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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마음이 둔하여 졌음 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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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때 황달로 인해서 뇌성마비를 앓게된 여인이 있습니다.
결국 이여인은 언어 장애가 오게되고 뇌성 마비로 지체장애도 수반하게 됩니다. 말을 똑바로 할수 없고 걷는것도 제대로 걸을수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기자가 그녀에게 행복이 무었이냐고 묻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나를 반겨주는 가정이 잇고 일상 생활에서 재미를 어등면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반문 합니다.
이제 결혼한지 15년 아들, 딸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그녀는 미국에 있는 조지 메이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에서 후배를 가르키는 교수가 되어있습니다.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교수 정 유선입니다.
그녀가 대학을 들어가 공부를하기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영어를 할때 너무 힘들어 수없이 좌절하고 죽싶다라고 하면서 난 왜이렇게 태어난걸까 죽으면 이런 고통 안받아도 될텐데라고 원망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주님 주신 말씀으로 다시 용기를 내고 오늘날 미국의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유선 교수는 자신의 삶을 비정상에서 정싱으로 바꾸어 가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뀌어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바꾸지 아니하면 정상이 비정상으로 바꾸어져 돌아 갑니다. 신앙인이 바뀌지 않은 모습 옛사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변화하지 않으면 진정한 크리스쳔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거듭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 새로운 심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니 변화하는 새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생하는 자, 거듭나는 자에게만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거듭나고 변해야 하느냐라는 물음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새로워져야 하는데 왜 새로워져야 하는가? 왜 새로워지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고 구원받지 못하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남아 있음으로 죄있는 모습으로 죄가 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모습 그대로 죄성이 남아 있으므로 주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새롭게 거듭나지 못하고 인간의 자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악한 인간의 자식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을 입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데 새사람이 도지 못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기 때문에 거듭나고 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은 변화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은 바뀌지 않고 변화하지 못하면서 새사람을 입지 못하면서 기적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은혜의 임재를 체험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치유를 받고
어려운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적을 체험해야 하는데 주님의 기적은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쉽게 우리를 체험시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적을 나타내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자녀인 우리도 기적과 이적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기적을 체험하고 승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기적과 승리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인가?
오늘 말씀 51절이하를 보면 제자들의 배에서 바람이 그치니 심히 놀라는지라 이는 그들이 떡을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 졌음이러라고 말합니다.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마귀로부터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마귀의 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된 습관과 이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못난 자아가 나를 짓눌러 나를 떠나서 주의 자녀로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도 오래된 내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못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나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가도록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말씀이 들어와야 하는데 나의 옛사람이 나를 막아 여호와 하나님으로 들어가는 길, 말씀을 듣는 길을 막고 있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많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시몬의 장모도 고치시고 귀신들린 많은 사람을 제자들과 함께 고치십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들을 고치시면서 그 기적을 보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의 기적의 하이라이트인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오니 음식먹을 겨를도 없어 지친 제자들이 굶주리자 주님께서 너희는 잠깐쉬어라하고 배를 타고 벳세다로 가십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예수님인줄 알아보고 그곳으로 먼저 가서 예수님을 기다리자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 결국 또 가르치십니다.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집으로 가야하는데 가지 않고 넓은 빈들에 그냥 남아있으니 제자들이 답답하여 그들을 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먹을것이 없는데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것을 주라지만 제자들은 가진것이 없고 어린아이가 가진 떡 5덩어리와 고기2마리를 주님께 내밀자 제자들에게 모두를 앉히어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신 기적을 베푼 사람들이 오천명이 넘었더라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뒤에 예수께서는 그 즉시로 제자들을 재촉하여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건너편 벳세다로 배를 타고 가도록 하신 곳에서 오늘에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갈리리 바다를 건너게 하신 후에 산으로 기도하러 가십니다.

그 배를 타고 가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 집니다. 바다 가운데로 배가 가게 됩니다. 힘겹게 노젓는 배가 그만 풍랑에 흔들립니다. 사경쯤 되는 시간에 그 배옆으로 주님이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풍랑이 심하여 겁을 먹고 있는데 어두운 시각에 그것도 배를 타고 오시지 아니하고 물위를 그냥 걸어 오시니 설마 이들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아이고 이거 유려이 아닌가? 라고 놀라서 혼비 백산하고 있는데 그때 주님께서 말씀 하시길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주님께서 배에 올라 풍랑이 그치게 되자 마음이 진정되는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52절에 그들이 떡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지 불과 얼마안된 그날 낮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예수님의 기적을 기억했더라면 그 역사의 현장을 보낸지 불과 한경 즉 3시간 정도 였는데 그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아니했더라면 그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라 할지라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벌써 주신은혜 주신 축복을 모두다 소멸해 버린 겁니다. 주님이 잠시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고 달라질 일이 없는데 그사이에 마음이 둔하여져서 주신 주님의 기적을 제자들은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 가집니다. 몸은 교회에 있으면서도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교회 출석을 열심히 하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설교를 들으면 뭐합니까? 옛사람에 사로 잡혀서 우리의 마음은 둔해져 있는데 아무리 설교를 듣는다고 앉아 있는들 무슨 은혜가 되겠습니까? 나의 못된 습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못난 자아에 묶여 은혜의 통로를 막고 있는데 무슨 은혜가 될수 있다는 말입니까?
지금은 은혜가 되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떡여 그래 이말씀 대로 살려고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우리의 오래된 구습이 나를 붙들어 세상속으로 나아가는 순간 잊어버리고 주님 뜻을 따르지 못하니 어찌 마음이 둔한 제자들과 다를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기적이 오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을 의지하고 언제든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신뢰를 막는 나의 옛사람이 나를 붙들고 있다면 우리는 그 옛사람을 벗어나야 합니다.
나를 벗어나야 합니다. 나를 떠나야 합니다. 오래된 나를 떠날 때만이 기적을 체험할 줄로 믿습니다. 기적은 오래된 나를 벗을 때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계시면 풍랑이 멈추었을 텐데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금 배안에는 주님이 안계십니다. 주님은 멀리 산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신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말씀 48절을 봅시다.
48절을 보면 지금 주님은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젖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옆에 계시지 않지만 제자들의 고통을 보고 계시고 제자들의 위험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 뭍에서 산에서 기도하시면서 무슨 기도를 하시나면 바로 제자들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미 제자들의 고통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이 계시 않다고 생각 합니다. 주님이 멀리 께신다고 생각 합니다. 주님이 안계신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고 우리의 모든 일들을 기억하시고 보고 계시며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을 안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 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 무었 때문에 두려워 해야 합니까? 그 무엇 때문에 낙망하고 절망해야 합니까? 항상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맡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립니다. 항상 멀리계서도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가 위험에 처하여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그 순간 ,나타나셔야 할 적절한 순간에 주님은 나타나시며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아도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마음이 둔하여져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며 보호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옛이야기 중에 호랑이가 어린 남매를 잡아 먹으려고 아이들을 유혹해도 어린이들은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랑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내서 유혹하자 문을 열어 줍니다.
어떤 집에서 아이들만 있는데 그만 불이 났습니다. 소방대원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뛰어내리라고 해도 매달린 아이들은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동네 사람 모두가 뛰어내라라 해도 뛰어 내리지 않던 아이가 엄마가 와서 말하자 바로 뛰어 내립니다.

주님께서 지금 말씀 하고 계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하십니다. 주님만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It is don't be opriad. 내니 두려워 말라 , 나는 너희를 보호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 합니다.
우리에게는 시련도 오고 시련도 필요 합니다. 그 시련 속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할 때 나타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거친 풍랑에서도 평안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웨인 다이어의 “오래된 나를 떠나라”에서 인간은 24시간동안 6만 가지의 생강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보다 놀라운 것은 그 똑같은 6만 가지의 생각을 어제도 했고 내일도 라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반복되는 생각 , 특히 변명의 범주에 속하는 대부분의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릇된 생각을 하느라 훌륭한 정신력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합니다.
변명을 일삼는 반복적이고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행위를 나 자신에게 묻고 다시한번 그것이 사실인가를 질문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생각을 계속 할 필요는 없는데 우리의 변명중에 제일 우리 자시을 힘들게 하는 변명이 바로

1. 나는 하기 어려울거야라는 것입니다.
이 변명은 우리들에게서 제일 흔하고 확실한 변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변명은 우리의 비전을 가로 막는 변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우리의 일들이 아주 어려울 거라고 100%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능할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기 어려울거야라는 것은 습관적인 자기 변명으로 거짖임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기 어려울 거야를 쉬울거야라고 바꾸는 순간 우리의 변명은 사라지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뀌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라는 변명입니다.
이 변명은 비난의 변명이라고 합니다. 행복과 건강, 성공을 얻지 못하는 것을 늘 다른 사람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도와 줄 사람이 없어 일이 잘 안 풀니다고 생각 하십니까?
아닙니다. 도와줄 사람은 언제든지 있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많이 있지만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 보십시오.
내가 필요로 하는것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적시에 나타날거야 나를 유익하게 할 사람이 지금 오고 있어라고 말입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는 것은 거짖입니다.
토머스 머튼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좋은 습관에 따라 진리가 우리 삶의 본질에 스며들기까지는 진리를 온전히 소유 할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짖일수도 있고 거짖이 아닐수도 있는 우리를 꼼작 못하게 하는 변명을 이제 그만 합시다. 우리의 목표를 수정하여 성공과 행복 건강을 가져다줄 새로운 습관을 형성 합시다. 이제 그 습관적인 종교 행태에서 벗어나 새사람을 입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 하십시다.
구습에 젖어 옛삶을 벗어버리지 못한 습관을 버리시기 바립니다.
설날만 되면 아직도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생각에 찝찝한 기분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져서 은혜의 통로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십시오.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주님을 영접하고 마음의 꺼풀을 벗겨내어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늘 우리를 보호하실 겁니다.
주님은 항상 멀리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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