옷을 빨아줄 것이다.
너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아이들을 돌보라고 한밤중에 깨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너에게 신경질 내고 잔소리를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일도 없으며 너의 결정에 항상 순종할 것이며 너에게 영원한 사랑과 연민을 보낼 것이다. " 이에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한 팔과 한 다리를 요구했습니다.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갈비뼈 하나 정도로 얻을 수 있는 건 없을까요" "...... " 부족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기 때문입니다.
①아내는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3:7 중반절에 보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인 축복, 구속사적인 축복을 이을 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낸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자입니다.
②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3:7 상반절에 보면 지식을 따라 동거해야 된다고 했고 아내는 연약한 그릇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골3:19).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에게는 괴로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 이혼율이 1980년대에는 결혼대비 5%대, 1990년 대에는 10%대, 2000년에 들어서는 40%대입니다. 한해 이혼건수가 15만 건이 넘습니다.
법정에 제출한 이혼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이 성격차이입니다. 그들에게 인터뷰해 보면 대부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폭행한 사람도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데 왜 성격이 도저히 안 맞는다고 생각할까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가 느낄 때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될까요. 그것은 남편이 왜곡된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아내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내가 여자인데 여자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영적 특성조차도 모릅니다. 더욱이 자기 아내의 기질과 성품, 아내의 출생과 자란 환경과 교육 내용, 아내의 특기와 취미와 선호도 등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내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는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관점에서 자기 방식대로 요구하고 대체하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사랑을 근거하고 있을지라도 아내에게는 괴로움, 학대가 됩니다.
그 결과가 성격 차이라는 말을 낳게 되고 불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지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으로 연약한 그릇이라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남편을 돕는 배필에 합당한 특성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특성이 남성보다 연약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그래야 아내를 관용하고 포용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아내가 느낄 때 사랑으로 느끼게 됩니다. 아내는 상처받아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 줄 알고, 관용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③신앙적인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3:7 하반절에 보면 남편이 아내를 귀히여겨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은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불화하게 되면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교회 일을 잘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3:12절에서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잘 케어하는 훌륭한 메니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서로 희생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본문 22-24절에 보면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마치 몸인 교회가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도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25-28절까지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여 자기 앞에서 흠이나 주름잡힌 것이 없이 영광스럽게 하려 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체로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서2:5-8에 보면 예수님은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내놓으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되 자기 목숨을 내어 주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그것을 믿는 성도들은 그를 경배하며 온 인생을 그를 위해 헌신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그가 맡긴 사명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가 온전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부부관계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사랑'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스톨게, 필리아, 에로스, 아가페입니다. 스톨게는 동족적인 사랑, 필리아는 친구간의 사랑, 에로스는 이성간의 사랑, 아가페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αγαπη)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부부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에로스 사랑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에베소서5:25-28이나 골로새서3:19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사랑'은 모두 아가페(αγαπη)로 나와 있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무조건적으로 희생적으로 사랑한 것같이 사랑해야 하고 아내도 성도가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것 같이 남편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교회의 심정으로 남편에게 헌신하므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結言
부부관계는 조건 있는 사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부관계는 상대적인 사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부는 합법적인 결혼을 했다면 사람의 의도에서 만난 것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맺어 준 관계입니다 (창2:24). 사람에 의해서 나누어질 수 없는 한 몸입니다 (엡5:28-31).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이어갈 자입니다 (벧전3:7).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세워 나가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어 가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비젼을 나누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할 자입니다. 부부생활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고마워요. 그리고 어제 저녁 설교 참 좋았다죠 '아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설교였는가요" 그러자 목사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아닌데요. '원수를 사랑하라' 는 설교였는데요. " 요즘 가정의 부부생활의 실태의 반영으로 나온 이야기 같습니다.
인생이 행복하려면 가정생활이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행복하려면 부부생활이 행복해야 합니다. 자녀교육을 잘하고 싶어도 부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면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라'는 가정상담에서 나오는 말이 있듯이 부부관계가 좋아야 자녀가 인성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지적으로 결단력과 집중력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도 부부가 불화하면 그것을 보는 부모는 마음이 편안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시부모나 처부모를 잘 공경할 수 없습니다. 시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남편 때문이고 처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아내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부부관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3:1-7에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렇게 해야 혹 믿지 않는 남편도 아내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고,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렇게 해야 기도가 막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디도서2:5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말씀에 훼방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부부생활이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부부가 불화하게 되면 믿지 않는 배우자는 믿는 배우자를 핍박하게 되고 신앙생활을 공격합니다. 믿는 배우자는 기도가 막히고 말씀생활이 어려워집니다. 인생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부부관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本論
1. 아내는 남편을 존중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24절에는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3:18에도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3:1-6에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이 다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복종하고 순복하라는 것은 종족의 개념으로 한 말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마음으로 우러나온 존중과 순종의 개념으로 한 말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해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존중이며 행동 자세는 순종입니다. 그래서 부부윤리에서 아내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남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아내들이 많습니다. 쇼핑을 나갔던 부부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집 앞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덤프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고, 두 부부와 운전기사는 동시에 깜짝 놀랐는데… 트럭 운전사가 창문을 열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머저리 병신, 얼간이, 쪼다야! 똑바로 서지 못해!"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저 사람, 당신을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은데요! 드라이브를 즐기던 부부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서로 말도 않고 썰렁하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얼쩡거리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빈정대며 말했습니다. "당신 친척이잖아, 반가울텐데 인사나 하시지. "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가 그 개에게 소리쳤다. "안녕하셨어요! 시아버님~!" 남편을 범사에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기 바랍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이 남편을 가정의 리더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1:3, 8-10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의 질서를 세울 때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두셨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위해 남자를 지은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여자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권세 아래 있는 표로 머리를 길게 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가정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체 조건과 심리적 기질과 영적 특성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남자를 도와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조건과 기질과 특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을 세운 것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을 세운 원리와 질서와 제도를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에서 세운 위치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남편을 순복해야 합니다.
②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3:2-4에 보면 남편들은 아내의 정결한 행위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머리, 의복, 장식품 등으로 꾸미려 하지 말고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다투다가 남편의 마음이 떠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내의 행복이고 가정의 행복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남편의 마음을 사려면 남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남성들은 또 다른 남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진 여성을 원합니다. 남성에게서 찾아보기 힘들고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특성은 온유함과 안정됨입니다. 남성의 매력이 관영과 포용과 용서와 배려에 있다면 여성의 매력은 온유함과 부드러움에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온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먹어갈수록 남성은 여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반면 여성은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남성화되어 갑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초기에는 남성이 고분고분하게 대해주는 아내가 사랑스럽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내가 억세게 나오니까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남성은 마음이 더 여려져서 아내의 태도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③신앙적인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3:1-2에 보면 아내가 남편을 순복할 때 믿지 않는 남편도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져 구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두려워 하는 마음과 정결한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자기가 믿지 않은 경우에라도 아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호응합니다. 또 디도서2:5에는 아내가 집안 일을 잘 하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믿는 자라 해도 남편은 아내가 현숙하기를 원합니다. 안정된 심령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믿는 남편이라도 믿음이 더욱 좋아집니다.
2.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28절에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3:19에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기 몸처럼 여겨야 합니다 (본문28절). 부부윤리에서 남편이 아내에 대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요구에 완전히 부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야기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우울한 모습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곤 하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담은 혼자여서 항상 외롭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자'라는 동반자를 준비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이 창조물은 너를 위해 요리를 해 줄 것이며 옷을 빨아줄 것이다.
너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아이들을 돌보라고 한밤중에 깨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너에게 신경질 내고 잔소리를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일도 없으며 너의 결정에 항상 순종할 것이며 너에게 영원한 사랑과 연민을 보낼 것이다. " 이에 아담이 여호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한 팔과 한 다리를 요구했습니다.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갈비뼈 하나 정도로 얻을 수 있는 건 없을까요" "...... " 부족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기 때문입니다.
①아내는 유업을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3:7 중반절에 보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인 축복, 구속사적인 축복을 이을 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낸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자입니다.
②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3:7 상반절에 보면 지식을 따라 동거해야 된다고 했고 아내는 연약한 그릇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골3:19).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에게는 괴로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 이혼율이 1980년대에는 결혼대비 5%대, 1990년 대에는 10%대, 2000년에 들어서는 40%대입니다. 한해 이혼건수가 15만 건이 넘습니다.
법정에 제출한 이혼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이 성격차이입니다. 그들에게 인터뷰해 보면 대부분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폭행한 사람도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데 왜 성격이 도저히 안 맞는다고 생각할까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가 느낄 때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될까요. 그것은 남편이 왜곡된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아내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내가 여자인데 여자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영적 특성조차도 모릅니다. 더욱이 자기 아내의 기질과 성품, 아내의 출생과 자란 환경과 교육 내용, 아내의 특기와 취미와 선호도 등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내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는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관점에서 자기 방식대로 요구하고 대체하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사랑을 근거하고 있을지라도 아내에게는 괴로움, 학대가 됩니다.
그 결과가 성격 차이라는 말을 낳게 되고 불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지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으로 연약한 그릇이라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남편을 돕는 배필에 합당한 특성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특성이 남성보다 연약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그래야 아내를 관용하고 포용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아내가 느낄 때 사랑으로 느끼게 됩니다. 아내는 상처받아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 줄 알고, 관용하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③신앙적인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3:7 하반절에 보면 남편이 아내를 귀히여겨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은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불화하게 되면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교회 일을 잘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3:12절에서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잘 케어하는 훌륭한 메니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서로 희생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본문 22-24절에 보면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마치 몸인 교회가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아내도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25-28절까지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여 자기 앞에서 흠이나 주름잡힌 것이 없이 영광스럽게 하려 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체로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서2:5-8에 보면 예수님은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내놓으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되 자기 목숨을 내어 주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그것을 믿는 성도들은 그를 경배하며 온 인생을 그를 위해 헌신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와도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그가 맡긴 사명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가 온전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부부관계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사랑'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스톨게, 필리아, 에로스, 아가페입니다. 스톨게는 동족적인 사랑, 필리아는 친구간의 사랑, 에로스는 이성간의 사랑, 아가페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αγαπη)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부부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에로스 사랑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에베소서5:25-28이나 골로새서3:19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사랑'은 모두 아가페(αγαπη)로 나와 있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무조건적으로 희생적으로 사랑한 것같이 사랑해야 하고 아내도 성도가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것 같이 남편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교회의 심정으로 남편에게 헌신하므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結言
부부관계는 조건 있는 사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부관계는 상대적인 사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부는 합법적인 결혼을 했다면 사람의 의도에서 만난 것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맺어 준 관계입니다 (창2:24). 사람에 의해서 나누어질 수 없는 한 몸입니다 (엡5:28-31).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이어갈 자입니다 (벧전3:7).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세워 나가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어 가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비젼을 나누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할 자입니다. 부부생활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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