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졸업]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삶
본문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습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보다 성숙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며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고자 가르치고 연마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경건 훈련을 받는 것도 영적 성숙 및 신앙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비록 완전하게 되기는 어려울지라도 이를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요건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1. 겸손히 자신을 낮춰야 함(약4:6)
1)주께서 교만을 미워하심
주의 복받기를 원하면서 그분이 싫어하시거나 미워하시는 일을 힘써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인데, 실제로 이같은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릅니다. 교만한 자들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높이고 자신에게는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자만하는 이들은 주의 복을 간절히 사모한다 해도 결코 임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주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성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자신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루시퍼가 뛰어난 천사였다고 가르칩니다. 그가 왜 망하게 되었을까요? 바로 교만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처지를 망각하고 마음을 높여 여호와 하나님과 비기려 하다가 음부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며 완성의 정반대 방향이므로 멀리해야 합니다.
2)우리의 모든 것이 주의 소유
성경은 우리의 생명을 위시하여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주의 소유'라고 가르칩니다. 주께서 거저 주신 것이며, 언제라도 그분이 다시 취하실 수 있는 것들을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것인 것처럼 움켜쥐려 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것은 거저 사용하는 사람들일 분이므로 그 분량이 많다 하여 자만하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가장 큰 덕을 묻는 사람들에게 첫째와 둘째, 셋째가 모두 겸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는 혹 자랑할 것이 있을지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자기를 낮춰야 합니다. 이것이 완성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겸손히 처신하는 사람에게서 위대한 것들이 발견됩니다.
2.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함(고전11:1)
1)그리스도의 인격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증거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가 주님처럼 완전함이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적 특성들을 자신이 지니고자 힘쓰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적 특성은 섬김에서 잘 나타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위시하여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자들이 도움을 청할 때마다 보여주신 그분의 태도는 그 안에 자리한 인격의 틀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완성된 인격과 신앙을 가지기 원한다면 우리가 이 섬김의 소중함을 먼저 배워야만 합니다. 남을 섬길 줄 아는 자, 봉사의 미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권위를 세우기나 좋아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일에만 관심이 쏠리는 이들은 그분의 인격에 대해 이해조차도 못하고 있는 신앙의 갓난 아기들에 불과합니다.
2)그리스도의 생활
사람에게 있어서 언행의 일치나 신행의 일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 하기는 쉽고 남을 가르치기는 쉬워도 이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직접 실천하기란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자신이 가르치시는 바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여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의 실천, 이것이 바로 완전한 삶, 완전한 신앙의 절정입니다. 완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이런 모습들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유대 경건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만하고 행치 않는 것은 위선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리켜서 '죽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실행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말은 아무리 매끄럽고 아름다워도 실행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보다 실행을 중시할 때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함(계2:10)
1)자신의 분량에 최선을 다함
과대망상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지나치게 확대시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혐오하고 염세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성도들은 여하한 경우에도 이들을 흉내내서는 안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이 얼마나 되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자신의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그 분량은 일정치가 않으나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따릅니다. 남의 분량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중요한 것은 내 분량임을 유념하고 헛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훌륭한 인격을 갖춘 성도입니다.
2)현재의 환경에 최선을 다함
열악한 환경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하는 데 있어서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일이기에 최선을 다한 것만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환경을 탓하고 여건에 대해 불만이나 털어 놓는 이들은 훨씬 나은 것들이 갖춰지더라도 똑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또한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완전함에 이르기를 원하거든 현재의 환경을 수용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필요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을 좇는 이들은 불평할 수 없고, 적당히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야 완성에 가까워집니다.
결론
성도가 완성을 향해 달음질하는 완전함을 추구한다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갱신이 될 것입니다. 형식을 완성보다 중시하는 풍조는 교회를 퇴보시키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1. 겸손히 자신을 낮춰야 함(약4:6)
1)주께서 교만을 미워하심
주의 복받기를 원하면서 그분이 싫어하시거나 미워하시는 일을 힘써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인데, 실제로 이같은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릅니다. 교만한 자들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높이고 자신에게는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자만하는 이들은 주의 복을 간절히 사모한다 해도 결코 임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주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성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자신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루시퍼가 뛰어난 천사였다고 가르칩니다. 그가 왜 망하게 되었을까요? 바로 교만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처지를 망각하고 마음을 높여 여호와 하나님과 비기려 하다가 음부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며 완성의 정반대 방향이므로 멀리해야 합니다.
2)우리의 모든 것이 주의 소유
성경은 우리의 생명을 위시하여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주의 소유'라고 가르칩니다. 주께서 거저 주신 것이며, 언제라도 그분이 다시 취하실 수 있는 것들을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것인 것처럼 움켜쥐려 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것은 거저 사용하는 사람들일 분이므로 그 분량이 많다 하여 자만하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가장 큰 덕을 묻는 사람들에게 첫째와 둘째, 셋째가 모두 겸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는 혹 자랑할 것이 있을지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아닙니다. 자기를 낮춰야 합니다. 이것이 완성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겸손히 처신하는 사람에게서 위대한 것들이 발견됩니다.
2.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함(고전11:1)
1)그리스도의 인격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증거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가 주님처럼 완전함이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적 특성들을 자신이 지니고자 힘쓰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적 특성은 섬김에서 잘 나타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위시하여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자들이 도움을 청할 때마다 보여주신 그분의 태도는 그 안에 자리한 인격의 틀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완성된 인격과 신앙을 가지기 원한다면 우리가 이 섬김의 소중함을 먼저 배워야만 합니다. 남을 섬길 줄 아는 자, 봉사의 미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권위를 세우기나 좋아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일에만 관심이 쏠리는 이들은 그분의 인격에 대해 이해조차도 못하고 있는 신앙의 갓난 아기들에 불과합니다.
2)그리스도의 생활
사람에게 있어서 언행의 일치나 신행의 일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 하기는 쉽고 남을 가르치기는 쉬워도 이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직접 실천하기란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자신이 가르치시는 바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여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의 실천, 이것이 바로 완전한 삶, 완전한 신앙의 절정입니다. 완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이런 모습들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유대 경건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만하고 행치 않는 것은 위선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리켜서 '죽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실행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말은 아무리 매끄럽고 아름다워도 실행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보다 실행을 중시할 때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함(계2:10)
1)자신의 분량에 최선을 다함
과대망상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에 지나치게 확대시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혐오하고 염세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성도들은 여하한 경우에도 이들을 흉내내서는 안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이 얼마나 되든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자신의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그 분량은 일정치가 않으나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따릅니다. 남의 분량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중요한 것은 내 분량임을 유념하고 헛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훌륭한 인격을 갖춘 성도입니다.
2)현재의 환경에 최선을 다함
열악한 환경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하는 데 있어서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일이기에 최선을 다한 것만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환경을 탓하고 여건에 대해 불만이나 털어 놓는 이들은 훨씬 나은 것들이 갖춰지더라도 똑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또한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완전함에 이르기를 원하거든 현재의 환경을 수용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필요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을 좇는 이들은 불평할 수 없고, 적당히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야 완성에 가까워집니다.
결론
성도가 완성을 향해 달음질하는 완전함을 추구한다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갱신이 될 것입니다. 형식을 완성보다 중시하는 풍조는 교회를 퇴보시키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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