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본문
어느 신혼부부의 집, 오랜만에 부부가 함께 영화 구경을 가려고 모범택시를 불렀습니다.
나가기 전에 집에서 기르고 있던 개를 묶어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택시가 왔는데도 개가 자꾸만 달아나는 바람에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먼저 택시를 타라고 하고 개를 잡아서 묶어놓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계속 대기를 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미안해서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남편이 곧 나올 거예요. 어머니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러 들어갔어요. ”
잠시 후, 남편이 나와 택시에 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늙은 개 같은 것이 우리 침대 올라가서 안 내려와서 옷걸이로 때려 겨우 끌어 내려 겨우 묶어놓고 나왔어. ”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라는 이름은 청결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청결하다는 이름의 뜻과 달리, 그는 동네에서 소문난 죄인이었습니다.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이름값을 못하며, 중직자이면서 이름값을 못하고, 목사라는 이름값을 못하는 꼭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1. 잃어버린 자 삭개오.
삭개오는 유대인이었고 키가 남달리 작았습니다. 삭개오는 세무공무원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다 갖게 되었습니다.
① 재물을 많은 부자였습니다.
② 세리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③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성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각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 각 세무서마다 책임 할당량을 정해놓고 그 이상 수금되는 돈은 세리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리 장들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자기가 착복하려고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게 하였고, 로마군대의 힘까지 빌려 세금을 안 내는 백성들을 협박하고 구타하고 감옥에 가두는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세금을 강제로 징수했습니다. 이런 세리들을 유대인들은 로마의 앞잡이 매국노 죄인으로 취급하여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매국노 죄인 취급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며 왕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집에 왕래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가진 큰 부자가 되었으나 죄인 취급당하고, 멸시 천대를 받아 항상 외롭고 쓸쓸한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삭개오에 대하여 "잃어버린 자(10)"라고 말씀했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삭개오는 잃어버린 것이 거의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인생의 행복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몽땅 가지고 있는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 인생이 행복하였을까요? 또 삭개오는 부자라 했으니, 아마 돈 뭉치 속에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정말로 행복했습니까?
삭개오가 세리장이라는 권세로, 부자라는 재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심령 도리어 클클했습니다. 냉랭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밤잠 이루지 못하고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3절"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바로 이것입니다. 세리장으로, 부자로, 권세로 채울 수 없는 삭개오의 뻥 뚫어진 공허한 가슴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의 세리장을 높이 평가한 적이 없고, 부자를 행복의 잣대로 잰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불행한 삶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라고 이름을 붙이신 것입니다.
2.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눅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뻥 뚫린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볼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장애 때문입니다. 하나는 내부적 장애인데 키가 작기 때문이요, 둘째는 외부적 장애인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어 삭개오는 어른 체면 벗어버리고 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의 열심과 행동을 믿음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관념, 혹은 신념 정도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구경꾼 정도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교회 다닌 해수에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또 경험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 가기도하고, 직분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곤 합니다. 그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바람에 펄럭이는 예수님의 옷자락 정도를 보는 구경꾼 에 불과합니다.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돌 무화과나무 위에서 삭개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예수님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데 그것 정말일까? 성경의 기록돼 있는 데로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또 귀머거리가 들었다는 이 모든 사실이 정말일까?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그렇게 살리셨다는 데 이것 정말일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과거 소문을 되새기면서 나도 예수님을 한번 만나봤으면 좋으련만 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돌 무화과나무 위는 예수님은 구경할 수는 있으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못됩니다. 예수님을 감상하고 명상할 수 있으되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란 말입니다.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 위에서도 여전히 그 심령이 클클하고 냉랭하고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또 삶이 피곤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이란 말인가 한탄했을 것입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부름에 응답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계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요,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바로 병 고침 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 예수님은 지금도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권세로 안된다. 부자로도 안된다. 쾌락으로도 안된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돌 무화과나무에서 속히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예수님을 만나 뵙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인격적으로 영접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서 그 인생이 어떻게 변화됐습니까?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변해도 엄청 변했습니다. 삭개오는 옛 사람이 변해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송 421장(통210)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가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삭개오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또 빈말이라도 내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구제헌금으로 받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 남에 것을 억지로 가로챈 것이 있다면 사 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삭개오는 변하고, 달라지고, 새 출발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이제부터는 예수님께 달라고만 하지 말고 변화되어 예수님이 기뻐하시도록 받치는 성도가 됩시다. 주일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받치고, 감사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등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받치는 성도가 되 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 믿고 나의 무엇이 다 변했습니까? 나의 성품이 다 변했습니까? 나의 욕심이 다 변했습니까?
과테말라의 알모롱가(Almolonga)는 20여 년 전만해도 우상숭배로 매우 가난하고 폭력이 난무하며, 대부분의 남자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처럼 살아가는, 그야말로 어둠의 도시였습니다.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아 네 개의 감옥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알모롱가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가장 깨끗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되었고, 가정은 회복되었으며, 빈곤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도시의 90%가 복음화된 알모롱가를 이제"교회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과테말라는 알모롱가는 20년 전에는 땅에 씨를 심어도 싹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1년에 3번씩 수확하는 땅이 되었고 1달에 4트럭 수확하던 땅에서 1주일에 40트럭을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과테말라는 미국에 야채를 수출하는 나라인데 농업 생산량이 1000배가 되었습니다.
세계 각 나라에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배우려 찾아왔다가 과학적인 대답은 찾지 못하고 성경적인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자 땅이 변하고 농작물이 변하게 되었다는결론입니다. 알모롱가에서는 당근 하나가 어른 팔뚝만하고 무 추수가 60일이었는데 지금은 20일이면 추수하게 변하였습니다.
나가기 전에 집에서 기르고 있던 개를 묶어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택시가 왔는데도 개가 자꾸만 달아나는 바람에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먼저 택시를 타라고 하고 개를 잡아서 묶어놓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계속 대기를 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미안해서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남편이 곧 나올 거예요. 어머니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러 들어갔어요. ”
잠시 후, 남편이 나와 택시에 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늙은 개 같은 것이 우리 침대 올라가서 안 내려와서 옷걸이로 때려 겨우 끌어 내려 겨우 묶어놓고 나왔어. ”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라는 이름은 청결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청결하다는 이름의 뜻과 달리, 그는 동네에서 소문난 죄인이었습니다.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이름값을 못하며, 중직자이면서 이름값을 못하고, 목사라는 이름값을 못하는 꼭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1. 잃어버린 자 삭개오.
삭개오는 유대인이었고 키가 남달리 작았습니다. 삭개오는 세무공무원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다 갖게 되었습니다.
① 재물을 많은 부자였습니다.
② 세리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③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성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각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 각 세무서마다 책임 할당량을 정해놓고 그 이상 수금되는 돈은 세리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리 장들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자기가 착복하려고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게 하였고, 로마군대의 힘까지 빌려 세금을 안 내는 백성들을 협박하고 구타하고 감옥에 가두는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세금을 강제로 징수했습니다. 이런 세리들을 유대인들은 로마의 앞잡이 매국노 죄인으로 취급하여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매국노 죄인 취급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며 왕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집에 왕래하는 사람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가진 큰 부자가 되었으나 죄인 취급당하고, 멸시 천대를 받아 항상 외롭고 쓸쓸한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삭개오에 대하여 "잃어버린 자(10)"라고 말씀했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삭개오는 잃어버린 것이 거의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인생의 행복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몽땅 가지고 있는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 인생이 행복하였을까요? 또 삭개오는 부자라 했으니, 아마 돈 뭉치 속에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정말로 행복했습니까?
삭개오가 세리장이라는 권세로, 부자라는 재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심령 도리어 클클했습니다. 냉랭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밤잠 이루지 못하고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3절"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바로 이것입니다. 세리장으로, 부자로, 권세로 채울 수 없는 삭개오의 뻥 뚫어진 공허한 가슴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의 세리장을 높이 평가한 적이 없고, 부자를 행복의 잣대로 잰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불행한 삶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라고 이름을 붙이신 것입니다.
2.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눅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위하여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뻥 뚫린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볼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장애 때문입니다. 하나는 내부적 장애인데 키가 작기 때문이요, 둘째는 외부적 장애인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어 삭개오는 어른 체면 벗어버리고 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의 열심과 행동을 믿음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관념, 혹은 신념 정도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구경꾼 정도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교회 다닌 해수에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또 경험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 가기도하고, 직분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곤 합니다. 그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바람에 펄럭이는 예수님의 옷자락 정도를 보는 구경꾼 에 불과합니다.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돌 무화과나무 위에서 삭개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예수님 스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데 그것 정말일까? 성경의 기록돼 있는 데로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또 귀머거리가 들었다는 이 모든 사실이 정말일까?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그렇게 살리셨다는 데 이것 정말일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과거 소문을 되새기면서 나도 예수님을 한번 만나봤으면 좋으련만 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돌 무화과나무 위는 예수님은 구경할 수는 있으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못됩니다. 예수님을 감상하고 명상할 수 있으되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란 말입니다. 삭개오는 돌 무화과나무 위에서도 여전히 그 심령이 클클하고 냉랭하고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또 삶이 피곤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이란 말인가 한탄했을 것입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부름에 응답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계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요,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바로 병 고침 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 예수님은 지금도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권세로 안된다. 부자로도 안된다. 쾌락으로도 안된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돌 무화과나무에서 속히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예수님을 만나 뵙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인격적으로 영접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서 그 인생이 어떻게 변화됐습니까?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변해도 엄청 변했습니다. 삭개오는 옛 사람이 변해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송 421장(통210)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가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삭개오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또 빈말이라도 내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구제헌금으로 받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일 남에 것을 억지로 가로챈 것이 있다면 사 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삭개오는 변하고, 달라지고, 새 출발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이제부터는 예수님께 달라고만 하지 말고 변화되어 예수님이 기뻐하시도록 받치는 성도가 됩시다. 주일 성수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받치고, 감사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등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받치는 성도가 되 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 믿고 나의 무엇이 다 변했습니까? 나의 성품이 다 변했습니까? 나의 욕심이 다 변했습니까?
과테말라의 알모롱가(Almolonga)는 20여 년 전만해도 우상숭배로 매우 가난하고 폭력이 난무하며, 대부분의 남자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처럼 살아가는, 그야말로 어둠의 도시였습니다.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아 네 개의 감옥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알모롱가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가장 깨끗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되었고, 가정은 회복되었으며, 빈곤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도시의 90%가 복음화된 알모롱가를 이제"교회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과테말라는 알모롱가는 20년 전에는 땅에 씨를 심어도 싹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1년에 3번씩 수확하는 땅이 되었고 1달에 4트럭 수확하던 땅에서 1주일에 40트럭을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과테말라는 미국에 야채를 수출하는 나라인데 농업 생산량이 1000배가 되었습니다.
세계 각 나라에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배우려 찾아왔다가 과학적인 대답은 찾지 못하고 성경적인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자 땅이 변하고 농작물이 변하게 되었다는결론입니다. 알모롱가에서는 당근 하나가 어른 팔뚝만하고 무 추수가 60일이었는데 지금은 20일이면 추수하게 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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