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자연 창조의 섭리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자연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즐기고 정복하라는 부속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유익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해 왔습니다. 그저 무한정으로 주어지는 듯한 자연의 풍부함에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간과했던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배려인 동시에 엄위한 섭리 아래 놓여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체적으로 생성되고 운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여호와 하나님이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함께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1. 아름다운 피조물인 자연(눅12:27)
1) 여호와 하나님이 만족하심
자신이 목적한 것, 특히 이루기 어렵다고 주위에서, 포기한 것을 성취한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이나 만족은 일시적이며 그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만족은 개인적인 것의 성취에 대한 것이 주류를 차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 곧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족하셨습니다. 창조 기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 창조의 마지막까지 후회하지 않은 아름다운 피조물에 대하여 만족하신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모든 깊은 데서 다행하셨도다"(시135:6)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이 살기에 적절함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4)라고 시편 기자는 감격스런 어조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후대받은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살기에 적절하고도아름다운 자연을 조성하여 주셨습니다. 결코 부족함이 없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인간이 다스리도록 하시고 만물을 인간의 발 아래 두셨습니다(시8:6).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피심을 받고 있는 매우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들이 너무나도 풍성하여 소중하고 가치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확실하게 느껴야만 합니다.
2. 질서있는 피조물인 자연(창1:2-5)
1) 평화의 모본을 심어주심
오늘날 인간은 여러 가지 기상 이변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약속 위반으로 말미암은 것들입니다. 자연의 파괴는 인간끼리 경쟁과 다툼에 휩싸인 나머지 자연의 중요함을 간과한 결과입니다. 자연은 본래 평화스런 존재였습니다. 부와 명예, 권력의 독점으로 싸움을 일삼던 인간들에게 말없이 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평화는 서로 양보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라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평범한 사실을 자연이 그 자체로 웅변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생태계의 순환 고리, 법칙에 따른 우주의 변화는 순서와 질서가 평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임을 가장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임을 보여줌
창조의 순서를 거꾸로 뒤바꿔보면 일의 우선 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전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 속에 창조된 인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순서를 중시한 창조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도면밀하시며 섬세하심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맹목적이고 무지한 상태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 또는 아론에게 지시하신 명령을 통하여서도 엿볼 수 있는 것입나다(창22:9;27:21). 여호와 하나님은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시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혼란스러움을 보여 주는 대표적 상징이 아니라 질서의 가장 극적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모습인 것입니다. 셀 수 없는 별들이나 공존하는 동식물의 모습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증거입니다.
3. 은혜로운 피조물인 자연(시19:1-4)
1) 인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임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관리하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으로 곡식을 수확합니다(사30:23). 어느 것 하나 자연을 통하여 누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움이나 명철로 말마암아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눅6:35).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고 고백합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됨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1:20)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하늘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라고 찬송합니다. 만물의 오묘함이나 신비함은 창조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자연을 감상적인 즐거움으로만 느껴서는 안됩니다. 자연을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합당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죄악된 생활이나 행동은 자연을 통해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치 못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인위적인 창조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으되 실증도 느끼게 됩니다. 그에 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자연 창조는 인간에게도 기쁨과 만족을 줍니다. 인간과 함께 하는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는 교훈과 모범을 보여줌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자연은 동반자요 수혜자로서 아낌없는 육적, 정신적 사랑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1. 아름다운 피조물인 자연(눅12:27)
1) 여호와 하나님이 만족하심
자신이 목적한 것, 특히 이루기 어렵다고 주위에서, 포기한 것을 성취한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이나 만족은 일시적이며 그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만족은 개인적인 것의 성취에 대한 것이 주류를 차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 곧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족하셨습니다. 창조 기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 창조의 마지막까지 후회하지 않은 아름다운 피조물에 대하여 만족하신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모든 깊은 데서 다행하셨도다"(시135:6)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이 살기에 적절함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4)라고 시편 기자는 감격스런 어조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후대받은 자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살기에 적절하고도아름다운 자연을 조성하여 주셨습니다. 결코 부족함이 없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인간이 다스리도록 하시고 만물을 인간의 발 아래 두셨습니다(시8:6).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피심을 받고 있는 매우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들이 너무나도 풍성하여 소중하고 가치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확실하게 느껴야만 합니다.
2. 질서있는 피조물인 자연(창1:2-5)
1) 평화의 모본을 심어주심
오늘날 인간은 여러 가지 기상 이변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약속 위반으로 말미암은 것들입니다. 자연의 파괴는 인간끼리 경쟁과 다툼에 휩싸인 나머지 자연의 중요함을 간과한 결과입니다. 자연은 본래 평화스런 존재였습니다. 부와 명예, 권력의 독점으로 싸움을 일삼던 인간들에게 말없이 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평화는 서로 양보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라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평범한 사실을 자연이 그 자체로 웅변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생태계의 순환 고리, 법칙에 따른 우주의 변화는 순서와 질서가 평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임을 가장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임을 보여줌
창조의 순서를 거꾸로 뒤바꿔보면 일의 우선 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전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 속에 창조된 인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순서를 중시한 창조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도면밀하시며 섬세하심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맹목적이고 무지한 상태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브라함, 또는 아론에게 지시하신 명령을 통하여서도 엿볼 수 있는 것입나다(창22:9;27:21). 여호와 하나님은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시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혼란스러움을 보여 주는 대표적 상징이 아니라 질서의 가장 극적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모습인 것입니다. 셀 수 없는 별들이나 공존하는 동식물의 모습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증거입니다.
3. 은혜로운 피조물인 자연(시19:1-4)
1) 인간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임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관리하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으로 곡식을 수확합니다(사30:23). 어느 것 하나 자연을 통하여 누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움이나 명철로 말마암아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눅6:35).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고 고백합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됨
여호와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1:20)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하늘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라고 찬송합니다. 만물의 오묘함이나 신비함은 창조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자연을 감상적인 즐거움으로만 느껴서는 안됩니다. 자연을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합당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죄악된 생활이나 행동은 자연을 통해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치 못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인위적인 창조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으되 실증도 느끼게 됩니다. 그에 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자연 창조는 인간에게도 기쁨과 만족을 줍니다. 인간과 함께 하는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는 교훈과 모범을 보여줌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자연은 동반자요 수혜자로서 아낌없는 육적, 정신적 사랑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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