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31절] 느헤미야의 나라사랑

본문

삼일절은 기독교인이 앞장서서 일어났습니다.
3?1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주동이 되어 앞장 선 운동입니다.
33인 대표 중 기독교인 16명, 천도교 15명, 불교인 2명입니다. 기독교 대표는 길선주 목사, 천도교 대표는 손병희 선생, 불교 대표는“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 선생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인수가 겨우 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 3%입니다. 천도교는 약 3백만 명으로 10배가 넘었습니다. 전체국민의 1. 3%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에게서 16인의 대표가 나왔다는 것은 당시 기독교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고 신임을 받고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삼일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했기에 무저항운동, 비폭력운동이 되었습니다. 이때 독립운동으로 체포된 사람의 22%, 복역수의 77%가 기독교인입니다.
교회당 17개가 파괴되었습니다. 일부 파괴된 것이 24동, 그 외 교회당의 손해가 41동 이었습니다. 시위 중 총에 맞아 죽은 교인이 41명, 매 맞아 죽은 교인이 6명입니다. 체포된 신자가 3,804명 목사님 장로님만도 134명입니다. 목사님 장로님 총수가 1,029명이었는데 체포된 목사님 장로님은 13%에 이릅니다.
민족의 지도자 조만식 이상재 같은 분들이 장로님이었고, 1896년‘독립협회’를 조직한 서재필 윤치호… 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립협회 지부도 거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보아 기독교는 서구문명을 들여와 선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3. 1독립운동 대표자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인이나 되며 비서명자 48인 가운데도 24인의 기독교인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3. 1운동에 직접 서명한 목사님들 중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고민하던 신석구 목사의 경우 선언서에 서명하는 문제를 놓고 새벽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민하면서 27일 새벽에야 "5천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내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 "는 응답을 받고 참여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한국교회는 3. 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해 왔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피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나라를 사랑하며 조국에 소망을 주는 교회로서 사명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2. 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하여 울었습니다.
본문 느헤미야 1장의 말씀은 느헤미야의 나라사랑 애국운동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여호와에게 위로받음” 유다지파 하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남유다가 B. 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할 때 포로로 잡혀온 포로 중에 한 사람으로 느헤미야는 포로 유배지에서 태어난 제 2세대였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시대적인 정황이 B. C. 445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봐서는 포로지에서 태어난 포로 2세대임이 분명합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수산궁에서 아닥사스다 I세의 신임을 얻어 술 맡은 관원으로 B. C. 445년에 유대 총독에 임명되어 3차 예루살렘에 귀환 때 귀환하여 무너진 성곽 중수를 52일 만에 완수 했습니다.
첫 번째 귀환의 지도자 스룹바벨, 두 번째 귀환의 지도자 에스라를 이어서, 세 번째 포로 귀환을 할 때에 느헤미야는 유다의 총독으로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12년간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욕심이 없는 애국자로 유대 전통을 지킨 가장 대표적인 신앙인이었다.
타국의 벼슬살이를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언약을 잃어버리지 않은 현명한 애국자요 정치가였습니다.
구약 인물사에서 가장 의협적인 인물로써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이 다 불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울고 슬퍼했습니다.
느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동족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며 울며 금식하였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생각하며 가슴아파 하였습니다.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 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 는 바로라. "
우리 주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고 우시면서
눅19:42-44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고 가슴아파하였다.

3. 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느1: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 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
자기 동족의 죄를 대신하여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모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절하며 범죄한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출32:31-32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 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 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
신앙인들은 백성의 죄를 위해 대신 기도하되 자기가 범죄한 것처럼 가슴 아파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민족의 죄를 대신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 상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눅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4. 느헤미야는 동족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느1:11"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 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
기도한 후에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서 조국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왕의 허락을 받고 조국에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쌓았습니다. 낙심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3. 1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소망을 주는 운동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 가운데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라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민족에게 주었습니다.
선교사 스피아(R. E. Speer)는 한국 선교에 대한 선교부 본부에 보고한 내용 가운데
"교회만이 이 나라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다…교회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결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지적으로 소생한 사람들, 인격과 용기와 희망에 가득 찬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양성한다. 대중을 회심시켜 교육시키는 일이 이 나라의 유일한 희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구원의 종교이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느헤미야의 나라사랑, 애국운동은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모델로 보여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조국의 아픔, 민족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조국을 위하여, 민족의 죄를 대신하여 기도하며, 민족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 비화(秘話) 중에 마사다(마짜다)사건이 있습니다. 마사다는 사해바다 남쪽에 위치한 천연적 요새입니다. 정열적인 유대여성들은 아이가 출생하면 마사다 요새에 데리고 가서 조상들의 용기를 설명해주고 훌륭한 조상들을 둔 자손답게 살아가라고 산교육을 합니다.
주후 65년경, 로마의 폭군 황제 칼리굴라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자신의 신상을 조각해놓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벌 떼같이 일어나 저항합니다. 이 저항운동으로 110만 명이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열혈당원을 비롯한 혁명주의자들 960명이 마사다 요새로 피신합니다.
이곳에서 3년을 버팁니다. 로마군단은 마사다와 같은 또 하나의 성을 만들어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번의 공격에는 누구도 막아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항복이냐 자결이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도자 엘르아살(유다자손)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택일을 요구합니다.

“명예롭게 자결할 거냐, 아내와 아이들은 눈앞에서 겁탈 당하고 평생 노예로 살 것이냐?”
마사다 용사들은 노예보다는 자유인으로 죽기를 선택합니다.
우선 100명을 선택해서 아내와 자녀들을 죽였습니다, 860명은 서로 껴안고 죽었습니다.
다시 100명 중 10명을 선택해서 그들이 90명을 죽였습니다. 마지막 1명이 남아 9명을 죽이고 끝내는 최후의 1인이 마사다 요새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관을 갖고 있었기에 6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2차대전에서도 결코 조국을 배반하지 않았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애걸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자손들에게 계속 이어져 갈 것이라는 확신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9주년 3. 1절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고 나라를 사랑하며 세상에 소망주고 꿈을 주는 임마누엘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