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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나비와 나방

본문

나비는 주로 낮에 활동하며 날개 색이 곱고 화려합니다. 나방-대부분 밤에 활동을 하고 날개의 색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단조롭고 어두운 편이죠 주로 밤에 활동하고 수평으로 날개를 편 채 쉬다가 날기 전에 몸을 흔들어서 열을 내서 체온을 높인 뒤 하늘을 난답니다. 나방이 불만 보면 발광하는 이유-나방은 원래 달을 보고 방향을 아는 야행성 곤충이예요~ 그런데, 모닥불, 등, 가로등들이 꼭 달 같아서 찾아가는 거죠. 빛을 따라가는 행동을 '주광성' 이라고 하는데요, 나비는 자유롭게 하늘을 휠휠 날아다니며 꽃들의 씨를 다른 끛들에게 옮겨주어 꽃들을 번식시키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밝은 시간대에 살아간다. 그러나 나방은 주로 야행성이어서 밤에 활동을 하다가 밝은 불빛만 보면 달빛인줄 알고 달려들어가 강렬한 빛과 열에 노출되어 죽는다. 이러한 나방을 우리는 불나방이라고 부른다. 성도는 나방이 아니라 나비다. 죄의 불빛을 향해 달려가다가 죽어버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밝은 태양빛을 향해 생명을 잉태하며 날아가는 나비다.

위험한 '파자마 도박' 에 빠진 불나방들
얼마 전 운동선수 출신의 유명 MC 강병규가 온라인 억대 도박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되면서 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와 미국 네바다-라스베가스대 연구팀은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를 발표해 관심을 끈다. 연구팀은 30명의 라스베가스 도박사(10명은 온라인 도박사, 20명은 카지노 도박사)를 대상으로 도박습관과 인식을 조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집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편안하게 게임을 하는 온라인 도박사는 카지노 도박사보다 자신이 게임을 잘 제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도박사는 카지노 도박사보다 게임에 더 오랫동안 빠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도박을 잘 제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설명. 이런 착각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점점 깊은 수령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연구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유혹하는 사단의 유혹은 너무나도 무섭지 않는가!

배경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예수를 믿는 자가 가지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자유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유를 설명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자유는 과연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가 그것을 가진 자는 얼마나 가치있고 감사함을 여기며 살고 있는가? 주님이 내게 주신 자유를 나는 과연 감사와 기쁨으로 누리며 살고 있는가?

1. 예수님은 죄와 사망,종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 (1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엘류데리아-해방,자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인생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 죄와 사망의 길에서 종노릇 하는 인생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이 자유라는 말은 해방이라는 말이다. 더 이상 죄가 죽음이 관여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켰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오늘은
3. 1절운동이 일어난지 90돌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1. 파고다 공원을 중심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날이다. 일제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을 위해서 전국민이 맨몸으로 맞선 날이다. 일본동경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과 영국에서 한국인들은 3. 1일을 기해 모두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외침이 결국 1945년 광복절을 가져오게 했다. 왜 우리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야 했는가? 주권없는 국가, 주권없는 국민 주권없는 삶은 자유인의 삶이 아니라 종이요 노예의 삶이기 때문이다. 참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3. 1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를 이루기 위한 민족적 운동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자유의 소중함을 아시고 36년간의 일본지배로부터 대한민국을 자유국가로 해방시켜 주었다. 3. 1운동의 주역들은 당연히 33인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주의자들인데 그 중에 기독교인들은 16명이었다.
3. 1절 운동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유관순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신앙을 따라 산 유관순
유관순은 어려서부터 천안 매봉 교회에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았다. “십자가 신앙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십자가 신앙으로 민족을 섬겨야 한다”는 말씀에 특히 감동을 받았다 그녀가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민족을 위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1절 몇일전 그때 그는 어린 조카를 데리고 3일간 나라를 위한 기도를 시작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뭔가 계시를 받은 듯 미친 듯이 기도를 마친 그의 얼굴은 온통 환하게 빛이 났다. 체포된 유관순은 감옥 생활 중에도 하루도 기도를 거르지 않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믿음을 위해 그리고 함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변절하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합니다. "내 나라를 찾기 위해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찌 군대로 내 민족을 죽이느냐!" 당시 유관순여사의 재판기록문 내용입니다 1920년 10월 12일 18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그녀는 단순한 애국 열사가 아닌 순교자로서 생을 마감합니다. 거사 직전의 마지막 기도문 비문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우리나라가 자유를 얻은 자유국가가 된 이유는 이러한 믿음의 선조들 때문이다.
현재 유관순 생가 옆에는 바로 매봉교회가 그날의 함성과 흔적을 자료로 전시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민족의 자유를 주시는 능력의 십자가이다.

예화>유관순과 노래방 인기얻고자 하는 여자
“여자인데요~ 노래방 가서 인기를 얻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기있는 여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다음 검색창) 한사람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며 살았고 한 사람은 노래방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달라는 글을 보면서 예수를 만난사람의 비전과 예수가 없는 사람의 비전이 이렇게도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 동아일보에 예비스타 3명 모집에 20000명이 지원하여 약 7000:1의 경쟁률을 보였단다. 탤랜트로 인기를 얻고 살고자하는 젊은이들의 비전을 보면서 유관순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2. 예수님은 죽음으로 불나방인생을 생명으로 가는 나비의 인생으로 자유케 했다(1중)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죄로 인한 죽음의 인생들을 자유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스스로 자신을 드렸다. 그 분의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 참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더 이상 죄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십자가는 죄를 완전히 멸하는 능력이 있다. 죄가 멸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로 인한 죽음은 우리에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얻게 된 것이 바로 완전한 자유다. 이 자유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게 하는 힘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이것을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가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라 한다

죽음의 불나방 인생에서 생명의 나비의 인생으로
성도는 더 이상 불나방의 인생이 아니다. 나비의 인생이다.
불나방과 같은 인생을 살다가 이젠 나비의 인생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꿔주셨다. 불나방의 인생을 보라. 깊은 땅속에서 숨어서 자라다가 유충이 되어서 번데기를 거쳐 깨치고 세상에 나왔지만 결국은 붉게 타오르는 불빛을 보고 달려들다 불에 타 죽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닌가! 불나방의 인생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불빛을 발견하면 그 즉시로 달려들어 온 몸을 불살라 죽임을 당하는 인생이다.
예수를 믿기 전의 우리의 인생은 바로 불나방과 같은 인생이었다.
이 세상의 온갖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다가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던가!
세상의 온갖 명예와 부귀와 인기와 쾌락을 쫒아 살다가 결국은 그 유혹에 빠져 죽음을 당하는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가! 성경은 이러한 인생을 ‘어리석은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에 불나방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돈의 유혹에, 명예와 권력의 유혹에 인기의 유혹에 자신의 영혼조차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라.

불나방의 인생을 한 순간 꿈꿨던 어리석은 한 친구
대학때 한 친구가 있었다. 유동근이라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대학도 들어가지 못하고 별로 할 일이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어느날 우연히 스탠드 바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별 생각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한 달 월급을 받았는데 무려 100만원을 받은 것이다. 1990년때 말이다. 갑자기 큰 돈을 만지게 된 친구는 그 날부터 매일저녁에 먹을 것부터 해서 입을 것 쓸 것들을 사왔다. 속옷과 양말도 매일 매일 사왔다. 특히 양말은 당시 제일 비싼 비와씨 하얀 양말만 사왔는데 한 번 산 양말은 빨지 않고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 그와 함께 자취하던 친구가 양말이 너무 아까워 잘 빨아서 말려 놓았는데도 그 친구는 신지 않았다. 하챦게 여긴 것이다. 그때부터 이 친구는 동근이라는 친구가 예전의 친구가 아님을 발견했다. 술을 먹고 들어오고 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행동으로 인해서 점점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큰 돈을 받은 친구는 함께 자취하던 친구의 집에서 나와 근처 스탠드바 옆에 방을 얻었다. 가끔씩 전화연락을 하던 친구는 아예 전화연락조차 없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그 친구가 그 돈을 가지고 대전에 가서 큰 사업을 하려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지금은 어디에서 사는지 알지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한 순간의 돈의 유혹에 자신의 인생을 불나방처럼 살았던 어리석은 친구였다. 학생시절에 함께 예배하고 꿈을 키우면서 멋진 인생을 살고자 한 친구였지만 돈이 주는 강렬한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불나방 인생의 특징은 세상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다(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불나방과 같인 인생들은 세상이 주는 세가지 유혹에 넘어간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모든 것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했다. 육신의 정욕! 이 얼마나 강렬한 공격인가! 죄악된 본성은 정욕에 쉽게 순종한다. 정욕을 따라 산다. 정욕이란 무엇인가? 이 정욕이란 말은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도록 요구하는 본성을 말한다. 우리 몸은 정욕에 쉽게 반응한다. 우리 몸은 더 편안하고 더 즐겁고 더 쾌감으로 더 자극적인 것들에 쉽게 길들여진다. 이 정욕에 노예가 되면 이젠 안목의 정욕의 유혹을 받는다. 보이는 것 만지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화려한 것들에 대해서 이끌려지는데 이것이 안목의 정욕이다. 결국은 이 세상의 자랑(유혹) 속에서 빠져서 살다가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숨겨진 인생이다. 이 숨겨진 인생의 배후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는 성도들을 죄악의 길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사단이 숨어 있다. 이 사단계략에 빠지게 될 때 우리는 불나방의 인생처럼 살다 가는 것이다.
정욕을 따라 살지 말라!
정욕이 주는 욕망에 살다보면 내 정신과 영혼까지도 정욕의 지배를 받게 되어 더 이상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다. 사람은 모두가 물질과 권력과 정욕에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단과 세상의 계락을 잘 모르면 그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불나방과 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나방처럼 인생을 살다가 어리석은 자들:바로, 고라,유다,
출애굽의 바로가 권력의 불나방이 되었다. 모세를 대적하던 고라 일당은 모세를 시기한 죄로 땅이 갈라져 그들을 삼키는 벌을 받았다. 뿐 만인가!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자기 편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그 고난의 잔을 그냥 마셨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있는 불나방인생을 찾아 그들을 나비인생으로 되돌려야 한다. 나비의 인생은 자신의 몸으로 이꽃 저꽃을 찾아다 참 생명과 자유를 주시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간증자가 되십시오 위대한 간증자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3. 주님이 주신 자유를 지키는 것은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이다. (1하)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 위대한 자유의 가치를 알았다면 믿음으로 살아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불나방과 같은 세상을 향한 인생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희생해서 주신 이 귀한 자유를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유가 제일 중요하며 소중하게 알고 여기며 사는 불나방의 인생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세상에 목표를 두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두는 것이다. 정욕에 목표를 두지 않고 거룩함에 목표를 두는 것이다. 죄의 종이 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종이 아닌 자유자로 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자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생명의 자유를 내 가슴 속에 지니며 주인답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 주인이지 종이 아니다. 자유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지 세상의 종이 아니다. 불나방의 인생이 아닌 나비의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더 이상 세상이 주는 물질, 정욕, 명예, 인기를 받아먹지 말고 말씀으로 굳게 서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라

예화>자유를 얻은 탈북자 전도사의 비전
예전 장신대에 다닐때 자유를 위해서 북한을 탈출한 한 젊은이가 신학을 하기위해서 장신대로 왔다. 그는 신학을 하는 이유가 한가지였다. 자신이 목사가 되면 곧바로 다시 북한에 들어가서 이 소중한 자유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육신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에게 영혼의 자유를 주셔서 죄와 사망의 길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단순히 사는 것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삶이었는데 예수를 믿고 나서 보니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삶이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그 분은 아마 지금쯤 북한에 관련된 일이나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예수님이 주신 그 자유의 가치를 발견한 전도사님은 다시는 죄의 종이 되어서 육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그것이 참자유의 증거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육체와 영혼의 자유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귀하신 예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며 사는가? 죄의 쾌락이 주는 쾌감보다 주님이 주시는 영혼의 희락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잡고 살아가자.

4. 참자유는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자유다(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육체의 기회-육체의 욕심, 죄악된본성의 욕심
그렇다면 이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 자유를 마음껏 즐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유는 그 자유가 주는 기쁨보다 그 자유가 베푸는 능력에 더 큰 기쁨이 있다. 바울은 그 자유를 단지 홀로 누리지 말고-자신을 위해 쓰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한다. 13절에 육체의 기회를 위해서 자유를 쓰지 말라고 하신다. 육체의 기회란 육체의 욕심, 또는 육체가 원하는 죄악된 본성대로 하고자 하는 욕심을 위해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자유는 자유만을 쓰다보면 방종이 되어 결국 자신까지도 타락한다. 자유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위대한 가치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길로도 인도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자신만을 위한 자유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이웃을 위한 약자를 위한 자유를 얻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쓰는 자유다. 즉 내게 주신 그 자유의 기쁨과 가치를 이웃을 위해서 쓸때 최고로 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다’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젠 자유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 자유를 알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종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낮아짐으로 이웃을 높여주는 자유다. 내가 사랑함으로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다 내가 종이됨으로서 이웃에게 자유의 기쁨을 알게 하는 자유다 이러한 자유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섬김의 자유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섬기는 자유다.
군림하고 자랑하고 뻐기고 우쭐되는 자유가 아니다
내가 가진 이 생명의 자유를 구원의 자유를 세상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자유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섬김으로 말이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자신을 완전히 십자가에서 죽이심으로 인간을 섬겼다. 자유를 주셨다. 사랑으로 종노릇하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베풀어야 할 자유다. 여러분이 가진 자유를 이젠 섬겨야 한다. 이 섬김을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가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유를 마음껏 섬기면서 참 자유인을 한 사람 한사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유의 전도사로 부름받은 성도들
성도는 자유를 전도하는 전도자들이다.
죄와 정욕과 억압과 죽음에서 자유를 전하는 전도사이다
나를 죄로부터 정욕에서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간증자들이다.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자유를 주신 예수님의 간증자들이다
나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섬겨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자유자다
위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참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죄와 사단의 권세에 눌려 사는 사람들을 섬기는 자유자다. 우리의 섬김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물러난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간증할 때 그곳에 참자유가 생긴다 일어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위대한 사역을 바로 내게 주시고 맡기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유는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유이다
죄와 사망에서 내가 자유롭게 된 것을 날마다 간증하며 전하도록 주신자유다
이 자유를 전하고 증거하는 것이 참자유인의 사명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죽음은 참자유를 주기 위한 진정한 섬김이다예수님의 섬김처럼 우리도 이웃을 죄의 종된자를 섬기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나라가 없는 자는 나라를 위해서 독립운동을 펼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구원과 영생이 없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전하는 사역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다. 내가 한사람을 섬길때 그 섬김은 사랑에서 나오는 섬김이고 그 섬김으로 한 영혼이 주님을 만나는 자유를 얻는 길이다. 내가 가서 이 자유를 주신 예수님을 전할 사람은 누구인가? 아직도 불나방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비처럼 생명을 날라주는 생명의 전도사가 되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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