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사랑
본문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사랑/사무엘상 1 : 9 - 20
할렐루야!!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어버이주일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 다 같이 어머니노래를 불러보겠습니다.
어머니 마음
나실 제 괴로움 다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달토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없어라
부모님의 은혜를 언제인들 잊으리오마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마음속 깊이, 그리고 뼈에 사무치도록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효성을 다하여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충만하게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6:1-3절 말씀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어버이날에 대한 유래는 미국의 안나 자비스(Mrs, Anna M. Jarvis) 라는 부인에게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자비스 부인은 특정한 날을 정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후 1913년 이래 5월 둘째 주일을 정하여 세계적인 행사로 확대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여 지켰는데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1973년부터 아버지들의 항의로 인하여 어버이날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또 요즘에는 5월 1일을 아버지 날로 지키자고 하는 여론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에는 어버이날에 자녀들이 카네이션을 달았습니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달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달았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부모님께 달아드리는 것으로 풍습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첫째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키고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이 세상에 수십만 마디의 말이 있어도 그 중에 가장 고상하고 좋은 말은 「어머니」 와 「아버지」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보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크고 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어느 병원 응급실에 70이 넘은 노인이 구급차에 실려 왔습니다. 이 노인은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많이 다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의사들이 치료를 하는데 어찌나 아팠던지 상을 찡그리면서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를 부르더랍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세라 금지옥엽 애지중지 하며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염려하시고 행여나 배고파 할까봐 당신은 못 먹어도 자식들 입에 밥풀 하나라도 더 먹이고자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요, 진자리 마른자리 구별치 않고 진자리에는 당신이 누우시고 마른자리 골라 자식들 뉘어서 키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한 길이라면 천릿길이라도 마다 않고 달려가시며, 또 자식들을 위한 일이라면 손발이 갈퀴손이 되고 손톱 발톱이 다 달아도 당신 몸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공을 어찌 태산에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아래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다음으로 부모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해서 어떤 사랑을 베풀어주시는가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1. 부모님은 자식을 위하여 항상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임신하기도 전에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께 헌신하여 죽도록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불철주야 일구월심 자식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의 서원기도대로 자라는 자녀는 절대로 잘못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의 서원기도대로 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큰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자식들의 성공을 위하여 언제나 기도합니다. 자식들을 하나님께 맡기며 항상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을 위해서 또 자식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의 능력은 위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훌륭한 어머니들이 여러 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기도를 많이 한 몇 사람의 기도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나라의 위대한 영도자인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꼽을 수 있습니다.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낳았을 때에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고 석 달을 숨겨서 키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 한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들을 낳으면 즉시 나일강에 버려서 신의 제물이 되게 하라고 하였는데 요게벳은 믿음으로 모세를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 되고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가 되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 기도하였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는 반드시 이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출하여라”고 말입니다. 그 기도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할렐루야!!
(2)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부르짖는 가나안 여인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감기만 들어도 안쓰러워 어찌 할 줄 모르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물며 딸이 귀신이 들려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 어미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예수님답지 않습니다. 전과 같으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쳐 주셨을 텐데 예수님이 그 여인을 무시합니다. 멸시합니다. 그래도 그 어미는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께 부르짖습니다. 드디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 멘!!
(3)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는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할 때 그 영혼을 위하여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루는 존경하는 암부르스 목사님을 찾아가서 호소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내 아들은 이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암부르스 목사는 대답하기를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자식은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니카는 더욱 힘을 얻어서 기도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아들 어거스틴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모니카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 어거스틴에게 말하기를 “내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너는 조금도 섭섭히 생각지 말아라. 나는 내 기도를 이루었으니 조금도 한이 없다 내가 네게 부탁하는 것이 있는데 너는 기도할 때마다 나를 기억해 다오” 라고 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내일 11일이 어머니의 추도일 입니다. 어머니가 소천하신지 52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어머니 살아생전에 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가 됩니다. 어느 날 나의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너는 내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고 눈물지으며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내가 월남으로 떠나던 날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도해 주마” 고 하시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월남전에 참전하였을 때 병환 중에 계셨는데도 항상 아들이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기도로 인하여 저는 1년간의 복무를 잘 마치고 머리터럭 하나 상치 않고 건강한 몸으로 귀국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특히 고엽제 피해로 인해서 후손들까지 병신이 되는 것을 볼 때 저는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어머니의 그 기도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위하여 얼마나 눈물 흘려 기도했는가를 기억하십니까? 생각하십니까?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나 항상 거슬러도 다 용서하시고
날 굳세게 하시려고 어머니 우시네
집 떠나 먼 곳에서 나 방황하여도
어머니 기도음성 귓가에 들리네
어머니의 크신 사랑 뉘 감히 알리요
안다고 하는 것이 모르는 것이요
갚는다 갚는다 하면서도 못 갚을 것이니
내 평생 기도 중에 어머니 부르리
2. 부모는 자식을 잃었을 때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야곱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는데 그 중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늦게 낳은 아들 요셉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동생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양치는 곳에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나온 동생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요셉의 옷을 찢어 양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갔다 드렸습니다. 이때 야곱이 애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창37:33-35)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부모에게는 자식이 적을 때 그 자식이 귀하고, 많아서 덜 귀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한 자식을 잃었을 때 그 아픔을 대신할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하는 말이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본래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섯까지는 어릴 때 유명을 달리하였고 지금은 위로 누님 한 분과 형님 한 분만이 계십니다. 난 가끔씩 우리 어머니가 5남매를 앞서 보낼 때에 그 가슴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3. 부모는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도 그 자식을 버리지 못하고 용서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다윗왕은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압살롬이라고 하는 잘 생긴 아들이 있었는데 얼굴이 대단히 잘생겼고 미남 이였지만 그의 마음은 패역무도한 자식이었습니다. 그는 미남중의 미남이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흠점 하나 없이 미끈하게 잘 생긴데다가 아버지 다윗은 그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군사를 몰고 왕궁으로 진격해 오는데 그의 아비 되는 다윗왕은 자신의 군대로 충분히 그 아들의 군대를 섬멸할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중에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왜냐 하면 군대가 서로 부딪치면 결국 살생을 하게 되고 그 아들도 죽게 되기 때문에 다윗이 피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모르는 아들 압살롬은 다윗이 급히 요단강을 건너서 마하나임에 갔을 때에 많은 군사를 몰고 와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다윗 왕을 지키는 군사들이 싸우려고 마주 나갈 때에 다윗은 신신 당부하기를 “나를 위하여 내 아들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압살롬은 죽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보고를 들은 다윗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퍼서 대성통곡을 합니다.
(삼하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아버지인 자기를 반역하여 죽이고 왕위까지 빼앗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차지해 버린 천하에 패역한 자식을 용서하고 그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뿐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재산을 몽땅 가지고 나가서 허랑 방탕하여 모두 탕진하였어도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밤새워 기도하면서 기다리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달려 나가 맞이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4.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줍니다.
참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 또 아버지의 사랑은 모든 것을 거저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우리를 태중에 품고 피와 살을 주시고 또 모든 영양소를 주어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또한 내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해산의 고통을 감당 하셨습니다. 핏덩어리 같은 생명을 보살피기 위하여 밤잠을 주무시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병이라도 나서 앓게 되면 당신이 대신 앓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성어린 간호를 하였습니다. 또 영양분 있는 음식을 골라 먹이시면서 당신은 못 먹고, 못 입고, 못쓰면서도 자녀들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 주시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어머니는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마침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군대에 가서 고생하는데 자기는 따뜻한 방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생각다 못해 밖에 나와서 한 시간 두 시간씩 있다가 들어가곤 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나의 어머니도 내가 군대에 갔을 때에 땀 흘려 모심어 놓고 갔는데 그 햅쌀밥을 못 먹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달 밝은 밤에 논에 나가 벼를 베셨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당신이 쓰지 않고 자녀를 생각하며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주고도 더 주시려는 이가 어머니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들에 대하여 「내가 이만큼 하였으니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했노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언제나 부족하게 생각하고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 일본 전설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라서 성년이 되어 한 여자를 사귀게 되었고 결국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청년은 그 약혼녀를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없이는 못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약혼녀에게 몹쓸 병이 걸렸습니다. 이 병은 시간을 다투는 병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병을 고치는 약은 매우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슨 약이냐 하면 산 사람의 간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의 약혼녀를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고심하다가 홀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의 간을 꺼내 가지고 약혼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가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려 보니까 어머니의 음성이 또 들려오는데 “얘야 너무 빨리 뛰어가다가 넘어질라 조심해서 가거라” 는 음성입니다. 이것은 실화가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전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5. 부모는 형제들 간에 화목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창세기 50:17절 말씀에 보면 야곱이 요셉에게 부탁한 말이 있습니다.
(창50:17)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요셉은 형들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는데 애굽까지 팔려 와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7년 대 기근 시에 그의 가족을 구출하였습니다. 기근을 피하여 그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이사를 하여 고센 땅에 자리를 잡고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친 야곱이 147세에 죽게 됩니다. 죽으면서 야곱은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비가 죽고 나면 요셉이 형들에게 앙갚음을 할까봐 야곱은 자기가 죽고 나서라도 형제간에 화목하게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형제간에 화목 하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형제간에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불화 하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기 싫어서 왜 자식은 우리뿐이냐고 다른 자식 네도 가라고 부모님을 두고 형제간에 탁구를 치는 사람도 있고, 재산을 더 많이 가지려고 싸움을 하다가 형제간에 소송까지 하는 사람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형제간에 화목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1) 형제간에 모이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2) 서로 오해가 있을 때는 너그러이 풀고 용서해야 합니다.
(3) 그리고 서로 돕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부모는 죽어서 지옥에 가서도 세상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탄원을 합니다.
누가복음 16장19절 이하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 가서 그 음부의 뜨거운데서 고통 중에 멀리 천국을 바라보니 거지 나사로가 빛난 옷을 입고 아브라함 품에 안긴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참으로 환장할 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기를 나사로를 시켜서 물 한 방울만 보내달라고 애걸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 부자는 다시 애원을 합니다.
(눅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자는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고통 중에도 자신은 생각지 않고 자기의 가족들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나 조상들 중에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영혼들이 지금 지옥에서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나머지 가족들 걱정하고 하나님께 탄원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내 집에 있는 내 아들, 내 딸, 내 며느리, 내 손주들은 나와 같이 이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 살아 계신 부모님은 우리가 열심히 효도를 한다지만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께 어떻게 효도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효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사상을 차려서 제사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 간 부자의 예와 같이 여러분들의 조상들의 영혼이 지금 천국에 있든지 아니면 지옥에 있던 지간에 여러분들이 지금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을 알 때에 얼마나 안도의 숨을 쉴 것이며 또 기뻐하겠습니까?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들에게 효도하는 길은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그러고도 더 못 주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께 드려야 합니다. 무엇을 드릴 수가 있습니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의 천 분의 일이나 만 분의 일도 못 된다 하더라도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효도하는 길입니다.
효도는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6:1-3절 말씀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좋은 옷 입히시려고 자신들은 추위에 떨었고, 자식들 배불리 먹이시려고 자신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습니다. 문풍지 우는 깊은 겨울밤에도 호롱불 켜놓고 바느질로 긴 긴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보며 객지 나간 아들 생각에, 또 시집보낸 딸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부모님이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대서야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서, 부모님을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모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어, 효도 중에 효도를 하는 성도가 되어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과, 신상의 건강의 축복과, 자손 천대까지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해인-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에서 버석 이는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깍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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