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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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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산 윤동주 시인이 시를 인용합니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야위여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이 시는 간(liver)을 사이에 두고 토끼전과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차용한 것은 성공적인 두 고전의 내용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간을 지키자는 것은 우리 한민족의 의식이고 간을 뜯어 먹히는 것은 자기희생을 통하여 의식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한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저항과 희생의 자기세계를 노래한 윤동주의 시는 너무나 우리에게 순결한 의식과 기독교적인 참회정신을 깨닫게 해줍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고자 했던 민족 청년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43년 7월 14일 일본에서 일본 유학생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1945년 2월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의문의 병사로 인생을 마쳤다고 친구들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그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그가 어떻게 2년 동안의 감옥생활을 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있었던 일본의 규수 후쿠오카 형무소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그가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고향집에 편지해서 차입한 신약성서를 옥중에서 읽고 있다. 그는 날마다 이 책에 빠져있다. ”
이 글은 형무소에서 그의 삶의 동태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적어놓은 기록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생의 최후를 마무리하고 있었던 그에게 시는 그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산 그는 진정 최선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삼일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1919년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아래 민족의 처지가 암울하던 때에 우리의 자랑스런 조상들은 맨몸으로 일제의 총칼 앞에 자신을 던졌던 날을 기념한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찬란한 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봅니다.
1890년에 동학 운동가들이 광화문 앞에 꿇어 앉아 왕에게 집단상소를 한 것을 보고 그 당시의 선무관이었던 어윤중은 이것이 서양의 민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이승만 청년도 만민공동회의와 독립협회를 통하여 이러한 민주정체를 실현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투옥이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계기를 만든 것입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여호와 하나님의 때에 삼일 운동이 일어나서 자유민권의 사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삼일운동의 대표도 민족대표요 주체도 평민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표현을 빌면 전문인입니다. 33인 가운데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표현을 빌면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역대 남한의 대통령들은 모두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한국의 정치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33인중에 누구의 이름을 가장 먼저 쓰느냐고 언쟁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때 조만식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형대에 이슬로 사라지는 순서인 데 누가 먼저인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제 밑에서 몸은 고단했지만 민족의 정기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 찬란한 역사의 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은 1억 8천만 인구가운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수는 10만명정도라고 합니다. 원자탄 폭격 이후 저들은 영어를 안 쓰고 미국을 이기기로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일본이 우리 보다 10배의 경제 규모와 중국이 10배의 경제 규모를 가진다고 하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지도자가 될 수가 있을까요?
하늘의 백성인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이 오늘 남북으로 나뉘인 지 몇몇 해인지 알 수도 없는 처참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26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나를 위한 기도에 머물지 말고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라고 기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깨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3절상)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여기서 잠든 부모를 깨우는 어린아이의 자세로 여호와 하나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부모님이 오수를 즐기신다면 아이들은 나가서 놀아야 했고 말도 조심조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루에서도 발뒷꿈치를 들고 걸어야 했습니다. 그 만큼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의 권위가 더 높습니다. 제 친구 어머님이 눈이 총명한 며느리를 맞이한 것을 후회하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며느리는 눈이 흐리멍텅한 자를 얻어야 시어머니가 편하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편 121편 43절입니다. 이것은 시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간과 같이 신인동형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는 수사법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당한 현실을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소리를 듣고 단잠에서 깨어나는 부모님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깨신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영영히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23절하)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일정 기간 동안 버림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영영히 버림을 받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풀로 붙인 관계와 같이 하나가 된 부부가 풀을 떼어내는 것과 같이 이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세아의 가정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나이가 되면 결격 사유가 없으면 다 직분을 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직분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면 비참한 것입니다.
1980년도 이 나라 교회가 함께 모여서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에서 10만명이 선교사로 서원을 했습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그 때 은혜를 받고 신학교에 가는 계기가 되셨습니다.
주께서 그 언약 위에 이 나라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교회와 나라를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고 2000년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님의 백성들을 넘치게 축복하여 주셨으며 GDP 세계 11위 국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상을 섬기고 어느덧 여호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렸을 때 우리에게는 IMF라고 하는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북핵의 위협 가운데 있습니다. 2012년 북한은 3세대 리더로 김정은을 세운다고 합니다. 세종시 이전 공방을 하고 있는 남한은 대선이 있습니다. 미국은 대선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총선, 일본도 총선이 있습니다, 중국은 후진타오를 이어서 시진평이 주석이 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여호와 하나님의 때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례자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한국교회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원한 대로 10만명의 선교사를 보내겠다고 한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이 땅이 1907년의 평양 대 부흥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2007년이 되기까지 수 삼년 안에 이 땅에 다시 부흥의 불길이 붙어서 현재 2만 5백명의 선교사가 10만명의 선교사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깨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전신자선교사주의에 입각하여 모두가 선교에 동참하는 마음을 가질 때 전교인 선교사화가 가능합니다. 아니, 전교회 담임목사선교사주의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성장의 95%를 담당하고 있는 목사님이 선교성장의 95%를 담당하실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의 20%선을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20%가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10% 정도의 교회가 선교에 동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마음에 품고 세계선교를 향해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010년이 오기 까지 씨 뿌리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주께 드릴 열매를 가득 안고 주님을 비올 것을 기대하며 이 3월을 보내야 옳을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도와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25절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피조물이고 죄를 짓고 회개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를 해야 마땅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조금 마음을 더 쓰게 되면 나라를 위한 탄원 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구푸리고 있는 모습을 한 것이 우리나라의 지형도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임을 시인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 지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지도가 양이 구푸리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북아를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크리스챤들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보면 몸의 상체는 보이지 않고 하체만 보이는 겟세마네 동산의 칠흑같은 어두움의 시간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과 같은
간절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시간입니다.
지난 주에도 저는 함경북도 화령에서 탈북하여 이남에 온 19세된 여학생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중학교 2학년 학생만큼 작아보였습니다. 핏기가 없고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이 한반도에 어둠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주로 고백하는
 주님의 교회가 곳곳에 세워져 십자가 사랑을 심었네.
 이 땅에 다시 소망이 있을까
 세상 열방은 생각 못했지만 그러나 놀라운 사랑의 주님은
 열방을 비취는 빛으로 우릴 세우셨네
 자 다시 함께 일어나 어둠의 일을 모두 버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자 다시 함께 깨어나 두려움 모두 떨쳐버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주 다시오심 선포하라 이 땅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적은 무엇입니까?
저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세상의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주변의 열강에 둘러싸여 아무리 노력해도 동북아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자괴감입니다. 그리고 남북이 나뉘어서 마치 제로섬과 같이 분리가 되어있다고 하는 진공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독일의 베를린 벽이 무너졌듯이 남과 북을 나뉜 도시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다시 남북의 교류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개성에서 의류공장을 하는 신원 에벤에셀의 박성남 사장은 크리스챤입니다. 크리스챤들은 겸손히 섬기는 리더십을 가지고 북한이라고 하는 전방위를 향해서 전투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가나안을 정복하러 성벽을 기어 올라가는 여호수아의 군대처럼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예비하는 자세로 붉은 줄을 드리우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민족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의 세월은 끝이 있습니다.
그 때와 시는 우리가 알지 못해도 그 날이 옵니다. 그 날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쇠잔해진 육체로 드리는 그 간절한 기도 덕분에 2012년 전에 남북이 통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2년 대통령선거가 통일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몇 해 전에 저희 선교훈련을 받으신 군산대학교 학장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분은 80세가 다 되신 장로님이십니다. 선교 훈련을 다 마치고 졸업 면담을 하시면서 사실은 유관순 여사가 자신의 아주머니라고 합니다. 저는 갑자기 3월 하늘을 우러러 보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만큼 저도 나라를 생각하며 살아온 나날들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일본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유관순 집안에서 선교사가 왔으니 일본에서는 긴장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왜 일본에 왔느냐는 질문에 일본의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왔다고 대답을 하니 일본 기독교인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그 빚을 갚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곁에 와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가족과 이웃과 동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남북통일의 원자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월1일 만세사건은 우리 민족에게는 전원과 같은 것이라고 어느 교회사 교수는 말합니다. 저는 조금 더 나가서 전원이 아니라 원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너지 만이 아니라 빛도 발하는 원전에너지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삼일절에 사랑의 원자탄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겠다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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